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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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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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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2.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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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19화. 뒷풀이! - 1

DUMMY

“건배!”

“예~~!!”


상 위에 가득한 안줏거리.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병들. 어두운 조명에, 깔깔대며 웃고 있는 여자애들. 아아, 뭐지, 여긴. 천국인가. 발할라 같은 곳인가. 머리가 알딸딸한 것이 눈앞이 천천히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굉장히 좋다. 얼굴이 벌개져서 미래와 성빈이에게 잔뜩 화내고 있는 희세. 과장된 우울한 표정으로 그런 희세를 쳐다보는 성빈이. 지지 않고 마찬가지로 화내고 있는 미래. 나는 멀거니 그런 여자애들을 보고만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이런 게 주지육림이라고 할까. 남자가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욕구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정한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나는 그걸 ‘산적 욕구’ 라 칭한다. 도적이든, 산적이든, 해적이든, 그들이 가장 원하던 세 가지의 욕구가 있거든. 말하자면 각각 『술』, 『고기』, 『여자』다. 그래, 그 세 가지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 모든 걸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따지고 보면 그렇게나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엔 안정적인 직장에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 싶어서가 아닌가.

원론적인 입장이라면, 나는 지금 그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뒹굴고 있는 술병에, 아 지금 나도 취해 있고. 질릴만큼 많이 있는 안줏거리는 전부 고기다. 그리고 앞에 있는 여자애들. 아하하. 여기가 천국이구나. 여기가 낙원이로구나. 어화둥둥 좋구나. 좀 더 떠들어 보거라, 좀 더 귀여운 목소리로 앙탈을 부려 보거라, 여자애들아.




─“뒷풀이 해요!!”

“뒷풀이?”


미래는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로 말한다. 성빈이 역시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미래를 쳐다본다. 쉬는 시간, 나와 성빈이 자리 쪽으로 미래가 폴짝 뛰어와 말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특유의 갈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네! 이제 1학기도 끝났잖아요!”

“응, 그렇지.”

“종업식 하는 날에! 저녁에, 저희 집에서 파티 해요!”

“와, 재밌겠다.”

“그치 그치? 히히힛. 오빠 승인만 있으면 되요!”


미래는 또 무슨 괴상한 계획을 짜고 있는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성빈이도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어째 나랑 희세한테는 존댓말이면서 성빈이랑 리유한테는 또 반말을 쓰는 미래다. 뭔가 자기 안에 기준 같은 거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무슨 권력이 있다고 나한테 승인을 받아?”

“나머지 사람들은 오빠 간다고 하면 다 갈 거에요. 그치, 성빈이 갈 거지?”

“어? 어어, 가야지! 다 같이 간다면.”

“봐요! 파티! 파티 해요, 파티!”

“에휴.”


미래는 성빈이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더욱 나에게 승낙을 강요한다. 그래, 말하는 건 좋은데 꼭 그렇게 시끄럽게 말해야 하나. 눈을 찡그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파티라는 것 자체야, 누가 반대하겠어.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맛있는 것 먹으면서 떠들고 노는 건데. 하지만 뭔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들잖아. 그래, 이 맛은…… 아니, 이 느낌은. 내 안 제 6의 기관, ‘촉’의 발동이다.


“뒷풀이?”

“어. 하자는데. 미래가.”

“네, 해요 해요 언니!”


나는 그대로 희세에게 가 묻는다. 내가 혼자 결정을 못 내리는 우유부단한 남자라 그런 게 아니다. 희세에게도 물어봐야지, 엄연히 밥 패밀리 맴버인데. 리유는 보나마나 승낙할 테고, 성빈이는 방금 가고 싶다고 동의를 했으니까. 내 뒤에 따라온 미래가 아직도 격앙된 상태로 활기차게 웃는 얼굴로 말한다. 희세는 왼쪽 눈썹을 치켜 올려 뜨며 입을 꾹 다문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한다. 읽던 책은 내려놓는다.


“뭔가 썩 내키진 않는데.”

“그치, 그치? 너도 그래? 나도 그랬는데.”

“……아, 아니, 그냥 그렇다고. 파티 하면 하지, 왜?”

“아 그래.”


