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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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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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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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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3.2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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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5화. 다시 한 번, 친구로!

DUMMY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반장인 채영이의 엄숙한 구령에 모두 공손히 인사를 한다.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의 아이들. 그렇다, 개학……! 방학이 끝난 것이다. 꿈 같던 7일 간의 진정한 방학은 왜 이리도 금방 지나가는지.


“모두 방학 잘 보냈어요?”

“네─.”

“아니요─”

“으흥흥. 이제 열심히 공부해야죠, 2학기는 금방이니까?”

“우우우우~~”


담임선생님은 방긋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여자애들은 기운이 처진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선생님은 조례는 금방 끝내줄테니 방학동안 못 나눈 수다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다만 시끄럽게 떠들지는 말고요!’ 하고 주의하시는 것도 잊으시지 않으신다. 정말 천사처럼 착하신 분이구나, 우리 선생님은. 채영이가 다시금 ‘차렷, 경례’ 하는 소리를 하며 조례를 마친다.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반은 한순간에 왁자지껄해졌다. 남중에서만큼 시끄럽진 않지만 충분히 정신 사납다.


“방학 잘 보냈어?”

“어, 뭐 난 기숙사에 있었으니까. 하하.”

“아~ 히히히.”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나는 느긋하게 대답한다. 집에는 안 갔다. 몇 개월 째 집을 안 가는 것인지. 뭐, 그래도 학교 안 가고 느긋하게 있으려니 기숙사도 그럭저럭 있을만하다. 안빈낙도라는 게 그런 때 쓰는 말일까.


“…….”

“어어, 정희. 어쩐 일이야?”


느긋하게 휴대폰을 쳐다보는데 내 앞으로 그늘이 드리운다. 뭔가 거대한 존재인데. 우리 반에서 이 정도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건…… 역시, 정희인가. 그것 참 독특한 일인데. 정희는 늘상, 자기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애들 사이에서 얘기하는 타입이지, 자기가 누굴 먼저 찾아가거나 하는 애는 아닌데. 희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성향인 정희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힘없는 눈. 마찬가지로 축 늘어진 몸뚱아리. 활력이라곤 전혀 없는 것 같다. 좀비라면 이런 느낌일까. 조금 불안한 눈치로, 녀석을 올려다본다.


“오늘은 임시 등교일이야. 오늘은 임시 등교일이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금방 봄 방학(?)이라구! 아직 여름은 안 끝났어. 계곡으로, 바다로, 세계로! 우주로!!”

“어이어이, 끝엣부분 너무 광범위하지 않아?!”


아무래도 아직 방학이 끝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허우적 대고 있는 것 같다, 정희 녀석. 적당히 ‘정신 차려, 방학 끝났어.’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정희는 멍한 눈에 잠시 총기가 돌아오더니 ‘으아아아아!!’ 하며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건 아니야!! 끄아아아!’ 하는 괴성을 여전히 지르면서. 어휴, 저 녀석도 정상은 아니야.


“…….”


문득, 시선이 앞자리에 닿는다. 멍하니 놀고 있는 애들을 쳐다보고 있는 리유. 어쩐 일인지 내 쪽으로 오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쉬는 시간의 리유 행동 패턴은 크게 두 가지다. 자거나, 내 쪽으로 와서 앙탈을 부리거나.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멍하니 애들을 보고 있다.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끼리 수다 떠는 애들을 쳐다보기만 하는 리유. 며칠 전의, 아버님의 이야기와 리유의 반응들이 다시금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 리유 따돌림. 지금도 은연 중에 계속되고 있는 그 따돌림. 바로 잡기로 마음 먹었잖아. 굳은 결심이 발현될 때가 온 거다.



“왜 이런 데까지 불러 모아서.”

“그게, 물어볼 게 있어서.”


……라고 생각 하고 한 시간이 지난 시점. 다음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나는 은밀하게 성빈이와 희세, 미래까지 불러 인적이 드문 계단 옆으로 데려 갔다. 마침 리유는 개학 첫 날 첫 교시부터 이어진 지루한 역사 시간의 위력에 그대로 잠들어 있다. 아무래도 신경 쓰이잖아, 리유가 깨 있다면.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나를 노려본다. 아직 더운지라 하복을 입은 희세는, 무엇보다 가슴이 먼저 보인다. ……음, 희세 하면 역시 가슴이지. 딱히 뭔가 이상한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보이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성빈이를 본다. 성빈이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상냥한 성빈이. 미래는 ‘뭔데요, 뭔데?’ 하며 잔뜩 들이댄다. 다들 평소와 같구나.


“리유, 왕따 당하는 거 해결하고 싶어.”

“……에엑.”

“음…….”

“그걸 이제 와서요?”


