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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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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09 12:01
조회
2,685
추천
51
글자
22쪽

21화 - 4

DUMMY

”크헙!”

“오호…… 제법 부피가 있으신데.”


나는 굉장히 당혹스런 감정을 느꼈다. 아니, 당혹이 아니라 경악일까. 단군 이래 이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짓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


“어·째·서 꼬꼬마가 여기 있는 걸까. 응?”

“으악! 자, 잠깐! 잠깐 타임! 악, 아악!”


그렇다. 나는 문자 그대로 급소를 잡혀 있다. 아무리 섹드립에 능한 선생님이라도, 아무리 나보다 12살이 많아 나 같은 애는 어린애로 보이는 선생님이라 해도, 어찌 이럴 수가. 선생님은 있는 힘껏 내 ‘영 좋지 않은 곳’을 통째로 잡고 있다. 알이고 막대고 구분 없이! ‘알’이 무엇이고 ‘막대’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선생님은 얼굴에 그늘이 진 것처럼 엄청난 저기압인 표정으로 잔뜩 손을 놀리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동반한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동동 구르게 됐다. 그,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눈이 쏙 빠져나올 것 같은 엄청난 곶통으로 인해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끄악!!


“흐흐. 왜, 조금 살살 만져줄까?”

“아뇨,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제가 어린애 같아도, 여기 만지는 건 좀 아니잖아요?! 성희롱이에요, 성희롱!”


선생님은 여전히 악마 같은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여자애처럼 새침하게 말한다. 키 178에 덩치 큰 남자애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분명 성교육 시간에 배웠다. ‘싫다’ 라고 확실히 말해야 한다고. ……근데 남자인 내가! 아니, 아니야. 요즘은 오히려 역성희롱이 대세(?)라니까. 게다가 분명하게 손으로 움켜쥐고 계신 선생님이니까. 잘못을 했다면, 선생님으로써 말로 훈계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이렇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게 남자의 중요 부위를 움켜쥐다니, 얼마나 몰지각하고 무개념한 짓……


“끄아아아아!! 아,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흐흥. 어디 그 세 치 혀 좀 더 놀려 보시지. 어머,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거?”

“아뇨, 아뇨!! 아파 죽겠어요! 생리, 생리현상이요!”

“생리는 여자애들이 하는 거고. 여고 다니니까 너도 여성화 되는 것 같아?”

“아뇨, 제발!! 아아아!!”


눈앞이 아득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정말 눈앞이 새하얘지는 느낌이다. 고통과 수치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 와중에도 선생님은 난처하게 만드는 섹드립을 쳐서 나의 변명을 원천봉쇄하신다. 아니 이게! 살살 만지는 거라면 위협수준에서 넘어가겠지만! 정말 꽈악 쥐시니까! 터질 것 같다고! 특히 알 주변의 미끈미끈한, 계란 흰 자 같은 부분(?)!! 정말 등줄기까지 고통이 좌악좌악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일찍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축구할 때나, 혹은 희세에게 차이거나 해서 정통으로 그곳을 맞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다른 이에게 소중한 이 부위를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어릴 때 어른들이 ‘아이구, 우리 웅도 고추 좀 보자’ 하면서 만진 것 말고는! 고통보다 수치심이 더욱 크……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고통이 아득하게 월등하게 크다. 정말 눈물이 글썽 나올 지경이다.


“경고하겠는데…… 이 이상 내 소개팅 방해하면…… 정말 부·숴·버·린·다?”

“네, 넵!! 밥만 먹고 당장 나갈게욧!!”

“흐흥, 그래야지. 그리고…… ……왜 세우니?”

“그, 그건…….”


선생님은 한 번 더 위협하려는 심정이신지 다시 한 번 살짝 만지신다. 이번엔 아픔 보다는 야릇한 기분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게 됐다. 발끝으로 서서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다. 약간 상기된 볼. 아니,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가까이 밀착해서 성인 여성의 좋은 향기를 잔뜩 내뿜으면, 항상 울끈불끈 남고생인 나로써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잖아. 거기다 가까이 밀착한 탓에 나도 모르게 살짝 노출된 가슴골 봐 버렸고. 내가 선생님보다 키 크니까. 거기다 끝에 살짝 만져준 것이 더욱 촉매가 돼 버렸고. 결국엔…… 후후. 집에 가고 싶다. 정말로.


“뭐…… 생각보다 될성부르긴 하구나. 하긴, 너 정도면 다 컸겠다.”

“아뇨!! 뭐가 될성불러요!! 그, 그냥! 이거야말로 생리 현상이에요!”

