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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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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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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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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7쪽

18화 - 4

DUMMY

“와, 맛있어요!”

“흥, 그럼 누구 솜씨인데 맛없겠어?”

“음. 확실히 희세 요리 솜씨는 확실히 인정할만하지.”


희세는 금세 한 상 가득 차려가지고 왔다. 오늘도 공주님 같고 여왕님 같이 도도하고 쿨한 희세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오리지널 정통 한정식이다. 한식을 비하하는 발언인 건 아니다. 희세 이미지하고 안 맞는다는 거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묶은 희세는 굉장히 수수하고 아름답다. 가뜩이나 성숙해 보이는데 한참 나이가 더 많아져 보인다는 건 단점이다.

김치찌개, 고기볶음, 호박전. 마치 준비하기라도 했다는 듯 뚝딱 요리가 나왔다. 요리 만든 건 그렇다 치고, 재료는? 아, 아무래도 정말 미리 준비했나보다. 공부를 하던 놀던 점심을 먹는 건 기정사실이니까. 희세의 철저한 준비성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맛 또한 훌륭하다. 특히 김치찌개가. 맛있다고 연신 칭찬하니 ‘김치는 내가 담근 게 아니라 엄마가 담근 거니까, 우리 엄마가 잘 하는 거야. 딱히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구.’ 하며 겸손을 떠는 희세다. 저번에 자랑스럽게 자기가 김치 담갔다고 얘기한 것 같은데. 뭐, 겸손을 떠는 거라면 겸허하게 받아 줘야겠지. 미래 역시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는다.


“언니는 요리도 잘 하네요! 우후후, 일등 신붓감.”

“신, 신붓감은! 이 정도는 기본이야. 네가 게으른 거라구.”

“에엣! 요리 못 하는 모든 사람들을 매도하는 말을! 너무해요!”


미래의 칭찬에 희세는 부끄러운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까칠하게 말한다. 나는 김치찌개 국물을 떠먹으며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실력이 이 정도면 나중에 결혼 적령기인 20대 중후반 정도 되면 실력이 더 증가될 거 아니야. 막말로 10년 뒤에도 결혼 안 할 확률이 높은데. 요즘은 여자도 30 넘어서 결혼한다지. 날이 갈수록 더 늦게 결혼하는 추세니까, 우리 세대는 더 늦게 할 테고. 희세, 정말 가능성이 많은 여자애구나. 성격 때문에 좀 불가능하겠지만 당장 전업주부를 해도 잘 할 것 같아. 지그시 희세를 쳐다보며 먹는다.


“뭐야, 왜 빤히 쳐다보는데.”

“아니, 맛있어서. 이런 거 매일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무, 무, 무, 무, 무슨 말이야?!! 머, 멍청이가!!”

“아니, 그렇잖아? 장래에 결혼하면 남편 밥 지어줄 거 아니야? 그 남편 부럽다고, 그 말이야.”

“에, 에엣……!!”


솔직하게 생각하던 것을 말하는데 희세는 얼굴이 터질 듯 흥분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불안한 시선처리와 파르르 떨리는 팔로 본인의 심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희세. 그러더니 겨우 나를 쳐다보고 사과처럼 붉은 얼굴로 말한다.


“여, 여자애가 밥 다 지어야 돼! 하여튼, 너의 그 전근대적인 사상은! 여자애는 회사 다니고 애도 키우고 밥도 지어 줘야하지! 흐, 흥!! 난 그렇게는 안 살 거야! 내가 돈 벌어서 내가 힘 있게 살 거라구!”

“아아. 그렇네. 되게 실례되는 말이었네. 응, 맞아. 그래도, 이 정도 실력 밥이면 남편이 조를 텐데. 밥 먹게 해달라고. 후후.”

“…….”


희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구나. 희세 말대로 난 조금 가부장적인 면이 있으니까, 당연하게 아내가 밥을 지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구시대적 발상이구나. 생각해보니까 우리 아버지도, 제대로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는 날이 없구나. 뭐, 그건 일 때문에 그런 거지만. 크윽, 다시 한 번 가족들을 위해 오늘도 생을 희생하고 계신 아버지에 대한 묵념. 아, 오랜만에 뵙고 싶네.


“흐흥, 그래도 남편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것만으로 되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 그런 거!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여자들이 욕먹는 거야! 이 명예 남성! 여자는, 여자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구! 그런 가사 노동에 얽매여선 안 되!”

“에이, 그래도 아직까진 여자가 살림하는 게 보통이죠. 맞벌이라도, 역할 분담해서 잘 하면 되잖아요?”

