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39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8 22:15
조회
2,444
추천
53
글자
18쪽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DUMMY

‘쨍쨍.’

‘쓰쓰쓰쓰 쓰── 시시시시시───’

“으아아…….”

“아휴…….”


햇볕은 쨍쨍. 매미는 맴맴. 사실 햇빛이 아무리 내리쬔다 해도 ‘쨍쨍’이란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매미 역시 ‘맴맴’이라고는 절대 울지 않고 ‘시시시시시 수홯힣! 시시시시 수홯히! 수홯히 홯히 홯히! 히이이이이─’ 이런 식으로 운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바야흐로 여름이다. 6월 초의 어줍잖은 태양과는 확연히 격이 다른 햇볕이다. 확실하게 덥다. 살이 금세 타 버릴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어 더욱 덥다. 거기에 이 습한 날씨는. 땀이 나도 마르지 않고 줄줄 흐른다. 이런 와중에, 나는 일을 하고 있다. 성빈이와 함께.


“힘들지 않아?”

“으응, 괜찮아…… 하아. 덥고 땀나고 팔 아픈 것만 빼면.”

“그게 힘든 거네.”

“에헤헷. 그렇네.”


나의 대답에 성빈이는 밝게 웃는다. 하지만 끝이 뭔가 어색한 그런 느낌이다. 확실히 어색한 게 있긴 하지. 둘이서 풀을 뽑고 있으려니까 더 그렇다. 그래, 이렇게 된 건──



“기각.”

“서, 선생님! 제발!”

“안 된다니까. 내가 말 했지?”


나는 기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사감선생님은 매정한 얼굴로 대답하신다. 저번 종업식 파티 이후의 일이다.

막상 파티 끝난 다음 날 기숙사에 돌아갔을 때에, 선생님은 별다른 말은 없으셨다. 된통 혼나거나 처벌을 받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안 아프면 됐다. 조용히 지내라.’ 하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 이렇게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 하지만 형벌은 며칠 뒤에 예고도 없이 다가왔다.


“너희가 잘못한 거니까 너희가 처리하는 거지. 책임 져야 하는 거, 몰랐어? 네가 그렇게 여자애랑 놀아놓고?”

“아니 말이 이상하잖아요! 그런 책임이 아니라! 아니, 그래요, 징계야 그렇다고 치지만…….”


선생님은 묘한 어감으로 말씀하신다. 누가 보면 꼭 내가 사고라도 쳐서 이렇게 빌고 있는 것 같잖아. 지나가던 여자애들과 누나들은 실실 웃는 표정이다. 웃기겠지. 나라도 웃겠다. 옆에선 성빈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비굴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봉사활동 100시간 이라뇨! 여름방학 내내 해도 모자라요!”

“왜 모자라. 주말은 뒀다 뭐하고, 평소에도 조금씩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누가 그런 짓 하랬어. 순간의 쾌락 따윌 위해 이런 걸 마다하지 않다니, 하여튼, 남자들이란. 너도 꼬꼬마지만 남자애구나.”

“아뇨, 자꾸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선생님의 묘한 섹드립에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애원하듯 말했다. 자꾸 뜨끔 하게 되잖아. 꼭 선생님이 그 날의 일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신다. 아니! 솔직히 그런 짓이긴 했지만.

나는 그 때, 스스로 술을 조절했기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억이 다 남아 있다. 미래나 리유는 아예 까맣게 잊었다고 한다. 리유야 가장 먼저 잠들어 최후의 승자라 그런 거고, 미래는 너무 취해서 성빈이랑 희세랑 술 대결하는 정도부터 이미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저, 저도 같이 도울게요!”

“뭐야, 넌 됐어. 여자애잖아. 꺼져.”

“아뇨, 저 때문에 못 들어온 거니까!”

“어휴, 짜증나게 하네, 또.”


선생님은 이상하게 여자애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형벌도 딱히 성빈이에게는 별다른 말이 없이 나한테만 말하고 있는 거였다. 옆에서 서 있던 성빈이가 미안했는지 용기를 내 선생님에게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선생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성빈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께 공손히 말한다. 저렇게나 착하고 저렇게나 공손히 말하는데도 선생님은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그냥 여자애들을 싫어하시나.