“됐어. 됐으니까, 닥치고 밥 먹고 가라. 내 눈 앞에 띄지 마.”

“넵.”


선생님은 드디어 내 소중한 부위에서 손을 떼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얼른 영 좋지 않은 그 곳을 가리고 잔뜩 부끄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이 경망스러운 똘똘아, 어디서든 그렇게 고개를 들면 어떡하니. 선생님은 특유의 쿨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당장의 소개팅 때문에 잡다한 건 생략하는 것인지 눈썹을 모으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나는 짜증을 내다가도 바로 대답했다. 굉장히 예뻐서 전혀 위협적이진 않지만, 행동으로 직접 응징하는 것을 보여주셨으니 효과는 굉장하다. 선생님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자리로 돌아간다. ……어째 걸어가는 뒷모습도 야한 것 같다. 엉덩이 살랑살랑, 가슴부터 골반까지 라인이, 뒷태가 이야…… 아니, 그냥! 그렇다고.



“…….”

“주, 죽었어?”

“죽었으면 여기 왔겠냐! 아, 쉿.”

“응, 쉿.”


나는 잠시동안 끄덕끄덕 인사하는 똘똘이(?)를 진정시키고 자리로 돌아왔다. 리유는 안절부절 못하다 자리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 환히 웃는다. 그러다 내 심각한 표정에 몸을 움츠리고 물어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려다 절로 선생님 눈치를 보게 되며 언성을 낮췄다. 눈치 없는 리유지만 내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은 용케 알았는지 리유도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무리 천진난만한 리유라도, 선생님 무서운 건 아는구나.


“먼저 먹고 있지, 기다렸어?”

“그, 그치만…… 너 없으니까 굉장히 무서워서…….”

“그래, 일단 먹고 하자.”

“웅!”


요리는 이미 나와 있었다. 하지만 리유는 어째 한 입도 손을 대지 않았다. 속삭이듯 물어보니 리유는 거의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처럼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한다. 그런 리유를 보니 마냥 측은하고 귀여운 마음이 든다. 주인을 기다려주는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랄까.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하는 리유. 일단은, 식사 시작이다.

선생님한테 얼른 먹고 꺼지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얼른 먹어야지. 그렇다고 뭐, 나만 먼저 먹는다고 휙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리유가 먹는 속도가 보통 여고생 정도보다 월등히 느리니, 느긋하게 천천히 먹어야지. 먹고 얼른 꺼진댔지 ‘빨리 먹고’ 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우왓, 근데 진짜 맛있어. 분식집이나 이런 데랑은 비교도 못하겠어. 강렬하게 짜고 맵고 달고 이런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그런 맛이 없는데 은은하게 어울리는 신묘한 맛이 온 입 안에 퍼진다. 씹어 삼키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온 몸으로 퍼지는 것 같다. 아아, 정말. 어른들은 이렇게 맛있는 걸 자기들끼리만 먹고 있던 거였어. 학생들은 못 먹게 비싼 값을 매겨놓고! ……아 내 돈!! 끄악, 한 달 생활비!! 크흑…… 아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맛있게 먹자. 성인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니 뉴요커가 따로 없네! 호호호호. ……난 아깝지 않다. 돈이 아깝지 않다. 난 내가 원해서 이 맛있는 것을 먹는 거야. 그래, 난 미식가인거야. 크흑, 근데 왜 눈물이 날까. 리유는 맛있게도 먹는다. 그래, 리유가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얼마나 귀여워.




“그럼, 가 보겠습니다.”

“네, 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뇨, 저도 참 즐거웠습니다.”

“네……. 그, 그럼.”


식사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얼마만일까, 이런 기분. 여자로써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접대랄까. 정민 씨는 재치있게 얘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진지한 얘기도 재미있게 잘 꾸며서 하는, 말재주 있는 남자인 것 같다. 좋은 분위기에, 맛난 음식에, 잘 생긴 남자에. 대학교 때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었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누리니 정말 그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한 순간의 환상이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정민 씨가 어딘가로든 다시 에스코트 할 줄 알았다. 사실 어딜 가도 상관없다. 카페를 다시 한 번 가도 되고, 하다못해 길거리를 걸으며 포장마차 같은 곳에 들어가 어묵 같은 것이라도 사 먹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민 씨는 바로 인사를 한다. 약간 당황스럽지만 얼른 예쁜 미소를 지으며 답변하는 인사를 했다.

