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63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15 12:48
조회
2,986
추천
116
글자
21쪽

23화 - 2

DUMMY

“선생님은 안 노세요?”

“음─ 지겨워, 솔직히 바닷가는. 그냥 쉬고 있을래.”

“아하하.”


지금은 이렇게 느긋하게 파라솔에 누워 있다. 선생님 역시 선글라스를 쓰고 느긋하게 모래바닥에 누워 계신다. 검은 비키니와 검은 선글라스가 상당히 잘 어울린다. 하하 웃곤 나도 슬쩍 누웠다.


“비키니, 잘 어울리네요.”

“그래 그래? 사실 이거, 이번에 정민 씨랑 놀러 가면 입으려고 했던 건데…… 괜찮아?”

“네, 썬글라스랑 굉장히 어울려요. 뭔가 쿨한 듯하면서 이지적인 느낌이랄까.”

“응─ 그럼 다행이지만. 후후, 꼬꼬마 립서비스 많이 늘었는데? 사회생활 잘 하겠어, 아부할 대상이 원하는 말을 잘 할 줄 알아.”

“하하,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선생님은 또 여고생 같은 반응을 보여 위화감을 잔뜩 느끼게 한다. 남자친구 관련 얘기만 하면 정말 소녀 같은 발랄한 느낌으로 말씀하셔서 잔뜩 어색하다. 그건 그것대로 귀여운 느낌이지만. 선생님의 칭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경솔한 말만 잔뜩해 선생님한테 까이기만 잔뜩 까였는데. 뭐,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뭐해, 멍청아. 얼른 놀자! 바다에 왔으면 바다에 들어가야지!”

“아아, 귀찮은데.”


누워있는데 압도적인 존재감의 무언가가 나를 마중 나온다. 희세다. 파란 산뜻한 비키니가 시각을 자극한다. 음, 좋은데. 나는 느긋하게 파라솔의 그늘에 누워 풍경을 즐기려 했건만, 희세의 성화에 떠밀리듯 바닷가로 향하게 됐다.


“우옷. 시원하네.”

“그럼! 바다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흐흥, 그렇네. 기분 좋아 보이네.”

“응! 엄청 좋아. 바다는 시원하고, 사람도 많고.”


희세는 새침하게 말하다 웃으며 물어보는 내 말에 모처럼만에 모나지 않은 다정한 말투로 말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귀밑머리를 넘기는 희세는 굉장히 예쁘다. 바닷물 표면에서 반사된 햇빛 때문인지 희세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이히히히! 똥이야, 똥이라구! 오줌 발사!”

“야, 여자애가 오줌은 좀 너무하지 않냐.”

“어머, 절 여자애로 봐주셨나요? 소녀 부끄럽사옵니다……♡”

“휴우. 말을 말지.”


여전히 활기차고 엉뚱한 미래는 바닷가에 와서 기분이 올랐는지 더욱 활기찬 모습이다. 물을 뿌리며 여전한 드립을 친다. 내 지적에도 전혀 엉뚱한 대답으로 말문을 틀어막게 만든다. 흠흠, 이것 참.

나는 시끌시끌한 건 그리 좋아하지 않은 편이기에, 차라리 시골 바다처럼 한적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 너무 번잡하다. 해변에도 바닷가에도 사람 천지. 우리끼리 놀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다. 나는 느긋함을 즐기고자 바닷물에 포옥 몸을 담갔다. 코를 막고 쑤욱 바닥까지 들어갔다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위로 촤악 올린다. 별로 길진 않지만 머리카락이 물을 머금고 촤악 허공에 물을 뿌린다.


“멋있네.”

“아. 봤어? 창피한데.”

“후후, 무슨 광고 찍는 것 같았어.”


성빈이가 불쑥 나를 보며 말한다.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니 성빈이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무안해져서 딱히 할 말은 없다. 성빈이 역시 잠시 어색해하며 나를 보다 희세 쪽으로 간다. 뭐야, 이 분위기. 다시 예전처럼 돌아간 것 같은 느낌. 아니, 기분 탓이겠지.