희세의 떨떠름한 반응에 나는 공감을 느끼며 말했다. 이에 희세는 갑자기 떨떠름한 표정이 돼서 말을 바꾼다. 뭐야, 청개구리 심보도 아니고. 미래는 희세의 말에 ‘그쵸 그쵸?! 그럼 언니도 하자는 거 맞죠?!’ 하고 흥분을 못 감추며 말한다. 얜 왜 이래. 좀 진정부터 해라.



미래가 이렇게 날뛰는 건, 얼마 뒤에 종업식과 방학식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벌써 한 학기가 지났네. 그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 다 요약해서 말하긴 그렇고, 가장 큰 건 역시 친한 여자애들이 생겼다는 거지. 리유, 성빈이, 희세, 마지막으로 미래. 미래 이후로는 그렇게 친한 애들은 없는 편이다. 정희나, 성미 정도하곤 중간 정도로 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반의 나머지 애들하고 안 친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 같이 다니는 네 명의 여자애들만큼 친한 애들은 없다.

남자 중학교를 다니던 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기 힘들겠지. 지금은 중학교 때 남자애들에게 느꼈던 만큼의 유대감을 이 여자애들에게 느낀다. 아니, 좀 아쉬운 면이 있긴 하지만. 같이 축구나 농구 같은 걸 못하고, 또 야한 얘기를 못한다는 점이나 야동 공유를 못한다는 점도 무척 아쉽지만. 그래도, 평생을 살아가며 여자애들이랑 이만큼 친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기하네.


“그러니까, 종업식 하는 날?”

“네! 그 날은 오전수업만 하고 일찍 끝내준다니까! 어때요?”

“뭐…… 괜찮겠다. 응, 갈게.”

“이야아!! 우헤헤헤. 저희 집에서 하는 거에요! 알겠죠?”

“으응. 뭐 챙겨갈 거 없어?”

“됐어요, 제가 다 준비할게요! 다들 몸만 오면 되요! 우후후후후. 최고로 재미있는 파티를 만들어 드릴게요!”


나는 생각을 마치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촉이 안 좋다고 느껴지지만 기분 탓이겠지. 뭐, 애들끼리 간단히 모여서 먹고 마시는 파티인데 별 일이야 있겠어. 오히려 내가 좋다고 덥썩 받아들여야 할 일 아니겠어? 늘 다섯 명이서 모여 밥을 먹곤 하지만, 또 이렇게 파티 같은 걸 하는 건 각별하지. 미래는 내 대답에 펄쩍 뛰며 좋아한다. 그렇게나 좋을까. 스스로 나서서 하는 걸 좋아하는 미래는 벌써부터 파티를 할 생각에 신이 나는 모양이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휴대폰을 잔뜩 쳐다본다.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그런 미래를 쳐다보고 자리로 돌아간다.


“파티, 재미있겠네?”

“어, 어! 응…….”


가만히 앉아 있는 성빈이에게 말했다. 성빈이는 살짝 놀라는 듯 움찔 하더니 작게 대답한다. 음, 뭐 딴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나. 놀랄 것까진 없는데. 뭔가 어색해 보이는 성빈이의 반응이다.


종업식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다. 어차피 이어지는 여름방학도 방학이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학년이 끝난 것도 아닌 한 학기가 겨우 끝난 사소한 것이다. 이어지는 첫 여름방학엔 첫 여름방학 보충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아하하. 젠장, 못 살겠네.

그런 종업식이다. 별로 중요한 게 못 된다는 것이다. 방학식조차 어차피 방학이 큰 의미가 없기에 별 것 없이 끝낼 판인데, 하물며 종업식이야. 그래도 좋은 점은 딱 한 가지 있다. 그 날 하루 수업을 안 하고 일찍 끝내준다는 점. 뭐, 그거야 기말고사 끝나고 부터는 의미가 없긴 하지만.

기말고사, 나름대로 자랑할 만한 성적이 나왔다. 희세나 성빈이 만큼은 아니지만. 아, 희세는 이번에도 화려하게 전교 1등. 정말, 무시무시한 여자애라니까. 성빈이도 전교 20등 안에 들어 실력을 과시한다. 나는…… 뭐, 오를 만큼은 올랐다. 엄마가 보고 흡족해할만큼은 되니까. 미래도 그럭저럭 성적이 나온 편이라고 한다. 떨어진 건 리유 뿐이려나? 역시, 희세가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금세 떨어져버리잖아. 나랑 미래는 희세 교육을 받아서 성적이 오르고.


