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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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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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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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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글자
19쪽

21화 - 3

DUMMY

“여어.”

“이야아아앙~ 히히히.”

“사람들 있는데 왜 그래, 창피하게.”

“엣! 변했어! 웅이 변했어!! 실망실망!”


리유는 거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고 저 쪽에서부터 달려와 품에 껴안는다. 리유가 키가 한참 작아 어째 하반신 미묘한 곳에 얼굴을 문대는 것처럼 돼 버린다. 그보다도 바깥에 사람들 많은데 이러니 나는 심드렁하게 리유를 떼어내며 말했다. 이제는 워낙 익숙해져서,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니다. 리유는 마치 실연의 충격을 받은 여자애 같은 얼굴을 하며 말한다. 뭐, 그러려니 한다. 워낙 미래가 리유보다 훨씬 대단한 드립을 많이 쳐서 이제는 그다지 동요하지도 않게 됐다.


“뭐 할까.”

“나 만나는 것만으로 두근거리지 않아?”

“흠, 글세. 희세나 성빈이 정도면 생각해볼만 할 것 같은데.”

“에엣! 나, 나랑 노는데 왜에~!! 비니랑은 맨날맨날 같이 일하잖아!”

“그것도 이제 끝났네요.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리유는 어울리지 않는 수작질을 한다. 눈을 깜빡깜빡 귀엽게 뜨면서. 내 장난스런 대답에 리유는 정말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곧 내 팔에 매달려서 어린애처럼 징징댄다. 싱긋 웃으며 말하고 걷기 시작한다.


토요일은 언제나 평화롭다. 특히나 방학 때의 주말이라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봉사활동 100시간에 사로잡혀 주말이고 뭐고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그 얼마 전에 모든 일을 끝냈다. 선생님이 좀 시간을 후하게 쳐준 것도 있다. 얼마 안 했는데 올려서 1시간으로 쳐준다던가. 그래도, 얼추 80시간 이상은 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겨우 모든 시간을 채우고 순수한 주말을 맞이한 게 바로 오늘이다. 느긋하게 쉬어볼까 하는데 리유가 놀자고 성화를 부린다.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또래 여자애가 놀자고 하면 어찌 거부하겠나. 어차피 쉬는 건 일요일에도 쉴 수 있으니까, 느긋하게 놀아볼까 하고 선선히 승낙했다.


“근데 진짜 어디 가.”

“흥! 어차피 나랑 놀아도 히이랑 비니 생각만 하면서!”

“아아, 농담이라니까. 삐쳤어?”

“안 삐쳤네요! 흥흥.”

“삐쳤다고 온누리에 광고를 하고 다니는구만.”


리유는 풀이 잔뜩 죽어서 흥흥거리며 말한다. 몸은 아예 내 쪽에서 반대로 돌리고 목소리도 ‘나 삐쳤어요’ 하는 기죽은 톤으로 말한다. 하는 수 없이 리유을 톡톡 친다. ‘왜!’ 하고 짜증스럽게 말하고 홱 몸을 돌리는 리유. 말없이 덥석 리유의 손을 잡았다. ‘엣.’ 하고 놀라는 리유.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앞으로 걸어가니 리유는 마음에 들었는지 살며시 웃는다. 훗, 네가 아무리 삐쳐도 난 너의 행동패턴을 대부분 알고 있단다, 리유야. 잡던 손을 놓고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눈을 가늘게 뜨고 느끼는 표정을 지으며 까르르 웃는다. 흐흥, 그게 그렇게나 좋을까. 좋아하는 반응이 너무 귀여워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강아지 같아.


“아!!”

“깜짝이야. 왜?”


손잡고 묵묵히 걷는다. 근데 리유 녀석, 정말 어디 갈지, 뭐하고 놀지 말을 안 해서 목적 없는 걸음이 계속 되고 있었다. 갑자기 리유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움찔 놀란 나. 리유는 놀란 표정으로 반대편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킨다.


“저, 저거!”

“저거?”


