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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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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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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글자
18쪽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DUMMY

“우와, 우와아!”

“쉿! 조용히 해, 들키겠어!”

“우히히! 무슨 첩보 영화 찍는 것 같애!”

“아 쫌!! 조용히 하라니까!”


리유는 잔뜩 들떠서 몸을 움찔움찔 들썩이며 힐끔 벽 너머를 본다. 나는 예민해진 목소리로 굉장히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하지만 리유는 내 말을 듣는지, 여전히 전혀 숨거나 하지 않고 몸을 들어 아예 벽 바깥으로 내민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꾸욱 리유의 머리를 눌러 몸을 낮추었다. 리유는 ‘우우우응~~ 뭐하는 거야!’ 하며 작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좀 조용히 좀 해라. 들키겠다.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데?’ 하고 말했다. 리유는 그제야 무언가 알아차린 표정으로 ‘아, 미안.’ 하고 조심스럽게 몸을 낮춘다. 휴우, 이제야 말을 알아 들었나.


나와 리유는 벽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벽 너머를 살피고 있다. 누가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행동.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 목표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내려 반대편 굵은 전봇대 쪽으로 기척 없이 이동했다. 하지만 리유는 멍하니 그 모퉁이에 남아 있다. ‘바보야, 얼른 넘어 와!’ 하고 입모양으로 말하니 리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 쭈볏거리며 눈치를 보다 매우 느린 이동속도로 이 쪽으로 넘어 온다. 아아, 망했어요. 이렇게 하고도 안 들키면 그게 더 신기하겠다.

다행이 목표물은 우리를 보지 못한 것 같다. 힐끔힐끔 더욱 목표물의 동태를 살핀다. 시계를 살핀다. 12시 43분. 아직 정보원이 파악한 약속된 시간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심호흡을 한 뒤 자리를 옮긴다.


뭔가 종목이 러브코미디에서 느와르 첩보물로 바뀐 것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기분 탓일 것이다. 우리는 ‘미행’을 하고 있다. 누구를 미행하냐고? 글세. 그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 어째서 미행하냐고? 글세, 그것도 별로 말하고 싶진 않은데.


“혜라 씨는, 되게 미인이신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정민 씨도, 미남형이세요.”


우리 앞을 걷고 있는 청춘남녀. 아니, ‘청춘’ 이란 말을 붙이기엔 좀 그러려나. 확실히 젊은이이긴 하지만, 이런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나와 리유에 비교한다면 월등히 어른스러운 두 사람. 훤칠한 키에 적절히 왁스로 띄운 머리. 연예인처럼 엄청 잘생긴 정도는 아니지만 굉장히 빼어난 외모의 청년이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어 중후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얼굴은 동안인지라 잘 보면 20대 초중반, 평범하게 본다면 2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훤칠하고 잘생긴 남성 옆에 걷고 있는, 조신한 옷과 태도의 여성. 곱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너무 짙지도, 옅지도 않게 적절한 화장을 했다. 없는 얼굴을 만드는 창조적인 화장이라기보단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적절한 화장이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고 있는데 남자만큼 중후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고, 세미 정장이라고 해야 하나, 나름대로 캐주얼하면서 정장 같은 느낌이 나는 옷을 입어 굉장히 어울린다. 남자의 칭찬에 손을 가리고 웃는데 그 미소가 정말 아름다워 보는 내가 아찔한 감정을 느낄 정도다. 난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데 말이지.

그래, 저 사람. 저 아리따운 여성분 말이야. 도무지 동일인물이라고 하기 힘든데. 사감선생님이다.


그리고 나와 리유는 어째서인지 사감선생님을 미행하게 됐다. 그렇게 된 경위는 그러니까──




“…….”

“뭐 하세요, 선생님?”

“……생각.”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나는 샤워까지 마치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왔다. 방에 들어가려다 문득 무언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곤 뒤를 돌아본다. 선생님이 입구 계단 난간에 기대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서 있는 게 보인다. 왜 저러고 계시지. 학교 끝나고 애들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건 야자 끝나고나 그러시지, 지금은 방학이니까 저런 모습도 거의 안 보여주시는데. 호기심이 돈 나는 샤워 바구니를 방에 놓곤 나와 선생님 옆에 다가가 말했다. 선생님은 굉장히 시큰둥하게 대답하신다.


“무슨 생각이요?”

“……남자새끼가 뭘 꽁알꽁알 물어봐.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쳐 자.”

“에에, 무섭네요.”