“자, 갈까요?”

“그래, 가자.”

“와와~~ 신난다! 먹을 거 많아?”

“응, 많아! 잔뜩 준비해 놨거든!”


종업식이 끝나고, 우리 다섯 명은 나란히 미래를 따라 가고 있다. 미래는 의기양양해서 앞장서서 가고 있다. 그 옆으로 리유가 붙어서 활짝 웃으며 걷고 있고, 나는 뒤에서 양 옆에 희세와 성빈이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어떤 놈이야, 종업식 날 수업 안 한다고 한 녀석이. 질리게도 종업식 오전 수업까지 제대로 수업을 했다.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종업‘식’이라고, ‘식’자가 붙었잖아?! 강당 같은데라도 모여서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담임선생님이 ‘오늘 종업식이에요! 한 학기동안 수고 많았어요. 자, 끝!’ 하고 끝났다. 간단해서 좋긴 한데. 뭔가…… 이상하잖아. 이래서야 그냥 야자만 안 하고 끝나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뭔가 억울하다.


“뭘 봐.”

“아니, 그냥 본 건데.”

“흥.”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며 힐끔 옆의 희세를 쳐다봤다. 굉장한 시비조로 내 시선을 차단하는 희세. 기말고사 전에 공부했을 때에는 되게 살가웠는데. 요즈음은 갑자기 저렇게 쌀쌀맞아졌다. 아니, 쌀쌀맞긴 그 전에도 그러긴 했는데. 요즈음 희세의 쌀쌀함은 뭐랄까, ‘부끄러운 걸 감추려고 하는 신경질’이 아니라 정말 쌀쌀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귀엽지가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짜증나. 아니꼬운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대하는 희세. 그 기세가 무서워서라도 시선을 돌린다.


“…….”

“……응? 뭐 할 말이라도?”

“아냐, 그냥 쳐다봤어.”

“변태새끼니까 또 이상한 생각 했겠지! 바보.”

“어이어이, 나라고 뭐 쳐다볼 때마다 그러는 줄 알어.”

“그럼 이상한 생각 한다는 거잖아! 흥!”


시선을 돌려 성빈이를 쳐다보니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아니, 난 그냥 쳐다본 건데. ‘그냥, 너 예뻐서.’ 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 수작 거는 것 같은 상투적인 말인지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희세는 또 시비조로 말을 한다. 분명 자기 쪽에서 먼저 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 것 같은데. 어느 때부터인가 다시 칭호가 ‘변태새끼’로 돌아갔다. 뭐, 나야 속 편하지. 희세는 어째 아까부터 시비조다. 성빈이도, 뭔가 아까부터 날 보고 머뭇거리는 것 같고. 이상하네.


“우후후후후. 자, 그럼! 들어오세요!”


적당히 걸어 도착한 곳은 미래네 집. 아파트다. 음, 대한민국 평균이지, 아파트면. 우리 집도 아파트인데. 미래는 문 앞 비밀번호를 누르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힐끔 보니 희세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성빈이는 밝은 표정. 리유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 미래가 앞장서서 다들 방으로 들어간다.




“뭐 한 마디씩 말이라도 하고 시작할까요?”

“시작하고 자시고가 뭐 있어, 그냥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흥, 감상도 뭣도 없구나. 네가 대표로 말해.”

“아니, 왜 내가.”


미래의 말에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에 희세는 퉁명스럽게 나를 훈계하는 투로 말한다. 뭐야, 얘네는 뭐만 하면 다 나한테 맡기려고 하데. 한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거실에 큰 상 두 개를 붙여 다섯 명이 둘러앉았다. 과연 들어오자마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만든 것도 있고, 배달시킨 음식도 있다. 만들어주신 미래 어머니께 인사드리려 했는데 아무도 안 계신다. 미래는 방긋 웃으며 ‘우리끼리 놀 거니까 엄마랑 아빠 외식하라고 부탁했거든요! 어때요, 완벽하죠?’ 하고 말하는 미래. 허허, 그래. 완벽하다.


“험험. 나는…… 아하하, 이것도 자리라고 앞에 서니까 창피하네.”

“그냥 적당히 말 해! 남자새끼가 병신처럼 그런 것도 못해.”

“아하하하.”