리유가 가리킨 쪽에는 남녀 두 명이 걷고 있다. 둘 다 검은색 일색으로 정장 차림. 남자 쪽은 키도 훤칠하니 잘 생겨 정장과 몹시 어울린다. 흠, 나도 저런 정장빨을 받고 싶은데. 남자가 봐도 잘 생겼다. 여자는 완벽한 정장은 아니고 세미 정장 같은 느낌인데 곱게 화장한 얼굴에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꼭 회사 다니는 OL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어떻게 보면 여선생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자 역시 눈에 확 들어오는 미인인데가 몸매가 엄청나서, 특히 가슴 쪽이 대단해서 시선을 확 끌어 모으게 된다. 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선남선녀네.

둘은 연인사이나 친구 사이는 아닌 것처럼 묘하게 거리감 있는 느낌으로 걷고 있다. 간간히 서로 얘기하며 어색하게 웃는 걸 보면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인 게 틀림없다. 헌데 나이는 얼추 30대 초반이나 그 정도로 보이는 거 보니까…… 선이라도 보는 건가?


“저 사람, 사감 선생님 아니야?”

“에이, 뭔 소리를…… …………응??”

“맞지? 맞지 않아? 저 안경이랑, 가슴이랑, 왼쪽 볼 아래 목에 점이랑.”

“기숙사 살지도 않는 애가 어떻게 그런 포인트까지 다 알고 있는 거냐.”

“에헤헷☆ 내가 좀 잡다한 거 기억 잘하지롱~”


안경이랑 가슴까진 이해하겠는데 ‘왼쪽 볼 아래 목의 점’은 뭔데. 늘 선생님이랑 마주하고 사는 나도 전혀 모르는 포인트인데. 리유는 내 말에 칭찬으로 알아듣고 옆머리를 귀로 넘기며 수줍어하며 웃는다. 딱히 칭찬은 아니었는데. 리유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사감 선생님 같다. 아니, 저게 사감 선생님이라니! 내 사감 선생님이 이렇게 예쁠 리가 없어! 최근 사감 선생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만? 사감 선생님이 히스테리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생들이 나빠! 아니아니, 드립 좀 작작 치고.

하긴, 항상 기숙사에서 봐 오던 선생님은 굉장히 털털한 모습이었지.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우리 누나처럼. 학교에서도 기본적인 메이크업 정도만 하셨지 저렇게 엄청 꾸민 적은 없었구나. 그럴 필요도 없고, 여고인데. 남자친구도 없으시다고 하고, 꾸민 걸 볼 기회가 없구나. 그렇다고 저 정도로 변하실 줄은 전혀 몰랐는데.

제대로 꾸민 선생님은 정말 예쁘시다. 나이도 한 3살 정도 더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TV에 나오는 OL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묘한 색기와 묘한 청순함과 묘한 귀여움을 전부 갖추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희세, 성빈이, 리유가 어른이 된 다음 셋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일까. 잠깐, 그러면 호러잖아. 입고 있는 정장은 더욱 가슴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부담스럽거나 그러지 않고 매우 잘 어울린다. 적당한 눈화장은 은근한 색기를 강조하고, 긴 생머리와 흰 피부는 청순함을 배가시킨다. 정말, 여자는 저렇게까지 변신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눈에는 못 알아 봤으니까. 그나마도 같은 여자인 리유니까 알아본 것일수도 있다. 리유, 어린애처럼 행동애도 그래도 얘도 여자애구나. 혼자 생각하며 리유를 보는데 리유는 그런 어린애 같은 평소 모습과는 상반되는 굉장히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장난기 많은 악동 같은 느낌.


“쫓아가자!”

“엑. 어째서.”

“재미있을 것 같잖아!”

“그다지.”

“아아아앙~ 구경하자~! 선생님 예쁘잖아! 옆에 있는 사람 남자친구인가봐! 구경하자, 구경! 선생님 평소에 맨날 짜증만 내는데~!”

“흠…….”


