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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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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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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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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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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8쪽

23화 - 5

DUMMY

성빈이는 쪼그리고 앉아 눈을 가리고 울다가도, 금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울고 있다 웅도나 미래에게 발견된다면 그것만큼 싫은 것은 없기에, 얼른 눈물을 닦고 울음을 진정했다. 눈시울은 빨갛게 돼 있지만 밤이니까 괜찮은 것 같다. 빠르게 울음을 진정시키고, 성빈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리유와 희세는 여전히 곤히 잘 자고 있다. 성빈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윽, 윽!’ 하면서 아직도 훌쩍거림이 잘 그쳐지지 않지만 왼손으로 코와 입을 꾹 누르며 애써 울음을 참았다. 미래 자리는 텅 비어 있고 성빈이는 그 옆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이불을 폭 머리까지 덮는다.


“…….”

“……왜 울어.”

“……어?! 흣!”


얼굴까지 이불을 덮으니 성빈이는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덥고 습하다. 하지만 이불까지 얼굴을 덮고 숨을 죽이니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드는 게 느낀다. 이제 진정하고, 부은 눈에 조금 다시 고인 눈물을 닦고 자려 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빈이는 깜짝 놀라 소리치듯 날카롭게 말했다. 뒤에 겨우 가라앉힌 훌쩍임이 다시 진동한다.


“울고 있었잖아, 문 뒤에서. 다 들렸다고.”

“……아, 안 울었는……흑! 데.”

“지금도 울고 있는데, 뭐.”

“…….”


희세다. 절대 자다 일어나서 말하는 것 같지 않은, 말짱한 목소리다. 성빈이는 애써 태연한 척 말하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훌쩍거리는 건 막을 수 없다.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잠자코 누워 있다. 스륵 스르륵 희세가 일어나 이불이 걷혀지는 소리가 난다. 그래도 성빈이는 얼굴까지 덮은 이불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숨죽이고 있다. 덥고 거북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왈칵 나온 눈물을 희세에게 보일 순 없으니까, 성빈이는 전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


“뭣 때문에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미래 때문이겠지.”

“…….”


희세의 추측에 성빈이는 깜짝 놀랐다. 미래가 웅도를 껴안는 장면을 훔쳐보는 성빈이를 또 희세가 훔쳐 봤을 리는 없는데. 그럼 어떻게 아는 거지. 희세, 혹시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앤가.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성빈이. 희세는 자리에 앉아 그런 성빈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미래 년은 아까 전에 나가서 안 돌아온 것 보니까 밖에 나가 있겠고. 그 뒤로 네가 창 밖 보다 나간 걸 보면, 아마 미래년 웅도랑 같이 있는 거겠네. 그것 보고 이 지경 된 거고.”

“…….”


성빈이는 얼굴이 왈칵 붉어지는 걸 느꼈다. 희세는 분명 단순하게 방에 누워있기만 했는데,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니는 것처럼 성빈이의 행동과 심리를 모두 꿰뚫고 있다. 단순한 추리력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가득 드는 성빈이. 이불 안이 더욱 후끈후끈하고 끈적끈적해진 것 같다.


“너, 웅도 좋아하지.”

“…….”

“그러니까, 미래가 웅도랑 밤바다 놀아나는 것 보고 놀라서 바깥으로 나갔고, 그래서 돌아와서 울고 있는 거잖아.”

“…….”


희세는 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성빈이는 굉장히 마음이 뜨끔 했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희세는 한숨을 푹 쉬고 이어 말한다.


“왜, 그게 질투나? 미래랑 웅도랑 노는 게?”

“……아니야.”

‘스스슥.’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잠자코 대답했다. 기어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눈물이 고여 있는 눈. 희세는 줄곧 방에 있었기에 눈이 적응돼 반짝이는 성빈이의 눈물이 그대로 보였다. 성빈이는 자리에 앉아 희세를 똑바로 보며 말한다.