선생님은 뭔가 처량한 눈빛으로 넓은 운동장을 보시다 옆에서 물어보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신다. 냉소적이고 차가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며, 마찬가지로 낮고 냉소적인 말투로 말씀하신다. 이 정도로 저기압인 선생님은 몇 번 본 적 없는데. 이건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제 6의 기관인 촉이 알려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얼른 빠져나와라. 괜히 깝쳤다가 역관광 당한 적도 있었잖아? 그냥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냥…… 허탈해서 그렇다, 허탈해서.”

“……뭐가요?”


선생님은 거의 ‘닥치고 꺼져.’ 하는 수준으로 말씀하셨는데 곧 넋두리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위험한 촉을 감지했지만, 또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그냥 빠져버리기엔 후한이 두렵다.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너한테 이런 말 해봤자 별 도움도 안 되겠지만…….”

“뭔데요. 제가 이래봬도 고민 상담 같은 건 잘 하니까.”

“헤헹, 꼬꼬마가 귀여운 말도 할 줄 아네.”

“데헷☆ 죄송합니다…….”

“후훗, 귀여워.”


선생님은 기운이 푹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 상남자 정웅도, 실의에 빠진 여성을 가만히 두고 갈 수 있겠는가. 이건 개소리고, 그냥 선생님이 이렇게 풀죽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상담이랄 것도 없고,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뭔가 해결방안을 주거나 할 순 없지만, 그렇잖아? 그냥 고민 말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거. 그 정도 역할은 할 수 있다.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드립력이 폭발하여 여자애마냥 검지손가락을 볼에 찌르며 볼을 부풀리곤 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키 178짜리 시커먼 남자애가 이런 짓을 하다니. 아무리 드립이라지만 내 스스로 너무 창피하다. 그만큼 선생님이랑 친해진 거겠지. 남자인데 애교…… 애교는 아니고, 장난을 칠 수 있을 만큼. 선생님은 오히려 정말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꼬집는다. 아, 아아. 아픈데요.


“방학 되도 집도 안 내려가고 일은 잔뜩 하고, 다른 일까지 도맡아서 하고. 기숙사 사감까지 맡아서 하고, 정말 일에 일에 일에…… 대학교 졸업하고 선생 되고부턴 그저 일에만 치여 사는 것 같아. 그래서 문득 방학인 너희들 보니까,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네…… 그 고민은 정말, 무거운 고민이네요…….”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빤히 보다 말씀하신다. 나는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나까지 절로 무거운 마음이 됐다. 그건 정말,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해결은커녕, 조금의 도움도 줄 수 없는 고민이다. 어른의 고민이잖아! 겨우 17살 밖에 안 된 내가 어찌 29살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함부로 편하게 간단하게 말했다가 도리어 선생님 기분이 더 상할 수도 있으니까 말도 잘 못 꺼내겠다.

선생님, 확실히 좀 워커홀릭이시긴 하지. 휴일도 거의 없이 일만 하시니까. 두 달, 세 달에 한 번 집에 가시려나? 저번 학기동안 두 번밖에 기숙사를 비우시지 않으셨으니까. 휴일이라고 딱히 일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사감실에 들어가 선생님 책상을 보면 이게 사감실인지 그냥 교무실 책상 떼서 옮겨놓은 것인지 모를 정도이다. 주과목인 영어와 사감으로서의 일 말고도 다른 일도 많이 하시는 것 같은 선생님이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고참인 선생님들이 부탁하는 일도 묵묵히 하시는, 그런 타입이시겠지. 그럴 것 같아.


“그냥, 청춘이 부러워서 그랬다. 지지배들 옷 차려입고 놀러 나가는 거 보니까.”

“……선생님 충분히 젊고 예쁘신데.”

“후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 해. 넌 꼬꼬마 주제에 잔뜩 타락해서 여자애들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잖아. 그 가슴 큰 애랑, 꼬맹이랑.”

“무, 무슨 제가 의자왕이라도 됩니까. 그냥 밥 패밀리죠, 그건.”


약간의 위로와 절반의 진심을 담아 말하니 선생님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말씀을 하신다. 뜨끔한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자애들을 달고 다니겠어. 희세가 들었다면 펄쩍 뛸 말이다. 선생님은 배시시 웃으며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신다.


“어찌됐던 너희는 어리디 어린 청춘이니까. 아아─ 부럽다 부러워. 한참 어려가지고 발라당 까져서 여자애들이나 따먹으려고 하고─”

“머, 먹다뇨! 말이 심하시잖아요! 다른 애들 듣기라도 하면!”

“에헤헤. 꼬꼬마 부끄러워? 왜, 알 거 다~ 아는 애가. 실은 따먹고 싶어서 안달난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런 격한 말투 삼가주세요! 듣는 제가 다 부끄럽잖아요!”

