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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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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1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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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글자
22쪽

23화 - 3

DUMMY

불꽃같은 불꽃놀이가 끝이 나고, 다들 피곤한 몸이 돼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내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고, 저녁도 서서 먹고, 불꽃놀이도 하고, 한 건 많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방은 두 개로, 선생님하고 나하고 한 방, 나머지 희세·성빈이·리유·미래가 한 방, 이렇게 쓴다. 여자애들끼리 방을 쓰고 나는 따로 떨어져서 자니 그런대로 합리적인 방 배치이다. 물론 내가 선생님에게 어떻게 위해를 가할 것도 없으니 선생님하고 같이 자는 것 역시 상관없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엔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괜찮겠지.


“이불 깔아. 피곤해.”

“넵.”


선생님은 방에 들어오시자마자 냉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뭔가 이러는 게 당연한 것 같아 얼른 이불을 깐다. 팡팡 까는 이불을 털어 펴고 잘 정돈하는 사이 선생님은 씻으러 가셨다. 음음. 이런 걸 노예근성이라고 하나. 선생님이 방도 잘 잡아주시고, 수고가 많으셨으니 이 정도야. 더 잘 깔아야지.


선생님은 씻고 나오셔서 피부를 정리하시고, 나 역시 씻고 나왔다. 화장을 지우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선생님. 뭐, 미모가 어디 가진 않는다. 다만 눈가에 주름이 조금…… 다만 피부에 잡티가 조금…… 다만 눈 크기가 조금…… 다만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조금…… 음, 이렇게 조금씩 모아놓으니까 좀 심각한데. 물론 입밖으로 낼 순 없다.


“이제…… 할까.”

“……뭘요!”

“……알면서 뭘 그리 당황해?”

“당황 안 했어요! 그리고 뭘 알아요! 무슨 생각 하시는 거에요!”


선생님은 힐끗 샤워를 마치고 온 나에게 넌지시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 나는 잔뜩 당황하여 대답했다. 선생님은 배시시 웃으신다. 장난이 과하시다. 암만 내가 한창 때의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런 장난은.


“뭐─ 네가 성적 호기심을 못 이기고 선생님을 건드린다면, 한 번 정도는 봐 줄 용의는 있어. 어차피 처녀는 예전에 땠고, 배 한 번 더 지나간다고 강에 자국 남는 것도 아니고.”

“잠깐만요!! 말의 수위가 너무 강하잖아요! 여자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요!! 제발!!”

“어머, 부끄러워 하는 거? 후후, 귀엽네.”

“아뇨! 이제 부끄러워하는 레벨은 아니에요, 그지만! 역시 말이 너무 강해요! 취소해요, 그 말!”


선생님은 바닥에 누워 농염하고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나는 잔뜩 놀라 박박 우겨댔다. 점점 선생님의 섹드립은 그 수위가 증가하는 것 같다. 선생님도 내가 뭘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하시는 거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제자인데! 그런 말 함부로 하면, 나…… 으아아아!


“불 끄고 와, 자야지.”

“넵.”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되어 불을 끄고 누웠다. 둘이 자기엔 꽤나 큰 방 가운데에 나란히 둘이 누웠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제와서?”

“아침부터 계속 말씀 드리잖아요, 고맙다고. 그치만 정말, 정말 고마워서 말씀 드리는 거에요.”

“흐흥. 예의는 바르네.”


불이 꺼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게 어둡지만 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선생님의 얕은 숨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보이진 않지만 흐뭇해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늘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왕따 당할 때에도, 조언 해주셔서 도와주시고. 기숙사에도 살게 해 주시고. 이렇게 저희끼리 노는 데에도 껴서 다 해주시고. 정말 은혜 입은 게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너 암 선고라도 받았냐? 아니면 시한부 인생?”

“아니에요!! 고맙다고 말씀드리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졸지에 시한부 인생 됐잖아요.”

:“하하하, 농담이야.”


