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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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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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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3.0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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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글자
20쪽

20화 - 3

DUMMY

“자, 오늘도 가 볼까!”

“응!”

“아하하하하─.”

“놀구들 있네.”


나는 샘솟는 드립력을 참지 못하고 성빈이의 손목을 덥썩 잡고 사감실에서부터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살짝 뛰기 시작했다. 성빈이 역시 내가 손목을 잡으니 움찔 놀란 기색이지만 이내 대답하고 나를 따른다. 뒤에서 짐짓 점잖으신 사감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절박한 상황에서 약간 실성한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오늘도 난, 일을 한다.


“에휴…… 못 살겠다. 이게 방학이야? 지옥이지.”

“음, 솔직히 개인 시간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치? 아오, 죽겠다 죽겠어…….”


성빈이 손목을 잡고 명랑만화에 나오는 남주인공·여주인공처럼 달려가던 나는 제풀에 지쳐서, 그리고 혹 다른 애들이 볼까 창피해서 그냥 터벅터벅 걷는다. 괜히 뛰어서 힘드니까 의욕이 절로 줄어든다. 내 불평에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개인시간이 어디 있어. 하루하루 일용직 근무자처럼 일 하는데 여념이 없는데. 보충수업 끝나고 놀러다니는 다른 애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럽다. 그 생각을 하는 지금도, 저 쪽에 여자애 몇 명이 사복 차림으로 까르르 웃으며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게 보인다. 아, 부럽다. 나오느니 한숨이다.


“그래도, 난 이건 이것대로 좋은데. 웅도 너랑 둘이 있을 수 있잖아.”

“어…… 그렇지─ 아하하, 아핫.”


성빈이는 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난장판이다.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저 말의 의미가 참 궁금하다. 그냥 좋다는 걸까, 아니면 ‘너를 독점할 수 있으니까 좋아’ 이런 뜻일까. 그냥 내 설레발일까.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기뻐 보이는 표정에 진지한 말투인데.

어제 도서관에서 그렇게 터놓고 말한 덕에, 성빈이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완화됐다.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하는 일도, 한 마디 말도 않고 묵묵히 일만 하거나 하는 일도 없어졌다. 오히려 성빈이 쪽에서 적극적으로 먼저 말을 걸어오고, 지그시 나를 쳐다보기도 하는 둥 꽤나 능동적인 여자가 돼서, 지금은 어째 내가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뭐 성빈이의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거나 귀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흐에엣! 이건 너무하다. 너무 많은데.”

“……현대 자본주의의 폐혜를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가 여기 말고 어디 또 있겠는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하하, 봐라, 쓰레기 같은 인간을! 으핳하하하하!”

“시끄럽고. 얼른 일이나 하자.”

“아아, 엉.”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와 성빈이는 각각 감상을 내뱉는다. 내 허세 돋는 길고 쓸데없는 감상에 성빈이는 가볍게 내 머리를 콩 때리며 말한다. 그 타격에 나는 정색하고 낮고 굵은 목소리로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정색하고 성빈이를 쳐다보니 머리를 때린 게 조금 미안했는지 성빈이는 혀를 쭉 내밀고 방긋 웃는다. 귀엽네. 만화적 표현이라면, 여주인공이 뭔가 실수 했을 때 ‘데헷☆’ 하는 느낌이랄까. 다만 의외인 건, 성빈이가 그러니까 그게 신선할 따름이지.

여긴 쓰레기장이다. 학교 뒤편, 아무도 오지 않는 쓰레기장. 나에겐 ‘여자애들은 남자애들보단 깨끗하겠지’ 라는 편견이 있었다. 친누나가 있어서 여자에 대한환상을 어릴 때부터 많이 부숴버렸지만, 그래도 누나는 ‘저 방에 살고 있는 어떤 미지의 생물체’일 뿐이고, 진짜 여고생이라면 다르겠지 했는데…… 아무렴, 이 쓰레기 양을 보라.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여고 쓰레기장이 양이 더 많은 느낌이다. 생필품부터 해서 휴지에, 무슨 옷 같은 것도 버려져 있고. 무엇보다, 지저분해.


“일단 쓰레기부터 줍자.”

“응.”


