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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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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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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3.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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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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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17쪽

20화 - 4

DUMMY

성빈이와의 봉사활동 100시간. 말이 좋아 100시간이지, 실질적으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지금처럼, 봉사활동을 하고 이어지는 시간도 성빈이랑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 어찌됐든 평일에도 2시간씩은 꼬박 하니까, 꼭 끝나면 저녁 때가 되고. 뭐,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하고도 놀지만. 이번 방학은 봉사활동 덕분인지는 몰라도 정말 어떤 때보다 성빈이랑 많이 같이 지내는 것 같다.


“뭐 먹을래?”

“음…… 난 돈가스!”

“좋아, 그럼 난 치즈라면.”

“아, 치즈라면! 음…… 그래도 난 돈가스.”

“좋지.”


성빈이는 돈가스, 나는 치즈라면을 골랐다. 내 선택에 자기도 굉장히 먹고 싶은지 망설이다 결국 돈가스로 밀고 가는 성빈이. 정말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아니, 솔직해진 성빈이는 굉장히 좋으니까.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데?”

“응, 너 보니까.”

“에에…… 어디서 작업질이야!”


성빈이는 나를 보고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긋 웃으며 묻는다. 나는 살짝 장난기가 돌아 마찬가지로 웃으며 말했다. 성빈이는 살짝 얼굴이 상기돼서 부끄러운 웃음을 지으며 살짝 주먹으로 내 몸을 밀친다. 아하하. 점수 좀 벌었으려나.

내 농담으로 분위기는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난 살짝 어색함을 느꼈다. ‘점수’라고 하니까 좀 묘한 기분인데, 확실히 의식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성빈이가 예전에 했던 말.


‘웅도 네가 좋아!’


아아, 어디서 미화하는 거야! 성빈이가 언제 그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촉촉하게 얘기했다고! 분명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하지만…… 그것 비슷하게 얘기하긴 했어. 나 좋아한다고. 다른 건 전부 별 것 아니게 넘어갔는데, 그 말만은 쿨하게 넘길 수가 없다. 아니, 솔직한 말로 내 또래 여고생이 나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인다. 특히나 성빈이가 살갑게 대해줄 때마다. 혹시라도, 나를 좋아해서 이렇게 태도를 바꾼 건가?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냥 솔직하게 대하는 것일 뿐이잖아. ……솔직하게 대해서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아니아니, 아니라니까! 왜 자꾸 뭘 기대 하는 건데!

힐끔힐끔 성빈이를 쳐다본다. 반짝이는 눈으로 TV를 보고 있는 성빈이. 일하느라 한데 곱게 묶은 머리에 땀 흘려서 씻지 않은 벌겋게 익은 얼굴. 솔직히 전혀 꾸미지 않은 외모이지만 그것도 충분히 예쁘다. 아니, 오히려 더 색다른 매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한 번 의식하게 되면 뭐든 다 좋게 보이겠지만.


“저…… 성빈아.”

“응?”


나는 속으로 계속 혼자 두근거리다 마음을 굳혔다. 그래, 남자새끼가 이렇게 찌질하게 속으로 싱숭생숭하게 왔다갔다 하는 건 아니지. 사나이 정웅도, 상남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갈대처럼 변덕스럽게 지낼 수는 없지. 솔직하게 물어보자. 안 그래도 성빈이도 솔직하게 나한테 말하기로 했는데, 나 역시 그 마음에 부응해야겠지.


“저번에, 파티 때 취했을 때.”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창피하게! 참.”


성빈이는 내 말에 살짝 멈칫 거리더니 얼굴이 살짝 상기돼선 또 ‘짓궃어~’ 하는 태도로 웃으며 말한다. 반응 좋은 성빈이의 반응에 나는 약간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이런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말할 수 있겠다. 진지하게 말하면 오히려 서로 어색할 수가 있으니까, 장난스럽게 별 것 아닌 것처럼 얘기하면 괜찮겠지.


“그 때 했던 말……”

“응?”


근데 생각은 그렇게 했는데 말은 또 그렇게 안 나온다. 아무렴, 솔직히 이성 간에 좋아하네 어쩌네 하는 말인데 가볍게 말할 수는 없지. 아니, 쿨하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성격이 가부장적인데다 꽉 막힌 편이라 그렇게 안 된다. 아니아니, 지금은 이 말에 집중해. 잡생각 하지 말고, 목표한대로 말하면 돼.


“나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어?”


성빈이는 내 말에 웃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 버린다. 몸까지 멈칫 굳어서 한순간 조각상이 돼 버린 느낌이다. 어, 이 반응…… 설마, 설마!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어. 성빈이가 날…… 진짜 좋아할 리가 없잖아!