선생님은 내 칭찬이 익숙치 않은지 아니꼬운 목소리로 물어보신다. 나는 공연히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정말 화를 내는 건 아니고, 장난기 섞은 목소리로. 선생님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그렇게 하니까 엄청 베푼 것 같잖아. 아닌 거 네가 잘 알잖아? 난 괴팍하고 제멋대로에 애들한테도 쌀쌀맞게 대하는데. 다만 너는, 그냥 귀여워서. 남동생 보는 것 같아 좀 잘 해준 것 뿐이니까.”

“좀 괴팍한 게 맞긴 하죠.”

“……맞을래?”

“헙,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내 칭찬이 쑥쓰러운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게 잘 해주신 게 맞는데 왜 애써 부정하시지. 역시,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니면, 완벽주의자인 선생님이니 남한테 칭찬 받는 게 어색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어쨌든 분위기는 훈훈하니 좋다.


“나도 너 자주 놀려먹고 하니까, 쌤쌤이야. 알겠지.”

“넵.”

“……그럼 말 다 끝났으니까, 이제 할까……?”

“으앗, 잠깐만요! 어딜 만지시는…… 으핫! 진짜에요?!”

“우후후…… 조금만 진심으로 다가가면 정말 할 기세인데. 너, 남자애가 너무 헤픈 거 아니야?”

“아뇨!! 제가 뭘 어쨌다고! 선생님이 나쁜 거에요!”


선생님은 어색해진 분위기가 싫으셨는지 뜬금없이 대화를 종료하시고 스윽 몸을 일으키신다. 그리곤 한 손은 내 가슴팍에, 한 손은 내 허벅지에 가져다 대신다. 옷 위이지만 배 쪽에 선생님의 길고 매끈하고 차가운 느낌의 머리카락이 간질이는 느낌이 분명하게 난다. 잔뜩 발버둥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선생님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그 말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지금 어두컴컴해서 얼굴이 안 보여 다행이다. 빨개진 얼굴과 내 표정을 봤다면 선생님이 더욱 날 놀렸을 테니까.


“…….”

“…….”


한바탕의 장난이 끝나고, 다시금 방 안은 조용해졌다. 조용한 선생님의 숨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잠이 오질 않는다.

젊은이의 혈기 때문이 아니다. 선생님은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이시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대상은 아니다. 친누나 같은 느낌. 아니, 친누나보다 더 누나인걸.예전에 미래랑 같이 잘 때, 한숨도 못잘 때의 그런 기분으로 잠이 안 오는 건 아니다.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래도 역시, 아까 낮에 미래에게 저질렀던 짓 때문이겠지. 그거 말고도, 이것저것 복잡한 게 많지만.


─「여어이, 재수 억세게 좋은 놈~ 전화 한 통도 없이 잘 지내시나보이이~?」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웬일로 전화를 다 하셨어?’


민주다. 정말 오래간만에 전화를 하는 것 같다. 학교에 있을 때엔 예전 세상은 딴 세상이 된 것처럼, 이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에만 벅찼으니까. 미처 애들한테 전화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민주는 특유의 장난기 많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청춘사업은 잘 되가고 계쇼? 네 불알들은 지금 남고에서 죽을 맛이다야. 넌 여고잖여?!」

‘아하이…… 그럼, 지금 엄청 예쁜 여자애들 잔뜩 달고 다닌다니까?’

「키야, 장난 아니네. 중학교 때 너, 어장관리 당했었잖아. 그 때 표정 아직도 생생한데, 으히히히!」

‘……시끄러 임마.’


전화 너머로 들리는 민주의 웃음은 예전과 똑같다. 특유의 비꼬는 듯 놀리는 행태도 똑같다. 그래도 그것마저 그립다. 예전엔 잔뜩 짜증만 났는데, 지금은 참 즐겁다.


「그래서 사귀고 있는겨? 여자애 4명이나?」

‘아니, 그냥 친구여. 지금은 일단은.’