이 곳을 깨끗이 정리해놓는 게 우리의 오늘 목표이다. 여전한 여름 태양은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다. 모자는 쓰고 있지만 참 덥다. 나와 성빈이 손에는 쓰레기 봉투와 집게가 들려 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아~ 더워, 짜증나.”

“힘들지? 좀 쉬었다 할까?”

“응.”


한참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쓰레기를 주우니 허리도 아프고 몹시 덥다. 오전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지금은 아직 한창 오후의 열기가 남아 있는 오후 4시. 아무것도 안 하고 이 볕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겠다. 성빈이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늘을 보고 말한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성빈이. 나무그늘로 향한다.


“뭔가 어색해하는 느낌인데, 웅도.”

“응? 아, 아니.”


성빈이의 물음에 나는 조금 주볏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이것 때문에 어색해하는 거잖아. 평소 성빈이면 절대 이렇게 적극적으로 먼저 물어볼 리가 없잖아. 그쟈 가만히, 얌전하게 나를 쳐다보며 방긋 웃는 그런 여자애였는데. 아니 뭐, 적극적인 성빈이가 싫다는 게 아니라.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한 공기를 느끼다 말했다.


“좀 뭐라고 해야 할까, 캐릭터 바뀐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제까지 그렇게나 부끄러워 했는데, 갑자기 돌변한 느낌이려나.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그렇네.”

“흐흥. 아후. 나도 좀, 답답하긴 했거든.”


내 솔직한 심경 고백에 성빈이는 기지개를 쭉 켜며 말한다. 나무에 기대 앉은 체로 팔도 다리도 쭉 뻗는 게 꼭 고양이 같아 귀엽다. 기지개를 하고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며 빛나는 눈으로 성빈이는 말한다.


“희세도 그랬잖아, 나 재수 없다고. 너무 가식적이라고. 물론 술 기운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게 솔직한 심경이라고 생각했거든.”

“아아, 그 년이 좀 그렇긴 하지. 자기는 어떤데.”


성빈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희세 욕을 했다. 누가 누구 성격 가지고 재수 없다고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희세는. 본인이 처신을 잘 해서 그렇지, 좀만 삐끗 하면 누구보다 재수 없을 수 있는 사람이 희세니까. 그래서 실제로 왕따도 당했었고. 성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잇는다.


“나도 답답했어. 늘 다른 애들 눈치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잘 못 하고, 솔직히 손해 보고 살았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

“음. 응, 그런 것 같아. 성빈이 넌 자기보다 다른 애들 먼저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사려 깊으니까.”

“에이, 너무 띄우지 마. 그건 원래 성격이 그런 거고.”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제로 평소 성빈이 성격이 그렇다. 부탁을 해도 잘 거절하지 못하고 곧잘 들어주고, 돈도 잘 꿔주고, 먹을 것도 잘 나눠주고 잘 베푼다. 그러면서 천사처럼 화내거나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성빈이었다. 그러니 반에서 애들한테 인기가 없겠는가. 거기다 외모 어디 하나 안 빠져, 매력 넘쳐흘러. 솔직히 희세 같은 괴물이 없었다면 충분히 반의 중심에 있을 여자애다.

다만 그런 성빈이를 보고 있자면 좀 답답한 면이 있다. 아니, 보는 사람이 답답하단 게 아니라, 성빈이 속이 답답할 것 같다는 뜻. 그렇잖아, 사람이 그렇게 착하게만 살 순 없잖아. 누가 짜증나게 굴면 짜증도 나고, 화나기도 하고. 그걸 풀어줘야 하는데 성빈이는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 아, 성빈이는 그냥 성녀처럼 착하게 타고난 아이구나 했는데 역시 성빈이도 평범한 소녀였어.


“술 마시고서 울고 떼쓰고 징징대고 어린애처럼 굴었던 건…… 솔직한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

“음. 그건 확실히 귀여웠지.”

“……떠올리진 말아줘, 창피하니까.”

“어어, 미안.”


성빈이는 내 대답에 살짝 골이 난 표정으로 볼을 붉히며 말한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괜히 초를 친 기분이다. 성빈이는 잠시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초연한 느낌으로 말을 잇는다.


“꾸며진 모습의 내가 싫은 건 아니야. 그렇게 의도했으니까. 누구에게나 다 착하고 성실한 그런 모습. 그치만, 진짜 나는 그런 애가 아닌걸.”

“가면 같은 거야.”