“닥쳐! 너, 사상부터 개조해야 될 것 같아.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구! 남자들이 얼마나…….”


미래는 김치찌개에서 큼지막한 고기를 골라 행복한 표정으로 맛보며 말한다. 희세는 노발대발해선 소리친다. 공연히 미래에게 짜증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맛있게 희세가 해준 밥을 먹는다. 맛있기에 한 공기 더 먹었다. 본인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미래 말마따나 밥을 우적우적 맛있게 다 먹으니 희세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근데 한 가지 단점은 있겠다. 이렇게나 맛있으니까, 그 남편이란 놈은 살 제대로 찌겠어. 배 터지겠다야.




“고조선의 영역을 나타내는 유물은?”

“비파형 동검, 세형 동검이요!”

“근의 공식은?”

“이 에이 분에 마이너스 비 플러스 마이너스 루트 비제곱 마이너스 사 에이씨!”

“‘소나기’에서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은?”

“보라색맛 났어! 난 보랏빛이 좋아에요!”

“오오. 둘 다 이제 잘하는 편이네.”


밥까지 먹었겠다, 이제 우리의 공부를 방해할 것은 하나도 없다. 엉겁결에 미래까지 끼게 됐지만, 미래는 의외로 순순히 공부에 참여했다. 희세에게 ‘멍청이’, ‘바보’ 같은 폭언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해나갔다. 오후 내내 공부를 했지만 그리 지루하지 않다. 애들이랑 같이 해서 그런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서야, 희세에게 만족할만한 평을 들었다. 딱히 이해하거나 그런 건 없이 단순히 외우기만 한 게 문제긴 하지만. 희세의 평에 나는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미래는 기지개를 쭉 펴며 그대로 눕는다.


“그럼 이제 놀러 가요!”

“에에?! 아니, 내가 잘 했다고 바로 놀자는 건 또 뭐야.”

“노래방! 노래방 가요! 히히히히. 노래방! 노래방!”


희세는 미래의 말에 잔뜩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래는 노래방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정신이 다 사납다. 노래방이라. 그러고 보니까 고등학교 들어와서 여자애들하고 노래방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노래하는 미래, 노래하는 희세라…….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노래방 가자.”

“엣?! 너까지! 미쳤어, 다 까먹으려고! 집에 가서 복습해야지!”

“너네 노래하는 거 한 번도 안 들어봤는데. 한 번 들어보고 싶네.”

“오오! 좋아요, 좋아! 전 오빠 목소리 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미성일까나─ 우후훗.”

“으으…….”


희세는 내 말에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불퉁한 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본다. 미래는 나의 지원사격에 좋다고 박수까지 치며 말한다. 그리곤 희세에게 매달리며 ‘네? 오빠도 가자는데 가요~ 언니~!!’ 하며 말한다. 성적인 것 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가벼운 스킨십조차 질색인 희세는 미래의 공세에 단숨에 표정이 썩어 들어가며 ‘으핫! 떨어져, 떨어져어~ 알았어, 가면 되잖아!’ 하고 말한다. 목적을 이룬 미래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우와아아아앙!’ 하며 괴성을 지른다. 이런이런, 상남자 정웅도님의 마성을 들려줄 때가 온 건가.



“울고 보췌둬어어어엌!! 터진 내 맘은 모르겠주ㅕ어어어어~”

“에에에에~~”

“……치잇.”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내가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냥 성량만 엄청나게 소리만 꽥꽥 지를 뿐이지. 부르는 폼과 자세는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도 부럽지 않을 과장된 모양새다. 미래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희세는 팔짱을 끼고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 한 곡에 모든 열정을 퍼부은 나는 지친 몸이 되어 쇼파에 몸을 묻었다. 다음 차례는 미래. 호기롭게 나선다.


“유메나라 타쿠사응미타 사메타마마데모 마다 아이타이~ 키미가 소오 사세타 코이와 요쿠바리다네!! 토비하네 소오나 코코로노…….”

“…….”

“아하하. 잘한다.”


미래는 누가 폭풍개드리퍼 아니랄까봐 선곡도 일본어 노래를 고른다. 좀…… 선곡 센스가 되게 좋으시네요. 정작 미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꽤나 진지하게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정석대로 노래를 부른다. 그냥 가요 부르듯이. 근데 왜 보는 내가 다 창피해지지. 어디서 몇 번 들어본 것 같은 노래라는 게 더 창피하다. 노래 자체는 굉장히 잘 부르는데. 미래는 다 좋은데 저 놈의 괴랄한 센스가 문제야. 희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미래를 본다. 아암, 이해한다, 그 눈빛. 나정도 되니까 어떻게 이해라도 할 수 있지.