「이야, 팔자 좋네. 누구 마음에 드는 애는 있어? 얼른 사귀어서 먹어야지!」

‘아아이, 먹긴 뭘 먹어, 먹을 거여?’

「먹을 거지! 키야, 좋겠다 먹을 거 밭으로 학교 가서. 여긴 완전 기아야.」

‘흐헣헣.’


오래간만의 남고식 섹드립에 적잖게 당황하게 된다. 허허, 여자를 ‘먹을 것’으로 놓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섹드립이라니. 민주 답다.


「얼른 사겨! 애들하고 놀기만 하면 뭐덜겨. 또 어장관리 당하게?」

‘얘들은 그런 애들 아니여.’

「지영이년 얘기할 때도 그렇게 말했었지! 어찌됐든, 한 여자애 사귀어서 걔랑 알콩달콩 하는 게 낫지, 아니면 네가 지금 어장관리짓 하는 겨? 이열, 장난 아닌디 니?」

‘뭔 소리여, 내가 그 짓을 왜 해. 내가 당했는데.’


민주의 말에 나는 펄쩍 뛰었다. 애초에 내가 그럴만한 분수가 되긴 하나. 말이야 ‘여자애 4명 달고 다닌다’고 하지, 실상은 희세에겐 잔뜩 무시당하고, 미래하곤 상호 드립 관계(?)이고, 성빈이랑은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사이, 리유는 마냥 여동생 같은, 그런 관계. 개판이네. 민주랑은 한동안 즐거이 통화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게 불과 며칠 전 통화이다. 여름이라 사람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 건지, 민주 말을 들으니 마음이 동요되는 게 없잖아 있다.

예전 과거 일을 다시 떠올려본다. 지영이의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줄곧 여자애를 좋아하는 걸 포기했다. 마음속 한 구석에서 나도 모르게 벽을 치게 된 거지. ‘여자애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 ‘내가 여자애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어쩌면 미지의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또 어장관리를 당할 까봐, 혹은 예전처럼 내가 바라는대로 염원을 투영해서 그 모습대로만 좋아할까봐.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고 봉인하고 움직이지 않게 꽁꽁 싸매고 있었다.


지금 막상 선택하라면, 나도 모르겠다. 우유부단하다고 평을 듣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 좋은데 어떡하라고. 리유는 리유대로, 희세는 희세대로, 성빈이는 성빈이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데 뭘 어떻게 선택해. 애초에 내가 선택할만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택할 수 없기도 하다. 누군가랑 사귄다라……


“선생님, 자요?”

“……으음.”


심란한 마음에 선생님한테 상담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말했다. 누구를 좋아하네 어쩌네 여자 선생님에게 말하긴 창피하지만, 선생님은 정말 친누나 같은 느낌이니까. 충분히 여자애의 마음이라던가, 그런 거 잘 말씀해주실 것 같다. 나를 놀림감으로 잔뜩 놀려대면서. 하지만 선생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그 사이에 잠이 드신 모양이다.


“으흥……♡ 정민 씨, 거기는……♡”

“아아이씨! 뭐에요!”

“으우웅♡”

“…….”


선생님은 달콤한(?) 꿈을 꾸고 개신지 야릇한 신음을 내신다. 평소 작정하고 나를 놀리려는 목소리가 아니라 잠결에 하는 말이라 발음도 약간 세고 귀여운 것 같은 목소리라 더욱 야릇하다. 화를 내며 소리쳤지만 선생님은 미동도 없으시다. 깊이 잠드신 모양이네.



“하아─”


결국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비단 잠이 안올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달콤한 꿈이 한창 진행중(?)이신지 계속 야릇한 신음을 내셔서. 아무리 그런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지만, 매력적인 성인 여성이신, 거기다 평소 체통 때문에 근엄했던 목소리까지 잠결에 매우 귀엽게 들리는데 그걸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도 떨쳐내 버릴 겸 바깥으로 나왔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니 12시 13분. 자정이 넘었구나. 밤바다는 몹시 시원하다. 쌀쌀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는 바닷바람이 굉장히 상쾌하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여자친구라.