“구태여 주지도 않겠다는 벌, 왜 받겠다는 건데?”

“그, 그야 저도 똑같이 안 들어왔고! 저, 제가 급체해서 못 들어온 거니까!”

“이래서 짜증난다니까, 이딴 꼬꼬마들도 연애하고 있는데 나는…… 어휴, 열심히 일을 하면 뭐해, 어?! 정자 그 년도 약혼하네 헤어지네 징징대고! 아오!! 열받아.”

“아아…….”

“뭐가 ‘아아’야! 이해하는 듯이 쳐다보지 마!”

“죄, 죄송합니다.”


아아, 그거구나. 노처녀 히스테리. 가뜩이나 담임선생님이 눈치 없이 자꾸 자기 남자친구 얘기 팔불출처럼 할 테고, 나와 밥 패밀리 애들이 노는 걸 보면 언제나 ‘한창 때라 좋겠네, 우리 꼬꼬마. 내가 다 부러울 정도야’ 하고 정말 부러운 듯 말씀하시는 선생님이니까. 하지만 나의 이해한 듯한 ‘아아’ 에 선생님은 다시 짜증의 화살을 나에게 돌리신다. 우옷, 이 때는 몸을 굽혀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저 모든 짜증이 나한테 돌아오니까. 힐끔 성빈이를 보니 성빈이는 얼굴이 더욱 빨개져있다. ‘연애하고 있는데’ 라는 선생님의 말 때문일까? 나도 괜히 의식돼서 성빈이를 잘 못 보겠다.


“됐다, 할 새끼들은 어떻게든 하겠지. 둘이서 100시간. 이번 방학 안에. 교내에서, 하기 전이랑 한 후랑 나한테 말하고. 말 안 하고 하면 시간 인정 안 해준다. 알았어?”

“넵!”

“네, 감사합니다!”

“……아오, 재수 없어.”


선생님은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더니 무릎 꿇은 것을 푸는 나와 성빈이를 힐끔 보고 작게 한 마디 하신다. 다 들리지만. 성빈이는 고맙다고 공손하게 꾸벅 인사를 한다. 그래도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선생님. 대답하지 않으시고 사감실로 들어가신다.




“에에? 그럼 놀지도 못하고 맨날 일만 해야 하는 거야?”

“뭐, 시간 채울 때까지는. 안 그래도 방학인데 보충이다 뭐다 바쁜데, 완전히 방학이 아니게 돼 버렸어, 하하하.”

“우으으…… 웅이랑 놀고 싶었는데, 방학동안!”


나는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리유는 풀 죽은 표정이 돼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유, 귀여운 것.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히히 하고 웃는다. 방학은 했다. 종업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하지만 방학이 되면 뭐하나, 똑같이 수업을 하는데.

우리 학교는 본디 8시 10분에 0교시, 그러니까 보충수업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저녁 6시에 오후 보충수업까지 싹싹 긁어서 총 11교시의 수업이 끝이 나고. 그 뒤론 야자, 야자, 야자─ 해서 10시에 학교가 끝나는, 가혹한 정도의 교과과정인데. 방학 때는, 그나마 좀 널널해진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4시에 끝이 난다. 게다가 야자도 없다.

야, 신난다! 야자도 없는데다 오후에 수업이 끝이 나! 거기다 주말엔 아무것도 없데! ……라고 하겠냐!! 방학이라고, 방학!! 이게 어떻게 방학인데?! 이게 어딜 봐서 방학인데!


─미국은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모두 근면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구요.


아뇨, 잠깐만요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무슨 만화에 나오는 노예들을 부리는 마굴인가요. 하루에 14시간씩 밥 먹고 공부만 시키고 바로 재우는 곳이 어디 있어요. 거기에 방학이라고 명목만 만들어놓고 또 보충을 시키는 데가 어디 있냐구요. 어디 있긴, 여기 있지. 대☆한☆민☆국 이라고. 으아아! 내 방학! 내 인생! 내 젊음!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하지만 그나마도, 위에서 리유에게 말한 것처럼 누리지 못하게 생겼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평일에 4시에 끝나는 건 참 괜찮은 일이다. 그럼 점호 시간인 9시까지 5시간의 자유시간은 생기는 거잖아. 저녁시간을 빼도 축구를 2판 할 수 있는 시간이야. 어차피 여긴 여고라 축구를 못 하긴 하지만.