“미래가 웅도랑 있는 게 질투나는 게 아니야. 그게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 아니, 싫은 건 맞아, 정말 싫어! 싫지만…….”

“…….”


성빈이는 말하는 사이 감정이 격앙되 격한 말투로 말한다. 고개를 떨쳐내며 말하니 다시금 잦아들었던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흐른다. 희세는 입을 꾹 다물고 성빈이를 바라본다.


“웅도가 좋아, 이젠 쳐다보는 것만으로 가슴 떨려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겠어. 제대로 내 마음에 응답할 수 있을 때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이제 더는 못 참겠어. 나도, 말하고 싶어. 제대로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멍청하게 혼자 울고 있지 말고. 미래랑 웅도랑 사귀고 있어? 그런 건 아니잖아.”

“그치만!”


기본적으로 성빈이는 자신보단 남들을 배려하는 성격이라, 방금 전까지도 굉장히 작게 말했다. 리유가 자고 있으니까. 하지만 희세의 대답에, 크게 격정적으로 말한다. 감정이 치밀어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물이 줄기줄기 더욱 또르르 흐른다. 분노가 아닌 슬픔과 회한의 감정이 담긴 눈으로, 희세를 쳐다보며 말한다.


“웅도가 좋지만……! 웅도가 좋은 만큼, 모두하고 지내는 것도 좋아! 너도, 리유도, 미래도……. 내가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버리면, 잘 되던 못 되던, 이 관계가 영영 돌아올 수 없게 깨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서…….”

“……바보 아냐?”

“!”


성빈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이젠 아예 울음이 터져 끅끅 훌쩍거리며 말도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또박또박, 성빈이는 눈물을 뚝뚝 흘려 이불 밑을 적시면서도 말했다.

그런 기분이었다. 웅도도 좋다. 하지만 다른 애들도 좋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웅도를 좋아한다고 밝히면, 분명 미래와 대립하게 될 테고, 웅도와도 어떻게든 관계가 바뀌게 될 것이다. 또한 여기 아니꼬운 표정으로 있는 희세 역시 의식하게 될 테고. 이런 와중에 리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서운 얼굴이 된 다른 친구들의 태도에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볼 것이고. 그것이 싫어서, 그것이 무서워 말하지 않은 것이다.

희세는 담담한 표정으로 묵묵히 듣는다. 그러더니 낮고 냉소적인 말투로 한 마디 내뱉는다.


“마냥 착하다, 무르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건 너무 멍청하고 바보라서 말 들어주기도 역겹잖아.”

“……!”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깜짝 놀라 훌쩍 코를 삼켰다. 이만큼이나 적나라하게, 희세가 자신에게 욕한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 희세의 가시 돋힌 말은 강렬하게 가슴팍에 와 꽂히는 것 같다.


“그 정도 각오로 누구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

“…….”


희세는 지그시 누르는 듯한 약한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한다. 성빈이는 잠자코 듣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고인 눈물이 또 한 번 또르르 흐른다. 달빛을 등지고 있어 성빈이는 희세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희세는 뭔가 성이 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웅도 좋아해.”

“……엣.”

“뭘 놀라는 척이야. 다 알고 있었잖아.”

“……아, 아니, 몰랐어.”

“흥.”


희세는 웅도를 제외하곤 다른 여자애들에겐 상냥한 말투로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 성빈이에게도 웅도에게 하듯 퉁명스런 말투로 말한다. 성빈이는 괜히 자기 반응이 부끄러워져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희세는 여전히 아니꼬운 말투다. 새침하게 ‘흥’ 하고 잠시 입을 다문다.


“정말 좋아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포기하고, 어떤 결과라도 감당할만큼 제대로 좋아하란 말야. 그렇게 어중간하게 무얼 해서 성과를 바라면, 도둑놈 심보잖아?!”

“그, 그건…….”