느긋하게 바다에 누웠다. 배영이라고 하지, 이런 걸. 해파리처럼 둥둥 떠서 유영하고 있다.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몸을 구속하는 어떠한 것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다.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하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양수 속에 떠 있잖아. 그것에 대한 회귀 본능 같은 게 있다고 해. 볼을 스치는 바닷물의 익숙한 차가움. 표면 위로 비치는 햇살의 따스함. 귀까지 물에 잠겨 있어,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상당부분 차단된다. 음, 좋다. 이 한적함.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다. 찰랑찰랑, 따듯하고 부드러운 어머니 뱃속─


“우푸아하앍엃뛟…… 크하아아!”

“이히히히히! 엄청 웃겨, 웅이!”

“뭐하는 짓이야! 아오, 짜. 아오 매워.”

“아하하하하! 멍청이!”

“네가 빠뜨린 거잖아! 일루 와……!”

“이야아아─ 히히히!”


가만히 그렇게 떠서 즐기고 있는데 내 앞으로 그림자가 진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움찔 눈을 떴는데 그 순간 보인 건 개나리색 어린애 같은 비키니. 미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하고, TV에서 카메라가 물에 잠기듯 눈앞에 물이 보인다. 코와 입을 통해 한됫박 들이치는 짠 물. 굉장히 괴로워 퍼덕이며 벌떡 일어났다. 짠 맛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리유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잔뜩 화를 내지만 리유는 더욱 비웃으며 좋아한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군, 머리를 물에 처박아 주겠어. 리유는 웃으며 도망간다.


“우풉풉훕훕흣핫!! 으앙, 살려줘! 압풉풉픕훕핡! 잘못했어요, 자백할게요! 풉합핬핡훑뛚!”

“잘못 했어? 잘못 안 했어? 어?! 바른대로 고하지 못해?!”

“어머, 물고문 하나요? 그럼 저도 할래요!”

“뭐? 으악!”

‘풍덩!’

“꺄하하하!”


리유가 도망가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육체적 능력이 일반 여고생의 반도 못 미치는 리유인데, 정상 남고생인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나는 리유의 뒷머리를 붙잡고 마치 70년대 국정원 고문관이 물고문을 하듯 리유 얼굴을 머리에 담궜다가 잠시 꺼내고 다시 담궜다 꺼내고를 두서너번 반복했다. 좀 심한가 싶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이니까. 리유도 웃는 표정이다 나중엔 울상이 됐다. 좀 미안해지는데. 옆에서 희세가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목소리로 ‘뭐하는 거야, 불쌍하지도 않아!’ 하고 말하는 게 들린다. 그만 해야겠다─ 하는 찰나에, 활기차고 관심 있는 것 같은 미래의 목소리가 들리고 몸이 기우뚱 기운다. 힘으로는 안 되니까 미래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거. 덕분에 배영하다 리유가 빠뜨린 것보다 더 본격적으로 푹 빠졌다.


“어푸, 어푸! 야, 그만햃욿욹욻! 야, 앍핡앓앏!!”

“이건 리유의 몫! 이건 제 몫! 그리고 이건, 이건!”

“히히! 얍얍!”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아핡앓앐앎앏!!”


넘어진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미래가 자꾸만 방해해서 일어날 수가 없다. 미래 혼자 그런다면 우격다짐으로 힘으로 밀어붙여 일어날 수 있겠지만 정신을 차린 리유까지 가세해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바닷물을 한 움큼은 마신 것 같다.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살기 위해 잠수한 체 헤엄을 쳤다.


“끼핫?! 어딜 만져, 어딜 만지는 거야! 변태야!”

“엌! 명치 맞았어! 살려줘!”

“꺼져! 변태 왕변태 새끼야!”


살기 위해 무엇인가 붙잡았는데, 매끈하고 탄력 있고 부드럽다. 흘끗 올려다보니 굉장히 민망한 부위. 희세 허벅지였다. 희세는 깜짝 놀라 냅다 발로 나를 찬다.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갔으면 굉장히 위험했겠지만 지금 맞은 곳도 충분히 인간의 급소인 명치이다. 가뜩이나 물에 있어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명치를 맞으니 정말 호흡이 곤란하다. 살려달라고 부탁하는데 희세는 얼굴이 잔뜩 빨개져 매정하게 마저 발을 차 나를 떨어뜨려 놓는다. 미래와 리유는 악귀처럼 쫓아와 또 나를 물고문하려 한다.


“갸아악!”

“꺄아앗?!”

“에, 에……!”