여자친구 생기면 좋겠지, 확실히 좋긴 할 거야. 이상하거나 불쾌한 일이 아니라,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비록 거짓이었다고 해도, 지영이랑 같이 친하게 지냈던 그 기간은 정말 달콤하고 강렬한 추억이었으니까. 그게 지영이의 진심이었다면 더욱 짜릿했겠지.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


땅바닥을 보며 바닷가를 걷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고 흠칫 놀랐다. 저 멀리, 웬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흩날리는 여자가 보인다. 바닷바람에 그녀의 검고 긴 생머리와 원피스가 휘날린다. ……이 밤중에?! 이 새벽에?!! 잠깐, 잠깐만. 저거 설마, 귀신?!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있는 곳에는 몇몇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 쪽엔 아무도 없다. 흰 소복에 긴 머리칼을 지닌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며 등짝으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른다. 진정해라, 정웅도. 지금은 21c, 귀신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으악! 너무 무섭잖아! 얼굴도 흩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전혀 안 보여! 혹시 머리카락이 싹 넘어가면 아무것도 없이 계란처럼 맨들맨들한 흰 얼굴만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더 무서워!


“……오빠?”

“아아아악! 아, 뭐야!! 놀랐잖아!”

“……지금 누구한테 성을 내요!”


다가오는 귀신을 보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때마침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정신없이 흩날리던 귀신의 머리칼이 뒤로 뒤집어져 얼굴이 드러난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달걀귀신은, 달걀귀신만은! 무섭잖아, 무섭잖아!! 하지만 이내 들리는 친근한 목소리. 눈을 뜨고 보니 미래다. 약간 창백해 보이는 인상의 미래. 밤이라 그런가 더욱 희게 보인다. 아, 왜 얘는 이 밤중에 흰 옷 입고 머리 풀고 미친년처럼 돌아다니는 건데! 창피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미래는 볼을 부풀리며 마찬가지로 화를 낸다. 아, 내가 화를 낼 입장은 아니구나.


“왜 안 자고 돌아다니고 있었어?”

“잠이 안 와서요. 마음이 답답해서.”

“그래. 나도 그래서 나왔는데.”


미래는 잔잔한 말투로 말한다. 평소처럼 경망스럽고 가벼운 느낌의 말투는 아니다. 아무래도, 역시 아까 그 일 때문에 나에게 의식하는 게 있는 걸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아까 낮에 있던 일은…….”

“그 일은, 괜찮아요. 저 아시잖아요, 그 정도로 창피해할 여자애 아니라는 거.”

“……되게 창피해 하는 것 같던데. 거의 기절할 기세로.”

“그, 그야 당연히 창피하지만! 그 순간엔 당연히 창피했죠, 아무리 그래도 저도 여자앤데! 오빠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빠 고추 보여준다고 생각해봐요! 끔찍하지 않아요?”

“그……렇네.”


미래는 잔잔하게 말하다 내 태클에 왈칵 얼굴이 붉어지며 말한다. 적나라한 비유에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응, 확실히 그건 인지하고 있어. 게다가 나는 남자애니 그런 일이 일어나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겠지만 미래는 여자애잖아. 훨씬 충격이 크겠지. 그럼에도 이렇게 말해주는 걸 보면, 확실히 미래는 착하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 걸로 오빠랑 어색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걸로 연연하는 여자애 아니니까.”

“그래. 고맙네. 진짜 내가 골백번은 죽어도 싼 일인데.”

“흐흥, 그럼 칭찬해주세요.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왜 이래, 이상하게.”

“에에! 리유한테는 맨날 해주잖아요! 왜요, 저만 거부감 생겨요?”

“아이…… 알았어, 해 주면 되잖아.”