“미래년도 말했잖아. 여자애가 먼저 고백하면 안 된다, 그런 건 누가 정한건데. 그 쪽에서 먼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


희세의 단정적인 말투에 성빈이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약간의 충격과 놀람 때문에 뭐라 말을 이을 줄을 모르겠다. 희세는 빛나는 눈으로 성빈이를 보며 말한다.


“누가 뭐래도 난, 웅도랑 사귈거야. 이 관계가 깨진다 해도. 전혀 상관 없어. 설령 미래랑 싸운다해도. 너와 절교한다 해도. 치졸한 진흙탕 싸움이 된다 해도, 난 얻어낼 거니까. 그러니까, 어줍잖은 자신감으론 다가올 생각도 하지 마.”

“……흑!”


성빈이는 희세의 단언에 다시 훌쩍거린다. 어깨가 들썩거리더니 조금씩 들썩거리는 주기가 빨라진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누가 봐도 울고 있는 게 뻔히 알 수 있다. ‘흑! 흑!’ 하는 울음소리도, 애써 가린 손 사이로 새어 나온다.


“울지마, 멍청한 년아! 그 정도로 그게 슬퍼? 그만큼이나 눈물이 나와? ……울지 말라니까!”

“……나도! 흑!”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는 성빈이를 보고, 희세는 짜증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성빈이는 고개를 쳐들고, 큰 소리로 말한다. 달빛에 잔뜩 일그린 체 눈물 범벅인 성빈이의 얼굴이 보인다. 격앙된 감정에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그대로 보인다. 희세는 착찹한 표정으로 그런 성빈이를 본다.


“나도, 흑! 전할 거야……! 이 마음을, 흑! 절대 지지 않을 거니까! 흑!”

“……휴우.”

“흑! 끄흑, 으흐응…… 으하아앙……”


성빈이는 엄청나게 펑펑 울면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흥분된 상태로 울기까지 하니까 발음이 잔뜩 뭉게져 무슨 말인지 반쯤은 못 알아듣겠다. 희세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런 성빈이를 보고 있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성빈이 쪽으로 성큼 다가간다. 그러더니 그대로, 성빈이 얼굴을 자기 가슴팍에 묻는다. 크고 아름다운 희세의 가슴에, 성빈이 얼굴이 파묻힌다. 성빈이는 한순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더욱 서럽게 희세의 품에서 운다. 희세 가슴 안에서 울어서 소리는 그리 크게 나지 않는다. 희세는 성빈이를 껴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괜찮아, 괜찮아. 잘못한 거 없어.’ 하며 아이 달래듯 말한다.


‘끼익.’

“……? 어멋, 다들 깨어 있네?”

“……흑! 흐윽……”

“어, 왜 울어……?”

“조용히 해, 가까이 오지 마.”


성빈이가 한동안 희세 품에서 울며 조금씩 울음을 삼키고 있을 무렵, 슬며시 문이 열리며 미래가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들어오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두 사람을 쳐다본다. 곧 울고 있는 성빈이를 보고 언짢은 표정이 돼 묻는다. 하지만 희세는 경계하는 눈이 돼 차갑게 말한다. 미래는 꼼짝도 못 하고 ‘어…… 네.' 하고 일단 자리에 앉는다. 성빈이는 여전히 울고 있고, 희세는 부드럽게 성빈이 등을 토닥인다. 미래는 가만히 쳐다만 본다.


“저…… 왜 그러는 거에요.”

“닥쳐. 이제 그딴 가식도 집어 치워. 너 때문에 우는 거잖아.”

“에?! 나, 나 때문에? 내, 내가 기분 상하게 한 거라도 있어, 성빈아?”

“…….”

“아휴, 저 눈치 없는 새끼…….”


미래는 넌지시 물어본다. 희세는 굉장히 경계하는 말투로 말했다. 깜짝 놀란 미래는 성빈이를 쳐다보며 묻는다. 성빈이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다만 울음을 그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따름이다.


