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어디 마음에 둔 곳은 있나?"
"예?"
갑작스럽게 물어오는 라이엄의 말에, 로인은 당황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가장 낮은 작위라고 하는 하지만, 준남작의 작위도 작위이니, 영지를 받게 되는데, 어디 마음에 둔 곳이라도 있나? 준남작의 작위면 소도시와 그 주변 영지를 받을수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생각에 두는 것이 좋을 걸세. 원래 황제 폐하께서 알아서 내려 주시지만... 내가 말하면 원하는 영지를 받을 수 있을걸세."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자신을 생각 해준 것은 정말 고마웠다. 자신이 원하는 영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해택이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베르시아 백작... 분명히 백작이다. 그런데 말을 하면 귀족의 작위를 받게 하고, 영지를 정해준다... 백작이 그럴만한 힘이 있나? 황제가 그렇게 힘이 없나? 제국의 지배자가... 그렇게 힘이 없으면.. 실망인데.'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조그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준남작이 되고, 영지를 고를 수 있는 것은 분명 큰 이득이지만, 왕권이 약한 나라의 귀족이 되는 것은 꺼려졌다.
로인은 지구에서 많은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왕권이 약한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또한 배웠다. 왕권이 약하면, 나라가 쇠한다. 그리고 결국 망한다.
'뭐, 일단은 제국의 귀족이 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거지, 왕국도 아니고 제국이니... 정말... 대단한 거지. 이 나이에 말이야.'
로인은 속으로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지도는 있나?"
"네, 여행자가 지도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리가 없죠."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자에게는 당연하지만, 지도가 필수였다. 로인이 가지고 있는 지도는 귀족들이 쓰는 고급 지도로,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로인은 그럴만한 필요를 느꼈기에 비싼 값을 치르고 지도를 샀다. 정확성은 물론이고, 주의해야할 몬스터등이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었기에 그에게 상당히 유용했다.
로인은 자신의 마차로 들어가 지도를 펼쳐들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실비아가 그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지도는 왜?"
"너희 아버지께서 마음에 드는 영지가 있는지 물어보더라."
"..."
"별로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서 말이야... 마음에 드는 영지... 없어서 지금 고르려고."
"헐... 너 정말 아빠 눈에 들었구나.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대단한데..."
실비아는 놀랐다는 듯 말했다. 로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 친구니까. 신경 써주시는 거겠지."
로인은 말하면서 눈을 움직여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야, 역시 영지를 받으려면 강이나 호수가 가까이에 있는 곳이 좋겠지?"
"뭐, 아무래도... 강이나 호수가 있으면 식량도 얻을 수 있고, 거래를 하기도 쉽고... 발전 가능성이 많겠지. 하지만 이미 발전을 해있는 영지가 많아서 준남작의 작위로 받기에는 힘들거야."
"아... 그렇기는 하겠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근접해 있으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았다. 발전하기도 쉽고 말이다. 하지만 실비아의 말대로 발전할 것이라면 이미 발전해 있을 것이었다. 준남작은 소도시와 그 주변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미 발전해있는 도시들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 그리고 내가 조언하나 할게, 아이게 후작의 영지 주변에 영지를 얻지는 마."
"...왜?"
"그 사람은... 땅 욕심이 대단해. 어떻게 해서는 너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거나, 네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들고 싶어할 거야. "
"..."
로인은 실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아... 몰라!"
로인은 한참동안 지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로인은 이방인이었다. 로인은 분명히 지구 사람이었다. 이곳의 땅에 대해 알리가 없었다.
"그냥 알아서 달라고 해야겠다."
로인은 포기하고 말했다. 땅이 기름진지, 물이 맑은지, 그런 것을 로인이 알리가 없었다. 어차피 모르는데 머리 싸잡고 고민할 필요 없었다. 로인은 그냥 주는 대로 받아 먹으면 되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
"와우!"
로인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
로인의 감탄사에, 실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로인은 중얼거렸다. 역시 제국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제국의 수도는 왕국의 수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했다. 성벽이 로인으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로 놀라면 황궁은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러나. 여행자가 제국의 수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 같군."
라이엄이 로인을 보며 말했다. 로인은 고개를 돌려 라이엄을 바라보았다.
"아직 여행 경험은 별로 없어서 말이죠... 제국의 수도는 처음입니다."
로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그렇게 신나하는 것은 좋은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긴 수도고, 조금 있으면 황궁으로 들어갈 거야. 황궁은... 전쟁터와 마찬가지인 곳이니 정말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위험할거야."
라이엄은 중얼 거리듯 말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은 권력과 권력이 부딪히는 곳이다. 위험하지 않을 리 없었다.