“응, 그렇지.”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말하는 성빈이 때문에 나까지 진지해졌다. 나지막이 말하니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친구들 앞에선 솔직한 나로 보이고 싶어서. 어제 네 말 듣고, 그렇게 마음먹었어.”

“내 말……?”

“어색해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며?”

“어, 어. 그렇지.”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한다.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왜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성빈이가 멋있어 보이지. 분명 지금 몰골(?)은 더위로 얼굴이 빨간데다 머리는 작업하기 편하게 바싹 묶었고 긴 머리 덕분에 더운지 땀이 범벅으로 나 앞머리는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이다. 근데도 예쁘네.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계속 쳐다보니까 성빈이는 날 마주보며 웃는다.


“그, 그리고…… 솔직히, 너랑은 서로 알몸도 본 사이니까. 더 이상 벽을 쌓고 싶진 않아.”

“아, 그 얘기면 또 내가 손해지 않나? 나는 전라였지만 넌 반라였으니ㄲ……”

“에에 시끄러! 난 여자애잖아! 그리고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에이. 본 눈치인데.”


성빈이가 알몸 얘기를 하니 나는 덥썩 그걸 물고 늘어진다. 역시, 그 쪽 신경 쓰고 있었구나. 내 능글맞은 말에 성빈이는 삽시간에 얼굴이 빨개져선 애써 넘기려 한다. 하지만 한참을 나는 짓궂게 그 때의 얘기를 꺼내며 성빈이가 부끄러워하는 걸 즐겼다.


“어쨌든!!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거니까. 많이 봐 줘?”

“응, 좋아 좋아. 훨씬 좋아.”

“히힛.”


성빈이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자, 일하자!’ 하며 쓰레기 쪽으로 향하는 성빈이. 훈훈한 미소가 절로 걸린다.


바뀐 성빈이는 참 좋다. 새로운 자신에 눈을 떴으니까, ‘각성 성빈이’인가. 아니, 눈을 뜬 건 아니고, 그냥 가식 떨던 걸 때어낸 거니까. 그것만으로 훨씬 매력이 폭발하는 성빈이다. 그 전까진 그저 천사 같은 이미지의 마냥 착할 것 같은 여자애였다면, 지금은 제 나이 또래에 맞는 상큼한 여고생의 매력을 지닌 적절한 착한 여자애로 탈바꿈했다. 단순이 마음가짐을 바꾼 것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평소라면 성빈이가 입을 다물고 얘기하지 않을만한, 좀 성적인 농담도 곧잘 받아준다. 오히려 성빈이가 먼저 하기도 한다. 먼저 장난을 걸기도 하고, 툭툭 내 가슴 쪽을 치기도 한다. 깔깔 웃기도 하고, 솔직하게 자기감정 표현을 한다. 그러니까 훨씬 더 소녀스럽고 어울린다. 성빈이 말대로, 이게 원래 성빈이 본연의 모습인 것처럼.

나는 만족스럽다. 내 덕에 성빈이가 이렇게 바뀌었다면, 뭔가 우쭐해지잖아? 나의 말 한 마디에 이렇게나 변했다는, 그런 자부심. 그것보다는 그 쪽이 크지. ‘나한테만’ 마음을 연다고 했잖아. 내가 한 말에, 나에게만 가면을 벗고 솔직한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 성빈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 오늘, 학교에선 굉장히 얌전했거든. 성미의 장난에도 입을 가리고 천사처럼 모범생처럼 웃기만 하는 성빈이인데. 지금 내 개드립에 박장대소하며 입도 가리지 않고 빵 터져서 웃는다. 그건, 뭔가 날 특별취급 하는 거? 나만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 음, 그게 의식되는데. 그게…… 그러니까 호감인가?


“아오, 야 무슨 이런 걸 학생들한테 시키냐. 이런 건 업자 부르지 않냐 보통?”

“응, 난 못 들겠는데, 무거워서. 이런 건 웅도 네가! 히힛. 남자애잖아!”

“응, 그렇지, 내가 좀 남자애긴 하지. ……그래도 좀 돕지?!”

“에헤헷.”