리유의 말에 나는 대뜸 반대부터 했다. 리유는 다시금 내 팔에 매달려 어린애처럼 생떼를 부린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지만 리유의 설득에 조금 솔깃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그런 선생님은 본 적이 없지. 남자친구한테도 나나 여자애들에게 대하듯이 날카롭고 상스럽게 대하실 리는 없다. 상냥하게 웃으면서 여자처럼 하늘하늘하게 말하는 선생님이라니, 그런 모습 상상할 수조차 없다! 확실히, 흥미가 돌긴 한다.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궁금하다고 미행까지 해서 볼 건 아니잖아.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응, 나도 흥미가 돌긴 한데. 그렇다고 미행까지 하면서 선생님 개인사를 쳐다보는 건.”

“아아앙~! 몰래 하면 되잖아! 무슨 해꼬지 하겠다는 것두 아니구!”

“그래도, 만약에 들키면 어떡하게. 그럼 선생님 데이트 망치는 게 되잖아. 그건 싫은데.”

“으응, 그래두, 그래두!!”

“어휴…….”


리유는 차분한 말투로 설득하는 내 말에도 막무가내로 대답한다. 솔직히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냥 ‘응’ 하고 승낙만 하면 될 것 같은 기세. 이거, 어린애가 ‘붕어빵 사줘~~ 사줘~~! 단비 꺼!!’ 하는 거랑 무슨 차이야. 내 말은 아예 듣는 시늉도 안 하는 것 같다. 결국 답은 하나군.


“그럼, 최대한 안 들키게 봐야 된다?”

“응응!”

“쉿! 목소리 크잖아! 자, 조용하게.”




오랜만인 것 같다, 이런 기분. 마음 편하고, 느긋한 느낌. 여자라는 이유로 떠받들어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따르기만 해도 되는 이 기분─ 여자라서, 행복해요.

정민 씨는 굉장히 교양 있는 사람 같다. 카페에서 조금 얘기한 것과, 지금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 그 짧은 시간동안 보여준 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면 그렇다. 말하는 수준도 확실히 조금 높은 것 같고, 깔끔한 매너라든지, 나긋나긋한 말투라든지. 크고 아름다운 떡대와는 다르게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태도가 조금 깨긴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굉장히 다정해서 좋은 느낌이다. 이런, 완전히 콩깍지 씌어 버렸네. 정신 차려라, 정혜라! 좀 더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살펴보란 말이야! 남자는 기본 다 저렇게 입만 잘 털고 속은 쭉정이인 쓰레기들이 태반이니까. 확실하게 잘 알아봐야만 해.


“어떤 걸로 드실래요?”

“저는…….”


꽤나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점심이지만 약간 어두운 조명에 은은한 분위기가 느낌 있다. 이런 데를 한 번도 안 와본 건 아니지만 얼마 만에 와 보는 건지, 대학교 졸업할 때 즈음 와 보고 온 적이 없지. 그 동안엔 분식집·인스턴트·도시락, 지옥의 트라이앵글로 거친 밥만 먹어왔는데. 오래간만에 괜찮은 음식 먹겠구나. 맘 같아선 좋아하는 것으로 마구 고르고 싶지만.


“저, 사실 잘 모르겠어서. 정민 씨가 골라주실래요?”

“아, 좀 어려웠나요. 사실 저도 여기는 좀 부담스럽게 프랑스어나 이태리어로 써 있어서. 여기요.”

“아뇨, 제가 이런 데를 잘 안 와서 그래요…… 호호홋.”


앗. 괜히 골라달라고 말했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자로 보였으려나. 멍청이! 이 정도는 스스로 고를 수 있었잖아, 스물 아홉이나 돼서! 게다가 정민 씨는 도리어 미안해하면서 종업원을 부른다. 나는 되게 어색해져서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말했다. 으으, 멍청이, 멍청이…….


“혜라 씨는, 장래에 어떤 반려자를 만나고 싶으세요?”

“네? 네, 저는…… 아무래도 저랑 잘 맞고,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때로는 남자 같은 그런 남자요.”