마음속으로는 좀 더 놀고 싶다고, 좀 더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가 없다. 그런 건, 어른 같지 않잖아. 나 혼자 내킨다고 그렇게 맘대로 하는 건 안 되지. 저 쪽에서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고, 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아, 그렇네. 나는 나만 정민 씨 마음에 든다고 혼자 망상하고 있었는데, 정작 정민 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 그야, 당연하게 ‘좋아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학교 때에도 그렇게나 과는 물론이고 다른 대학 남자들까지 후리고 다니는 나였는데. 비록 4년 동안 쓰지 않았지만 오늘 이렇게나 한껏 꾸미고 왔으니, 당연히 날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직업도 선생이고, 뭐 하나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거야말로 더럽고 치사한 생각이네. 외모가 어떻던, 직업이 어떻던, 그건 상관할 바가 못 되잖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까 정민 씨가 밥 먹으면서 얘기했었잖아. 친구처럼, 서로 믿어주며 더불어 살 수 있는 반려자. 그 조건에 내가 들어맞지 않은 거겠지. 이렇게 속물적으로 생각하는 나인데. 솔직히 말해서, 정민 씨 외모에 훅 간 거잖아. 그게 뭐야. 대학생 때보다 더 퇴보했어. 더 골 빈년 됐어. 울고 싶다. 울어버리고 싶어. 그렇지만 울 수도 없다. 이제 울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여자라고 울어도 되는 그런 때가 아니다. 운다고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 나이다. 꾸욱, 이를 깨물어서라도 참아야지.


“…….”

“…….”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정민 씨. 멍하니 그런 정민 씨를 보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세상에 남자 저 사람 한 명 뿐이랴. 저 사람, 분명 매력 넘쳐 흐르니까 다른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빠른 포기는 내 장점 중에 하나지. 그래도, 오래간만에 기분전환이 된다. 지인들한테 잔뜩 말해서, 시간 날 때마다 소개팅 해서 얼른 남자친구 만들어야겠다. 정말, 남자가 고프긴 한 것 같아. 오늘만 해도 만나자마자 잔뜩 콩깍지 씌어 버려서 제대로 판단도 못 하고 끌려다닌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았는데. 거기엔 꼬꼬마랑 꼬맹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애매한 표정과 자세로 나를 보고 있다. 도망가려는 건지, 어쩌려는 건지.


“저…… 소개팅 잘 되셨나요?”

‘빠직.’


이 녀석은 어디서 염장 지르는 것만 배웠는지, 보자마자 딱 아픈 부위를 콕 찝어 말한다. 정작 자기는 옆에 귀여운 여자애 달고선……! 아, 정말 때려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이내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얘게 무슨 죄가 있겠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걸 텐데. 17살이 무얼 알겠어, 무얼. 어쩌면 나를 두고 총총 떠나버린 정민 씨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서 위로라도 해주려는 걸지도. 녀석, 어리지만 나름대로 다른 사람 배려해줄 줄 아는 남자니까.


“차였다. 하. 역시 난 안 될 팔자인가보다.”

“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흐흥, 왜, 위로라도 해 주게?”


툭 털어놓고 말했다. 꼬꼬마는 잔뜩 당황한 표정이 돼서 오갈 데 없는 손은 허공에서 왔다갔다하며 무언가 말하려 한다. 하지만 난 꼬꼬마의 말을 툭 끊고는 이어 말했다. 괜히 말하니까 마음이 더 먹먹해진다. 그래, 나 차였다. 어쩔래. 차여서 너무 서글퍼서, 나보다 12살이나 어린애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알잖아, 나처럼 괴팍하고, 히스테리 부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그런 여자 누가 좋아하겠어. 너희들이 제일 잘 알잖아, 진짜 내 모습.”

“아, 아니, 그런 건! 얼마든지 꾸며서 없앴잖아요! 지금 선생님, 누구보다 예쁘고 귀엽고 아름다운 데요!”

“하하. 그게 더 안 좋은 거 아닐까. 나중에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됐을 때, 얼마나 역겹게 느끼겠어. 만났을 때의 모습은 모두 꾸민 거구나, 하고. 차라리 잘 된 거야, 그게 나아.”

“그, 그래도!”


꼬꼬마는 어째선지 자기가 더 흥분해서 말한다. 맘 같아선 ‘그렇게 하지 마!’ 하고 소리치고 싶은데. 그렇게 위로해주면 위로해줄수록, 내가 더 비참해지잖아. 내가 더 처량해지잖아. 하지만 나보다 한참 어린애를 상대로 소리칠 순 없으니까, 담담하게 말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녀석의 말대로 내가 그렇게나 매력이 넘쳐 흐르면, 난 그런 본격적인 매력을 가지고도 차인 게 되잖아.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모습과 대면하기 싫어서 억지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보기 싫다.


