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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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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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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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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8쪽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DUMMY

“…….”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 다섯 명이 모두 모여 밥을 먹지 못했다. 성빈이는 선생님이 시키신 일이 있다고, 그것 해결하고 지선이랑 같이 먹겠다고 했고, 미래는 급히 집에 들를 일이 있다고 가 버렸다. 리유는 급성 빈혈(?) 때문에 조퇴했다. 말이 급성 빈혈이지 눈치로 봐선 생리 때문에 빈혈이 와 조퇴한 것 같다. 아, 새삼 리유도 내 또래 여자애가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서 희세와 단 둘이 밥을 먹었다. 늘 와글벅적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두 명이서 먹으니 굉장히 조용한 느낌이다. 그보다는 희세가 나에게 삐쳐서 어색한 탓이 크겠지만.

여자애 네 명 수다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리유는 병아리가 삐약거리듯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고, 희세는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 가운데에서 주도하듯 무리의 중심이 돼 떠든다. 성빈이는 주로 들어주는 포지션이지만 그것 못지 않에 다른 애들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미래도 더 설명할 필요 없이, 폭풍개드리퍼다. 설령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그냥 개드립을 치며 들어올 여자애인데, 뭘 더 말하겠어. 거기에 가끔 나까지 입을 열어버리면 그야말로 시장판이 따로 없을 정도가 된다. 지금은 그에 상반되게 굉장히 조용하지만.


“야, 야.”

“응?”


희세는 주볏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었다. 나는 무심하게 시선을 희세 쪽으로 옮겼다. 어째 저번 가정시간 이후로 나한테 별다른 말을 걸지 않는 희세. 아니, 그것 보다는 그 전에 남자친구·여자친구 얘기하고선 혼자 삐친 이후인 게 맞겠지만.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애 쪽에서 먼저 사과하는 게 예의겠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또 먼저 말을 건다. 오, 혼자 금세 풀어진 건가.


“너, 똥멍청이지?”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하나?”

“후, 훗. 그런 것 하나 대답 못하다니, 너도 참 남자애가 줏대도 없구나.”

“……그래, 그렇습니다만.”


……취소. 풀어지긴 뭘 풀어져. 밑도 끝도 없는 도발이다. 아니, 멀쩡히 길 가는 사람한테 왜 갑자기 ‘똥멍청이’ 라는 격한 말로 시비를 거는 건데. 거기다 뒤에 이어지는 남성 비하 발언에 나는 힘줄이 팍 솟는 기분이 들었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더 억울한 건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아니~! 내가 똥멍청이인 건 아니다. 그래도 공부 꽤나 한다는 성빈여고에서 중간 이상 정도면 어느 정도 공부 잘 하는 거라고! 문제는 비교대상인 희세가 희대의 먼치킨 캐릭터라는 게 문제지.

연속 2번 전교 1등에, 모의고사까지 전국 상위 100위 안에 들은 괴물같은 여자애가 날 보고 똥멍청이라고 하는데 뭘 더 변명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내가 똥멍청이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뒤이은 남성 비하 발언까지, 희세 성격을 그대로 응축시켜 그 정수를 나에게 끼얹은 느낌이다. 그래, 나는 그저 머리 안 좋은 똥멍청이 변태새끼일 뿐이지, 희세에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희세.


“시, 시험공부나 하고 있으려나~ 흐흥, 어차피 넌 멍청해서 해 봤자 의미도 없겠지만!”

“아이, 왜 이렇게 시비 걸어싸. 난 그냥 내 길을 갈렵니다. 멍청이의 길을.”

“…….”


희세는 또 툭툭 건들 듯 나의 약점을 건드린다. 듣다 못한 나는 아저씨 같이 사투리를 쓰는 억양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약간 힘을 실어서 조금 화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는데. 사실 신경 쓰고 있었거든, 슬슬 기말고사가 돌아오는 것에.

엄마가 아들을 방목형으로 키우긴 해도, 성적 하나는 굉장히 민감해서, 저번 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전화로 된통 혼났지. ‘집에 안 들어오는 것도, 거기서 여자애들이랑 히히덕 대는 것도 상관 없지만 성적만은 좋게 나오라’ 고 말씀하시는 현명한 어머님. 어머니, 아들의 문란한(?) 여성관계는 별로 고려하지시도 않는 것이군요. 좋은 어머니다…… 가 아니라! 당장 발등에 불이 들이닥친 거라니까. 나름대로 기말고사 준비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희세가 저렇게 자꾸 도발하니 부아가 치밀 수밖에 없다. 해서 내뱉듯이 말했다.


“……화났어?”

“어. 화났어.”

“……미, 미안.”

“왜 너답지 않게 사과부터 해. 더 뭐라고 하지.”

“내, 내가 언제! 나, 나 같은 게 뭔데…….”