“아하하, 정색하고 화낼 건 없잖아. 과일 따 드세요, 꼬꼬마씨?”

“으으…….”


선생님은 어째 고민을 얘기하는 넋두리에서 나를 놀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셨는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보신다. 나는 선생님의 농담에 괜히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놀리는 것으로 선생님 기분이 좋아지신다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아 ! 얼마나 사려 깊은 남자인가, 나는! 후후.


“선생님은, 남자친구 안 사귀세요?”

“……죽을래?”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선생님이 먼저 청춘이 어쨌네, 여자애들이 어쨌네 말씀하시니까. 하지만 순식간에 선생님 주위에는 검은 기운 같은 것이 둘러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느끼며 나는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님의 낮은 저기압의 목소리에 더욱 힘 있게 사과했다. 필요하다면 무릎까지 꿇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선생님의 위압감은 엄청나다. 이것이, 노처녀의 패기인가! ……아니, 농담이다.


“……그 얘기는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 했던 것 같은데.”

“예, 예 그렇지요, 제가 경솔하여 입을 함부로 놀린 것 같습니다. 미천한 잡것을 용서만 해주신다면 자손 대대로 뫼시며 공손히 따르겠습니다.”

“……장난이 지나치다? 내가 무슨 마왕이라도 되?”

“넵. 죄송합니닷.”


선생님의 말에 나는 더욱 공손하게, 양반에게 무례를 저지른 천민 같은 말투로 말했다. 선생님은 그 장난에 더욱 저기압으로 반응하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를 보신다.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나는 얼른 공손해져선 대답했다. 더 이상 드립은 치면 안 되겠다. 드립도 분위기 봐서 쳐야지. 선생님은 방금 전까진 나를 놀리며 기분이 좋아 보이셨는데, 삽시간에 아까보다 더 기분이 다운되신 것 같다. 아, 괜한 장난 쳐가지고. 죄책감이 앞선다.


“……하아. 남자친구라.”

“……?”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쉬시며 무겁게 말씀하신다. 그 한숨과 이어지는 말이 너무 무거워, 정말 분위기를 급격히 다운시기는 말투이다. 나는 섣불리 나대다가 방금처럼 더욱 안 좋은 분위기를 형성할까 두려워 가만히 궁금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쳐다본다. 선생님은 넓은 운동장을 쳐다보시다 혼잣말하듯 입을 여신다.


“있었지. 벌써 4년 전이네. 헤어진 게.”

“……죄송합니다, 괜한 말 꺼내서 기분 안 좋게 만들어서.”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선생님의 착찹한 대답에 죄책감을 느끼고 얼른 공손하게 사과했다. 이런 걸 그대로 지켜보며 미적지근하게 있는 건 못 견디니까. 선생님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손을 흔들며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한 쪽 눈을 찡그리며 말을 이으신다.


“키는 나랑 비슷하고. 그렇게 남자답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어. 오히려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늘 모자란 면이 있던 칠칠치 못한 녀석이었는데…….”

“…….”


선생님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내 쪽을 보며 말씀하신다. 내 쪽 방향을 보고 계시지만 나를 보는 건 아니고 내 뒤 쪽 땅을 보시는 것 같다. 과거의 향수에 빠지신 느낌으로, 선생님은 달큰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헤어진 지 4년이나 됐는데도…… 가끔은 생각나. 그 어린애 같은 애, 남자답지도 않은 녀석도 지금쯤 사회생활 하고 있겠지…… 잘 지내고는 있으려나, 하기도 하고…….”

“……연락은 되나요? 아예 끊었나요?”


선생님은 추억을 되새김질하시며 잔잔한 표정이 됐다. 그런 표정 지으니까 뭔가 되게 쓸쓸해보이신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정도 타이밍에 저런 질문을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선생님은 바람에 흩날린 머리를 뒤로 넘기시며 말씀하신다.


“뭐, 다 잊었어. 다시 사귀고 싶다거나, 다시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그 때 추억이 너무 아련해서…… 지금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꿈 같은 얘기인 것 같아서.”

“…….”


나는 아직 어려서, 나는 아직 그런 추억 하나 만들어 본 적 없어서 무슨 말씀 하시는지,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공감하기 힘든 말이다. 여자친구 하나 사귀어 본 적 없는 나인데. 하지만 4년이나 지나서, 예전에 행복했던 때가 환상처럼 느껴질 만큼 다른 환경에서 지낸다면 그건 참, 쓸쓸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불알까지 서로 맞바꿀 만큼 친하게 지냈던 중학시절 친구들과 이별하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혀 지내본 적 없는 여자애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는 나도 그것 비슷한 느낌은 느꼈는걸. 겨우 몇 개월 지났는데도. 하물며 선생님처럼 몇 년 단위라면, 그 쓸쓸함은 몇 배는 더 심하겠지. 나는 묵묵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말 있잖아요? 실연의 아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하는 거라고. 뭐, 실연의 상처라고 하긴 그렇지만.”

