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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인은 무고를 가지고 노는 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린이 무고를 저렇게나 좋아하니, 무고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아, 나 지금 나갈 건데, 여기 있을래 아니면 같이 갈까?”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린에게 말했다. 린은 고개를 들어 로인을 바라보다가, 무고를 들고 로인에게로 점프했다. 로인은 가볍게 린을 안아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인이 향하는 곳은 시장이었다. 그렇다고 보통 시장은 아니었다. 오늘은 막내 황자의 생일 무도회가 열리기 전날임과 동시에 한 달에 한번 열리는 노예 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사람을 사고판다는 것이 로인으로서는 황당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노예가 있으면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로인은 노예 시장에 도착하자,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노예시장은 경매형식으로 열렸는데, 마음에 드는 노예가 있으면 즉석으로 금액을 말하여 그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없다면 낙찰이 되는 형식이었다.
거래가 진행 되는 곳은 이미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로 북적 북적했다. 하지만 의외인 것은 돈이 별로 없어 보이는 평민들 또한 꽤나 눈에 띄었다. 경매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경매에 늦든 말든, 로인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필요한 고급 노예들은 마지막에나 나오기 때문이었다.
노예는 대부분이 여자였다. 노동력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남자 노예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동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원했던 것이다.
“자, 이 아이는 이제 16살! 파릇파릇한 처녀입니다! 게다가 요리를 어찌나 잘하는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요리를 합니다. 시작 가격은 15골드!”
경매 진행자의 말에, 로인은 고개를 들었다. 음식.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3가지 중 하나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욕구였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기는 한데...”
로인은 중얼 거렸다. 하지만 로인은 여자아이의 머리 위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쟈스민, 레벨 17]
레벨 17이라면 평범한 여자아이의 레벨이었다. 로인이 실망한 이유이기도 했다. 레벨은 강함의 척도가 아니었다. 싸움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무언가 특출난 것이 있다면 레벨이 높았다.
무엇을 하던지 경험치를 조금씩 얻기 때문이다. 요리를 잘한다면 평범한 사람보다 레벨이 높은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저 소녀는 평범한 레벨이다. 요리를 잘할 수는 있겠지만, 엄청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단지 요리를 잘하는 정도의 수준이면 로인 자신도 할 수 있었다.
로인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직 자신이 원하는 노예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 경영에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한참동안 기다리던 로인은 눈을 빛내며 경매에 오른 소녀를 바라보았다.
“자! 여러분, 오랜만에 엄청난 상품이 들어왔습니다. 이 22세의 젊은 여자는 무려! 2클래스의 마법사입니다! 자간 왕국의 몰락 귀족의 딸인데요, 어렸을 때 마법을 배웠답니다. 쓸모가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몸매도 죽이고, 미모 또한 뛰어나니 여러모로 좋은 곳이 많습니다. 아직 처녀 입니다! 시작가는 170골드!”
진행자는 신나게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인은 여자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나인, 레벨 88]
‘2 클래스의 마법사. 엄청나다. 그리 대단한 수준의 마법을 할 수는 없겠지만 도움이 확실히 되겠지. 마법이 아니더라도 마법을 배울 정도로 똑똑하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최고다. 게다가 레벨도 상당히 높아.’
2 클래스의 마법사라면, 그리 대단한 수준의 마법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로인이 생각하는 것은 마법을 배운 재능이다. 마법을 배울 정도로 똑똑하고, 게다가 2클래스 마법사 치고는 젊다. 성장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180골드!”
“200골드!”
“240 골드!”
가격은 기하급수 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경매가는 300골드가 넘어갔다. 로인은 그제야 손을 들어 가격을 말하기 시작했다.
“350 골드.”
“네, 350골드 나왔습니다!”
경매자는 신이 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352 골드!”
한 남자가 소리쳤다. 로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고는, 다시 손을 들었다.
“360 골드.”
“네, 360골드!”
경매자는 로인을 바라보며 신나게 소리쳤다. 남자는 로인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으신가요? 23번 노예는 82번 손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기에 있는 제이크를 따라가 주시기 바랍니다.”
로인은 경매자가 가리키는 곳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제이크는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바로 옆에 새워져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로인은 그를 따라 천막으로 들어갔다.