여자애들의 반응은 각각 상반된 모습이다. 희세는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하는 어이 없어 하는 표정. 성빈이는 달리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표정. 그리고, 미래는 어김 없이 여과 하나 없는 돌직구.


“알아, 늦은 건. 솔직히 잊고 있었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리유 본인도, ‘지금이 좋다’고 말해서, 완전히 인식 밖으로 사라졌었지.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그냥,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 않아?”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확실히 까먹긴 했지만 분명하게 그 날, 뼈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양호실에서 리유에게 말했었으니까.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의 품에서 울은 건 리유가 처음이니까. 그 때에, 작지만 품을 내준 게 너무 고마웠으니까. 그래서 따돌림을 해결해주기로 했었으니까. 지금, 그렇게 하고 싶다. 내 말을 듣고 여자애들은 각각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됐다. 의외로 가장 먼저 대답이 나온 건 성빈이. 살짝 미안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꼭 리유가, 반 전체 애들하고 다 친할 필요는 없다고 봐. 지금 충분히, 우리 다섯 명이서 다 친한데, 필요 할까? 오히려 역효과가 나거나 하진 않을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음. 난 그걸 말하고 싶었어.”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서, 바로 말했다.


“성빈이 너, 분명 우리하고 자주 놀지만 반에서 무언가 주목이 된다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응, 그렇지.”

“희세 너도 마찬가지지. 그보다 희세 넌 반의 중심이니까.”

“흥, 뭐 그런 걸 따로 말해. 다 아는 사실 아니었어?”

“네네, 대단하시네요.”


희세는 내 추켜세움에 기분이 좋은지 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고 대답한다. 자랑스러운 표정의 희세. 하지만 내 비꼬는 대답에 대번에 팍 표정이 찌그러진다. ‘뭐야, 그 말! 되게 기분 나쁘다?!’ 하며 말하는 희세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리유는. 리유는 어떤데.”

“……어…….”

“그야…….”


성빈이와 희세 모두 입을 다문다. 말로 꺼내기 참 애매하지. 적나라하게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속시원하게 말해버렸다.


“봐. 다들 단순히 말을 꺼내는 것조차 애매하잖아. 리유는 우리랑은 잘 놀지만, 지금으로썬 거의 확실하게 ‘반의 일원’으로 인정을 못 받고 있어. 같은 학교, 같은 교실을 쓰는데도. 난 그걸 해결해주고 싶은 거야. 친구를 많이 많이 사귀게 하는 단순한 해결이 아니라.”

“오빠! 저도 반의 일원이 아닌데요? 저도 애들이 제 얘기 나오면 표정 싹 굳어서 정색해요! 히히히.”

“그건 네가 자초한 거잖아. 「난 스스로 반 애들을 왕따 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하는 중2병적인 설정으로.”

“이히히히! 너무 적나라하게 찌르시네요, 아픈 구석을!”


미래는 진지하게 말하는 내 앞에서 되도 않는 드립을 치려고 한다. 이제 만성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미래의 말을 잘라버렸다. 미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너무 무안하게 밀어 붙였나.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어쨌든, 사유야 어떻든 리유 왕따를 해결해주고 싶다, 그런 말이야.”

“음. 그렇네. 확실히, 미룬다고 될 일은 아니지.”

“…….”

“네, 그럼 해 봐요.”


희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는 표정이다. 미래 역시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하지만 성빈이만은 입을 다물고 잘 말하지 않는다. 난 그런 성빈이를 유심히 봤다.

희세는 리유와 같은 중학교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객관적으로 리유를 볼 수 있겠지. 미래는 중학교는 같지만 그 때는 리유하고 접점도 없었다고 하고, 아예 알지도 못했다고 하니까. 또, 성격상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본인 일 해결하기도 바쁜 미래인지라 그다지 별 게 있진 않았겠지.

하지만 성빈이는 다르다. 확실하게 리유가 중학교 시절 당했던 걸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었다. 리유의 진심어린 말에 다시금 얘기하기로 한 것이지, 그 때의 일은 어째서인지 지금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 지금도, 유일하게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다.


“성빈아……?”

“어, 응?!”


나는 가만히 성빈이를 불렀다. 성빈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 내 말에 흠칫 놀라며 대답한다. 역시,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조금 성빈이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리유에 대한 것, 아는 거 있어?”

“……아니, 없는데.”

“아무래도 같은 중학교 때니까, 분명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심스럽게 말하려 했지만 말하다보니 그리 돌려 말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성빈이는 여전히 조금 경계하는 태도로 말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이 불안한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는. 혹시, 성빈이가 리유를 왕따 시키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한 내 기분 탓인 걸까.


“뭐야, 네가 왕따 시키기라도 했어?”

“아, 아니야! 그런 게……!”