난 실없는 농담을 할 뿐만 아니라 키도 그렇게 안 크고 잘 생기지도 않고 할 줄 아는 건 운동 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여기선 무용지물인 특기고 이미지는 완전히 변태인데다 거기다 성빈이한테는 완벽하게 쓰레기 이미지만 박혀 있잖아.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학기 초에 와락 성빈이 가슴 만져 버리고, 또 목욕탕을 무단으로 침입해서 가녀린 여고생 속옷차림 봐 버리고, 거기에 더 심각하게 내 알몸까지 보여줬는데다. 아아, 안 좋은 꼴만 잔뜩잔뜩 보여줬는데! 이상하다, 이상해, 확실히 이상하다.


“……어, 그, 그건…… 그러니까……!”

“…….”


성빈이는 누가 봐도 한껏 당황한 것 같은 태도로 말한다. 허둥지둥, 땀이라도 흘릴 것처럼 되게 당황한 느낌이다. 나는 괜히 그런 성빈이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더욱 당황하게 됐다. 진짜, 진짜 좋아하는 건가. 아니, 당황할 건 아닌데. 조금은, 정말 조금은 망상을 해도 되지 않을까.

성빈이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럼 나는 그 마음에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누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평생에 처음이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여자애를 좋아해본 적은 있어도, 여자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겪어본 적도 없거니와 상상해본 적도 없다. 그런 인생이었으니까. 성빈이가…… 나를 좋아한다……라.


성빈이 좋지, 나도 좋아해. 예쁘고, 마음 착하고, 솔직해졌고. 솔직히 말하면 희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묻혀서 그렇지 몸매도 굉장히 좋은 편이고, 볼륨도 상당한 편이다. 아니, 뭐 여자친구를 가슴으로 사귀는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거기에, 내가 처음 여고에 와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앉아 있을 때 가장 먼저 말을 걸어 줬던 게 바로 성빈이니까.


“아, 아니야, 그 때 그건……”

“……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는 흥분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날 것 같아 감추기가 힘들 정도. 하지만 이어지는 성빈이의 말에 나는 살짝 멈칫 했다. 기대에 찼던 표정이 굳어졌다. 성빈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밝지만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 때 그건…… 그, 취해서 그랬던 거니까…… 내 진심이 아니었어. 미안, 미안해.”

“아, 아니야, 미안할 건 아니지.”


성빈이는 당황스러운지 조금 더듬거리며 말한다. 나는 조금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당황함이 역력한 굳은 표정이었다 금세 웃는 얼굴이 돼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웃지 않으면 어쩔건데, 내가.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애써 괜찮은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괜히 오해한 거잖아. 술김에 한 말인데. 오해한 내가 더 미안하지.”

“아, 아니야, 그건……”

“응, 괜찮아. 괜찮아. 이런 걸로 어색해지지 않기야, 확실히?!”

“어, 응! 전혀 안 어색해.”


나는 난감해하는 성빈이의 표정을 보고 얼른 선수를 쳤다. 어색해지는 것만큼은 싫다. 남녀 간의 이런 ‘좋아하는 걸로 오해하는‘ 것만큼 사이가 어색해지기 좋은 건 없다. 그러긴 싫으니까, 얼른 말한것이다. 겨우 솔직한 성빈이가 됐는데, 내 쪽에서 어색할 순 없으니까. 빠른 상황 정리는 내 장점 중 하나다. 성빈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거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현실을 수긍했다.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그대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려 했는데. 이성친구라는 건 아무래도, 서로 간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립 가능한 게 아닐까. 그리고 성빈이 정도로 예쁘고 착한 여자애가 먼저 날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내가 마다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내 쪽에서 굉장히 황송한 일이지. 성빈이는 내 이상형에 가깝고, 누구보다 착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한걸. 희세처럼 괴팍하거나 리유처럼 마냥 어린아이 같거나 미래처럼 너무 구제불능이거나 하지 않고 딱 무난한 수준의 성빈이다. 사귄다면 누구보다 나에게 잘 해줄 것 같고, 나 역시 그 기대에 잘 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귀는 장면을 가만히 상상해본다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까.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내 마음 속 망상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창피하다.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뭔가 괜히 내가 먼저 고백했다가 차인 것 같은 기분. 아니, 난 그냥 그 말에 대한 것만 물어봤으니까, 딱히 성빈이에게 차이거나 한 건 아니지. 다만, 다만…… 좀 그렇긴 하다.