그러나 선생님이 지시한 봉사활동을 한다면, 정말 방학 내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오전, 오후에는 수업, 그거 끝나고는 봉사활동. 주말? 주말은 무슨, 저 일 하느라 바쁘겠지. 어휴.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지금은 방학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인데 리유와 함께 음료수 마시러 자판기에 갔다 오는 참이다. 리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나 화장실.”

“어. 먼저 간다?”

“응! 히힛.”


리유는 귀엽게 대답하고 종종걸음으로 뽈뽈 화장실로 향한다. 참, 그냥 걷는 것도 저렇게나 귀여울까. 요즘은 리유가 더 귀여워 보인다.


“바보야, 그냥 확 말해버리라니까!”

“그치만, 그치만…….”

“뭘 확 말해버려?”

“힛!”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 옆자리 짝꿍 성빈이, 그 앞자리 성미. 성미는 아예 몸을 성빈이 쪽으로 돌려 격한 반응을 보이며 말한다. 성빈이는 얼굴이 발그레 해져선 수줍은 여고생의 반응을 보이며 말끝을 흐린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귀엽네. 자리에 앉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들었다. 이 정도는 되지, 이제는. 하지만 성빈이의 반응은 굉장히 날카롭다.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정말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성빈이.


“왜, 왜 그래.”

“아, 아, 아, 아니야! 모, 못 들었지?!”

“어, 뭘 말했는지는…… 그냥 성미가 ‘확 말하라니까!’ 하는 부분밖엔.”

“어, 어, 어…… 응…….”

“??”


성빈이는 굉장히 허둥대며 말까지 잔뜩 더듬으며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어디 아픈가 싶을 정도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성빈이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성빈이는 이제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며 작게 대답한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푹 책상에 엎드린다. 내가 보기 싫은가. 성미는 몸을 앞으로 돌리며 ‘아유, 바보. 멍청이.’ 하면서 작게 말한다. 작게 말하는 게 꼭 나 들으라는 듯이. 상황으로 보면 성빈이한테 하는 말 같지만, 뭔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방학 보충수업은 별 것 없다. 학기 중처럼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걸린 것도 아니고, 애초에 보충수업인지라 1학기 때의 내용 복습이나 2학기 때의 내용 예습인지라. 어찌됐든 ‘예비로 하는 수업’ 이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학기중처럼 팍팍한 느낌은 안 든다. 선생님들오 어째 널널하게 가르치는 것 같고, 꾸벅꾸벅 졸아도 그리 뭐라고는 안 하신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날씨 좋은 여름에 이렇게 골방같은 수업에 갇혀 수업을 듣는데 누가 좋겠는가. 여자애들이라 해도 다들 피곤하고 졸린 표정이다. 대놓고 자는 리유같은 아름다운 애도 있다.

담임선생님은 ‘자면 안 되요! 뒤에 나가 서 있어요!’ 하곤 리유의 머리를 책 모서리로 콩 때린다. ‘아얏!’ 하며 일어나는 리유. 잠에 취해 얼떨떨한 표정과 아파서 머리를 쓰다듬는 표정이 너무너무 귀엽다. 가볍게 교실에 웃음이 돌 법도 한데, 어째 아무도 웃지 않고 무심한 표정이다. 새삼 리유가 아직까진 따돌림을 당하고 있구나 라고 실감하게 됐다. 1학기 내내 무심하게 잊고 있다가 종업식 때 리유가 한 마디 해서 겨우 기억 났지. 양호실에서 했던 약속이. 리유는 뒤로 나가며 나를 보고 생긋 웃는다. 아유, 귀여워라. 진짜 귀엽네.


‘똑똑똑.’

“뭐야.”

“봉사활동 하러 왔는데요.”

“어. 오늘이 처음이지? 어디보자.”


수업이 모두 끝나고 4시 14분. 가방까지 싸서 기숙사에 두고, 나와 성빈이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사감실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니 선생님은 머리를 틀어 올리듯 묶고 자유분방한 체육복 차림으로 우릴 맞이하신다. 귀찮은 듯 심드렁한 표정의 선생님은 사실 굉장히 익숙하다. 주말이면 대게 이런 복장이시거든. 이젠 방학 내내 이런 차림을 하실 모양이신가보다. 선생님은 무뚝뚝하게 말하더니 책상을 뒤져 챠트를 꺼내신다.


