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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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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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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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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20쪽

22화 - 3

DUMMY

“안녕!”

“어, 응.”


주말. 평소의 나라면 느긋하게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숨을 쉬고 있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는 둥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혹은 기껏 민주나 현광이가 놀러 가자고 하면 그제야 게으르게 놀러가는 정도겠지. 그래봤자 가는 곳은 PC방이기에, 하는 짓은 똑같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사복 입은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어, 응. 너도. 예쁘네.”

“에헤헤헤헷. 예뻐?”

“응, 정말.”


지영이는 밝은 톤의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그 미소에 절로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지영이는 밝은 성격대로 굉장히 밝은 핑크색의 원피스를 입고 왔다. 지영이 그 모습 그대로 밝고 빛나는 것 같아 잘 어울린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중학생 치곤 성숙한 지영이 몸매가 그대로 보이기도 하는데…… 어흠! 그런 건 보면 안 되지, 난 지영이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귀엽고 예쁘다. ‘예쁘다’는 칭찬에 지영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이건 데이트일까? 아니면, 어떤 걸까? 심장이 두근두근 떨린다. 금요일, 별 생각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지영이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놀자!!’ 하고. 굉장히 당황하게 됐다. 뭐,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보다, 이거 이러면 데이트 아니야?! 우와아아앙!!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게 ‘어, 뭐 하고?’ 하고 말했다. 지영이는 이런 것 저런 것 하고 놀자고 하는데 사실 자세한 사항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지영이가 주말에 놀자고 먼저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말에 여자애랑 논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다. 아아, 아아아! 사나이 정웅도, 드디어 봄이 찾아 오는구나! 실제 봄은 예전에 지나갔지만, 나에게 봄은 지금이다!

그런 느낌으로 잔뜩 들떠서 나왔다. 솔직히, 데이트라고 한다면 첫 데이트니까. 떨리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정상이야. 지영이는 어린 아이처럼 방긋 웃으며 잔뜩 들떠 있다. 나는 다른 의미로 들떠서 정신이 없지만.


“영화 보러 가자!”

“아, 응.”


지영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라, 좋지. 민주나 현광이하고만 다니면 영화 같은 문화생활은 완벽하게 동떨어진 삶인데. 여자애랑 주말을 보내니까 이렇게 영화도 보게 되는구나. 지영이는 활기차게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본다. 웃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거 이거! 이것도 먹자!”

“응, 먹자.”


영화관에 도착했다. 점심은 아니지만 살짝 출출할만한 시기, 지영이는 눈을 빛내며 팝콘과 콜라를 고른다. 둘이 하나로 먹는 걸로. 아, 이런 건 연인들이 시키는 거 아닌가-!! 이러니까 정말 데이트 같잖아! 후후후. 영화는 무슨 로맨스 영화여서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은데 그래도 지영이가 직접 고른 것이니 괜찮겠지. 팝콘과 콜라를 사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

“…….”


영화는 정말 엄청나게 지루하다. 이딴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 그래도 신기한 건 지영이는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점. 지루하고 내용도 감정이입이 전혀 되지 않는 억지감동이라 한숨밖에 안 나온다. 팝콘이나 먹어야지 하고 우적우적 먹는데 문득 팝콘을 먹으려고 손을 뻗던 지영이랑 손이 맞닿는다. 헉…… 깜짝 놀라 얼굴이 왈칵 붉어진다. 지영이는 당황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까닥이며 방긋 웃는다. 스르륵 머리카락이 살짝 내려가며 웃는 지영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아, 좋아 죽겠네.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


“아─ 재밌었다. 재미 없었어?”

“아니, 나도 재미있었어.”


영겁의 시간이 끝나고 겨우, 영화관에서 나왔다. 조금만 더 지났으면 정말 잠들었겠다. 잤다면 굉장한 실례였겠지. 특히 그 억지감동이…… 이야…… 하지만 지영이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지영이가 그렇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물어보는데, ‘어, 사실 엄청 재미 없고 지루했어.’ 하고 말할 순 없으니까, 억지웃음 지으며 좋다고 했다.