'후... 조금 긴장되는데?'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한 나라의 중심이고, 한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곳이다.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수도는 정말 북적 북적 거렸다. 마치 한국의 서울을 보는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역시 귀족이 지나가는 행렬이다 보니, 로인 일행이 보이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로인은 예상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귀족이랑 평민이랑 신분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로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귀족과 평민은 분명한 신분 차이가 있었다. 귀족이 지나가면 평민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러다고 귀족이라고 평민들이 절대 복종할 수는 없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 돼...'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귀족, 혹은 귀족의 자식이라며 평민 여자들을 희롱하는 자들을 수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너무 참기가 힘들었다.
귀족들은 평민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주지 않았다. 어쩔 때는 로인 또한 무시당하고, 참아야 할 때가 있었다. 로인 또한 평민이었고, 귀족의 재력과 군사력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정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귀족들은 썩어 빠졌어. 정말로... 민심을 돌보지 않고 자기들 재산만 부풀리고 앉아 있으니...'
로인이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마차는 이미 왕궁에 다다르고 있었다.
로인은 생각하다 말고, 밖을 바라보며 입을 버렸다.
'예술이다... 엄청 화려하네.'
로인은 이곳저곳에 새워져 있는 건물들과 장식품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실비아는 그런 로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왕국의 외곽이야. 손님이나 외부인, 다른 나라의 사신이나 귀족들의 임시 숙소가 있는 곳이지."
실비아는 조용히 설명했다.
"이곳까지는 제국의 귀족이면 모두 입장할 수 있지, 하지만 더 들어가고 싶으면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뭐, 안전을 위해서니까."
실비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로인은 잠시 실비아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기서 쉬다가 며칠 내로 아빠가 황제한테 말하면 막내 황자의 생일 무도회 전이든 후든, 작위를 내려주겠지. 황제의 스케줄에 따라 바뀔 거야."
실비아는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무도회전에 작위를 내려준다면 로인도 무도회에 참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실비아는 로인과 자신이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녀의 미소는 더욱더 진해졌다.
자신이 머물 방을 배정 받은 로인은, 짐을 풀고 바로 바깥으로 나왔다. 자신이 머무는 건물의 집사가 말하기를, 높은 귀족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원에 출입이 가능하다 한 것이다. 황궁에 왔는데 이런 구경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말... 정교한데다가... 화려하네..."
로인은 분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분수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분수들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져있었다. 실력 있는 조각사와 마법사들의 덕분에 만들어진 분수였다. 로인은 분수를 향해 더욱더 다가갔다. 린은 분수로 뛰어 올라 물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분수의 물은 매우 맑았다. 당연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걸어놓아서 물이 더러워지지 않았다.
'마법이 참 편리하단 말이야...'
로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법을 쓸수 있는 부하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뭐, 가이스도 따지고 보면 마법을 쓸 수 있기는 하지...'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을 해보니 자신은 엄청나게 좋은 정령을 소환할수 있었던 것이다.
로인은 팔을 벌려 린에게 오라는 표시를 하였고, 분수대에 앉아있던 린은 로인에게 뛰었다. 로인은 린을 안고 그녀를 쓰다듬었다.
"귀여운 토끼네요."
로인은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몸을 돌렸다. 로인이 몸을 돌린 곳에는 로인의 또래나 되었을 만한 남자가 서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죠."
"린... 상당히 좋은 훈련을 받았나 보군요. 주인의 품에 안겨오는 것을 보아하니 말입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인은 그의 눈에 흘러가듯 지나간 슬픈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네... 열심히 훈련을 시켰죠."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린을 훈련 시켰을 리 없었다. 훈련시킨 부분이라면 단검술 정도 밖에 없었다. 나머지 부분은 훈련을 하다가 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포기한 것이다.
사실 지능이 사람만큼 뛰어난 토끼가 바로 린인데, 굳이 훈련을 필요 없었다. 단지 로인과 린의 친화도가 얼마나 높냐에 따라 로인의 행동을 따라 주냐 따라주지 않냐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린은 삐지면 로인의 말에 따르지 않고, 무시할 때도 있었다.
"토끼란 정말 좋은 동물 인 것 같습니다. 주인을 물지도 않고 잘 따르니 말입니다. 저는 개들을 키우고 있는데, 얼마나 저를 물던지..."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개를 키우고 있다고? 누구지?'
황궁까지 오면서 실비아에게 들은 귀족이나 중요 후계자들의 신상을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나이또래에 개를 키우는 사람은 없었다. 로인은 살짝 눈을 돌려 그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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