“풋. 내가 무슨 애냐, 헤어졌다고 질질 짜고 그러게. 게다가 4년 전 일이야. 그런 걸로 슬퍼하거나 그럴 나이도 아니고.”


나는 주볏거리며 말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위험한 질문인지라. 살얼음 걷듯, 외줄타기 하듯 불안한 기분으로 말했다. 다행이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며 훌훌 털어내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슬슬 추억에 잠긴 눈빛에서 현실로 돌아오시는 느낌이다.


“웅도야. 연애라는 건, 때가 있는 거에요. 나는 이미 늦었어요.”

“그, 그래도! 선생님 충분히 예쁘신데요! 진짜루요! 몸매도 좋으시고, 스타일도 괜찮으시고! 안경도 어울리시고!”

“……흐흥,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나는 뭔가 변명이라도 하듯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으로 말했다. 그건, 선생님이 ‘웅도야’ 라고 이름까지 부르며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니까 그런 걸까. 선생님 같은 미인이 연애를 못 하면, 대체 세상 누가 연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말 있잖아.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종족의 차이도 전혀 상관할 게 없다고. 뭐,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잔잔하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다.


“그리고, 우리 변태 꼬꼬마 취향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네. 안경 왕가슴 누님 타입이라니. 엄청 변태인데?”

“누, 누가요!! 저, 저는 그저 선생님 매력 포인트를 집어서 말한 것일 뿐인데! 그게 왜 제 취향이 되는 건데요!”

“후훗, 그렇게나 자세히 보고 있었구나? 이거 부끄러운데. 함부로 가슴골도 못 보여주겠어♡ 부끄러워서.”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으아아아!”


선생님은 은근한 눈빛으로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으아, 기어이 이런 섹드립을 치시려고. 선생님 기분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려 했건만, 도저히 창피해서 버틸 수가 없다. 사실 자세히 보긴 했지만. 아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다이나믹한(?) 몸매를 지닌 선생님이 잘못인거야. 거기에 평소에 무방비한 모습으로 꽤나 노출을 하신 것도 분명 문제가 있으신 거고. 선생님은 다시 기분이 풀리셨는지 웃는 얼굴이 되셨다.


“그래, 연애라. 그 때 그 감각, 이젠 아예 소멸된 것 같아, 내 가슴 속에선. 사랑이란 감정이.”

“…….”

“어멋, 여긴 없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안 봤어요!!”


선생님은 쓸쓸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그 쓸쓸한 눈은, 사랑을 갈구하는 눈. 그래, 선생님은 외로우신 거구나. 힘들게 일하시고, 힘들게 지내시는데 사랑받을, 사랑할 대상 하나 없으시니 그게 착찹하신 거고. 공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선생님은 멈추지 않는 드립력으로 손으로 가슴을 가리시며 말씀하신다. 얼굴엔 숫제 장난기가 가득하시다. 나는 또 발끈해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선생님은 ‘후후, 귀여워’ 하며 대답하신다.

한동안 선생님 얘기를 들었다. 뭐, 그 뒤론 별다른 얘기는 안 하셨지만. 그냥, 답답하다, 남자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였지만. 간간히 아까의 드립과 이어지는 섹드립을 치시지만, 조금 발끈하는 것 정도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까 말했듯 이 한 몸 희생해서 선생님 기분이 좋아지신다면 그 정돈 괜찮으니까. 얘기하다보니 꽤나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다. 난 방으로 돌아갔다. 선생님도 사감실로 돌아가고. ‘고마워.’ 하고 짧게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풀리셨다면 다행이에요.’ 하고 말했다. 흐뭇하게 웃으시는 선생님. 좀 힘 내셨으면 좋겠는데. 선생님, 얼마나 미인이고 성실하고 좋으신데.


작가의말

새학기가 돼서 성실연재가 예상대로 표류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뭔가, 다음주 찍을 것을 바로바로 가져와 미친듯이 빨리 찍어대는, 쪽대본 가지고 막장드라마 찍는 한국 드라마 환경 같은 느낌이네요. 

빨리 글 쓰는 것을 완벽하게 시스템화를 시켜서, 서양영미의 우수하고 안정적인 시즌 제도가 돼야 하는데. 안정적이고 훌륭한 연재가 되도록, 어떻게든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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