그 다음엔 점심. 지영이가 고른 예쁘고 분위기 좋은 가게로 들어갔다. 음, 확실히 소녀스런 분위기의 가게다. 이런 곳은 살아가면서 처음 와보는 것 같아. 항상 말하지만 민주와 현광이와 거친 삶만 살아온 나였기에, 이런 여자애들이 올 것 같은 가게는 처음이다. 기껏 해봐야 분식집 밖에 안 가봤는데. 종업원이 가지고 온 메뉴표를 보니 가격이 엄청나다. 과연, 가게 분위기와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만큼 가격에 그 영향이 있구나.


“음…… 나는 이거. 너는?”

“글세…… 딱히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데.”

“흐흥, 이거 되게 맛있어. 좀 양 적긴 한데. 그래두 먹으면 배불러.”

“그래. 그럼 이걸로.”


지영이의 추천에 나는 그다지 당기지는 않지만 그걸로 시켰다. 뭐, 팝콘하고 콜라 먹어서 그렇게 배고픈 것도 아니니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지영이는 또 재잘재잘 떠든다. 주로 영화 쪽 내용. 보통 나와 지영이의 대화는 이런 패턴이 많다. 지영이가 말하고, 내가 듣는. 대화의 8할 이상은 지영이의 말인 것 같다. 그건, 지영이가 여자애라 말이 많은 것도 있지만 내가 스스로 이미지 관리를 위해 말수를 줄이는 것도 한 몫 한다.

민주랑 현광이랑 있을 때엔 민주랑 쌍벽을 이루게 수다스러운 나다. 하지만 남자애가, 여자애 앞에서 그렇게 경망스러운 모습 보이면 안 되잖아. 거기다 나는 지영이에게 내 흥밋거리를 말하기가 좀 그렇다. 나야 별 재미도 감동도 없지만 그저 묵묵히 지영이 말 듣는 것만으로 행복하지만, 지영이는 안 그럴 것 같으니까. 사실 영화가 어쨌네, 연예인 누구가 어쨌네, 학원 여자애 어떤 애는 생각보다 싸가지가 없네, 그런 얘기는 나한테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반 쯤은 못 알아 듣고 있거든.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친다. 그저 웃으며 재잘재잘 얘기하는 지영이가 너무 예쁘고 귀엽기에. 천사 같기에.


“음! 역시 여기 맛있어!”

“응, 그렇네.”


곧 음식이 나왔다. 지영이는 귀여운 미소를 대방출하며 방긋방긋 웃는다. 나는 굳이 음식이 맛있고 배가 부르고를 떠나 그냥 지영이의 눈웃음을 보는 것만으로 굉장히 기쁜 마음이다. 음식은, 맛 자체는 괜찮은 수준이다. 그렇게 엄청 맛있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정말 양이 쥐꼬리만하다. 배가 반도 안 차는 기분이다. 맘 같아선 순식간에 다 먹어치울 수도 있겠지만, 지영이 앞인데. 하긴, 지영이 기준으로도 조금 배가 부족한데 그런대로 배부르다는 음식인데, 하물며 지영이보다 체구가 월등히 큰 나라면 한참 모자라지. 이딴 게 그렇게나 비싸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을 고쳤다. 지영이랑 같이 노는데, 이 정도는 양반이지.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그러는 건데.


“13700원입니다.”

“여기요.”

“네─.”


아하. 더럽게 비싸. 내 용돈. 중학생 용돈이 얼마나 많겠어. 그렇다고 내가 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주 군것질은 전부 물건너 갔구나. 민주랑 현광이한테 빌붙어 살아야겠다. 살짝 표정이 굳어지지만 얼른 평범한 표정으로 되돌렸다. 남자가 이 정도 하찮은 돈에 얽매이면 안 되지, 특히 여자애 앞인데.


“이러니까 너무 미안하다─ 영화관도, 밥까지도 다 얻어 먹으니까……. 미안.”

“아니야, 뭐 이런 거 가지고. 학원 숙제 같은 거나 공부 같은 거 네가 알려주고 그러잖아.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에헤헤. 그런가?”

“응, 그치.”

“히히히. 고마워.”


