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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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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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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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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2화 - 2

DUMMY

“좋아할 만도 하지, 쟤라면.”

“그렇지, 아무래도.”

“뭘 니들끼리 얘기하고 납득하는건데.”


현광이의 말에 민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히 성을 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이 두 명한테는 들킨 것 같은데. 지영이 좋아하는 거.


이지영, 우리 학원 다니는 여자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키는 160 중반 정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다. 체구가 작은 편이라 아담하게 보이지만. 긴 생머리에 큰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그냥 한 마디로 예쁘다. 지망이 연예인이었다면 충분히 아이돌 가수 같은 것으로 데뷔할 수 있을 정도로. 무엇보다 아까도 말했듯 미소가 아름다운 여자애다. 그냥 평소에도 예쁜데, 방긋 웃음지으면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안녕?”

“어, 어…….”

“오, 우리 보고 인사하네?”

“아니, 나한테 인사한 거지. 짜식, 내 매력은 알아가지고.”

“……뒈질래?”


지영이는 여자애들이랑 얘기하다 문득 이 쪽을 돌아본다. 여자애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앞 쪽, 나와 민주, 현광이가 앉아 있는 곳은 맨 뒷자리. 일부러 고개를 돌려야 볼 수 있다. 힐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인사한다. 으아아아아……! 예뻐, 예뻐! 귀여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지? 종족이 다른 게 아닐까? 엘프라던가, 천족이라던가. 민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 한다. 나는 진정한 살인충동을 느끼며 민주를 위협한다.

굳이 이 쪽을 보고 인사했다는 건,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게 아닐까. 민주나 현광이 따위를 본 게 아니라, 분명 나를 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지영이 뒷모습을 보며 방금 전 미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좀 더 지영이에 대해 알고 싶다. 지영이랑 같은 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영이랑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영이랑 데이트 한다면……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 좋다.


“웅도가 누구 좋아한 적 있었냐?”

“아니, 없었지.”

“웬일이래, 여자애 좋아하고. 이 녀석도 드디어 성에 눈을 뜬 건가.”

“왜, 나는 좋아하면 안 되냐?”

“오홍, 그건 인정하는 말이구먼? 확실히 좋아하는구먼?”

“……뭐, 그래, 좋아한다 좋아해.”


민주와 현광이의 얘기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인정했다. 그렇게 부정할만큼 창피한 일도 아니고, 부정한다 해도 이미 이 녀석들 다 눈치 챘으니까. 내 대답에 ‘오~ 정웅도 장난 아닌데~? 팍팍 밀어줄까?’ 하며 민주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러다 선생님한테 몽둥이로 깡 하고 머리를 맞는다. 말 안 했는데, 수업 이미 시작해서 한참 지났거든. 우린 원래 수업시간에도 이러고 우리들끼리 얘기하고 논다. 그러니까 뒷자리에 앉았지. 민주는 머리를 매만지며 풀죽은 표정으로 ‘죄송함다─’ 하고 고개를 꾸벅 거린다. 빠른 사과에 선생님도 뭐라 더 말씀하시진 못하시고 앞으로 가 수업을 계속하신다. 잠시 동안은 조용히 있는 게 좋겠군.


“근데 너, 여자애들 앞에선 병신되지 않냐?”

“……어, 맞아.”

“으이그, 븅신.”


쉬는 시간, 셋이 나란히 걷고 있다. 먹을 걸 사먹으러 가까운 구멍가게로 향하고 있다. 현광이가 넌지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병신’이라는 격한 말이 전혀 틀리지 않게, 그 말이 사실이다. 남자애들한테는 곧잘 말할 수 있겠는데, 어째 여자애 앞에서는 전혀 말이 안 나온다. 돌처럼 굳어버린다고 할까. 민주는 맛깔나는 억양으로 나를 욕한다. 눈을 치뜨고 위협적으로 민주를 쳐다본다. 허나 민주는 아랑곳않고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게 뭐가 어려워서~? 그냥 말 하면 되잖아. 장난도 걸고.”