“잃어버린 내 summer time~ 낯선 시간을~ 헤메이다 널, 찾을까~ 아직 길은 멀었니 겁이 나면 나는 괜히 웃어~”

“우우! 잃어버린 내 섬광탄!”


희세는 조금 수줍어하며 나가서는 노래도 또한 잘 한다. 꽤나 높은 곡인데도 전혀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1절을 부르고 나선 더욱 적극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야, 얘는 못 하는 게 뭐야. 공부 잘 해, 요리 잘 해, 이젠 노래까지. 진짜 아이돌 여가수 부럽지 않을 스펙이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 쪽을 보고 살짝 윙크 비슷하게 하니까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음. 대단하긴 해. 한동안 그렇게 셋이서 돌아가며 실컷 노래를 불렀다.




“엑, 목 다 나간 것 같아요……”

“나는 이미 갔어. 아, 아. 목 찢어질 것 같애.”

“그것보다, 너네 다 까먹었지? 에휴. 공부를 하면 뭐해, 이렇게나 노는데.”


노래방의 서비스 공세는 굉장해서, 분명히 30분 선불로 냈는데 1시간 30분이 넘게 노래를 불렀다. 연거푸 노래를 불러 대서 나와 미래는 쉰 목소리로 괴로운 표정이 돼 말했다. 희세는 목도 나가지 않고 멀쩡하다. 참, 사기캐는 뭘 해도 사기캐인가. 지친 발걸음을 희세네 집 쪽으로 옮긴다.


“이제 그만 헤어질까요?”

“뭐, 그럴 때도 됐지. 벌써 어둑어둑해지려고 하고. 아, 근데 난 희세네 들려야 돼. 가방 놓고 왔거든.”

“아,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요. 웅도 오라버니, 희세 언니.”

“어.”

“언니라고 하지 마! 닭살 돋으니까.”

“헤헷☆”


미래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하고 꾸벅 인사를 하며 굉장히 공손하게 말한다. 음. 그래, 이런 게 공손한 존댓말 캐릭터지. 희세는 여전히 미래의 존댓말 캐릭터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한다. 이만하면 그만 포기하지. 듣다 보면 그냥 들을만하긴 한데. 하긴, ‘오빠’ 하고 ‘언니’는 다르지. 같은 여자애니까, 별로 좋지 않을 수도. 미래는 방향을 달리해 헤어지고, 희세와 같이 걷는다.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피. 공부하러 왔지 놀러 왔어? 알려준 거 기억은 해?”

“아하하. 그래도 안 한 것보단 낫지. 오후에 제대로 공부 했잖아?”

“그게 뭐 제대로 한 거야. 뭐, 알려줄 만한 건 다 알려 줬으니까. 나머진 네 몫이지.”

“어, 그렇지. 고마워.”

“……응.”


희세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내뱉듯이 말한다. 나는 희세의 퉁명스런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아까 희세 본인이 말했듯이, 이건 다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희세가 말하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내 고맙다는 말에 희세는 얌전히 대답하고 입을 다문다.


“그럼, 갈게.”

“어.”


금세 희세네 집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책을 가방에 싸고 금세 나섰다. 희나와 케이나인에게도 인사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희세는 현관을 나와 철문까지 나와 날 배웅한다. 기특하네. 그래도 표정은 시큰둥하다. 자존심 센 희세니까, 절대 대놓고 나한테 다정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둘만 있을 때엔 다른 사람 눈치 볼 일도 없으니까 조금은 살갑게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훗, 무슨 말이래. 희세가 내 여자친구도 아니고, 그렇게 특별대우 해줄 리 없잖아.


“야, 정웅도!”

“어? 어…… 이름으로 불렀어?!”

“왜, 왜! 난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냐!”

“아니, 그…… 허 참, 어색하네.”


희세의 부름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그 말을 인식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름으로 부르다니! 극도로 학기 초기의 일순간을 제외하곤 늘 ‘변태’, ‘변태새끼’, ‘왕변태’ 등의 가혹한 칭호로만 나를 지칭하던 희세였는데! 정말 놀랄만하다. 나의 반응에 희세는 도리어 더욱 퉁명스럽게 돼서 말한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어색한 건 어색한 거잖아, 늘 변태라고 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름으로.


