4-27
“네, 네 이놈. 지금 뭐라고...”
“왜, 이제는 귀도 먹었나 보지? 야, 솔직히 말해서... 니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서 가문까지 이용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쓰레기나 하는 짓이란 말이야. 아, 너는 쓰레기니까 해도 되나?”
로인은 젤루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익!”
젤루스는 검을 들고 로인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로인의 말에는 오류가 있었다. 가문의 검술이 특별하기는 하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검술은 사용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이 배운 것이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지, 가문의 검술은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많은 대중들 앞에서 보이는 것을 꺼리는 뿐이었다. 그런데 로인이 가문을 들먹여 가며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자, 화가 난 것이었다.
‘흥분은 패배를 향한 지름길인데, 바보로군.’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검을 들어 젤루스의 검을 막았다. 느린데다가 검이 흔들리고 있었다. 왼손으로 들고 있는 검이었지만, 막기는 수월했다. 별로 힘도 실려 있지 않았다. 로인은 발을 들어 젤루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로인이 젤루스의 검을 뿌리치자마자 공격을 해서, 젤루스는 미처 방어하지 못한 것이었다.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크윽.”
젤루스는 로인의 발에 얼굴을 맞고, 뒤로 자빠졌다. 로인은 젤루스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누가 승리일까요?”
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졌다.”
젤루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로인은 아무런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이미 포기한 상대를 자극 해보았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인이 로인에게 다가와 천으로 로인의 땀과 먼지를 닦았다. 실비아는 가만히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로인에게 다가왔다.
“네가 이길 줄 알았어.”
“위험했어. 저 녀석이 흥분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패했을걸. 그리고 아마 저 녀석 성격으로 보아서 내 사지중 하나는 날아갔을 거야.”
“에이, 뭘 해도 네가 이겼을 거야.”
실비아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로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제 가고 싶은데...”
로인은 실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들어 젤루스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이겼으니, 약속대로 저희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시기 바랍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젤루스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병 100명을 지원해 주십세요.”
실비아는 말했다. 젤루스는 실비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정병 100명? 병사들을 이용해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안 된다는 것,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젤루스는 말했다.
“몬스터 토벌이라면 합당한 이유가 되겠나요?”
“...어디의 몬스터를 토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라쿠스 지역의 몬스터를 토벌하려고요.”
실비아가 말했다. 실비아의 말에 로인이 고개를 돌렸다. 젤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라쿠스 지역의 몬스터를 고작 100명의 병사를 가지고 토벌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고작 100명의 병사가 아니죠. 100명의 병사에 저, 그리고 루푸스 준남작. 이 정도면 몬스터 토벌은 충분히 가능 할 것 같군요.”
“...루푸스 준남작의 무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저를 이겼다고 루푸스 준남작을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루푸스 준남작의 무력은, 검이 전부가 아닙니다.”
실비아는 젤루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로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은 최대한 숨기는 것이 좋은데 말이야...’
“그건... 무슨 뜻입니까. 검이 전부가 아니라니.”
“말 그대로, 루푸스 준남작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도 당신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굳이 검을 사용해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죠.”
실비아는 말했다. 젤루스의 눈이 흔들렸다.
‘검을 사용하지 않고... 젤루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가이스를 소환 하는 것 인데, 젤루스가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승리 했을 것이고, 마나를 사용한다면... 뭐, 그래도 이겼겠군.’
로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가이스의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가이스의 도움으로 오우거를 상대하고, 트롤은 가이스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통의 마나유저들이 트롤을 상대하지 못하니 가이스는 당연히 마나유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천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젤루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알아서 생각하세요. 그래서, 병사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거에요?”
“...루푸스 영지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젤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는 그런 젤루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로인도 실비아를 따랐다.
“야,”
로인은 실비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응?”
“나 이제 내 영지로 간다.”
“오늘?”
“어, 지금.”
“...벌써? 좀 더 있다가지?”
실비아는 아쉬운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가야지. 내가 이곳에 있는 하루에 영지 주민들은 몬스터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걸.”
“...야.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할 말 하라고 한 말 아니다.”
“...”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가끔 영지로 찾아갈게.”
로인이 실비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찾아와라.”
“한 달에 한 번씩은 무슨, 너희 영지까지 가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린다.”
“...”
실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자주 찾아갈게.”
로인은 실비아를 안았다. 실비아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는 거야.”
