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록펠러 센터의 Top of the Rock은, 석우가 생각한 것 보다 관광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Top of the Rock으로 가기 위한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가면서 록펠러 가문의 일대기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석우는 대단한 부자인 록펠러 가문에게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부자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자신과 록펠러 가문을 비교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작았다. 석우는 이미 평생을 놀아도 될 만큼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욕심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부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보석으로만 돈을 벌었다. 최상품의 보석들을 가공을 하여 경매에 내놓았다.
판테아 대륙은 지구에서보다 보석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직 보석 광산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 석우는 미스릴을 가장 주목했다. 미스릴은 지구에서든, 판테아에서든 가장 귀한 금속 중 하나였다. 미약하게 체력을 보정해주는 효과가 있어, 부자들은 열광했다. 지구에서는 미스릴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웠다. 오죽하면 미스릴이 별이 떨어지면서 그 열에 의해 만들어진 금속이라고 불리겠는가.
하지만 판테아에서는 지구에 비해서 몇 십 배는 찾기가 수월했다. 미스릴 주화가 있으니 무엇이 문제인가. 최고급 보석과 미스릴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순식간에 경매로 팔려나갔다. 그렇게 번 돈이 수백억 원이다. 미스릴이 극소량만 함유되어 있어도 십억 원은 가볍게 넘어가버리니, 당연했다.
지구상에는 밤을 오래 즐기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아주 많았다.
어쨌든 그렇게 돈을 벌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석우는 기왕이면 더욱더 큰 부자가 되기를 원했다. 록펠러 가문처럼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거대한 재산을 쌓고 싶었다.
‘뭐, 아직은 욕심일 뿐이지. 아직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Top of the Rock에 도착해 있었다. 석우는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미국의 야경에 탄성은 질렀다.
“와우.”
“멋지다.”
아름다웠다. 누군가 이곳을 빌딩 숲이라고 표현했던가? 그럼 석우는 그 말을 정정하고 싶었다. 이곳은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들의 숲이었다.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 대었다. 석우는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여유롭게 야경을 바라보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 들어왔다. 여자는 다른 관광객들과는 다르게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야경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석우는 여자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레이첼 록펠러, 레벨 72.]
‘록펠러?’
석우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록펠러 센터의 Top of the Rock에서 만난 록펠러. 과연 우연일까? 록펠러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록펠러 가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석우는 록펠러 센터에서 만난 록펠러에게 흥미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석우는 열심히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린을 잠시 내버려두고, 레이첼 록펠러라는 사람에게 향했다.
린은 잠시 석우를 돌아보았지만, 그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석우가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석우가 화장실이라도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멋진 야경이네요.”
석우는 미소를 지으며 레이첼에게 말을 걸었다. 레이첼은 석우를 돌아보았다.
“그렇죠? 자주 보는 야경이지만, 언제나 멋지네요.”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석우의 말을 받았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로 남자들에게 소위 헌팅이라는 것을 많이 당해보았던 것 같았다.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한 레이첼의 모습에, 석우는 미소를 지었다. 여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레이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석우는 레이첼의 얼굴 깊은 곳에 있는 어두움을 보았다. 연기 스킬 덕에 다른 사람의 깊은 곳 까지 볼수 있었다.
“저 야경처럼 예쁘네요.”
“누가 말이죠?”
“당연히 당신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석우는 레이첼의 옆에 서며 말했다. 레이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자주 있었던 상황인가. 석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이런 칭찬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자주 듣는 말이었을 테니까.
“고마워요. 당신도 멋있네요.”
“과분한 칭찬입니만, 미녀가 하는 말이니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우는 살짝 과장된 몸짓으로 반응하며 말했다. 그런 석우의 모습에 레이첼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과분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멋진 동양인은 처음 보는 군요.”
레이첼의 말에, 석우는 미소를 지었다. 석우는 고개를 돌려 밤의 뉴욕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멋진 야경이지만, 알고 보면 좀 다를 것 같군요.”
석우의 말에, 레이첼이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빛. 사람들은 그것에 현혹되어 아름답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어요. 자신들이 보는 빛의 무대는, 어둠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어둠이 있음에도 빛만 바라보지요.”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석우의 말에, 레이첼은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둠을 바라보았다. 석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빛에 가려져 있는 당신의 어둠이 무엇인지, 제가 알아도 되나요?”
석우의 말에, 레이첼의 눈은 살짝 흔들렸다.
‘이 남자. 무언가 다르다.’
레이첼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들은 모두 자신의 외모에 현혹되어 말을 건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항상 적당선을 유지했다. 친근하게,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다가가지도, 오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많은 남자들이 말을 걸어왔지만, 석우와 같은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레이첼은 석우에게 조금 흥미가 도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어둠이라... 저는 그다지 어둠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는 것 같군요. 돈도 있을 만큼 있고, 집도 있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화를 일으키는 법이죠.”
석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꽤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킬 힘을 가지고 계신가요?”
석우의 말에, 레이첼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당신은 참 신기한 사람이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에요, 저는 레이첼이에요. 당신은?”
“로인이라고 불러주세요.”
석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이첼은 호오. 하는 표정을 짓는다.
“로인이라면... 미스릴의 로인. 입니까?”
“제가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만...”
“카사노바의 심장. 200만 달러로 팔렸죠? 그거 제가 산거에요.”
“오. 제 손님이셨군요.”
석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그런 루비를 구하신 거죠? 게다가 그 주위에 촘촘히 박혀 있던 다이아들은 모두 최상급이었는데...”
“다 구하는 곳이 있죠. 세공은 어떠셨습니까? 최고의 세공사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인데.”
우갈핸드가 만든 물건이다. 당연히 최고의 세공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최고의 물건이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보석들 중, 가장 아끼는 보석이랍니다.”
“가치에 비해 싸게 팔리기는 했죠.”
석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군요.”
레이첼의 말에, 석우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제가 특이 하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만만치 않은 거, 아시죠? 록펠러 양.”
“제가 록펠러인 것은 어떻게 알았나요?”
“제 물건을 사셨다면, 제가 구매자의 정보를 아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가명을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린의 허리를 감으며 말했다. 레이첼은 웃음을 흘렸다.
“그쪽은?”
“린, 마스터의 애인이지.”
린은 레이첼을 살짝 경계하며 말했다.
“제 수하... 라고 해두죠.”
석우의 말에, 레이첼은 린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의 소망을 말한 것인가요?”
린은 레이첼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로인, 당신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내일 저녁 식사에 초대를 해도 될까요?
“좋습니다. 내일 스케줄은 없으니까요.”
“저녁 7시에, 여기로 오세요.”
레이첼은 메모지에 주소를 써서 내밀었다. 석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를 받았다.
“당신과 대화, 즐거웠어요. 내일 보죠.”
레이첼은 그렇게 인사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석우는 그런 레이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린이 고개를 돌려 석우를 바라보았다.
“누구?”
“레이첼 록펠러. 내 손님이야. 뭐, 내일쯤이면 동업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석우는 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허리에 올려져있던 석우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자, 기뻐해야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고민하던 린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는 거네?”
“글쎄.”
석우가 화려하게 빛나는 빌딩들을 보며 말했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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