“넌 그냥 시비 거는 거잖아. 여자애들 엄청 싫어하잖아.”

“그냥 그렇게 하는 거지~ 넌 어차피 그 정도도 못 하잖아.”

“……뭐, 그렇긴 하다만.”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지~! 흐하하!”


민주는 아주 신이 나서 말한다. 오늘따라 저 실실 웃는 표정이 참 보기 싫다. 근데 그건 맞다, 민주가 여자애들하고 말 잘 하는 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히 말을 잘 거는 민주다. 아까 걔는 특별히 민주를 싫어하는 애라 그런 거고, 다른 여자애들하곤 은근히 얘기를 많이 하는 민주다. 애 자체가 웃기니까, 여자애들도 딱히 재미있는 얘기 하는 민주가 싫진 않겠지. 나는 절망적이다. 딱히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자애들 관심사도 모르겠고. 축구…… 얘기하면 당연히 싫어하겠지. 게임…… 얘기해도 당연히 별로 안 좋아할 것 같고.


“안 되겠구만! 내가 도와줘야겠어. 사나이 이민주! 친구가 위기에 빠졌는데 가만히 있고 베겨?!‘

”……좀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허! 나대다니! 넌 나만 믿어.”


민주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오히려 나는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 썩 신뢰가 가진 않는데. 하지만 민주는 자신만만한 태도이다. 현광이는 마냥 재미있는지 웃을 뿐이다.


“싸게싸게 얘기들 하랑께? 흐허허.”

“…….”

“어, 어.”


어색해 죽겠다. 민주 이 녀석은 이럴 때만 행동력이 넘쳐서, 다짜고짜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지영이에게 말을 건다. 그러더니 뭐라 말을 했는지 내 쪽으로 데리고 온다. 나는 굉장히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멋대로 지영이 시간을 뺏으면 어떡하라고!


“……휴대폰 번호 좀! 알려주라…….”

“에에. 작업 거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음…… 친해지고 싶어.”

“으응, 알았어. 휴대폰 좀?”

“어, 응…….”


무슨 용기가 났는지, 벌컥 말해버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지영이의 장난스런 대답에도 얼굴이 왈칵 붉어진다.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말하니 지영이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민다. 작고 하얀 지영이의 손. 내 휴대폰 액정을 꾹꾹 누르며 번호를 누르곤 통화 버튼을 누른다. 곧 지영이 휴대폰이 울리고 지영이는 휴대폰을 나에게 돌려준다. 민주는 꽁꽁 얼어붙어서 지영이를 쳐다보는 나를 보고 실실 웃는다. 지영이는 방긋 웃으며 ‘그럼 카톡해!’ 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여자애들은 수군수군 대고, 민주는 ‘마, 봐라! 내 뭐라고 했냐! 크하하하!’ 하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어, 어떻게 말했지. 나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게 된다. 얼떨떨하네. 민주 녀석, 맛난 거 사 줘야겠다.


그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지영이와 친해지게 된 게.


‘까똑.’

“아이구, 아주 깨가 쏟아지시네.”

“흐흐, 남이사 뭔 상관이여.”

“내가 소개해 줬잖아, 내가!”


느긋하게 빵을 사먹고 있는 찰나, 휴대폰이 울린다. 기분 좋게 휴대폰을 열어 보면 당연하게 문자 메시지가 온 상대는 ‘쭁♡’, 지영이다. 좀 이상한 별명이지만 내가 지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애들이 부르는 거란다. 애초에 알림말이 그렇게 돼 있어서 그렇게 표시되는 거고. 딱히 내가 지영이랑 사귄다거나 연인관계라 그런 애칭을 부르는 게 아니다. 민주는 잔뜩 심통인 표정으로 말한다. 흐흥, 질투하기는.


“응? ‘빵 사먹구 있었쏘ㅋㅋ 히힛 보고싶다’? 아주 가관이야.”