“4시부터 시작한 걸로 쳐줄게. 오늘은 강당 옆쪽 풀 뽑으면 되. 어디보자, 자, 모자. 장갑.”

“어엇, 네.”


의외로 선생님은 만반의 준비를 해 두셨는지 따로 우리 봉사활동 시간을 적는 표까지 만들어 두셨다. A4 종이 위에 ‘징계 시간 기록표’ 라고 써 있다. 선생님은 방 구석에 있던 챙이 큰 얼룩무늬 모자와 빨간색 고무가 반 정도 발라 있는 공사장에서 쓰는 장갑을 주며 말씀하신다. 얼떨떨하게 받아든 나. 성빈이에게도 나눠주고 같이 기숙사를 나섰다.


사실, 이렇게 성빈이랑 둘이 일하게 되면 뭔가 친해지게 될 줄 알았다. 거의 앙숙 같은 관계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드라마 얘기도 하고, 서로 티격태격 하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친해진 희세나, 원래 학기 초부터 굉장히 날 잘 따르고 귀여운 짓을 해서 내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리유, 엄청난 무리수와 섹드립으로 나의 지탄을 받지만 마찬가지로 그 특유의 폭풍개드리퍼의 매력이 있는 미래와는 다르게 성빈이랑은 묘한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 성빈이랑 안 친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다른 애들하고 비교한다면. 그건 성빈이의 마냥 착하고 모범생 같은 이미지 때문이려나. 그래도, 모든 여자애들이 나를 경계하던 학기 초에 가장 먼저 나한테 말 걸어주고 내 옆자리에 앉아준 건 성빈이인데.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다.


“…….”

“…….”


하지만 지금은 어째, 굉장히 묵묵하게 풀 뽑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나나 성빈이나. 뭔가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기분이야. 아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성빈이 쪽에서. 그 전부터도 약간 그런 것 같았는데 특히 종업식 파티 끝나고는. 아, 아무래도 그거 의식돼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여자애로써는 굉장히 치욕적이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겠지.

남자친구도 아닌 남자애 앞에서, 덥다고 교복 블라우스를 벗어 재끼고, 징징대면서 어린애처럼 울어 버리고, 희세한테 엄청난 막말을 퍼붓기도 하고, 희세한테 발로 차여서 넘어지며 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또래 남자애 허벅지에 걸걸하게 토악질을 해 버렸으니. 아, 그건 정말 의외였지. 저런 미소녀도 토하는구나. 거기에 그 내용물이 아주…… 아, 좀 괴상한 상상이긴 한데. 왜, 남자애라면, 남자애들하고 만 논 남중·남고 출신 남자애라면 그런 생각 할 법도 하잖아. 여자애들은 똥도 안 싸고 방귀도 안 뀔 것 같은 느낌. 나야 워낙 나이차이 나는 친누님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셔서 여자에 대한 환상은 어릴 때부터 무참히 부셔졌지만, 그래도 ‘토’는 좀……


성빈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풀을 뽑는다. 벌써 1시간 넘게 풀을 뽑고 있다. 가녀린 성빈이의 흰 팔에 맹렬하게 태양빛이 내리쬔다. 아, 저 고운 팔 다 타겠네. 장갑은 기본적으로 막노동을 위한 것인지 남성용 사이즈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나에겐 딱 맞지만 성빈이에겐 어째 크다. 모자 역시 군대에서 쓰는 것인지 특유의 얼룩덜룩한 무늬의 모자라 성빈이가 쓰니까 되게 어색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거, ‘국방색’이라고 하던가? 나는 뭐, 미래 체험인가. 크흑.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풀만 뽑으려니까 굉장히 어색하다. 얘기라도 하면서 일하면 참 좋을 텐데. 왜, 그렇잖아. 괜히 우리네 조상님들이 품앗이니 두레니 하면서 노동요를 불렀겠는가. 일만 하면 팍팍한 현실에 치이잖아. 힘들기만 더럽게 힘들고. 얘기하면서 하면 일의 효율은 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대신 시간은 빨리 가잖아. 아니, 오히려 일의 효율이 증가할 수도 있고.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더 친해질 수도 있고.