이제 한계치에 다다랐다. 숨이 쉬고 싶어, 물에서 떨어지고 싶어. 왜 이러는 거야, 난 리유가 친 장난에 장난으로 회답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나는 있는 힘껏 미래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미래 허리 쪽을 붙들고 일어났다. 괴상한 기합과 함께. 하지만 이어지는 건 미래의 높은 톤의 비명.

……엄청나게 굉장하게 대단하게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동그랗고 매끈한 엉덩이. 그렇다, 여자애의 엉덩이. 한 개의 잡티도 없이 희고 매끈해서 꼭 과일 표면을 보는 것 같다. ……근데 왜 그게 내 눈앞에! 그렇다, 허리를 잡는다는게 미래 수영복을 잡고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일어나고 수영복은 내려가고. 순간 주위가 정적이 돼 버렸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이 쪽을 보고 멍한 표정이 됐다. 미래는 비명을 지르며 냅다 자리에 앉아버렸다.


“어어어, 어어, 어어!! 미안, 미안!”

“미친놈아!! 죽어!!”

“미, 미래야!! 괜찮아?!”

“으앙, 웅이 진짜 이상해!! 옷 벗기고 막 그래!”

“아아으으…… 야, 그게!”

“…….”


희세는 순간 경공술이라도 쓴 것처럼 정말 하늘을 날아 헥토파스칼 킥을 내 가슴팍에 날리며 응징한다. 나는 힘없이 쓰러질 뿐이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미래를 달래려 했지만 희세에 의해 저지당했다. 희세는 말발굽에 체인 것 같은 성난 표정이 돼 나를 경계하는 눈빛을 보낸다. 성빈이와 리유가 미래를 진정시키고, 미래는 차마 물 안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가만히 물 안에 있다. 주위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뻔히 다 들린다. 아, 아아. 망했다. 나는 어떡해야 할까.



“너 정말 못된 아이구나.”

“선생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의도하고 그랬나요!”

“변태 씨, 변태 씨 그러는데 평범한 변태 씨는 아니었어. 아주 나쁜 변태 씨였어.”

“제발!! 제가 죽을 죄를 지은 건 맞아요, 맞는데……!”

“죄인이 말이 많네. 뻔뻔해.”

“아흑…….”


선생님은 저기압의 말투로 나를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나는 뭐라 변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파라솔 밑에서, 훈계 아닌 훈계를 받고 있다. 훈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까이고 있는 것 같지만. 미래는 거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눈이 돼 성빈이와 희세의 부축을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리유 역시 뽈뽈거리며 따라갔고. 그렇게나 활발하고 부끄럼 없는 미래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다.

……솔직히 내가 100번 죽어 마땅한 짓이긴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아래라니. 속옷을 벗겨버린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것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해변에서! 옛날 시대였으면 그대로 내가 미래랑 결혼을 해서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래가 폭풍개드리퍼에 부끄럼 없이 섹드립을 치는 여자애지만, 그렇다 해도 일개 소녀인걸. 여린 소녀 감수성에 평생 길이 남을 큰 상처를 남긴 것 같아 죄책감이 크다. 아니, 난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는데! 그게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구! ……어째 범죄자들 변명하고 꼭 같은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선생님의 비꼬는 말에 더욱 죄책감이 강해진다. 평화롭게 놀던 오후 바닷가는 그렇게 내 실수로 굉장히 난감하게 됐다.



‘지글지글.’

“웅도 고기 좀 굽네? 맛있어.”

“어, 응.”

“흥, 그까짓 거 뭐 뒤집기만 하면 되는거 뭐.”


성빈이의 칭찬에 나는 소심하고 어색하게 대답했다. 희세는 새침하게 팔짱을 끼고 고기를 먹으며 말한다. 그래도 끝에 작게 ‘그래도 맛은 있네.’ 하고 말한다. 나는 부끄럽고 무안한 웃음을 짓는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의기소침하게 된 나다. 그도 그럴 게, 저지른 짓이 있으니.

저녁시간이 됐다. 아직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저녁을 먹자고 성화인 리유와 이제 바다 보는 것도 지겨워 졌다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저녁을 먹게 됐다. 선생님이 챙겨 오신 철망과 번개탄과 고기를 팬션의 넓은 베란다에서 구워 먹는다. 다들 말끔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베란다로 나와 서서 고기를 먹는다. 요즘은 참 이런 것도 잘 돼 있단 말이지. 하지만 고기를 굽고 있는 내내, 어색함이 가시질 않는다. 미래 때문에.