“네가 웅도랑 뭐 했잖아. 난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우는 거라고.”

“에, 에…… 그걸 봤어? 아, 아하하, 부끄러운데. 음- 확실히, 품 안이 따뜻하긴 했어~ 단단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웅도 껴안았다고?! 미, 미쳤어?!!”


미래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양 손으로 볼을 가린다. 오히려 정색하고 놀란 건 희세. 눈이 동그래져서 미래를 닦달한다. 미래는 ‘아앙~ 별건 아니구~ 그냥 살포시 품에 안긴 것 밖에 없는뎅~’ 하며 더욱 얼굴을 붉힌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평소 미래답지 않게 소녀스러워 더욱 희세의 화를 돋운다.


“나…… 끅! 절대 안 질거니까!! 이제 나도, 흣! 내 마음 숨기지 않을 거야!”

“……우와, 진짜 못났다. 이미지 확 깨는데, 비니.”

“어디서 말 돌리는데! 성빈이가 쥐어짜내서 말한 건…… 풉. 푸흐흡.”

“봐, 웃기잖아! 하하.”

“……끅! 흐후우, 왜, 왜 웃는데에!”


성빈이는 갑자기 팍 희세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고 성난 것처럼 확 얼굴을 돌려 미래 쪽을 보며 말한다. 자기도 모르게 들썩여지는 울음 때문에 말은 잘 안 나오지만, 확실하고 크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하는 성빈이. 미래는 혐오스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표정으로 성빈이를 본다. 희세는 미래의 반응이 고까운 지 얼른 성빈이를 변호하는 말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잔뜩 울어 퉁퉁 불은 눈에, 얼굴은 완전히 눈물 범벅에 머리카락까지 헝클어져서 붙어 있다. 평소 조신하고 청순한 성빈이의 얼굴을 떠올릴 수가 없는 흉물스런 얼굴이다. 성빈이 역시 애들이 웃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억울해져서 말했다. 그러다 웃음이 나온다. 미래는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나!’ 하고 말한다. 그 말에 성빈이는 더욱 웃는다. 결국 이상하게 세 명은 한바탕 웃게 됐다.


“…….”

“…….”


잠시 동안의 웃음이 지나고, 방은 다시 정적이 감돈다. 사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기 어려운 상태다. 미래는 웅도랑 밤바다를 걷다 들어왔고, 성빈이는 그것 때문에 울고, 희세는 기어이 본색을 드러내고 선전포고까지 해 버렸고. 어색한 기운이 방 안을 조금씩 맴돌고 있다.


“……푸우─ ……후우─”

“잘도 자네, 얘는.”

“귀여워.”


가만히 리유를 지켜보는 희세. 울다가 소리 지르다 웃다, 잔뜩 시끄러운 와중에도 리유는 잘도 자고 있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잔다는건 이런 애를 말하는 게 아닐까. 희세의 말에 미래도 방긋 웃으며 말한다. 성빈이는 아직까지 울음이 멎지 않아 훌쩍거린다.


“……이제 잘까.”

“……훌쩍! 응.”

“네, 자요.”


벌써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한다. 미래는 대답하고 자리에 눕는다. 성빈이도, 희세도 제자리에 누웠다.


“난 경고 했어. 누구랑 절교를 하든, 난 상관 안 할거야. 웅도는, 내 거야.”

“흐흥, 저는 예전부터 그 마인드였는데요. 전 전혀 개의치 않으니까.”

“나도…… 안 져.”


희세의 말에 미래 역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한다. 성빈이도, 이제는 울음이 잦아들어 풀 죽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셋은 그리곤 혼곤히 잠들었다. 서로 다른 꿈을 꾸면서.




“으우우…… 피곤한데.”