“근데 왜 그래, 반응이. 왜 말 안 하는 건데.”

“…….”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희세가 볼멘소리로 정곡을 팍 찔러버린다. 나희세, 이 무서운 아이……!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앞에서 말하진 못하는데. 어째 좀 더 막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나 저렇게 막말하지 성빈이나 다른 여자애들 앞에서는 상냥한 여자애인 희세인데. 이제 그만큼 친해져서 그런 거겠지.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친다. 아무래도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희세는 ‘그럼 뭔데. 말해봐. 이 중에 같은 중학교 나온 게 너밖에 없잖아.’ 하고 여전히 투덜대는 좋지 않은 태도로 말한다. 성빈이는 입을 꾸욱 다물고 고개까지 살짝 숙인다. 옆에서 미래가 ‘저도 리유랑 같은 중학교에요!! 왜 자꾸 저는 빼나요!’ 하면서 별 의미 없는 말을 내뱉고 있다.


“……리유가 따돌림 당하는 건.”

“……꿀꺽.”

“…….”


성빈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조금 뜸을 들이고 말한다. 나와 희세, 미래는 셋 다 진지한 눈이 돼 성빈이의 입에 집중한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성빈이는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살짝 내젓고 다시 말한다.


“솔직하게 말할게! 그게, 재수 없어서!”

“……에.”

“재수 없어서?”

“헤에. 그런 시덥지 않은 이유라니.”


성빈이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듯 말한다. 정말 복도 끝까지 들리게 소리친 건 아니고, 기세가 그렇다는 얘기. 집중해서 듣고 있던 셋은 약간 벙찐 표정이 됐다. 재수 없어서……? 나는 ‘에’ 하고 말을 잇지 못했고, 희세도 마찬가지. 미래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한다. 성빈이는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좋지 않은 표정으로 모기만한 목소리가 돼 말한다.


“눈치 없다고, 귀여운 척 너무 한다고, 그래서 재수 없다고…… 몇몇 애들이 공론화 시켜서, 어느 순간 반 모든 애들이 동조하는 그런 게 돼 버렸어…… 나도 그 애들 중 하나였고…….”

“……그랬구나.”

“헤에. 간접적으론 참가했다는 말이잖아? 나쁜 년이네, 성빈이.”

“에엣, 언니.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빈이는 아마 그 죄의식 때문에 말하지 못한 것이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중학교 때만 해도 충분히 그런 일 비슷한 게 있었으니까. 남자애들이라고 그런 게 없겠어, 더 심할 수도 있지. 우린 폭행까지 더해지니까.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직접 왕따를 시행하진 않지만, 그 행위를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 첫 번째로는 내가 타겟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 두 번째로는 나는 저 왕따의 일원이 아니라는 변명.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빈이의 기분을 배려해 말을 하려는데 희세가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성빈이를 보며 말한다. 희세 특유의 고압적이고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우와, 저 눈빛과 동작,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데. 나 왕따시킬 때 그 희세야. 얘 왜 이래?! 싸우려고 부른 것도 아닌데! 오죽하면 웬만한 일은 다 드립으로 전환하는 미래가 뜯어 말릴 정도다.


“나도 동조해서, 그런데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서…… 그게 미안해, 그게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어.”

“하, 어이가 없네. 그냥 덮어 넘어가면 죄가 없어져? 하여튼 이래서 한국인 냄비근성은.”

“아아, 됐어. 이제 해결하려고 하는 건데 왜 우리끼리 싸우는데.”

“뭐! 왜 넌 성빈이 편만 드는데?! 본인도 잘못했다고 말하잖아!”


희세는 완연히 전투 모드이다. 성빈이가 사죄하는 투로 서글픈 목소리로 말하는데도 일말의 동정심이나 안쓰러운 마음 없이 여전히 모난 태도로 말한다. 보다 못한 내가 말을 끊고 제재하려 하니 희세는 돌연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아, 이거 골치 아프게 만드네. 여자애가 저렇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성빈이는 거의 울 지경이고, 희세는 잔뜩 화만 내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당황하지 않는 미래조차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하물며 난 어떻겠어, 중간에 껴서. 어떻게든 ‘어쨌든 지금은 리유에 대한 얘기를 하자’고 말했다. 희세는 ‘흥!’ 하고 아예 몸을 돌려 버린다. 결국 별다른 얘기는 하지 못하고 쉬는시간이 끝나 어쩔 도리도 없이 반으로 돌아갔다.



“……아깐 미안했어.”

“으응, 아니야. 내 잘못인걸.”

“잘 됐네.”