“미안해.”
로인은 젖은 실비아의 목소리에, 답했다.
“하아...”
실비아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털었다.
“야, 너 지구에 돌아가면... 영화 한편 같이 보는거다.”
“그래. 지구에 가면, 영화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하자.”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안 지키기만 해봐라. 내가 시큐리티 불러서 너 찾아 낼 거야.”
“무슨 시큐리티...?”
“재계 서열 3위다. 시큐리티 하나 없을 리가 없잖아?”
로인은 실비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시큐리티를 이용하게 될 일은 없을 거다. 말만해, 언제든지 같이 갈 테니까.”
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비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고 하니까. 이제 작별 해야겠다.”
로인은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실비아 또한 손을 들었다.
“아, 내가 여기 일 처리하고 뒤따라갈게. 몬스터 토벌하는 거 도와줘야지.”
“에이, 도와줄 필요 없어. 몬스터가 뭐 트윈헤드 오우거가 널려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나도 상대할 수 있어.”
“뭐래, 야, 거기는 마나 유저 중급이었던 자작이 몬스터를 토벌하려다가 실패해서 영지가 쫄딱 망해버린 곳이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널려있지는 않은데, 트롤이 널려있고, 오우거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네 영지다.”
“...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던가. 고마워. 신경써주어서.”
“친구니까.”
“그래... 친구니까.”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정말 갈게.”
“잘 가.”
실비아는 손을 흔들었고, 로인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인은 마차에 올라타 마차를 출발 시켰다.
자신 혼자뿐이라면 그냥 걸어서 가겠지만, 나인도 있는 형국이니 마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인은 수도를 벗어나자, 고개를 돌려 나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영지로 출발인데, 기분이 어때?”
“...새로운 집으로 간다니, 기대가 되요.”
나인은 말했다. 로인은 딱딱하게 각을 잡고 앉아 흔들리는 마차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애쓰며 대답하는 나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기대? 이제부터 고생 할 텐데. 아주 열심히 해야 할 거야.”
“...”
나인은 로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바쁠걸. 내가 최대한 자유 시간을 주겠지만...”
로인은 중얼거렸다.
“아, 그래도 너무 심한 건 시키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로인의 말에 나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로인을 보아온 것으로 생각해보면, 로인이 무리한 것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아, 선물이 있어.”
로인의 말에 나인은 고개를 들었다. 로인은 인벤토리에서 책을 몇 권 꺼내었다. 하루 전 마탑을 찾아 구입한 3클래스 마법서였다.
“별건 아니고, 3클래스 마법서야. 선생님이 없어서 힘들겠지만 틈나는 대로 공부하면 3클래스까지 할 수 있을 거야.”
로인은 나인에게 마법서들을 건네며 말했다. 나인은 로인의 말에 화들짝 놀라 팔을 뻗었다. 3클래스 마법서. 2클래스 마법까지만 배우고 더 이상 배우지 못했다. 지금은 노예가 되었지만,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은 그대로 남았다.
“가, 감사합니다.”
3 클래스 마법서라면 권당 60골드는 되는 물건이다. 이 마법서들을 다 합친다면 자신의 몸값보다 비싼 것이다. 나인은 3클래스 마법서들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마법사로서의 욕망이 다시금 깨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욕망도 깨어나고 있었다.
‘반드시... 복수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놈...’
나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로인은 눈을 감은 나인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남자 종을 구했으면 마차도 종보고 몰라고 했을 텐데 말이야.’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말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사실 로인은 개인적으로 마차를 선호하지 않았다. 흙먼지가 날리고, 말이 똥을 싸기도 했다. 그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인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여자인 나인이 험한 산길을 걸어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로인의 체력은 대단하다. 그런 체력을 나인이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로인은 나인을 종으로 삼아서 좋은 점도 많지만, 포기해야하는 점도 있다.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지로 가면... 고생 하겠다.”
로인은 중얼거렸다. 영지로 가면, 여러 가지 일이 많을 것이었다. 몬스터 때문에 고생을 할 것이고, 여러 민원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영지를 얻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하지만 영지를 얻음으로서 책임을 질 것이 생긴 것이고, 책임을 질 것이 생김으로 포기해야 할 것이 생겼다.
어찌 보면 나인의 경우와도 같았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쩌겠어.”
로인은 중얼거리며 말했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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