“그 정도 허물 못 넘어가주면 만나면 안 되죠! 저라면 선생님 정도 미인에 선생님 정도 몸매에 선생님 정도로 착한데다 챙겨주는 여자 만난다면 어떤 단점이라도 다 받아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멍청한 거에요!!”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꼭 네가 나한테 고백하는 것 같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 그……”


꼬꼬마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잔뜩 흥분해서 말한다. 낯 뜨거울 정도로 잔뜩 칭찬하는 말을, 그렇게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 다 들리게 말하니까 엄청 부끄럽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선생님으로서 부끄러워하는 티를 낼 수는 없지. 거기에, 꼬꼬마가 한 말, 해석하기에 따라 굉장히 난감한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장난스럽게 넘길 수 있게 진지하지 않게 대답했다. 꼬꼬마는 순간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래서, 이래서 예뻐할 수밖에 없잖아. 분명 내가 좋아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다. 자신감 없이, 스스로 깎아내리는 마이너스한 생각만 가득한 나에게 위로해주려는 것이겠지. 애써 스스로 위로하는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 마디 해주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고 그런 것을 떠나서, 지금은 그냥 고맙다. 한 발자국 꼬꼬마에게 다가가 녀석을 쳐다본다. 한참 어리지만 남자라고 나보다 10cm 가까이는 키가 커서 내가 올려다보게 된다. 그래도 마냥 어리고 귀여운 녀석이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 네…….”


맘 같아선 꼬꼬마를 확 껴안아버리고 싶지만, 주변 시선도 있고 하니. 자칫 잘못하다간 또 이상한 소문 날라. 여선생─남학생 스캔들이라던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잖아, 그런 소문.


“저기.”

“네! 네, 네.”


뒤에서 다정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린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닥거리며 나는 얼른 뒤돌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정민 씨다. 어, 어째서?! 정민 씨는 푸근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너무도 당황스럽다. 제자 앞이고 자시고 당황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멍청이 다시 왔습니다. 깜빡하고 잊은 게 있어서요.”

“아, 네, 얘, 얘가 좀 제정신이 아니라…… 제, 제 제자에요.”

“아, 아, 아, 안녕하세요, 멍청이는 아니구요, 제가 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정민 씨는 지그시 꼬꼬마를 쳐다보며 말에 가시가 있게 말한다. 아, 망했다. 어디서부터 들었나 했는데 그 부분을 들었다면 다 망한 거잖아. 어쩌면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꼬꼬마가 나 좋아해서 고백한 걸로. 진짜 망했네. 그러니까 내가 불알 잡고 꺼지라고 할 때 갔어야지. 꼬꼬마에게 고마웠던 감정이 싹 사라진다. 꼬꼬마도 녀석대로 잔뜩 얼어붙어서 더듬으며 말한다.


“질투나네요, 그거는.”

“네, 네?!”

“이런 학생 앞에서만 혜라 씨 본 모습 보여주시고, 제 앞에서는 겉치레 가면만 보여주시는 거에요?”

“아, 아뇨…… 죄송해요…… 저, 정말 죄송해요,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정민 씨는 짐짓 화난 것 같은 말투로 말한다.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순수한 창피함. 나 자신에 대한 환멸감. 아아, 정말.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하다 얼른 사과했다. 정말 면목 없고 정말 무책임한 여자처럼 보이겠지만, 여기선 사과할 수밖에 없잖아…….

“그런 모습, 저도 보고 싶네요. 혜라 씨?”

“……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난 것처럼 말하던 정민 씨는 다시금 원래의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깜짝 놀라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정민 씨를 본다. 푸근한 미소를 짓는 정민 씨.


“제가 숫기가 없어서, 한 번에 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전화번호…… 알고 싶어서요. 서로 바쁘니까,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락해서 만나고 싶네요. 아, 물론 ‘교제’하는 것으로요.”

“……에에.”

“원래는 이 말 하려고 왔는데. 거기에 질투심까지 추가됐네요. 학생이 그렇게나 소리친, 혜라 씨의 원래 모습도 보고 싶어졌거든요.”

“……네, 네!”


나는 얼떨떨해서 정민 씨를 쳐다봤다. 햇살처럼 눈부신 정민 씨의 웃음. 뭐라 말이 잘 안 나온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린다. 이, 이거, 그러니까 이거, 사귀자는 말이지?! 나만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지, 그치?? 기쁨에 가득찬 목소리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얼른 대답했다.