엄청난 노동의 강도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사린다. 물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게 숫제 장난이다. 나는 그 장난을 받아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다보니 어째 성빈이에게 말하는 게 되게 공격적인 말투가 됐다. 그래도 성빈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장난으로 받아준다. 와, 금방 엄청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야. 게다가 시간도 금방 저녁 6시를 가리킨다. 그래, 내가 바라던 게 이런 거야. 100시간에 달하는 봉사활동 시간동안 성빈이랑 친해지고, 얘기하면서 일도 금방금방 하고. 지금은 딱 그 수준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일은 좀 심각한 일이다. 바닥에 잘 정돈된 분홍색 종량제 봉투들. 100L짜리라 다들 꽤나 묵직한 편이다. 그게 저쪽 구석 철조망 위로 하늘까지 닿을 듯 쌓여 있는데 바닥에 정돈된 걸 여기에 갔다 놓는 거다. ……솔직히 그건 업자들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위험하다고, 학생이 하기엔! 하지만 뭐 어쩌겠나. 시키면 해야지. 이것만 하면 오늘 일이 끝이 난다. 힘내서 해야지.


“오, 잘 드네? 여자애 치곤 장사야.”

“피이. 여자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봐 준다고 너무 막 들이대는 거 아니야?”

“아하하. 왜, 여자애가 힘 센 게 어때서. 성빈이 너는 내장형근육 인가봐, 팔뚝은 엄청 가는데 이 정도 힘이 나오다니.”

“아 정말! 그래, 나 힘세다! 팔다리도 굵어서 농사지으면 딱 이겠다!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야!”

“우헤헤헤. 맏며느리 좋네, 종갓집 맏며느리.”


나와 똑같이 100L짜리 가득가득 찬 종량제 봉투를 번쩍 들고 가는 성빈이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성빈이는 웃음과 아니꼬운 표정이 섞인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계속 시비 거는 나에게, 결국 성빈이는 자폭에 가까운 자학개그를 선보인다. 나는 웃음이 터져 실없이 실실 웃었다. 성빈이가 이 정도로 경박하게(?) 말할 수 있었다니. 반전 매력에 푹 빠져버릴 것 같다. 성빈이는 잔뜩 웃는 나를 서운한 듯 웃는 표정으로 본다.


“어 어? 으아!”

“야, 위험…… 위험하잖아?!”


쓰레기를 올리려 쓰레기의 산으로 올라갔다. 성빈이는 무겁다고 징징대면서도 기어이 올라온다. 여긴 위험하니까 나한테 맡기라고 했는데. 고집을 피우며 올라온 성빈이. 갑자기 발이 쓰레기에 푹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나는 쓰레기를 들고 올라가다 뒤를 돌아 봤다. 하지만 도와주기엔 이미 늦었다.


“으앙, 아, 에엑 끄아! 뛣!”

“성빈아! 괜찮아?!”


성빈이는 본인이 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진다. 가면을 벗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다고 비명까지 저렇게나 솔직해지다니?! 아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쓰레기봉투를 내던지고 황급히 성빈이가 굴러 떨어진 쪽으로 갔다.


“으으…….”

“괜찮아? 야, 손……!”

“히익! 피, 피!”


성빈이는 쓰레기 더미에 누워 있다. 머리를 저으며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데, 하필 손을 짚은 데가 유리 조각들이 잔뜩 있는 곳이다. 몸을 움찔거리며 성빈이는 황급히 손을 뗀다. 하지만 이미 유리조각에 베여 손바닥에 피가 뚝뚝 흐른다.


“으으……”

“……하압.”

“야, 얏! 에엣?!!”


성빈이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보며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린다. 안쓰럽다. 나 도와주려다 이렇게 다치다니. 거기다 여자앤데. 나는 짧은 의학상식이 지나갔다. 상처에 세균이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곪거나 할 수도 있다고. 헌데 여긴 쓰레기장, 자본주의의 모든 균들이 여기 모여 있다. 거기에 기본 땅에 있는 세균 1억마리까지 추가해야겠지. 이런 때엔 얼른, 소독하는 게 좋겠지. 나는 머뭇거림 없이 성빈이의 손에 입을 가져다댔다. 성빈이는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 하지만 나는 손으로 성빈이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가만히 있어! 이런 느낌인데, 허허.


“……이상하잖아, 느낌.”

“괜찮아?”

“응, 괜찮…… 누가 혀를 쓰래! 아오, 이 변태!”

‘꽁.’

“에헤헤헤.”