“그렇네. 너 다운거라…… 확실히 이렇게 빠른 사과는 안 어울리지.”

“으우우…….”


희세는 또 힐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내 시큰둥한 대답에 기가 죽은 모습이다. 얘가 왜 이런데, 저번부터. 처음부터 살갑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항상 쌀쌀맞게 말하고 다시 미안해하는 패턴이잖아. 놀리는 듯한 내 말에 발끈하는 희세. 살짝 볼에 홍조가 돈 것이 꽤 귀엽다. 후후, 요즘은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구나, 희세가.


“사실 스트레스 받고 있었거든. 기말고사 때문에.”

“에…… 스트레스? 왜?”

“엄마가…… 휴우. 성적 낮다고, 중간고사 때 뭐라고 하셨어. 그래서 이번 기말은 확실하게 성적 높여야 하는데…… 그게 맘처럼 되나. 누군 낮게 받고 싶어서 받는 줄 아나. 엄마가 해보지, 시험공부. 어휴.”


좀 전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걸 희세에게 넋두리하듯 말했다. 희세 쪽에서 미안한 표정으로 먼저 사과할 모양새여서 나 역시 조금은 말하고 싶어졌기에. 희세가 듣고 뭘 해결해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냥 넋두리라도 들어주면 기분이 좀 나아지잖아. 희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생각해보니까, 희세가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고민을. 보통 애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며 다른 얘기까지 연계로 할 텐데, 희세는 기본적으로 늘 1등이니까…… 뭐, 희세도 희세대로 공감할만한 구석이 있겠지.


“고, 공부가 잘 안 돼?”

“어. 진짜 네 말대로 똥멍청이라 그런가. 수업 들어도, 혼자 공부해봐도 잘 안 들어오네. 이해는 안 가는데 설명 들어도 좀 그렇고.”

“또, 똥멍청이라고 하지 마. 그건 그냥 한 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지 말아 줘. 나, 남자새끼가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안 되잖아?!”

“아아, 알았어. 장난이야.”


계속 ‘똥멍청이’를 언급하니 희세는 거북했는지 정색하고 말한다. 미안한 듯 엄숙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선 부끄러운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귀여워서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희세는 뚱한 표정이 돼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본다.


“…….”

“…….”


한동안 정적이 오간다. 무거운 주제인 시험에 대해 얘기해서 그런가. 하긴, 발랄하게 얘기할 만한 거리는 아니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또 막상 희세의 반응을 보면 나한테 ‘똥멍청이’라고 말한 걸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공부 엄청 잘하는 애가 못하는 애한테 그렇게 했으니, 상대적으로 기분이 안 좋을꺼라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럼 애초에 그렇게 놀리질 말던가. 그냥 날 보면 놀리고 싶어지나? 내가 계속 ‘똥멍청이’를 입에 달고 있었으니 희세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기, 기말고사가 걱정이다, 그 말이지?”

“응. 성적 올려주는 기계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희세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낸다. 난 옳다구나 그 말을 받아 대답했다. 희세는 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내 눈치를 살피며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다 안 쳐다보다 한다. 저 혼자 얼굴을 화악화악 붉히며, 이제는 살짝 나에게서 떨어져서 걸으려고까지 한다. 뭐하는 년이야, 이건. 야한 상상이라도 하나. 에에, 날 보고? 뜬금없이? 여자애들은 그렇게까지 야한 생각 많이 안 한다고 들었는데.


“그, 그, 그, 그럼! 내, 내, 내가 알려줄까?”

“……엥?”

“아, 아, 아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 그냥 네 사정이 딱하니까! 츠, 측은지심이라구, 이건 순전히!”


의문 어린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보니 희세는 왠지 엄청 당황한 상태가 돼서 얼굴이 완연하게 빨개졌다. 말까지 더듬으면서 말한다. 잘 못 알아들어 ‘엥’ 하고 말하니 희세의 당황함은 더욱 증폭되어 아주 말을 많이 더듬는다. 순전히 못 알아들어 물어본 건데. 나는 희세가 말하는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어. 뭘 알려줘?”

“바, 바보야! 기, 기말고사 준비 걱정된다며! 그거 알려주겠다고! 이 내가!”

“오오. 그래도 되?”

“사, 상관 없잖아?! 황송해야 하는 건 네 쪽이라구! 전교 1등인 내가 공부를 알려 주겠다는데! 후, 후훗!”


희세는 살짝 화를 내듯 거친 목소리가 돼 말한다.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말 끝에 가선 자기 자랑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과연,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희세다운 말이군.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더 짜증난다.