“미친놈아, 읽지 마!”


민주는 힐끔 내 휴대폰을 보더니 익살스런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는다. ‘ㅋㅋㅋ’까지 소리 내서 읽어버린다. 화악 창피해져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려 민주의 명치를 때렸다. 민주는 비명도 못 지르고 ‘헉! 허억!’ 하며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괴로워한다. 아, 나도 모르게 급소를 때려버렸네. 아랑곳하지 않고 현광이는 옆에서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한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둘이?”

“에이, 사귀기는.”

“까똑 보내는 수준은 거의 사귀는 단계인데.”

“에헤헤헤헤…… 그럴 리가.”


현광이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지금 이 상태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시기이다. 소위 말하는, ‘썸’을 타는 시기가 아니일까 싶은데. 남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그런 시기 있잖아. 웬만한 연인들 만큼 놀러다니기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서로 간 보는 시기. 훗, 이 정도는 연애를 글로 배운 나도 안다고.

지영이랑은 순식간에 친해졌다. 아니, 정말 순식간이라는 말이 적당하다고 해야 할까. 혹시나 해서 전화번호 받은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서 문자를 보냈는데 아주 빠르게 답변을 해 주는게 아닌가. 나에게 문자메시지란 서비스는, 친구 녀석에게 ‘어디냐’ 하고 보내도 답변이 30분 뒤에나 오는 미개한 것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그런 고민 할 것도 없었다. 지영이가 속사포처럼 떠들어대니까. 문자 메시지로든, 실제로든. 아, 학원에서도 얘기하게 됐거든. 여자애답게 재잘재잘 잡다한 얘기를 수다거리로 말하는데, 나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딱히 무슨 얘기를 더 할 수는 없고,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반쯤 사귀는 단계에 진입한 것 같다. 현광이 말대로 어쩌면 사귀는 거라고 떠벌리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혼자 헛다리 짚는 건 좀 아니지. 아직까진 지켜봐야할 단계다.


“아주 좋아 나셨어. 그렇게 좋아?”

“그럼~ 히히히.”


학원가는 길. 민주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요즘은 학원 가는 게 즐겁다. 그것 뿐만 아니라 요즈음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즐겁다.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있으면 바로바로 지영이와 문자하고, 학원에서 쉬는시간마다 얘기하고, 또 학원에서 같은 교실에 있는데도 문자 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선 전화로 못다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지영이는 정말, 쉬지 않고 얘기한다. 그렇게나 할 얘기가 많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뭐, 괜찮잖아.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지영이는 ‘웅도 너랑 얘기하면 진짜 재밌어!’ 하면서 환하게 웃어준다. 후후.


“안녕!”

“응응! 웅도야 있잖아 오늘!”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눈을 돌려 앞자리를 살핀다. 바로 지영이와 눈이 마주친다. 지영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보고 크게 말한다. 나는 가방을 뒷자리에 놓고 바로 지영이 뒷자리로 가 앉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지영이 말을 듣는다. 지영이는 참새처럼 내 옆에서 귀엽게 얘기한다.


“아, 수업시간 다 되가네. 자리 가야겠다.”

“어어, 가지 마! 여기 앉아.”

“어……”


수업시간이 다 되어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가 됐다.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려고 일어났는데 지영이가 내 손목을 부여잡으며 말한다. 지영이 옆자리. 확실히, 오른쪽 자리는 지영이 단짝이 앉았지만 왜인지 오늘은 왼쪽 자리가 비어 있다. 평소엔 늘 차 있었는데. 그그그, 그럴수가. 지영이가 나랑 같이 앉자고 하자니! 이건 분명…… 기회다!