피를 쪽쪽 빨며 성빈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성빈이는 약간 얼굴이 상기돼서 대답한다. 다행이다, 하며 장난으로 성빈이 상처를 혀로 간지럽혔다. 성빈이는 반대편 손으로 내 머리를 약하게 꽁 치며 말한다. 그래도 웃는다.


“자, 일어나.”

“응. 아얏……!”

“뭐야, 어. 다리도 다쳤네.”

“으우우…….”


성빈이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나다가 다시 얼굴을 찡그린다. 살펴보니 다리도 다친 모양이다. 무릎 쪽이 살짝 찢어져 있고 그 쪽에 빨갛게 피가 베어 나오고 있다. 성빈이는 잔뜩 찡그린 표정이 됐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이 됐다. 이건 뭐, 답이 없네. 하는 수 없다, 거기 가는 수밖에.




“아앗! 아! 자, 잠깐만! 흐윽……! 하앗, 너, 너무 아팟……! 읏, 으읏…… 아아…….”

“……이거 너무 야한데, 신음이.”

“변태야!”

‘꽁.’


양호실에 왔다. 아무래도 소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방학이고 수업도 다 끝나서 그런가, 양호실은 문은 열려 있는데 아무도 없다. 좋겠다, 양호 선생님은. 방학이라 출근도 안 하시나. 구급상자를 열어 솜에 과산화수소수를 발라 무릎을 소독한다. 성빈이는 의자에 앉아 고통에 몸을 파르르 떨고 있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 성빈이 무릎에 눈높이를 맞춰 소독하고 있다. 어째 굉장히 야릇한 느낌이 들어 농담을 했다. 성빈이는 아파하는 와중에 ‘변태!’ 하며 내 머리를 친다. 하핫, 어째 이만큼이나 친해진 느낌인데. 소독하고, 거즈로 다시 닦고, 다시 한 번 소독한 뒤에 약을 발라 거즈에 반창고로 마무리했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라 흉지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손바닥 상처도 마찬가지로. 손바닥엔 밴드를 붙여 줬다.


“와, 의외로 꼼꼼하게 잘 하네?”

“훗, 중학교 때 축구하다 허구언날 애들 까지고 다치는데. 양호 선생님이 늘 있간? 내가 다 치료해줬지.”

“흐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거구나? 그럼 믿을 만한데. 고마워.”

“뭐 이런 걸 가지고.”


성빈이의 칭찬에 나는 어깨가 으쓱하다. 중학교 때 축구하고 놀던 게 여기서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성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살짝 얼굴을 찡그린다. ‘걸을 수 있겠어?’ 하고 물으니 ‘응, 걷는 건 괜찮은데…… 아무래도, 일은 좀 무리겠지.’ 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기 때문에 마지막에 일을 망치게 생겼으니 그러겠지. 나는 웃는 표정으로 ‘됐어, 나머진 내일 하자.’ 하고 성빈이를 말렸다. 내 말에 성빈이는 쓸쓸한 표정으로 웃는다.


“뭔 짓을 했길래 다쳐. 말했잖아, 너희 신상에 뭔 일 있으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죄송합니다.”

“뭐, 치료는 잘 했네. 시간은 제대로 쳐 줄 테니까. 일도 그만하면 됐어. 방금 보고 왔거든.”

“가, 감사합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감선생님 앞에 섰다. 특히 성빈이가. 거의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선생님은 아니꼬운 표정과 말투로 말하다가 마지막엔 새침하게 말씀하신다. 역시, 애들 싫어하는 것처럼 언짢은 말투로 말씀하시지만 결국 우리 챙겨주신다니까. 내가 웃는 표정으로 말하자 ‘그렇게 웃지 마, 정들어.’ 하고 말씀하신다. 더욱 방긋 웃는다.


“아─ 오늘 일도 대충 끝났네.”

“응.”

‘꼬르륵─.’

“……아하하. 밥이라도 먹을까?”

“그래.”


벌써 저녁 6시 30분. 좀 있으면 저녁이다. 배고플 만도 하지. 거기에 일을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천지를 요동치는 내 뱃속에서 나는 소리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살짝 빨개져서 말했다. 성빈이는 잔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둘이 같이 밥 먹으러 기숙사를 나선다.


작가의말

아 배고프네요. 밥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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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19화 - 3 +24 14.02.25 3,564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3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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