“너, 남자 주제에 엄청 건방지고 재수없는 거 알아?”

“……응? 갑자기 무슨 시비를. 뭐 부끄러운 거라도 있어?”

“아니! 무슨 말이야, 그게! 그, 그러니까!”

“뭔데.”


희세는 징조도 없이 갑자기 나를 욕한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마디 툭 던지니 금세 허둥대며 말을 잇지 못하는 희세. 정곡이라도 찔렀나. 희세는 눈썹을 찡그리고 입을 앙 다물고 있다 겨우 말한다.


“너, 진짜 재수 없고 변태새끼지만! 그래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좋아.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해도 삐치거나 깊이 받아들이지 마. 알았지?”

“아아, 알아들었어. 훗, 그건 내가 아무래도 마성의 남자니까 그런 게 아닐까? 고등학교 한 학기 만에 벌써 반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됐잖아? 다~ 이 내가 여자를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남자라…….”

“개소리 지껄이고 있네! 왕따 당했던 주제에! 어휴, 내가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대는 게 엄청 재수없다고! 변태 변태새끼!”

“아하하.”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그 말인가. 그건 아까도 똑같은 맥락으로 말 했잖아. 문장만 들어보면 참, 억울한 제안이다. ‘난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내가 좀 싸가지 없게 말하고 신경질 내도 삐치거나 화내지 마!’ 이런 일방적인 주장이잖아. 하지만 뭐, 희세의 본 마음은 그런 뜻이 아니겠지. 난 이미 그 뜻을 헤아렸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리어 잔뜩 허세를 부리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세는 급격히 표정이 썩어 들어가며 나를 욕한다. 사실 이걸 노린 거지만. 이런 거 싫어하는구나. 그럼 더 해야지. 희세한테 매도당하는 거, 나쁘지만은 않거든. 나 변태인가. 아니, 이 정도면 평균이지. 희세의 매도에 나는 기분 좋게 웃고 ‘이제 진짜 가 볼게.’ 하고 뒤돌았다.


“저, 정웅도!”

“어 어? 야,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진짜 어색하다.”

“뭐, 뭐야!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응? 뭐?”


가려는 사람 계속 붙드는 희세. 이럴거면 아까 한가할 때 할 말 다 하지, 왜 집 앞에서 이런 촌극을 벌이는 건지. 게다가 습관이란 건 무서워서, 희세가 정당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데도 오히려 받아들이는 내가 다 이상하다. 그냥 희세한테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나 저기압인 목소리로 ‘어이 변태’ 나 ‘변태새끼!!’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그게 가장 희세답고. 하지만 희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이제부터…… 이름으로 부를 거니까. 됐어, 꺼져! 가!”

“아, 알았어. ……아 진짜 어색한데. 근데 변태라고 불러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알았다. 갈게.”

“……어, 잘 가. 정웅도.”

“으아! 닭살 돋아! 진짜 이상해! 토할 것 같아!”

“토할 정도는 아니잖아! 아 진짜! 짜증나! 꺼져, 꺼져!”


희세가 머뭇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니 나는 온 몸에 벌레라도 무는 듯 간질간질한 느낌에 참을 수가 없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이렇게나 닭살 돋는 느낌이었다니. 미래에게 ‘오빠’, 리유에겐 ‘웅이’ 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리는데 희세는 딱딱한 느낌으로 성까지 붙여 ‘정웅도’ 라고 사무적으로 말하는데도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다. 그 놈의 습관이 무서운 거지. 희세는 내 반응에 잔뜩 화를 내며 철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이제 더 이상 붙잡지 않는구나. 희세가 현관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이제 기숙사로 돌아간다.


오늘 하루도 나름대로 재미있었구나. 잘 생각하면 공부도, 노는 것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일까. 무엇보다, 희세와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스스로가 나한테 자기 말하는 거에 대한 얘기도 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으로 불러주겠다고 하고. 긍정적인 것이긴 하지. 학기 초엔 그렇게나 얼음 바람이 불게 차갑게 대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중학교 때의 내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렇게나 예쁘고 완벽한 애랑 이 정도로 장난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지다니. 절로 미소가 얼굴에 새겨진다. 나중에 고향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다. 나는 친구가 적다. 하지만 이성친구는 이만큼 있다! 우헹헹헹! 아마 얻어맞겠지.

문득 상의를 꽉 들어맞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핫핑크 여성용 체육복으로 입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우왁, 창피해. 그래도 저번보단 났다. 저번엔 위아래 세트였잖아. 그래도 창피한 건 어디 안 가기에, 뛰어서 기숙사까지 향했다.