미래는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린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미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미래는 ‘히히’ 웃으며 내 손길을 느낀다. 왜 이러나 싶다. 리유야, 워낙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주다 손을 내렸다. 미래는 말없이 걷는다.


“바보 오빠, 그거 알아요?”

“뭐.”


뜬금없이 ‘바보’ 라고 하는 게 조금 신경 쓰이지만 그 정도는 이제 디스 축에도 못 끼지. 선생님과 희세로 단련된 내 신경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아. 미래는 나를 올려다보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왜 이렇게 귀엽지.


“사실 저, 오빠 엄~청 좋아해요.”

“……알고 있었는데.”

“에에! 알고도 그렇게밖에 반응 안 해주는 거에요! 이 어장관리남!”

“무슨 소리야, 내가 뭐 능력 된다고 어장관리를 해. 네가 항상 말하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냐.”

“아아, 제가 너무 솔직했나요. 히힛☆”


미래의 말에 잠시 움찔 했다가 다시금 평정을 되찾고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 쪽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이 밤바다를 방황하고 있던 거였는데. 내 대답에 미래는 혀를 쭉 빼며 귀엽게 대답한다. 잠시 또 말이 없이 묵묵히 걷게 됐다.


“그럼 오빠, 그건 알아요?”

“또 뭐.”


미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힐끔 미래를 내려다봤다. 말없이 앞을 보던 미래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올려다본다.


“사실 모두들, 오빠를 다 좋아하고 있어요.”

“……모두들?”

“희세 언니, 성빈이, 리유, 전부 다요.”

“……에에? 뭔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드립도 드립같아야 받아주지.”

“……흐흥. 애써 부정해도, 사실은 사실이에요.”

“…….”


미래의 말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미래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 다 날 좋아한다고? 어째서?! 아, 아니! 미래는 장난 식으로라도 늘 나한테 ‘저 오빠 좋아해요!’ 하고 말하니까 그렇다고 넘어가겠는데. 희세는 나 싫어하잖아! 그것도 경멸하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뭐, 예전에 ‘사실 그렇게 말하는 거 전부 부끄러워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니까.’ 하고 고백했었지만, 또 요즈음 하는 행색을 보면 진심으로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었으니까.

성빈이는, 저번에 넌지시 물어봤을 때 확실하게 아니라고 해서 의심을 접어뒀었는데. 그 때, 맞다고 했으면 거의 사귈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리유는…… 리유는, 뭔가 감정을 느끼기엔 너무 여동생 같은 포지션이니까. 전혀 생각도 못 했지. 솔직히 리유가 제일 믿기지 않는다.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다 따지듯 미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뭐 좋아서 여자애들이 좋아하냐. 그찮아?”

“그렇네요, 확실히, 그래요. 오빤 엄~청 변태에다, 이상한 상상도 잘 하고, 유머 감각도 없고, 태클도 잘 걸어요. 게다가 뻔뻔해서, 여자애가 부끄러워하는 걸 즐기는 새디스트 변태이기도 하구요. 가끔은 선생님이나 언니한테 맞는 걸 좋아하는 마조히스트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리유에게까지 손을 대는 걸 보면 중증 로리콘 기질까지 있는 것 같아요. 종합 변태 백과네요.”

“……야, 좀 심하잖아. 아무리 나라도…… 다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 하겠지만.”

“히히히히. 인정하시네요.”


미래의 신랄한 대답에 나는 차마 뭐라 변명도 못하고 우물거렸다. 오늘 그런 짓을 저지른 게 더욱 변명을 못 하게 한다. 확실히, 지금까지 저지른 짓만 보면 굉장한 변태이긴 한데. 미래는 살짝 당황하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그치만, 다들 그런 오빠를 좋아해요. 마음 착하고, 배려해주고, 마냥 져 주기도 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니까요. 저도 그런 오빠가 너무너무 좋아요.”