그래도, 의외인 걸. 희세 쪽에서 먼저 공부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다니.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희세가 가르쳐준다면 확실히, 월등한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게, 그런 게 있잖아. 선생님들은 워낙 몇 년, 몇 십년을 알고 계시니까 그걸 알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가르치는 기술을 배우신 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똥멍청이 같은 나에게는 조금 무리지. 하지만 희세라면, 같은 학생 입장이니까. 공부를 터득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같은 초심자의 입장에서 훨씬 잘 가르쳐줄 수 있으리라. 희세 말도 잘 하고, 애들을 휘어잡는 능력 또한 있으니까, 가르쳐 주는 것 역시 잘 하겠지. 혼자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응, 좋아. 그래주면 정말 고맙지. 밥이라도 사야겠는데?”

“흐, 흥! 당연하지. 비싼 걸로 얻어먹을 거니까! 잔뜩 기대해두라구.”

“하하. 지갑 또 텅텅 비겠네.”

“흐, 흣! 바보.”


너스레를 떨며 말하니 희세 역시 가벼운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내가 승낙하니 희세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훈훈해졌다. 음, 좋네.


“어디서 할까? 학교? 도서관?”

“……우, 우리 집에서 하려고 했는데.”

“아. 뭐, 상관없으려나. 부모님 계시지 않아?”

“이, 이번 주말에 안 계시거든. 그래서 말했던 거야.”

“아~ 그럼 좋네. 안 불편하게 편하게 할 수 있겠다.”

“응…….”


말하고 나니 뭔가 대화가 불순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저기서 ‘한다’ 는 건 공부라고. 부정적인 뇌 속에서 다른 단어로 치환해보니까 굉장히 불순해 보인다. 실없는 농담은 집어 치우고, 희세네 집이라. 저번에 한 번 가 봤으니까, 어색해할 것도 없다. 오래간만에 케이나인과 희나를 보겠구나. 희나 귀엽지, 나도 좋아해. 케이나인도 푹신푹신하니 복스럽게 생겼고. 어째 그렇게 생각하니까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워낙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저번에 놀 때에.


“아.”

“어, 어?! 왜, 안 돼?”

“아니, 갑자기 생각나서.”

“뭐…… 뭐?”


퍼뜩 무엇인가 생각나 박수를 치며 외마디 외쳤다. 희세는 순식간에 불안한 표정이 돼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리유는 공부 안 시켜? 중간고사 이후로도 계속 가르쳐 준다고 하지 않았나?”

“……응, 그게…….”

“리유도 같이 데리고 갈까? 리유도 귀여운 거 좋아하니까, 틀림없이 잘 놀거야. 희나랑 수준도 맞아 보이고, 케이나인하고도…….”

“아, 안 돼!!!”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다스럽게 말했다. 리유까지 같이 놀러가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 같다. 잠깐만,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건데. 뭐,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공부하기에는 희세네 집, 너무 놀 게 많단 말이지. 즐거이 케이나인과 희나와 어울려 노는 리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하는데 희세가 빽 소리를 지른다. 나는 놀란 표정이 돼 희세를 쳐다봤다.


“아, 아니!! 놀러 오는 것도 아니잖아!! 왜 놀 생각 가득인건데!”

“어…… 그건 미안하긴 한데. 리유 오면 안 돼?”

“아,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구! 나, 나는 두 명은 동시에 못 가르쳐!! 한 명한테밖에 못 해! 그러니까, 리유는 학교에서 가르쳐줄 거구, 너는…… 따로 집에 와서 가르쳐 주려고 했어!!”

“아, 그래. 근데 왜 굳이 그걸 소리까지 지르면서 말해. 놀랐잖아.”

“모, 몰라 멍충아! 병신!”

“어허허. 말이 심하시네.”


희세는 허둥대며 뭔가 변명 가득한 것처럼 말을 잇는다.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화라도 내는 것처럼 소리칠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뭔가 새침하게 나한테 다시 욕을 퍼붓는다. 거참, 알다가도 모를 희세다. 한 가지 패턴은 이해했는데. 부끄러워서 막 뭐라 하는 거.


둘이서 세부 사항에 대해 얘기하며 학교로 돌아왔다. 이제 야자할 준비 해야지. 이번 주 주말에, 희세네 집에서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희세는 굉장히 의욕적으로 자세하게 계획을 짠다. 녀석, 그렇게나 내 성적이 걱정되는 걸까. ‘친구 좋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네!’ 하고 기분 좋음을 표현하니 희세는 왠지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말없이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기습적으로 아주 세게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때린다. 아무리 여자애라도 이런 기습은 꽤나 큰 공격력을 가진다. 큰 충격에 ‘뭐, 뭐야?!’ 하고 말해도 희세는 ‘뭐 병신아!’ 하고 다시 새침해져서 앞서 뛰어간다. 뭐야, 왜 저래. 역시, 알다가도 모를 희세다. 여자애들은 다 저런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




“흐흥♡ 저 버리고 언니랑 데이트 잘 하셨어요~?”