지영이는 혀를 쭉 내밀며 어색해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아, 그것조차 너무 귀엽다. 혀도 조그만 게 귀여운 것 같아. 지영이가 무안해 할까봐 얼른 변명하는 말을 했다. 사실 돈이 아깝긴 하다. 벌써 지출이 얼마인지 짐작도 안 간다. 하룻동안 평생에 처음 해 보는 문화생활을 해 보지만 마찬가지로 하룻동안 돈을 이만큼 많이 써 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도, 그래도! 여자애랑 노는 데 그런 거 아까워 하면 남자가 쓰나! 이 정도야,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지영이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지영이가 나랑 놀아서 좋아해준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당당하게 말하니 지영이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환하게 웃음이 터진다. 아, 정말 귀엽다. 점수 좀 땄으려나. 멋진 녀석으로.


“이건 어때?”

“응, 예뻐.”

“이건? 귀여워?”

“응, 귀여워.”

“이건 이건?”

“다 좋아. 너가 하면 다 예뻐.”

“에헤헤헤~ 너무 방방 띄워 주는 거 아니야!”

“후훗, 사실인데.”


다음으로 들른 곳은 작은 팬시점. 지영이는 머리핀 같은 걸 차 보며 나한테 보여주며 말한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전부 귀엽다. 사실 그런 귀여운 물건들이 예쁘긴 하지만, 착용하는 사람이 지영이니까, 뭘 해도 귀엽고 예쁜 게 사실이다. 지영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계속 포즈를 취해본다. 조금 자신감이 생겨 칭찬까지 하니 지영이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 몇 억원 정도 어치의 미소를 잔뜩잔뜩 보여준다. 볼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아, 여자가 요물이라더니 그 말이 맞나봐.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인식이 들 지경이다. 지영이는 분명 별개의 생명체일거야. 엘프라던가, 천족이라던가, 그런 거.


“후아─ 재밌었다, 오늘.”

“응, 나도.”


터미널에서 나오며, 지영이는 기지개를 쭉 키며 말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그리 재미있진 않았지만, 그냥 지영이랑 같이 있어서 마냥 좋은 것이지. 웃는 얼굴도 잔뜩 보고, 지영이 손도 스쳐 보고. 후후, 좀 변태 같네, 나.


“여기서 갈게.”

“으응, 데려다줄게.”

“어……우리 집 알아?”

“아니, 지금 같이 가려구.”

“에에~~ 헤헤헤. 그래, 데려다 줘.”


나는 능청스럽게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지영이에게 말했다. 지영이는 내 재치 있는 대답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훗, 이건 확실히 좋은 이미지 쌓였을 것 같은데. 아무렴, 집 데려다주겠다는데 좋은 이미지 아니겠어?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아오! 짜증나서.”

“…….”


집 가는 길에도, 지영이는 말을 쉬지 않는다. 어쩌면 참새처럼 병아리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건 지영이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영이의 말을 경청했다. 괜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조금씩, 마음을 굳히고 있다. ……고백하기로. 질질 끄는 건 싫어한다. 뭔가 막혀있는 것도 싫다. 곧게, 굳건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좋다. 이 정도로 미묘한 관계라면, 충분히 고백해도 괜찮을 터. 아니,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 마음 표현하는 건데 그게 잘못됐어? 오히려 멋진 거 아니야?!

지영이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테 싫은 감정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좋으니까, 이렇게 주말에 먼저 놀러가자고 말한 것 아닐까. 솔직히, 여자애 쪽에서 먼저 말하기 힘들잖아? 보통 연애라는 게 그렇잖아. 말은 남녀평등, 당당한 여자 그렇게 말하지만 솔직한 말로, 남자 쪽에서 해준다면 여자애들도 좋잖아. 아직까지 사회의식도 여자애가 먼저 말하면 좀 껄끄러운 분위기고. 아니, 그건 나만의 착각인가.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고백할거다.


“갈게.”

“어…….”


……라고 생각은 했는데, 막상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고백하려고 마음먹으니까 도저히 지영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 재잘재잘 떠드는 지영이의 도톰한 입술. 긴 생머리. 나풀나풀 거릴 때마다 달달한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아아, 어떻게 말하지! 그렇게 고민만 하며 지영이네 아파트 앞까지 왔다. 지영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사한다.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저기, 지영아!”