여러모로 좋은 일인데 왜 안 하고 있는가.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 표정을 찡그렸다. 병신아, 여자애가 먼저 다가오는 게 말이 되냐.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암, 상남자 정웅도가 어찌 여자애가 먼저 다가오길 기대하겠는가.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불찰을 인정하는 나. 천천히 성빈이 옆으로 근접한다.


“어, 벌레.”

“에, 에에!! 꺄아아아아~!!”

“아아, 잡았어 잡았어. 땠어.”

“때, 땠어?!”

“어, 땠어.”


얘기하려고 다가갔는데 희고 가느다란 성빈이 팔에 크고 아름다운 풀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성빈이. 여자애라 체구도 작고 팔도 근육 하나 없이 가녀린데 저렇게나 열심히 일하다니, 조금은 농땡이 피우고 있던 내가 다 부끄럽다. 한 마디 하니 성빈이는 흠칫 놀라더니 기겁하며 비명을 지른다. 어찌할 줄을 몰라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가려 한다. 잽싸게 벌레를 잡아 땠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기절했을 것 같다. 흥분한 성빈이를 진정시키며 말하자 성빈이는 거의 눈물까지 글썽이며 더듬거리며 말한다. 헛……! 귀여워. 술 취해서 아이처럼 울던 성빈이가 기억이 날 것 같다.


“성빈이, 벌레 싫어하는 구나. 귀여워.”

“……! 아, 아니야! 당황해서 그런 거야!”

“에에, 여자애니까 벌레 싫어할 수도 있지. 창피한 것도 뭣도 아니잖아.”

“……일 해야지! 오늘 안에 다 뽑아야 하는데! 나, 저쪽 가서 뽑을게.”

“어, 어…….”


성빈이는 내 말에 굉장히 난감해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더니 안절부절 못 하는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나 역시 넉살좋게 말하다 성빈이의 말에 좀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거…… 피하는 거지? 아무래도 역시, 저번 일 때문에 어색한가. 저렇게 대놓고 피하니까 마음이 좀 쓰리다. 아니, 아니야. 확실히 여자애면 좀 부끄러울만한 일이었으니까. 미래는 기억 안 난다고 하지만, 성빈이는 확실하게 모르니까. 저 반응이면 분명 기억이 난다는 건데. 아아, 모르겠다. 성빈이 말대로 풀이나 뽑아야지.


저녁 늦도록 풀을 뽑았다. 피부가 다 타버린 것 같다. 따끔따끔 한데. 원래도 피부가 그리 흰 편은 아닌 나인데. 이번 여름은 그야말로 흑인처럼 새까맣게 타겠구나. 오늘은 2시간이나 시간을 채웠다. 주말까지 합치면 의외로 빨리 해결할 수 있겠는데. 피곤하다.


작가의말

제가 많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ㅠ

어제는, 그 전날 친구와 술을 먹어서 술병이 나서 글을 못 썼습니다.

오늘은, 새학기가 다가와서 다른 친구와 옷을 사러 가서 이렇게 지금에야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다음부턴 이러지 않을게요.


아, 그리고 요 며칠 반짝 하루에 2편씩 올렸는데. 새학기가 되면 그렇게는 못 올리겠네요 데헷☆ 죄송합니다... 저도 학교 다니니까, 먹고 살아야죠. 그래도 1편씩은 꼬박꼬박 올릴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24화 - 3 +8 14.03.23 1,983 40 17쪽
98 24화 - 2 +14 14.03.22 2,777 42 25쪽
97 누락된 편입니다 +11 14.03.21 2,371 44 1쪽
96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11 14.03.20 2,656 44 23쪽
95 23화 - 5 +21 14.03.19 2,581 80 18쪽
94 23화 - 4 +7 14.03.18 2,343 52 19쪽
93 23화 - 3 +24 14.03.17 2,644 44 22쪽
92 23화 - 2 +9 14.03.15 2,986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8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5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86 21화 - 4 +21 14.03.09 2,685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1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7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1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7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7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3 52 19쪽
»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6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4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3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