“뭔 개소리야. 데이트는 무슨.”

“남자애♡여자애 둘이서 밥 먹으면 그게 데이트죠~!”

“옘병. 그럼 학기 초에 난 리유랑 연인이었냐. 매일매일 밥 같이 먹었는데.”

“에엣! 바람둥이~♡ 그치만 그만큼 마성의 오빠니까~ Boy♂Next♂Door♡”

“너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구나.”


교실에 도착하니 미래가 끈적거리며 해파리처럼 흐늘거리며 말한다. 내 말 그대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미래다. 그래도 초창기엔 최소한의 여자애로서의 이미지라도 지켰는데. 지금은 섹드립과 개드립으로 점철된 남자애도 여자애도 아닌 이상한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된 기분이다. 특히 정말 현실세계에 하트라는 글자가 뜰 것만 같은, 저 듣기 거북한 끈적끈적한 말투는…… 차라리 여성적이고 농염한 사감 선생님의 하트가 더 나을 것 같다. 그건 경험의 차이일까.


“오빠는 희세 언니 같은 사람 좋아하나요?”

“아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뇨, 그냥요♡ 너무 멍청이 같으니까.”

“멍청이 소리좀 그만 해라. 희세한테 잔뜩 듣고 왔으니까.”

“히히힛. 오빠, M이군요?”

“아니야! 그런 거!!”


미래는 정신 나간 드립을 치며 말한다. 이제 이런 대화를 이끌어나가기도 힘이 부친다. 정작 미래 본인은 지치지도 않고 드립을 퍼 나르지만. 미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몸을 쑥 들이댄다. 결코 작지 않은 미래의 가슴이 쑤욱 눈앞으로 다가와 흠칫 놀라며 ‘뭐, 뭐야.’ 하고 당황스런 목소리를 냈다. 미래는 ‘잠깐만, 귓속말 귓속말.’ 하고 말한다. 뭐야, 그런 거였나. 하지만 가슴만 보이는데. 음, 얘도 결코 어디서 꿀리진 않을 몸매구나. 하긴, 미래도 예쁘장한 편이긴 하지. 그놈의 폭풍개드립 때문에 평가절하 돼 있는 게 크지만.


“…….”

“……뭐라고?”

“……하아~ 하아~♡ 흣♡”

“으이이이익!! 미친년아!”

“꺄하하하하하!! 얼굴 빨개졌어요!”


미래는 뭐라고 지껄이는데 잘 들리질 않는다. 더 자세히 들으려 귀를 내미는데, 미래는 그 순간 굉장히 야한 숨결을 내뱉으며 귀에 따뜻하고 달착지근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 막 피하려는데 미래는 내 어깨를 꾸욱 누르며 귀를 살짝 깨물기까지 한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미래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교실에서 대기 중인 여자애들이 다 쳐다본다. 으으, 으으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귀를 깨물다니……!


“미, 미, 미쳤어?!”

“오빠가 저를 너무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제 여자로써의 매력에 눈을 뜨셨나요?”

“미친년으로밖에 안 보여! 하지 마, 어디 여고생이 이런 짓을……!”

“에헤헤. 선비 나셨네요, 오빠. 왜 개그를 다큐로 받아요. 거유세요? 아, 그 거유 말고요.”

“아 쫌! 이런 건 개그도 뭣도 아니야, 그냥 하면 안 돼!! 여자애는!!”


나는 가부장적인 사상 그대로 미래에게 강요하며 말했다. 여자애들이 보고 있어서 창피하다 해도 이건 솔직하게 말해야겠어. 아니, 여자애들끼리 칠 수 있는 장난이라 치더라도, 남자애한테 그걸 하는 건 아니잖아! 미래는 낄낄 웃으며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시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이번에는 정말 속삭이는 말투로 말한다.


“친구이기 이전에 저도, 희세 언니도 여자애랍니다. 그건 기억하고 계세요, 오빠?”

“어? 뭐?”

“흐흥.”


미래는 그렇게 말하고 ‘꺄하하’ 하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남은 건 만신창이가 돼 서 있는 나와, 여자애들의 이상한 물건을 보는 듯한 시선. 시선 자체는 별로 안 창피한데, 미래가 한 의미심장한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친구이기 이전에 여자애’라니. 저번부터 미래, 자꾸 뭘 말하려는 거야. 그럼 내가 언제, 애들 대할 때 정말 남자애들하고 친구 맺을 때처럼 대했나. 어디까지나 여자애로써 먼저 대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건데. 힐끔 희세를 보니 이 쪽을 보고 있었는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입모양으로 ‘변태…….’ 하는 게 보인다. 이런이런. 다시금 자리에 앉아 야자 할 준비나 한다.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다.


작가의말

대화만으로 이끌어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네요. 뭔가 사건이 있어야 내용을 이끌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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