“……이거 왠지 부끄러운데.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칭찬이니까 부끄러워해도 되요! 히히.”


미래의 말에 나는 왠지 굉장히 부끄러워져 얼굴이 벌게져 대답했다. 미래 역시 살짝 볼이 상기돼서 웃는 낯으로 대답한다. 음…… 미래의 저 말, 제대로 들으면 고백하는 거 아니야!? 농담 식으로 넘어갔지만, 확실하게. 그것 때문에 의식해서 더욱 부끄럽다.

아까 미래를 만난 시점에서부터 팬션 쪽으로 돌아 걸었기에, 팬션 앞에 다다르고 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다 되가고 있다. 슬슬 들어가 자야지.


“언니도, 성빈이도, 리유도 다 오빠 좋아하는 게 티가 팍팍 나는데, 오빠가 너무 바보 멍청이라 전혀 눈치를 못 채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끼어들었죠.”

“……그런 거였나. 어쩐지. ……잠깐만, 그럼 너 저번에 놀러 갔을 때 같이 잔 것도……?”

”히히히히. 그건 사실─ 의도한 거긴 했어요. 친구가 전화를 안 받을 리가 없잖아요. 뭐, 오빠가 너무 착해서 유혹은 실패했지만─”

“……너무하잖아, 그건.”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떨궜다. 뭔가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니는 손오공이 된 기분인데. 미래는 낄낄대며 웃는다. 그래도 미래가 미워 보이거나 그러진 않고 마냥 귀엽다. 어째 점점 리유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게 귀여워지는 미래다.


“그치만, 역시 오빠는 바보에요.”

“응? 뭐가.”

“바─보.”

“어?”


미래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팬션에 거의 가까이 도착했는데. 나를 올려다보며 살짝 상기된 얼굴로 방긋 웃는 미래. 그러더니, 있는 힘껏 내 품에 안긴다. 포옥 품 안으로 들어오는 미래. 리유만큼 덩치가 작진 앉지만 성빈이나 희세에 비해선 압도적으로 왜소한 덩치인지라, 아이처럼 품에 쏙 들어온다. 그러면서 내 팔을 세게 잡아당겨 상반신을 자기 눈높이로 낮추려고 한다. 얼이 빠진 상태인 나는 미래의 작은 힘으로도 쉽사리 끌렸다.


“제가 진심이라는 거, 아직도 모르고 있잖아요. 드립으로만 생각하고 있잖아요. 저…… 정말 오빠가 좋단 말에요.”

“……!”


미래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말한다. 그 달착지근한 목소리는 귀로 들어가 뇌뿐만 아니라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것 같다. 온 몸 구석구석으로, 미래의 달콤한 목소리가 퍼지는 기분이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미래가, 미래가 진짜로 날 좋아하는 거라고. 드립이 아니라. 늘, 애매하게 말하는 미래인지라 솔직히 분간하기 힘들었다. 어디까지가 드립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는 여자애니까. 가뜩이나 여자애는 원래 속을 파악하기 힘든데, 거기다 드립까지 섞으니 내가 알 턱이 있나. 하지만 지금 내 귀에 대고 말하는 미래의 목소리는 정말 애타는 소녀의 진심을 담은 그 목소리 그대로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여자애는 먼저 고백하면 안 되니까,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전 언제까지고 기다릴 거니까, 알았죠? 바보, 멍청이 오빠!”

“……뭐를.”

“오빠가 먼저 고백하는 거요! 히히히.”

“……야, 야!”


미래는 얼굴이 빨개져선 토끼처럼 깡총 뛰며 그대로 계단으로 올라가버린다. 빨개진 얼굴로 귀엽게 헤헤 웃는 건 리유 못지 않게 귀엽다. 나는 당황해서 작게 말했지만 미래는 듣지도 않고 그대로 올라가 버린다. 잠시 동안 나는 멍하니 계단을 쳐다본다. 미래가 한 달콤한 말과, 품에 안겼던 그 감촉이 아직도 맴도는 것 같다.