“응?”


떨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어떻게든 마음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지영이를 부른다. 지영이는 아파트로 들어가려다 홱 몸을 돌려 내 쪽을 본다. 다시 지영이 얼굴을 보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머릿속으로 멋지게 고백할 말을 준비했는데,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햐얘진다. 망했어, 망했어. 온 몸이 저릿저릿해서 잘 안 움직여진다. 사고회로 정지. 감각회로 지나친 활성화. 시스템 과부화. 안정을 위해 10초 후 자동 종료. ……뭐라는거야?! 얼른 고백 하라고, 멍청아! 기회를 버리지 마!!


“그………….”

“뭐 할 말 있어?”


‘그~’ 하고선 말을 못 잇는 나를 보고, 지영이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묻는다.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멀거니 쳐다보는 지영이를 보니까 더 이상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말한다.


“너 좋아해. 나랑 사귀어줄래.”

“……엣?!”


너무나 평범한 고백. 훨씬 멋지고, 훨씬 괜찮은 단어들은 잔뜩잔뜩 생각했는데. 모두 새하얗게 초기화되고 나온 말이 결국엔 저거다. 그나마도, 저 짧고 무뚝뚝한 말 했다고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뛴다. 축구를 90분 연속으로 뛰어도 이렇게 심장이 뛰지는 않을 거다. 얼굴 역시 터질 듯이 빨갛게 됐다. 그냥 온 몸이 다 달아오른 것 같다. 지영이는 순간 의문인 표정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깜짝 놀라며 양 손으로 볼을 가리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 깜짝 놀란 표정. 그리고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그, 그, 그러니까, 지금 고백…… 한거야?!”

“어…… 맞아.”

“에에에에에~~!!”


지영이는 한 눈에 당황한 게 티가 날 정도로 잔뜩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다. 내 대답에 더욱 놀라며 손으로 눈까지 다 얼굴을 가린다. 그러더니 손을 조금 내려 코와 입은 가린 상태로 나를 쳐다본다. 뭔가 아니꼬운 것 같기도 하고, 울적해 보이기도 하고 삐친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으로. 얼굴은 새빨개져서. 그러더니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 손은 내려 가슴 쪽에 가져다대고, 남은 손으론 입을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내 눈을 전혀 마주치지 못한다. 부끄러워하는 건가, 지영이. 저런 모습은 정말 의외인데.


“좋, 좋아하는 줄 전혀 몰랐는데!”

“엣, 진짜. 난 다 티 나는 줄 알았는데.”

“몰라! 바보야!”

“어어…… 미안.”


어째서인지 사과하고 있다. 새침한 지영이의 반응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답을 해주진 않지만, 적어도 내 고백에 거북하다거나 싫어하는 반응은 아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얼굴에 미소가 번지려 한다.


“그, 그러니까…… 아, 아직은! 솔직히 대답 못 하겠어. 누, 누구 사귀어 본 적 없으니까.”

“어, 응, 그렇지.”

“조금만…… 생각 정리하게 해 줘. 그럼 말해줄게.”

“어, 어! 그래, 알았어.”

“……그렇다고, 내가 안 사귀자고 했다고 막 어색해하기 없기! 알았지?”

“응응, 당연하지!”

“히히힛. 잘 가, 데려다 줘서 고마워!”

“어.”


지영이는 잔뜩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말한다. 끝에 가서는 거의 우기듯이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영이는 심통을 부리듯 말하다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말한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진지하게, 저렇게 긍정적으로 고민해보겠다고 하는 건…… 역시, 역시! 나는 나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영이는 발그레해진 볼로 헤헤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뛰어 아파트로 들어간다. 잠시동안 지영이가 들어간 아파트를 멍하니 쳐다본다.