우리 학원은 분명 남녀 합반이지만, 아무래도 사춘기의 남자 여자애들인지라, 서로 같이 앉거나 하는 짓은 잘 안 한다. 학원이 인기 학원이라 남는 자리 없이 꽉꽉 차는 것도 아니다. 자리는 남아 돈다. 옆자리에 나란히 남자애 여자애 앉는 건 사귀는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수업시간조차 떨어지지 않겠다는 더러운 심보지. 그런 애들은 학원도 얼마 안 다니고 그만 둔다. 애초에 그 녀석들은 공부하려고 학원에 온 게 아니라 연애사업 하러 학원에 온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영이가 같이 앉자고 하는 건 의미가 크다. 어쩌면, 여자애가 먼저 말하기 그러니까 모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 좋아해!’ 라고!! 아니, 아니야, 이건 너무 꿈보다 해몽이잖아. 김칫국을 항아리째로 마시고 있어.


“그, 그럼 가방 가져올게.”

“응! 히히히.”


지영이는 내 대답에 방긋방긋 웃는다. 아, 귀엽다. 이제 많이 봐서 어느 정도 적응됐지만 아직까지 지영이의 미소는 눈 앞을 아찔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나 앞자리 갈게.”

“미친놈! 아주 영혼까지 파셨구만!”

“응, 가 봐.”

“저주를 받을 것이야! 배신자! 넌 너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피에 익사하게 될 거야!”

“뭔 개소리여.”


학원 교실은 학교 교실처럼 크지가 않다. 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뒷자리에 앉아 있는 민주와 현광이에게도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가방을 들고 가볍게 말하니 민주는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말한다. 현광이는 웃으며 가 보라고 한다. 민주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무시하고 앞으로 간다.

지영이 옆자리에 앉았다. 별 것 아닌데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 같다. 아아, 심장 아파. 원래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욱 집중이 안 된다. 지영이가 있는 오른쪽 몸이 자외선을 100만배 정도로 받는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괜히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지영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게 돼 버리고. 결국엔 하나도 집중 못 했다. 물론 지영이는 그러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 공부 잘 하는 지영이니까, 그건 당연한 거겠지.



“얼른 사 먹으러 가자.”

“아이, 내가 왜? 난 내 가던대로 천천히 가겠소.”

“아, 진짜. 얼른 갔다 와야 된다니까!”

“것 참말, 내가 왜 댁 편의를 봐 줘야 되오?”

“하하, 웅도 애 탄다. 좀만 빨리 걷자.”

“에이 X부럴 것.”


쉬는 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민주와 현광이와 과자를 사 먹으러 간다.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는 묵언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마냥 귀찮기만 할 따름이다. ‘과자 사 먹고 올게.’ 하니까 지영이가 애달픈 표정으로 ‘에에, 왜? 안 가고 얘기하면 안 되?’ 하고 말한다. 으아, 순간적으로 정말 고민했지만 ‘금방 갔다올게, 네 것도 사올까?’ 하고 말해 간신히 나왔다. 아무리 여자애를 좋아해도 친구들과의 묵언까지 깨면 안 되지. 하지만 ‘그럼 얼른 갔다와!’ 하고 말하는 지영이가 눈에 선하다. 얼른 갔다 와야지. 근데 그걸 또 봤는지, 민주가 불퉁하게 나서며 수작질이다. 아마 틀림없이 심통을 부리는 거겠지. 현광이가 웃으며 중재하니 민주는 뾰로통해져서 걷는다.


“그 년이 그렇게 좋아?”

“그 년이라니, 미친 놈아!”

“아이구, 아주 신성모독이라고 하시지. 뭐 최고존엄이여?”

“……너 같으면 좋아하는 여자애보고 년이라고 하면 좋겠냐.”

“알았수다, 미안허이.”

“칫.”


민주의 말에 나는 정색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민주는 아랑곳 않고 비꼬듯이 적나라하게 말한다. 나는 툴툴거리며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주는 그 말에 별로 미안한 투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도 좀 그렇잖아? 너 너무 휘둘리잖아, 걔한테.”

“…….”