어떻게 말도 못 붙이겠다. 미래는 간간히 웃기도 하고, 리유와 성빈이와 희세와 활달하게 얘기하긴 하지만 아까 오전과 같은 활기참은 없어졌다. 게다가 나를 보기만 하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가면 같은 표정을 짓는 걸. 어떻게 사과하기는커녕 말도 못 붙이겠다. 그래서 노예처럼 묵묵히 일만 하고 있다. 최대한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미래 쪽으로 밀어주기도 하고 하면서. 물론 지금 서 있는 배치는 선생님─나─애들─미래 순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가장 잘 익은 고기를 미래 쪽으로 놓으면 눈치 없는 리유가 꼭 그걸 집어 먹는다. 어휴,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재미있다, 이렇게 야외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그치?”

“응.”

“어.”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와 동시에 미래도 대답했다. 그러다 슬쩍 눈이 마주쳤다. 굉장히 빠르게 냉각되는 분위기. 성빈이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아, 이러다간 고기 먹은 거 다 체해서 속 뒤집힐 것 같아. 어떻게든 사과를 해야지.

다짐을 한 나는 고기를 굽고 있던 집게를 잠시 옆에 내려놨다. 상추의 물을 탁탁 털어, 쌈장을 젓가락으로 떠 올린다. 잘게 썬 고추 하나, 초장에 버무린 파절임 조금, 가장 크고 잘 익은 고기 한 점. 정성껏 쌈을 싸 미래에게 다가간다.


“미래야.”

“히익……! 아, 네.”

“아까…… 미안. 이거, 먹어 줘!”

“……네, 감사히 먹을게요.”

“……어째서 그렇게 극존칭으로 말하는데! 어색하게!”

“……네? 아뇨, 전 원래 이랬는데…… 뭔가 ‘그 쪽’에서 착각하신 거겠죠…….”

“잘못했어, 용서해 줘!”

‘털썩.’


단순히 다가가 말만 걸었을 뿐인데 미래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살짝 뒤로 물러선다. 쌈을 받아먹긴 하지만 굉장히 나를 멀리하는 느낌이다. 나는 통탄한 표정으로 결국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어째 미래는 더욱 의기소침하고 소심한 여자애가 돼 ‘이, 이러시지 마세요…… 이, 일어나요.’ 하고 말한다.


“으하하하! 적장은 이 정리유의 칼을 받아라!”

“당신이 이 몸의 슈발츠 잭스 프로토타입 MK-II를 이길 수 있을까요! 아하하하!”


리유는 작은 몸집과 귀여운 얼굴과는 상반되게 걸걸한 목소리를 흉내내 말한다. 물론 워낙 톤이 높은 리유의 목소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에 맞서는 미래는 아침과 같은 활력을 찾은 체, 알 수 없는 대답으로 화답한다. 둘은 씨익 웃으며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고 있는 봉의 심지에 불을 붙이려 한다. 45cm 정도 돼 보이는 길다란 봉. 종이로 둘둘 말려 있고, 끝 부분에 심지가 있다. 그렇다, 이건……


‘꽁.’

“위험하니까 사람한테 발사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애야?!”

“아으!”

“으우우…… 죄송합니다.”


전운이 고조되고 둘의 전투가 막 개시되려는 순간 선생님이 등장해 심판의 주먹으로 둘을 응징하신다. 풀 죽은 표정의 리유와 아쉬워하는 미래. 두 사람이 들고 있는 건 폭죽이다.


‘틱틱 티디디디딕.’

“에헤헤, 헤헤헤.”

“예쁘다.”


꽤 깊은 밤이 되고, 우린 숙소를 나섰다. 폭죽놀이를 하려고. 선생님이 마침 폭죽도 준비하셨다고 한다. 정말,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막상 우리끼리 왔으면 이런 것 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과한 내 고마움 표현에 ‘딱히 너희 따위 위해서 준비한 건 아니야. 이건 정민 씨랑 데이트 예행연습이라고.’ 하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들으니까 또 납득은 가지만, 그래도. 한낱 학생에 불과한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데, 당연히 고맙지.