성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대답한다. 착찹한 마음이지만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역시, 날 좋아하진 않는구나. 솔직해진 성빈이니까 더욱 확인사살이구나.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가식으로 꾸며내 말하진 않지. 그래, 그런 거야. 뭘 기대한거냐, 정웅도. 나와 성빈이 관계는…… 그냥 이 정도인 거지. 친한 친구 사이. 그거면 됐다. 내가 무슨 여자친구냐 친한 친구 여자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희세도, 리유도, 미래도 마찬가지다. 예전 일도 있었고, 역시 그렇긴 하다. 내가 무슨 여자친구를 사귀겠냐. 하하 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한 개만 주라.”

“에에, 방금도 먹었잖아?”

“맛있는데. 나도 그거 시킬걸. 하나만~”

“거지같애. 그럼 너도 나 줘.”

“응응, 그래 그래.”


성빈이의 돈가스가 탐이 나 한 마디 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말은 결코 하지 않았을 텐데. 알량한 이미지라고, 그런 묘한 자존심이나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하지만 이젠 아니다. 성빈이가 날 안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인지하니까 이 정도는 그냥 할 수 있게 됐다. 장난스럽게 말하니 성빈이 역시 예전과는 다르게 비꼬는 말투로 거지를 쳐다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웃으며 그래도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훨씬 편하게 대하니까 이렇게나 즐겁고 좋다. 솔직히 이 정도면 사귀는 남자애 여자애랑 비슷해 보이잖아? 현실은 시궁창이긴 하지만.


“아─ 잘 먹었다. 배불러.”

“흐흥, 내가 많이 뺏어 먹었는데. 이거 괜히 미안해지는데.”

“피, 이미 네 뱃속으로 다 들어갔는데? 그래도 난 여자애니까, 조금만 먹어도 배불러요.”

“아, 그렇네. 부럽다, 식비 조금 들어가니까.”

“……그래도 여자애라도 1인분 이상씩은 다 먹어. 내숭떠는거지.”

“뭐야, 말이 다르잖아?”

“몰라, 그냥 그래.”


성빈이는 내 대답에 굉장히 솔직한 말투로 말한다. 나는 낄낄 웃으며 성빈이의 반응을 살핀다. 성빈이는 살짝 볼이 상기돼서 대답한다. 자기도 지금 내숭 떨고 있다는 말인가. 뭐, 나 같은 애 앞에서 무슨 내숭을 떨까. 서로 친하고 편한 친구인데.


“요 며칠동안 너랑 되게 친해진 것 같아.”

“흐흥, 기분 탓이지 않을까?”

“아니 아니, 솔직히 난 남자씩이나 돼서 막 거리두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네 쪽에서 솔직하게 말하는데 내가 그대로 있을 수가 있나. 지금이 훨씬 좋은 것 같아.”

“응, 그렇지.”


성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 생에 처음으로 여자애에게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놓고 말하게 된 여자애일까. 미래는, 솔직히 막말을 하긴 하는데 뭔가 애매한 기류가 분명 존재하기에 논외이고. 희세는…… 완벽하게 나에게 벽을 만들고 있지. 굉장히 새침하게 대하면서. 리유도 조금은 애매하다. 분명 날 잘 따르고 날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그렇잖아. 내가 리유에게 의지할 수는 없으니까. 반면에 성빈이는 서로 동등한 친구 관계로, 순수한 친구로써 친분을 나누게 됐으니까. 솔직히 좀만 더 친해지면 남자애들에게 했던 야한 농담이나 음담폐설도 조금씩 수위를 조정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 농담 한다면 성빈이는 ‘아~ 뭐야, 변태!’ 하면서 대충 넘기겠지. 후후, 재미있겠다.


“나 있잖아, 솔직히 아까 그 말 듣고 되게 실망했다?”

“무슨 말?”

“좋아한다고 한 말 있잖아. 그 말 듣고 솔직히 되게 두근두근 했었거든.”

“……에, 그랬어?”


성빈이는 내 말에 살짝 표정이 굳더니 이내 웃는 표정으로 말한다. 불과 아까 전에 있던 일이라 좀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성빈이의 태도를 보니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한 게 좋은 거니까. 이 참에 허심탄회하게 훌훌 털어 버리고 웃기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 그렇잖아! 너만큼 예쁘고 마음 착한 애가 좋아한다는데 마음 안 두근거릴 남자애가 어디 있어. 안 그래?”

“에, 에이~ 안 그래! 얘도~ 오호호.”

“아하하. 아줌마같아.”

“……뭐라고?”

“죄, 죄송합니다.”


내 칭찬에 성빈이는 굉장히 수줍어하며 아줌마처럼 웃음을 내며 말한다. 우와, 솔직해진 성빈이 장난 아니네. 그렇게 웃으니까 꼭 아줌마 같긴 하지만 굉장히 그 또래 소녀 같아서 매력이 샘솟아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아줌마’ 발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식간에 정색하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빠른 사과를 하여 민감해진 성빈이를 진정시켰다.