나는 기지개를 쭉 피며 말했다. 눈을 뜨니 해는 중천, 점심 가까이가 돼 간다. 선생님은 오래간만의 휴가라 그런지 늦잠을 주무시는 모양이다. 먼저 씻고 나오니 선생님도 내가 뒤척이는 소리에 깨셨나보다. 여자애들도 다 일어났나보다. 점심시간이라고 하긴 이르고, 오전이라고 하긴 좀 애매한 시간에 팬션을 나섰다.


“난 잘 잤는데! 히히.”

“아, 그러셔. 희세 넌?”

“응! 잘 잤어.”

“……뭐야, 무섭게.”

“뭐가??”

“으억, 뭐야 얘.”


리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희세에게 시선을 옮겨 묻는데 희세는 굉장히 밝은 톤으로 맑은 시선으로 나를 보며 대답한다. 뭔가 되게 기운차고 발랄한데. 아니, 그게 희세의 평소 태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명랑해서. 마치 귀여움 받기를 원하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랄까. 거부감을 느낀 나는 괴상한 물건을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희세는 내 시큰둥한 반응에 ‘뭐야, 잘 대답해줘도 지랄이야!’ 하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래, 이래야 희세지. 미래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오빠, 저도 잘 잤어요! 히히, 어제 밤에 오빠가 위로해준 덕분에♡’ 하고 말한다. 이 년이, 상황 봐 가면서 드립을 쳐야지, 또 오해할 소리를. 성빈이는 뭔가 풀이 죽은 느낌으로 힐끗 나를 보다 내 시선을 피한다. 아, 미래 말 때문에 또 이상하게 느껴졌나 보다.


“재미있게 놀았어?”

“넵. 정말 감사드립니다.”

“흐흥. 됐다─ 가자.”

“넵.”


선생님은 아까부터 뭔가 저기압인 상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신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셔서 출근하시기 전까지는 굉장히 예민한 상태인 선생님이시다. 학교에서도 그랬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물음에 깍듯이 대답했다. 내 대답에 기분 좋게 미소짓는 선생님은 냉철한 평소 이미지가 아닌, 날개 없는 천사처럼 착하고 예쁘게 보인다.


“…….”

“재미있었지, 다들?”

“……어.”

“……응.”

“네.”

“응!!”


뒤돌아 애들을 보고 훈훈하게 웃으며 말했다. 헌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분명 어제까지 재미나게 놀았던 애들인데, 뭔가 서먹서먹한 느낌이 든다. 아침이라 그런가. 희세는 별로 아니꼽게, 성빈이는 침울하게 대답한다. 미래는 밝게 대답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예전의 엄청 활기찬 느낌이 아닌, 무언가 신경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리유만은 온전하게 원래의 활력 그대로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이상한 기분으로 애들을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뭐, 피곤해서 그러겠지. 나도 잠 잘못 자서 그런가 영 피로가 풀리질 않았다.


“재미있었다, 뭐 별로 한 건 없는 것 같지만.”

“히히히, 아, 웅아! 놀자, 놀자!”

“엉? 지금까지 놀았잖아.”

“으흥흥! 그래도, 또 놀자! 웅이랑 놀면 재미있으니까!”


차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즐긴다. 후후,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었네. 한 마디 하니 뒷자리 리유의 밝은 목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보니 리유가 방긋방긋 웃으며 말한다. 어째 희세가 잔뜩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성빈이, 희세, 미래 셋은 피로가 덜 풀렸는지 기분이 안 좋은건지 잘 얘기도 안 한다. 덕분에 리유랑만 실컷 얘기하게 됐다.


재밌었네, 바다.


작가의말

내일이면 MT를 갑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망할 것 같기도 하고.

복학하자마자 조장을 시켜 뭇 책임감없이 애들을 통솔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여 갓 입학한 1학년 애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군대를 갔다왔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철없는 건 매한가지인지라. 그래도, 즐거운 추억거리 한 조각이 됐으면 좋겠네요.

덧붙여, 젊은이들의 활력 넘치는 MT를 갔다와 글 쓰는 데에도 포텐이 터졌으면 좋겠구요.


후우...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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