밤이지만 여전히 해변에는 사람이 많다. 그냥 쌀쌀한 밤바다를 즐기러 온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처럼 폭죽놀이를 하러 나온 사람들도 있겠지. 안 그래도 저~ 멀리에서 폭죽놀이 하는 불꽃이 보인다. 우리도 시작해볼까.

철사에 화약이 붙어서 빛을 내며 타닥 타는 폭죽을 켜고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있다. 리유는 허공에 빙글빙글 불을 돌리며 좋아라 한다. 불꽃이 튀어 내 옷과 몸에 튀어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성빈이는 가만히 불꽃을 보며 좋아한다.


‘푸슈우우우우.’

“우핫. 멋있네. 근데 금방 끝나.”


분수처럼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모양에 성빈이는 좋아한다. 하지만 금세 끝나버리자 아쉬운 표정이다. 불꽃놀이를 하니 다들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천진난만하다. 점잔 빼고 있을 것 같던 희세도 미래와 리유와 함께 박쥐 모양 폭죽을 허공에 던지며 ‘으힛! 아아 안 돼! 이 쪽으로 오잖아!’ 하며 좋아하고 있다. 다만 선생님만은 별다른 흥미 없는 표정으로 폭죽도 안 터트리고 가만히 우릴 지켜보고 계신다.


“선생님은 안 하세요?”

“뭐, 난 너희들 하는 것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으니까. 늬들이나 놀아.”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어디서 개수작이야. 난 정민 씨랑 추억 만들 거니까, 이딴 데서 내 폭죽놀이를 낭비할 순 없어. 가서 놀라고!”


선생님의 가시 있는 말에 나는 감동 받은 표정으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은 모처럼만에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내 등을 떠민다. 하는 수 없이 성빈이 쪽으로 돌아왔다. 성빈이는 ‘이거 세 개 한 번에 붙여보자!’ 하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실행한다.


‘삐이유우우우웅! 펑. 삐이이유우우우! 퍼엉.’

“우와, 장난 아니다!”

“대포 쏘는 것 같아!”


아까 미래와 리유가 들고 장난치던 긴 폭죽을 쏘고 있다. 선생님이 위험하다고 하여 땅에 박고 쏘고 있다. 생각보다 위엄있게 큰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올라가는 폭죽은 대형 폭죽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큰 흔적을 남기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우리 여자애들뿐만 아니라 주위 다른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른다.


“에잇! 받아라!”

“으히이이익! 무서워, 하지 마!”

“꺄하하하! 어떠냐, 나의 판저파우스트 Ⅲ의 위력이!”

“……그거라고 하기엔 너무 위력이 약한 거 아니냐. 그보다 위험하다고!”


폭죽은 10발 나가는데, 풍! 풍! 하면서 한 번 발사하면 조금 뜸을 들인 뒤 다시 나가는 방식이다. 미래는 참지 못하고 땅에 박혀 있던 폭죽을 들고 냅다 리유를 향해 겨냥한다. 리유는 사색이 돼서 도망간다. 아슬아슬하게, 폭죽의 불꽃이 리유 옆을 지나 뛰어가는 리유 앞에 떨어진다. 리유는 정말 놀라서 ‘우와아아앙!!’ 하는 우는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도망간다. 미래는 더욱 악마처럼 웃으며 이번엔 각도를 45도 정도로 올려 포물선을 그리며 리유 앞으로 불꽃이 떨어지게 만든다. 저거 좀 위험한데. 아직 미래랑 어색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한 거니까, 어색함을 무릅쓰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는 내 말을 무시하는 건지 못 들은 건지 똑같이 리유에게 달려 나간다.


“하지 말랬지!!”

‘퍼억!’

“꺄울! 으앙, 아파요!”

“꼬맹이 맞으면 어떡하려고! 단순한 화상으론 안 끝난다고! 장난도 정도가 있지!”

“죄송합니다아…….”


도망가는 쥐와 잡으려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 숨막히는 추격전은 이내 선생님에 의해 진압됐다. 선생님은 어째 미래가 리유를 쫓으며 폭죽을 쏘는 것을 심드렁한 눈으로 지켜만 볼 뿐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다 미래의 폭죽이 10발을 다 발사하여 그냥 막대기가 됐을 무렵 단숨에 미래를 붙들었다. 그리곤 머리를 꽁, 등짝을 팍팍, 엉덩이를 팡팡 때리며 잔뜩 응징한다. 미래는 울상이 돼 잘못을 빈다. 딱히 기숙사생도 아니고, 1학년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하고 친하지도 않을 텐데 저렇게 체벌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해도 되요? 판저파우스트 Ⅲ 발칸포 직렬배치!”