“막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꼭 잘 기른 강아지 같잖아? 웅도야, 자고로 연애는 상호 존중이야. 그런 건 그냥 핥핥대면서 좋아만 하는 거지.”

“좀 닥쳐!”


민주는 떠벌리듯 느긋한 태도로 말한다. 나는 묵묵히 듣고 있다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듣자듣자 하니까 너무하잖아.


“그럼 뭐 지영이가 나 조련이라도 한다는 거야?! 네가 걔에 대해 뭘 하는데!”

“하이구, 뭘 알아야 꼭 말하나? 영화 찍어봐야 영화 평론하나? 달걀 낳아봐야 계란 맛있는 줄 아나? 그냥 보이는 꼴이 그렇다는 거잖아. 솔직히 너, 좀만 더 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잖아? 그 꼴 보기 싫다는 거다, 친구로써! 남자새끼면 남자새끼답게 뺄 줄도 알고, 적당히 선 긋고 그래야지!”

“너 X발 일로 와봐. 일로 오라고!”

“야야, 왜 그래. 잠깐만, 야, 그만해!”

“뭐 X팔! 내가 틀린 말 했어? 내가 단순히 너 염장질 하는 거 X 같아서 이런말 하냐? 사실이 사실이잖아! X팔, X나 빌빌대는 꼬라지 하곤.”

“야 이민주! X팔새꺄!”


나는 고함을 지르며 불문곡직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건 옆에 있던 현광이의 억센 팔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강타한다. 민주는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한다. 그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더욱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날리며 말했지만 현광이의 제재로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 했다. 현광이는 ‘왜 지랄이야, 미친 새끼야!’ 하며 강하게 나를 밀친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민주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현광이가 다시금 나를 붙든다. 민주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 학원 쪽으로 걸어간다. 화가 온 몸으로 퍼지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다.



그 뒤로는 뭐, 별 거 있겠는가. 현광이는 잔뜩 나한테 뭐라고 하고, 엄청 흥분한 상태인 나는 잘 듣지도 않고 입을 꾹 다문 체로 서 있었고. 쉬는 시간 다 끝나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민주는 교실로 들어오는 나는 쳐다도 안 보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지영이는 ‘에에, 왜 늦게 왔어! 과자는?’ 하고 말한다. 하지만 민주와 싸운 것 때문에 기분이 몹시 다운된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영이는 살짝 걱정되는 표정으로 ‘왜, 무슨 일 있어?’ 하고 묻는다. 그래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


학원 끝나고 집 가는 길. 나와 현광이와 민주 셋은 집 가는 방향이 같아 학교도 학원도 늘 같이 다닌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어색하다. 현광이를 가운데에 두고, 나와 민주는 서로 한 마디 얘기도 안 하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광이만 가운데에서 어색해서 나와 민주를 번갈아 본다.


“……미안하다.”

“……어.”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며 걸었는데 민주가 먼저 나지막이 사과하는 말을 한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망설이다 대답했다. 실은 내가 먼저 사과하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막말한 것 같다. 너 좋아하는 여자앤데.”

“……아니야, 시작은 내가 먼저 했는데. 먼저 사과하고 싶었는데, 내가.”


민주는 익살스런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말한다. 장난스러워서 다른 애들의 분노를 잘 이끄는 성격 덕분인지 이런 사과 같은 건 또 잘 하는 민주다. 뭐, 이번 건은 장난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안하다.”

“어. 고맙다.”


어째 훈훈하게 끝내는 분위기다. 고개를 끄덕이는 현광이. 민주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렇게나 소리 지르고 싸운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나도 그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어색하게 웃는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개강총회에 다녀 오느라 좀 늦었네요.


...복학생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전혀 모르겠고, 선배들 역시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거, 후배들에게도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네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치원 때 모든 걸 다 배웠다고. 사람 사귀고, 친해지고, 얘기하고. 그런 건 유치원 때 다 배웠는데, 군대까지 갔다온 지금, 전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상심하는 마음으로 글이나 씁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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