“알았어, 대충 하면 되잖아, 것 참.”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려니까 좀 부담된다. 여자애 네 명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쳐다보고 있는데. 게다가 내 말이 끝나야 먹을 걸 먹는다니까 더 그렇다. 뒷머리를 긁으며 살짝 붉어진 볼의 열기를 느끼는데 희세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미래가 깔깔 웃는다. 괜히 창피해져서 나 역시 조금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큰둥한 표정의 희세.


“너희랑 놀게 돼서 참 영광입니다. 너희처럼 착하고, 예쁘고, 멋진 여자애들하고 지내게 돼서 영광이야. 다음 학기도, 아니 다음 학년도. 고등학교 3년 내내 잘 부탁해. 나도, 재미있고 즐거운 학교생활 될 수 있게 노력할게. 고맙다.”

“오오~ 오빠 멋있어요!”

“……흥, 뭐. 내가 예쁜 건 만천하가 아니까 그런 건 칭찬이 아니잖아.”

“……별로 안 예쁜데.”

“이제 먹어도 되는 거야! 응?!”


말하다보니 조금 진지한 분위기로 말하게 됐다. 솔직한 심경이니까. 여자애들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정웅도빠(?) 같은 분위기의 미래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마치 아이돌 극성 팬처럼 나를 올려다보며 부담스런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성빈이는 ‘예쁘다’는 말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발그레 하곤 귀밑머리를 넘긴다. 리유는 그러거나 말거나 얼른 먹고 싶어서 안달난 모양이다.


“자, 그럼 리유 차례!”

“에엣?! 다, 다 하는 거야?! 그럼 언제 먹어!!”

“리유만 특별히 해, 그 다음 바로 시작할게.”

“응, 그럼!”


미래는 분명 내 말만 한댔는데 어째 리유까지 불러 세운다. 먹을 걸 먹고 싶어 안달이 난 리유한테 무슨 만행인지.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처럼 리유를 잘 구슬리는 미래의 솜씨에 절로 감탄이 지어진다. 미래의 꾀임에 넘어간 리유는 벌떡 자리에 일어나 애들 앞에 선다. 나는 어째 무안해져서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나도, 웅이처럼 너희가 너~무너무 좋아! 히힛.”

“……”

“웅이도, 비니도, 히이도, 미리도 친구 없는 나한테 잘해주니까, 이젠 따돌림 당하는지 어쩐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요즘은 다른 애들은 신경도 안 써. 너희만 있으면 되는걸!”

“……응, 그럼 됐지.”

“이제 먹자! 먹어도 되지? 미리야?”

“응응, 먹어, 먹어!!”

“아하하하하.”


리유의 말에 불현 듯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리유 따돌림 당하고 있던 거. 그 왕따 당하는 거, 내가 해결해주기로 약속했었는데. 감쪽같이 잊고 있었어. 우리들 사이에서 밝게 웃고 있지만 분명 기억하고 있었구나, 리유. 희세도 성빈이도 리유의 말에 그리 밝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미래는 성격상 ‘에? 따돌림? 무슨 말이야?’ 하고 물어볼 법도 한데 환히 웃으며 리유에게 말한다. 아마 리유 생각해주는 거겠지. 착해, 착해, 다들. 옆의 성빈이에게 빙긋 웃으며 ‘먹을까, 우리도?’ 하고 말했다. 어색해하며 ‘응.’ 대답하는 성빈이. 뭔가 많이 밋밋하지만 파티 개시다.


“흐음.”


느긋하게 닭다리를 뜯으며, 잔에 담긴 콜라를 보며 작은 신음을 낸다. 미래와 리유는 자기들끼리 재잘재잘 떠들며 먹느라 정신이 없다. 둘이 생각보다 친하구나. 희세는 파티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게 TV를 틀어 보고 있다. 이런, 이렇게 분위기 안 맞추고 개인행동 하려면 왜 온 거야. 언짢은 표정으로 희세를 봐도 희세는 끄떡도 안 한다. 성빈이를 힐끔 보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왜?”

“아, 아니, 뭐가?”

“음…… 기분 탓인가, 나만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것 같아서.”

“노, 놀라기는! 잘못 본 거겠지. 그, 타이밍 같은 거 있잖아? 그런 타이밍에 나랑 눈 마주쳤는지도 모르고.”

“그런가.”