“끄아아아아아!!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뭔지 모를 쾌감으로 온 몸이 활성화됐다. 지금이라면, 차에 치여도 내가 부서지는 게 아니라 차가 부서질 것 같다. 끓어오르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잔뜩 전력질주하고 있다. 전혀 힘들지 않다. 아니, 오히려 기쁘다. 너무 좋다. 첫째로는 오늘 지영이랑 데이트 해서 기쁘고, 둘째로는 고백을 해서 마음이 뻥뻥 뚫린 듯 시원해서 좋고, 셋째는, 지영이의 저 반응! 거의 100% 받아준 거잖아!! 솔직히 지금 당장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그런 거지, 좀 생각 정리하면 바로 말해주겠다는 거잖아! 끄하하하하! 이제 정웅도의 시대가 왔다! 나도! 여!자!친!구!!! 꺄하하하하!! 민주새끼한테 잔뜩 자랑해야겠다. 현광이한테도! 하하하하!!




“와 진짜? X나 쩐다?”

“그람! 마, 나 상남자 정웅도 아니냐.”


다음날, 학교. 민주와 현광이에게 자랑스럽게 어제의 일을 말했다. 둘만의 비밀 같은 걸 바로 친구들한테 말하니 뭔가 입이 싸 보일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들은 굉장히 친한 녀석들이니까. 또, 남자애들답게 입이 가벼운 애들이 절대 아니니까. 현광이는 뭔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친다. 나는 더욱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기분이 잔뜩 좋아진다.


“그래서, 사귀자고 말은 들었어?”

“아니, 아직. 학원 가면 말 해주겠지.”

“그러니까, 어제 하루 호갱님 짓거리 하고 고백했다, 그런 말이네.”

“너는 그러니까 안 되지, 민주야. 어떻게 생각을 해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하냐.”


민주는 뭔가 불퉁한 태도로 말한다. 녀석, 백날 여자애들하고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친하면 뭐하냐. 나처럼 실리가 없는데. 나처럼 한 우물만 파야지.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민주는 약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네가 돈 다 쓴 건 맞잖아. 호갱님아.”

“아하하, 여자친구 사귀는 데 그 정도 투자도 안 하면 어떡하냐. 솔직히 너가 여자애면 그렇게 한 푼 두 푼 아끼고 빌빌대는 남자가 좋겠냐?”

“뭐여, 다 같이 귀한 아들딸인디, 똑같이 용돈 받아 사는디 누가 누굴 사줘. 네가 뭐 오빠여? 갸가 뭐 동생이여?”

“하여튼, 이러니까 안 되지. 됐다, 너랑 또 싸우긴 싫으니까. 그래, 나 호갱님이여. 불만 있어?”

“……아니, 그냥. 싸우자는 건 아니여, 그려, 내가 워낙 부정적이라 그랬다. 축하한다, 사귀는 거.”

“그래, 고마워.”


민주는 내 말에 잔뜩 아니꼬운 표정으로 자꾸 시비를 걸려 한다. 한 두 번 그러는 게 아닌 민주지만, 오늘만큼은 관대하게 넘어가려 한다. 비꼬듯 말하니 민주는 꼬리를 내리며 사과하는 투로 말한다. 나도 그러지만, 민주 역시 나랑 또다시 싸우는 건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겠지. 방긋 웃으며 민주의 말에 대답했다. 민주는 금세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 새끼 인자 대놓고 우리 무시하고 지영이랑만 다니겠네! 하! 현광아, 서러워서 어디 살겠냐.’ 하고 말한다. 현광이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너도 한 명 잡고 사귀어.’ 하고 말한다. 민주는 ‘마, 누군 안 사귀고 싶어서 안 사귀냐. 물고기가 안 걸리는데 어떡하라고.’ 하고 말한다. 나는 그런 민주와 현광이의 대화를 듣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까똑!’

“얼씨구. 또 시작이구만.”

“흥. 후훗.”

“뭐랴?”

“별 건 아니고, 뭐하냐고.”

“흐흥, 좋을 때다.”


문자가 온다. 기분 좋게 휴대폰을 보니 지영이. ‘수업 엄청 지루해 ㅠㅠ 뭐해?’ 하는 내용. 민주는 질색인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고 휴대폰에 집중한다. 민주는 여전히 옆에서 툴툴대지만 그 속엔 부럽다는 투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현광이는 마냥 축하한다고만 한다. 아, 기분 좋다.


작가의말

저녁으로 청국장을 먹었네요. 청국장 좋아하세요? 엄청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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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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