“그럼, 정말 가 볼게요. 다음에 연락하면, 그 땐 좀 더 편한 기분으로, 그냥 연인처럼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그럴까요.”

“네, 네! 저, 정말 저랑…… 교제하시는 거에요?”

“교제……라고 하는 건 너무 답답해보이니까. ‘사귄다’고 해죠.”

“……네, 네! 네, 정민 씨!”

“하하. 부끄럽네요, 이거. 갑니다.”

“네, 살펴가세요!”


정민 씨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더니 정말 뒤돌아 간다. 나는 황홀한 소녀 같은 표정이 돼 그런 정민 씨의 뒷모습을 살펴 본다. 아아, 정말, 정말 멋진 남자. 마음이 다 녹아버린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우울이 마음을 가득 채웠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야. 엄청 기뻐서, 너무 기뻐서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선생님?”

“……어! 어.”


조금 난감한 기분으로, 선생님을 바라본다. 솔직히 저 남자, 나 때릴 줄 알았거든. 인상이 험상궂진 않지만, 키도 크고 덩치도 꽤 있는데다 내가 대놓고 ‘멍청이’라고 욕했는데. 하지만 과연 사회인, 나에게는 별다른 말 없이 오히려 내 말을 이용해서 선생님한테 멋지게 고백한다. 남자인 내가 봐도 꽤나 짠하다. 그 쿨하고 시크한 선생님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선생님 눈은 정말 사랑에 빠져서 온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버린 여고생 같은 그런 느낌이다. 살짝 아니꼬운 표정으로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은 꿈에서 깨어나듯 깜짝 놀라며 나를 본다.


“잘 됐네요, 사귀는 거잖아요?”

“어, 어.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심장 뛰어서.”

“아하하. 선생님 이러니까 꼭 여고생 같네요.”

“아하하. 하하, 응. 아, 너무 기분 좋다.”


선생님은 내가 거는 시비에도 별다른 대답 없이 정말 담담하게 자기 감정을 말한다. 으아, 선생님 아닌 것 같아. 기쁜 듯이 수줍은 미소 짓는 거 보니까 정말 예쁘다.


“하아. 음…… 고마워, 진짜. 에이잇!”

“우악, 자, 잠까……웁! 우웁!”

“하아아. 귀여워 죽겠다니까. 네 덕이야, 네 덕! 아아, 진짜 어떡하지 이제! 뭐라고 해야 하지, 정민 씨!”

“우웁, 우우우웁!!”


선생님은 갑자기 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오더니 그대로 포옥 나를 껴안아버린다. 내 뒤통수 쪽에 양 손을 가져다 대더니 그대로 자기 가슴 쪽으로 얼굴을 폭 껴안아 버린 게 문제지만. 우악, 이러면, 이러면! 성인 여성의 달큰하고 야한 냄새가!! 후각세포를 지나 대뇌의 전두엽까지 그대로 직빵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거기에 이 압도적인 부드러움은! 어떤 면으로나 희세나 성빈이하곤 비교가 안 돼! 냄새도, 촉감도! 으아, 정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아……! 선생님은 한동안 그렇게 웁웁거리는 나를 놔주지 않고 껴안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놔준다. 아아.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버렸다. 어질어질한 몸을 추스르려고 옆에 있는 애를 잡았는데 리유. 잔뜩 삐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흥!’ 하고 내 손을 놔 버린다.


“꼬꼬마, 꼬맹이! 뭐 사줄까? 맛있는 거 사줄까?”

“아뇨, 방금 밥 먹고 나온 거잖아요!”

“어쨌든! 자, 내가 뭐 사줄게. 선생님 오늘 진짜 기분 좋으니까! 자자, 가자! 꼬맹이 뭐 귀여운 거라도 살래? 선물 사줄까?”

“네, 네!”


선생님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이렇게나 들뜬 선생님은 처음 본다. 오늘은 정말 선생님의 다른 면을 많이 보게 되는구나. 선생님은 우릴 거의 강제로 밀며 양쪽에 어깨동무 하듯 이끌고 가신다. 하하, 잘 됐네. 잘 됐어.


작가의말

일요일이라 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그럼 안 되죠, 그런 나태하고 게으른 마음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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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3화 - 2 +9 14.03.15 2,986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8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6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 21화 - 4 +21 14.03.09 2,686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1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7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2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8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8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4 52 19쪽
79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7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4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4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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