희세는 움찔 거리며 성빈이 눈을 피하며 말한다. 성빈이는 잔잔히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중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이렇게 사과하니까 얼마나 예뻐. 점심시간, 점심은 다섯 명이 다같이 먹고 시간이 꽤나 남았다. 이제 리유의 왕따 해결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는데, 리유를 어떻게 떼어 놓을 방법이 없으니. 어지간하면 나한테 붙어 있는 리유니까. 미래는 싱긋 웃으며 스스로 총대를 맸다. 리유에게 ‘맛있는 거 사 먹으러 가자!’ 하고 말한다. 단 것 군것질 좋아하는 리유로썬 그 충격적인 유혹을 벗어날 수 없겠지. 해서 리유는 미래와 함께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희세와 성빈이, 나만 남았다.

희세는 내가 시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넌지시 성빈이에게 사과한다. 굉장히 껄끄러웠는데, 스스로 사과하니 뭐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둘이 사이 안 좋은 상태로 회의를 진행하면 둘 사이에 신경 쓰여서 제대로 말도 못 할 것 같다. 어쨌든 사과해서 다행이다.


“어쨌든, 원인은 알았네. 리유, 재수 없다는 이유로 따돌림 받았다는 거잖아?”

“응, 그게…… 좀 그런데. 리유, 눈치 좀 없잖아?”

“응…… 그렇지.”

“뭘 망설여, 사실이잖아. 걔 눈치 없는 건. 아니, 눈치가 아니라 그냥 어린애 같아서 눈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지만.”


성빈이의 망설이는 말에 나 역시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뭔가 좀 말을 꺼내기가 그렇다. 희세는 성빈이에게 사과는 했지만 여전히 저기압인 상태로 냉정한 투로 말한다. 오늘따라 희세, 캐릭터가 되게 직설적이 된 것 같은 느낌이야. 그 말이 사실이긴 하지,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그래도 나는, 그런 눈치 없는 리유의 모습을 ‘천진난만하다’ 라고 애써 자위하고 있었는데. 다 그렇게 보고 있긴 했구나, 눈치 없다고.


“응, 중학교 땐 그게 훨씬 심해서…… 애들 얘기 하는데 자기 귀여운 걸 어필한다거나, 다른 애가 슬픈 얘기하고 있는데 전혀 공감되지 않게 웃긴 얘기를 한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짓을 한다거나. 꽤 여러번 분위기를 망친 전적이 있어서.”

“아아…… 왠지 안쓰러운 장면들이 상상되는데.”

“뭐, 뻔하지. 리유 쟤도 진짜, 문제는 문제야.”


성빈이의 말에 나는 격한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그대로, 뭔가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리유가 떠오른다. 중학교 때 어느 수준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에서 더 심한 상태라면 어느 정도 상상은 가능하다. 리유, 미래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 여고생에 비하면 굉장히 4차원적인 면이 강한 애니까. 아니, 오히려 미래는, 정도를 지킬 줄 알고 상식이 있는데 드립으로 인한 4차원이라면, 리유는 아예 상식과 정도가 없는 무개념 4차원이니까 더욱 위험하다. 분위기나 공감을 중시하는 여자애들이라면 엄청 문제 삼을만도 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그것도, 이제 어느 정도 없어졌을거라고 생각해. 주동자였던 애들도 징계 받곤 거의 쉬쉬하는 분위기로 갔고, 무엇보다 전부 이 학교에 없거든.”

“아, 그래? 그건 확실히 좋은 정보네.”

“응, 주동자가 없다는 건 확실히.”


성빈이는 야무진 목소리로 말한다. 아까 전까지 불안해하거나 풀죽은 것 같은 태도는 많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역시, 솔직하게 말하고 참회해서 기분이 나아진 거겠지. 게다가 성빈이의 말은 희망이 보이는 대답인지라 기분이 좋아졌다. 희세 역시 누그러진 표정이다.


“일단은, 「여론조사」를 한 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여론조사?”

“응, 애들한테 한 번 물어보는 거야. 리유에 대해.”

“아하~ 그거, 웅도 네가 나한테 했던 짓이잖아. 성빈이 이용해서.”

“아니 그건, 깊은 사정이…….”


성빈이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한다. 나는 솔깃한 기분으로 듣는데, 옆에서 희세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왠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언제적 얘기인데. 비굴해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희세는 여왕님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흐흥!’ 하며 좋아한다. 뭐야, 얘 무서워. S?


“어쨌든 그래! 한 번 해보자. 여론조사. 내가 해 볼게.”

“되겠어? 또 나 때처럼 의심 사면 어떡하려고.”

“의심 살 게 뭐있어, 주동자도 없는데!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 물어보는 거.”

“그래, 맘대로 해 봐.”


나는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희세는 아니꼽게 대답한다. 의욕적인 마음이 된 나는 바로 실행하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MT 뒷풀이를 하느라 그만...


...다 핑계죠, 열심히 안 쓴 저를 탓하세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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