작가의말

MT가서 할 춤을 연습해야 되요, 오늘 저녁은... 하하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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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4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4.03.17 19:27
    No. 1

    선생님하고 사랑에 빠지면 안되겠지요? 성빈이랑 연결은 어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19:48
    No. 2

    저희는 언제나 전 인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의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웅도라면. 먹고 살아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3.17 19:28
    No. 3

    아니, 이 자식이... 이 빌어먹게 복받은 놈이 호강에 겨워서... 빠드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19:48
    No. 4

    부들부들... 원래 매일매일 고기를 주면 고기 고마운 줄 모르잖아요. 늘 여자애들 가득한 여고에서 사니 호강에 겨울 수밖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3.17 20:04
    No. 5

    아직 선생님 루트가 남아있는거라면 선생님은 어장남에게 걸려 매우 고통 받을거라고 조용히 예측해봅니다. (절대 누님캐릭터가 좋아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군대 갔다오셨으면 춤출 학번이 아니지 않나요? 안시킬텐대ㅠ. 그리고 개인기는 준비하셨나요? 없으면 힘들어요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20:31
    No. 6

    사실 조원들 다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 저 혼자 깝쳐보는 거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나라도 남을 추억 한 조각 추가하고 싶어서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못찾겠다
    작성일
    14.03.17 20:38
    No. 7

    허허 이분들이... 하렘에 고자가 아니면 멋진 보트를 타야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20:53
    No. 8

    후후, 본질을 잘 꿰뚫고 계시네요. 하지만 다들 착한 여고생들이니까, 정말로는 그러지 않겠지요. 금세 잊고 다른 남자애 찾겠지요. 여자애들은 단념이 빠르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3.17 21:02
    No. 9

    못찾겠다 님, 전 바로 그런 전개를 원하는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7 21:06
    No. 10

    다다다다다음작(???)엔 고려해볼게요. 후훗.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3.17 21:59
    No. 11

    하지만 웅도는 곶아....니까 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0
    No. 12

    그렇습니다. 성 관계를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천마강호1
    작성일
    14.03.17 22:03
    No. 13

    전 하렘이 좋은데요 왠지 웅도가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장무기처럼 될것같아 걱정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0
    No. 14

    저도 하렘이 좋은데 의천도룡기 어쩌고는 전혀 모르겠네요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3.18 09:26
    No. 15

    다음회에서 웅도는 모든게 꿈이었단 걸 알게되는데...

    장기자랑 녹화하셔서 연재분 대신 올리셔도 좋겠게요
    윗분이 장무기를 언급하셨지만 녹정기의 위소보도 좋을듯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1
    No. 16

    아 X발 꿈... 장기자랑이라, 저는 뭐 조장이니까 안해서 훗.

    그리고 역시 무협 어쩌고는 모르겠네요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3.18 09:35
    No. 17

    순조롭네요 일단 하나 킵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2
    No. 18

    킵해두는 건가요! 좋다, 좋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omicron
    작성일
    14.03.18 10:02
    No. 19

    사감샘 : 할까?
    정웅도 : 부탁드려요.... 이런 전개 원합니다 금단의 사랑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2
    No. 20

    엌ㅋㅋㅋ 무얼 하는 건가요!! 너무 직설적이에욧!!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오래보긴
    작성일
    14.03.18 18:17
    No. 21

    떨린다.. 옴온ㄴ모몸일ㅇ... 붑ㄷ들ㄹ붇들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18 22:03
    No. 22

    부들부들... 부럽지요, 저런 청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5:26
    No. 23

    아아 한번쯤은 넘어가 주신다니..자극이 퐣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7 13:52
    No. 24

    군입대몇개월후
    "야, 잘지내냐?"
    "우우..빨리와!"
    "듣고있겠지?오랜만이다."
    그러자.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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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19화 - 4 +27 14.02.26 2,887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5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4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3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8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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