썩! 괜찮은 하루였다!


작가의말

00시가 넘지 않았으니 지각은 아닙니다! 

...8000자도 못 넘었지만 괜찮아요. 하루에 2편 올리는 게 어디에요.
그나저나 저도 캐릭터 인기투표 같은 거 해보고 싶네요. 후훗, 어디 그런 기능 없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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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5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23 23:19
    No. 1

    이 망할 놈은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잘도...! 아아, 정말 신부감으로는 1등이네요. 아내가 바가지도 좀 긁고 그래야 행복하게 살지.
    +저 보라색 드립에 대한 작기님의 말: 아, 그랬어요? 나 그냥 보라색 좋아해서 쓴 건데(...)
    ++저 노래 뭐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23:25
    No. 2

    에쁘고 똑똑하고 일 잘하고 요리 잘하고 남편 생각만 하고 질투하고 아아… 아무리 제 환상이 반영됐다고 하지만 정말 현실에는 없는 여자애가…
    네, 소나기 작가가 보라색을 좋아해서 넣은 말이라는데. 학교에선 틀림없이 보라색이 죽음을 상징한다고 배웠어요.
    저 정체불명의 노래는 최근 제가 보고 있는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1기 오프닝이랍니다. 2기 오프닝 가사도 다 외웠지만, 2기는 지금 나오고 있으니까, 후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23 23:33
    No. 3

    아, 중2코이 1기 op였나요? 그랬군요. 아, 그리고 저 희세같은 여자라고 한다면... 실존합니다.(...) 제가 봤어요. (하지만 전혀 모에하지 않았지. 현실의 남의 여자이고, 성인이니까. 헣) 전 미성년자니까 아무래도 좋지만. 생에 유일하게 '합법적,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교복입은 여자랑 연애할 수 있는 시기니까요. 여성부 따위 X까라 그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07:43
    No. 4

    교복... 여고생은 귀엽지, 나도 좋아해. 할 수 있을 때(?) 하세요.(??) 평생의 후회중에 하나가, 고등학교 때 연애 안 해본 것...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24 02:39
    No. 5

    겁쟁이 10년도 더 됐는데 요새 고딩들도 부르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07:44
    No. 6

    ...헛. 이건 쓰면서도 조금 거시기 했었는데. "버즈의 겁쟁이는 불멸이야~~!!" 하면서 썼지만, 솔직히 유행이라는 게 엄연히 시기가 있는 건데... 요즘 고등학생들은 무슨 노래 부를까요?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24 09:48
    No. 7

    요즘 애들은 아이돌, 애니, 보카로 등을 부르더이다. 저희 집단의 특이성을 생각하면 뒤에 두 개를 빼고 팝송을 넣으심 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12:38
    No. 8

    흐음, 확실히. 벌써 이렇게나 고등학교와 동떨어져 버리다니... 고등학생 이야기를 쓰면서!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2.24 13:44
    No. 9

    이미 루트는 정해졌네요
    밸런스는 필요없이 다음 진도를 나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13:49
    No. 10

    후훗♡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진도가 나가진 않을 거에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24 19:36
    No. 11

    노래방은 술을 마시고 가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19:38
    No. 12

    어멋... 정말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학생들이니까... 못 하죠, 아무래도 그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Lasmenin..
    작성일
    14.04.02 05:27
    No. 13

    역시 ...뭔가 노래가사가 익숙하더라 ㅋㅋ
    아 이거 미래도좋고 희세도좋고 성빈이도 리유도 다 좋아서 어떻하지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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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4.30 16:02
    No. 14

    히힛 이상형이죠, 여자애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2:24
    No. 15

    희희흐히희희희!강추입니다 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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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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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4화 - 3 +8 14.03.23 1,983 40 17쪽
98 24화 - 2 +14 14.03.22 2,777 42 25쪽
97 누락된 편입니다 +11 14.03.21 2,371 44 1쪽
96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11 14.03.20 2,656 44 23쪽
95 23화 - 5 +21 14.03.19 2,581 80 18쪽
94 23화 - 4 +7 14.03.18 2,343 52 19쪽
93 23화 - 3 +24 14.03.17 2,644 44 22쪽
92 23화 - 2 +9 14.03.15 2,986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8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6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86 21화 - 4 +21 14.03.09 2,685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1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7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1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7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8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3 52 19쪽
79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7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4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 18화 - 4 +15 14.02.23 2,144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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