“고급 노예는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노예 증서의 소유권을 갱신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10분 정도 후에 노예와 노예 증서를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여기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기다리는 것이야 상관없었다. 로인은 손을 드느라 내려놓은 린을 다시 안아들었다.
잠시 후, 제이크는 나인과 함께 천막으로 들어왔다.
“이곳에 손바닥을 올려놓으시면 갱신이 완료 됩니다.”
제이크의 말에 로인은 노예 증서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나인은 아무런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노예 증서는 한번 빛이 났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로인은 빛이 사라지자, 품에서 돈을 꺼내 돈을 지불 하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이 노예는 고객님의 것입니다.”
제이크는 고개를 숙이고 천막을 빠져나갔다.
로인은 제이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나인을 바라보았다.
“반가워, 나는 로인이라고 해.”
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인은 로인의 소개에 잠시 몸을 떨었다.
“저, 저는 나인입니다.”
나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대한 나인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로인은 나인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왔다. 로인은 시녀를 불러 음식을 부탁하고,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나인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 의자에 앉아, 일단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로인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인은 그제야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나는 로인 테 루푸스, 준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지. 아까 몰락 귀족의 딸이라던데... 전에는 어떻게 살았어?”
“...저는...”
나인은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나인은 원래 자작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영지전으로 인해 모두 죽고, 그녀만 살아남아 도망을 치다가 노예 상인에게 잡혀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로인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뭐... 그러구나.”
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2 클래스 마법사라고 했지?”
“네, 12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로인은 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계속 배우고 싶어?”
로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나인은 로인이 물어오자 조심스럽게 로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배우고 싶다, 배우고 싶지 않다. 그것만 말하면 되.”
“배, 배우고 싶습니다.”
나인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어 답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2 클래스 주요 마법은 다 익힌 거야?”
“네, 2클래스 마법 들은 거의 마스터 했습니다.”
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인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어.”
로인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동시에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루푸스 준남작님, 부탁하셨던 음식입니다.”
“들어와.”
로인은 문가에서 들려오는 시녀의 목소리에 입을 열었다. 시녀는 문을 열고 들어와 로인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고 나갔다. 로인은 음식을 나인 앞에 밀어 주었다.
“먹어, 그거 먹고 옷 사러 가야하니까 빨리 먹어. 여기 음식 장난 아니게 맛있으니까, 마음 놓고 먹어라. 그리고 일단 허기만 채운다음에 옷 사러 갔다 온 다음에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되. 여기 무한 리필이걸랑.”
로인은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린은 로인이 침대에 눕자, 로인의 배 위로 올라왔다.
“아, 그리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나인은 침대에 누워있는 로인의 모습을 한 번 바라보더니, 로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음식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처녀를 가지기 전에는 밥을 맛있게 먹인 다더니... 정말로 그런가 보네...’
나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옷을 사러 간다고 했다. 무슨 옷을 살지 알 것 같았다.
나인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서러움을 느끼며 눈물을 닦았다.
‘힘들겠지...’
로인은 나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힘드니까... 뭐, 내가 옆에서 잘 살게 해줘야지. 노예지만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잘 해줘야지.’
사실 로인이 노예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 노예를 노예처럼 부릴 수는 없었다. 지구의 상식이 그랬고, 로인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십여년을 살아 왔던 것이다.
나인은 흐느낌을 멈추고, 음식을 먹으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는 언제 준남작이 되셨나요?”
나인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임명식을 했어.”
“...그럼 제 1대 루푸스 준남작이신 것이네요?”
“그렇지.”
로인은 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단해요. 스스로의 힘으로 준남작의 자리에 오르다니,”
“별로... 그냥 좋은 친구를 둔 덕이지.”
로인은 중얼 거리듯 말했다. 사실 실비아가 자신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될 수 없었던 것이 준남작이었다. 물론 다른 길로 준남작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평민이 귀족이 되기란 어려웠다.
“그 친구라는 분도 분명 귀족이시겠죠?”
“백작의 외동 딸인데... 아주 친한 친구지.”
로인은 린과 장난을 치며 답했다. 린은 자신의 배를 간질이는 로인의 손길에 뒤집어 지며 로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쳤다.
“...”
나인에게서 아무런 질문이 없자, 로인은 고개를 들어 나인을 바라보았다. 나인은 이미 음식을 다 먹고 로인을 바라보았다.
“다 먹었으면 다 먹었다고 말이라도 하지...”
로인은 중얼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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