성빈이는 얼굴까지 살짝 상기되며 말한다. 애써 웃고 있지만 표정이 억지 웃음이란 게 환히 티가 난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나. 사람이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결국 티가 난단 말이지. 특히 성빈이는 그런 걸 전혀 못 하는 부류 같고. 성빈이는 무엇인가 감추는 것처럼 빙빙 돌려 변명한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나보지. 친구 사이에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게 있잖아. 가뜩이나 여자애인데. 나는 친절한 상남자니, 여자애의 비밀을 그렇게 함부로 캐지 않지. 훗.


“닭 좀 먹어, 맛있어.”

“흥, 너나 많이 드세요. 난 됐으니까.”

“살 빼? 접때 주말에 보니까 좀 살 찐 것 같던데.”

“뭐, 뭐?! 이게 미쳐가지고! 누, 누가 살 쪄! 이 완벽한 몸매를 보고도 살쪘다는 말이 나와?!”


나는 괜히 희세에게 시비를 걸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시비를 걸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희세한테는 시비를 걸었다 괜히 어색해지는 빈도 수가 상당히 많았고, 사감선생님한테는 도리어 내가 약점 잡히거나 난처한 경우가 생겼다. 전문용어로 ‘역관광’이라고 할까. 그런 위험부담을 짊어지고도, 나는 희세에게 시비를 걸었다. 파티 시작 전 학교에서부터 뾰로통한 느낌이잖아. 말 걸어도 별로 호응도 안 해주고, 퉁명스럽게 툭툭 내뱉기만 하고. 해서 한 번 휘저어보려는 느낌으로 말했다.

물론 희세는 전혀 살이 찌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여자애들이 ‘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거기다 ‘살쪘네’ 하고 대놓고 도발을 하니.

냉정하고 도도한 희세지만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굉장한 기세로 나에게 빠르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도도하고 요염한 자세를 취한다. 아니, 요염 까지는 아닌데. 어쨌든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허리를 곧게 하고 손을 허리에 두고 나를 쳐다본다. 반대편 손으로 옆머리를 촥 뒤로 재낀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니 교복 단추가 터질듯한 기세로 팽팽해진다. 음. 아주 좋소. 그 밑으로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 라인과 다시금 곡선을 그리는 골반 라인도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빤히 쳐다보는 걸 느낀 희세는 ‘뭐, 뭐야! 뭘 그리 빤히 쳐다봐, 변태!!’ 하며 도로 자리에 앉는다. 허 참, 보라고 방금 자기가 일어나 놓고. ‘어이어이, 보라고 한 건 너잖아.’ 하며 반박하자 희세는 억울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으으…… 그래도! 그렇게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면 당연히 창피하잖아!! 변태새끼야!!’ 하고 말한다. 그야말로 모순이구나.

그래도 도발이 영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닌지 나와 희세 사이의 경직된 분위기는 많이 풀린 것 같다. 다시 예전처럼 새침한 반응으로 돌아왔으니까. 부끄러워하며 얼굴이 상기된 희세는 여전히 귀엽다. 그래, 희세는 이렇게 새침데기여야 제 맛(?)이지.


“아하하! 제가 파티를 즐겁게 하려고, 특별 소품을 마련했어요.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

“쟨 또 뭐 한다고…….”


막 희세와 말을 끝내고 있는데 리유와 떠들고 있던 미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특유의 하이 톤의 밝은 목소리가 지금은 왠지 신경쓰인다. 리유는 ‘와~~! 뭔데 뭔데? 특별 소품!’ 하며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미래는 까르르 웃으며 부엌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낑낑거리며 큰 검은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가지고 온다. 잘강잘강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유리병 같은데.


“아하하하! 뭔지 맞춰 보세요! 오빠!”

“뭔데. 얼른 꺼내, 나 이렇게 뜸 들이는 거 싫으니까.”

“에헤헤, 그럼~”


나의 별로 좋지 않은 심드렁한 반응에 미래는 방긋 웃는다. 그리곤 봉투에서 확 무엇인가 들어 꺼내 놓는다.


“야, 그거…….”

“에헤헷☆”


작가의말

제가 많이, 늦었지요?

오늘은 별로 한 것도 없이 잉여롭게 하루를 보냈네요.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겠지만 오늘, 꽤나 최악의 하루였네요. 그냥 그래요. 항상 하는 미룸이지만, 내일은 많이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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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5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3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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