“어쨌든 그랬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아~ 실망했지. 솔직히, 그 말 들었을 때 되게 기분 좋긴 했는데.”

“…….”


나는 기지개를 쭉 펴며 말했다. 내 말 뒤로 이어지는 성빈이의 장난스런 대답을 기대했는데 어째 아무 말도 안 나온다.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성빈이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다. 그냥 심각한 표정이 아니라,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것 같은 그런 얼굴. 하지만 그 얼굴빛은 순식간에 웃는 표정으로 바뀌고, 성빈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한다.


“아하하, 술주정인데! 그런 말 함부로 할 리가 없잖아, 여자앤데! 그치?”

“응, 그렇지 아무래도. 그래도 그거 남자애들 데리고 장난치면 진짜 혼이 쏙 빠져나가겠다. 놀리는 재미가 있겠어.”

“에에, 나 그런 여자애 아니거든?! 헤헤헤.”

“넌 예쁘고 착하니까, 분명 애들이 껌뻑 속아 넘어갈걸?”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순박한 남자애 한 명 그렇게 속여 넘기면 분명 혼을 빼 놓고 당하게 되겠지. 여자가 요물이라는 말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성빈이는 착하니까, 그런 짓을 할 리는 절대 없겠지만. 옛날의 슬픈 추억이 떠오를 것 같아 슬픔을 드립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성빈이 역시 나처럼 웃으며 ‘짓궃어!’ 하는 투로 손바닥으로 내 팔뚝을 탁탁 친다.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하다.




기숙사까지 함께 웃고 떠들며 돌아왔다. 생각해보니까 씻지도 않고 땀을 흘린 일한 그대로 밥을 먹으러 갔었네. 땀이 말랐는데 그 위로 또 약간의 땀이 나려 해 굉장히 찜찜하고, 거기에 역한 냄새까지 나려고 하는것 같다. 얼른 들어가서 샤워해야지.


“잘 가, 난 샤워 해야겠다.”

“표지판 잘 붙여! 또 불상사 만들지 말고.”

“에이, 내가 괜히 그랬간. 절대 안 그래요. 아하하.”

“히히, 그럼 내일 봐.”

“응,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아마 저번 성빈이와 나의 알몸 참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나는 살짝 부끄러워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사건 이후로 선생님이 절대 떨어지지 않게 종이 뒷면을 자석으로 붙여버리셨거든. 성빈이는 환히 웃으며 계단으로 올라간다. 나는 1층의 내 방으로 들어간다. 아,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솔직히 일은 내가 더 많이 하지, 남자애니까. 더운 여름에 이 고생을 하니 몸이 피곤하긴 피곤하다. 그래도 재미있고 보람차긴 하다. 무엇보다, 성빈이랑 이만큼이나 친해졌으니까. 확실히 100시간 형벌에서 의도한만큼 성빈이랑 친해진 것 같아. 거기에 앞으로 몇십시간이나 더 남아 있으니까, 앞으론 더 재미있겠지? 더 친해지겠지? 그 생각에 참 기분이 좋다. 샤워까지 하고 침대에 누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얼른 샤워나 해야지.






“……흑!”

성빈이는 밝게 웃는 얼굴로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표정이 급격하게 바뀐다. 급격히 무표정한 얼굴이 됐다, 시무룩한 얼굴이 됐다 급기야는 심각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됐다. 결국 걷지 못하고 계단과 계단 사이 창가에 기대 얼굴을 가리고 숨을 죽인다. 우는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기 싫기에 그런 것일까.


“…….”


한동안 숨을 죽이며 계단과 계단 사이 창가에 서 있는 성빈이. 그 동안 아무런 애들도 지나가지 않아, 성빈이는 혼자 계단에 서 있는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이 내려가니 눈물 젖은 성빈이의 큰 눈망울이 보인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성빈이는 작게 혼잣말한다. 입을 꾹 다물고, 슬픈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는데 다시금 예쁜 눈망울로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빨갛게 달아 오른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이 더욱 성빈이를 서글프게 보이게 한다.


작가의말

제가 많이, 늦었지요?


새학기가 되어 학교에 갔습니다. 군대 가기 전, 제가 학교를 다닐 때의 모든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덩그러니 저 혼자 남은 기분입니다. 아아. 어엿하게 예비역 오빠가 돼 풋풋한 14학번 여자애들과 교류하며 적당한 여자애랑 사귀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이었지만... 벌써부터 사이즈가 보이네요. 전 사귈만한 팔자가 아니니까요. 글이나 써야죠.

새학기 충격(?) 덕분에 어제는 전혀 글을 못 썼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이런식으로 충격을 받으면 안 되는데 말이죠.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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