“하지 마.”

“히잉! 제발요!”


미래는 특유의 사람 안 가리고 드립 치는 성격 덕분인지 어째 선생님에게까지 생떼를 부리며 우는 소리로 부탁한다. 성빈이는 물론이요 기가 강한 희세마저도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기운에는 고개를 숙이는 형편인데. 역시, 미래 정상은 아니야. 선생님은 잔뜩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저거 위험한데.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하시는 선생님. 미래는 좋아라 하며 막대형 폭죽 8개를 정성껏 땅에 심는다.


‘삐융 삐융 삐이용! 삐융 삐융!!’

“으하하하하! 봐라, 쓰레기 같은 인간을! 우하하하하!!”

“……너 되게 악당 같다.”


미래의 소원대로 여덟 개의 폭죽에서 불을 뿜는다. 일개 폭죽이지만 이렇게 여덟 개를 나란히 동시에 발사하니 좀 무시무시하다. 뉴스에서 북한이 도발할 때 나오는 그 미사일 같은 기세랄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주목한다. 일단 폭죽이 발사될 때 나는 소리가 8배로 들리니 주목이 안 될 수가 없지. 여기에 더해, 미래는 굉장히 악당 같은 표정과 말투로 광기에 젖은 팔을 허공에 들어 파들파들 떨며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드립이구나, 미래는. 나지막이 말하지만 미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못 들었는지 무시하는 건지 자기 혼잣말만 계속 하고 있다. ……이거 정말 미움 받아 버린 것 같은데?!


작가의말

으아아아 이렇게 글을 안 쓰면 안 되! 더 쓰란 말이야! 소설 공장장이  되어랏! 그/아/아/앗!!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3.15 13:01
    No. 1

    미래 좀 혼나야겠네요. 웅도는 더 혼나야 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5 13:09
    No. 2

    음, 그런데 왜요? 둘 다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3.15 15:09
    No. 3

    웅도는 언제 철컹철컹 당하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5 16:29
    No. 4

    안타깝게도 웅도는 청소년이기에, 철컹철컹 당하지는 않습니다. 훗. 부러웟, 청소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3.15 15:30
    No. 5

    밧줄을 든 소설이, 오랏줄에 묶인 글쓴이를 질질 끌고가며 '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오면 돼!' 라고 외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새 연재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보통 이런 때 새로운 글에 대한 열망이 들기도 하고, 무턱대고 충동을 따라 새 작품을 연재하기도 하는데, 혹여나 그런 충동을 느끼실까 걱정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는' 우학변의 완결에 그리 연연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5 16:33
    No. 6

    다음 작품에 대한 욕망은, 2월 중순 정도부터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얼른 완결내고 새 작품 써야지!' 하는 생각만 가득... 기계처럼, 완결까지 딱 힘내서 쓰고 그 다음 작품에 전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광인입니다
    작성일
    14.03.17 01:29
    No. 7

    양식장이라네.. 근데 주인이 고기를 잡을 생각을 안하네.. 이거.. 이배 내려가야하나... ..
    P.S:이럴거면 웅도가 고자라는걸 프롤로그에 알려주십시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09:43
    No. 8

    그가 고자인 이유 편이 너무 늦게 나왔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5:20
    No. 9

    슬프도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24화 - 3 +8 14.03.23 1,983 40 17쪽
98 24화 - 2 +14 14.03.22 2,778 42 25쪽
97 누락된 편입니다 +11 14.03.21 2,371 44 1쪽
96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11 14.03.20 2,657 44 23쪽
95 23화 - 5 +21 14.03.19 2,582 80 18쪽
94 23화 - 4 +7 14.03.18 2,344 52 19쪽
93 23화 - 3 +24 14.03.17 2,645 44 22쪽
» 23화 - 2 +9 14.03.15 2,987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9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6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86 21화 - 4 +21 14.03.09 2,686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2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8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2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8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8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4 52 19쪽
79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7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5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4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3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8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