정민 씨의 기습 질문. 뭔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던진 것 같지만 또 굉장한 의미를 담아 물어보는 것 같다. 이미지, 이미지! 짧은 순간에 머리가 확확 돌아간다.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말하면 잘난 척 하고 똑똑한 척 하는 여자로 인식될 테고, 또 너무 가볍게 얘기하면 골 빈년이라고 오해 받을 테니까. 최대한 그런 걸 인식하면서 말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안 좋아 보인다. 흘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데. 괜히 저렇게 말했어, 그냥 평범하게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는 훌륭한 반려자요.’ 하고 말할걸! 정민 씨는 내 말을 듣고 방긋 웃는다. 아, 너무 잘 생겼잖아!!


“저는 그래요,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면서, 서로에게 너무 막 대하지 않는, 그런 부부가 되고 싶어요. 서로 존중해주고, 서로 영역을 인정해주면서. 친구도, 많이 친해졌다고 서로 지켜줘야할 것을 지켜주지 않았다 의 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잖아요? 하물며 부부는 나머지 인생을 평생토록 같이 하는데. 그랬으면 좋겠네요.”

“네…….”


아아, 멋진 남자. 얼굴도 잘 생겨서 멋진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정민 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정민 씨 뒤에 후광이 비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어디서 이런 남자가 이제야 나타난 걸까. 아니아니, 잠깐만! 이게 정혜라 너 맞아?! 무슨 군대 갔다 와서 발정 난 복학생도 아니고! 으으, 진정, 진정해라, 정혜라. 하긴, 군대는 2년이지만 나는 4년 동안 남자 한 명 안 만나고 수녀처럼 고행했으니. 좀 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아니, 그치만 이 남자, 너무 매력 터지잖아! 4년 동안 남자 안 만난 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매력 있어! 후우, 그래도 진정. 확실하게 요모조모 따져야지.


“아앙~! ㅁㅇㄴㅍㅁ!!”

“쉿, 쉿!!”


식사는 적절한 스테이크. 마음 같아선 큼지막하게 썰어 우적우적 씹으며 육즙과 풍미를 즐기고 싶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어. 조금조금 감질나게 썰어 눈치를 보며 고상하게 먹는다. 아, 답답해서 죽겠다. 간간히 정민 씨의 말 한 마디에 가련하게 웃어 보이는 게 전부. 뭔가 잔뜩 신경 쓰여서. 그렇게 가시방석 같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린애 같은 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듣던 목소리 같기도 하고. 힐끔 보니 학생 두 명이 있다. 학생이 올만한 데는 아닌데, 여기. 늘 보는 학생들이라 지겹다. 남자애, 여자애 두 명. 사귀기라도 하나, 재수 없어. 누구는 스물 아홉 되도록 남자 하나 없이 소처럼 일만 하는데. 아, 지금 남자 만나려고 이러고 있구나. 후후.

여자애는 한참 어려 보인다. 초등학생? 중학생?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남자애는 검게 탄 건강한 피부에 꽤 덩치가 있는 편이다. 얼굴이 잘생긴 건 아니지만 요새 유행하는 계집애 같은 여리여리한 남자애들보단 100만배는 낫다. ……어?! 쟤……!


꼬꼬마다. 분명 꼬꼬마다.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분명 꼬꼬마가 맞다. 거기에 옆에 있는 여자애는 아예 얼굴도 안 가려서 희고 투명한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꼬꼬마가 애완동물처럼 달고 다니는 꼬맹이 여자애잖아. 고등학생이라곤 믿기지 않는 그 애. 왜 저 두 명이 여기 있는 건데. 둘이 데이트를 하든 사귀든 그건 나랑 상관없는데, 왜 이런 학생들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 있는 건데! 가뜩이나 정민 씨 신경 쓰여서 밥도 제대로 못 먹겠는데 저것들까지 여기 왜 있는데! 아아, 기절하겠다, 정말.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신데.”

“아, 아뇨, 잠시 화장실 좀……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다녀오세요.”


밥 먹을 때 자리를 비우는 것만큼 실례되는 일도 없지만, 불안한 내 표정을 보고 정민 씨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미 고상한 척 하기엔 분위기 다 깨졌으니, 정민 씨가 물어본 김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민 씨는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 정말 마음씨도 착한 남자구나. 생각하며 자리를 뜬다.




“아아…… 죽겠네.”

“에헤헤. 선생님 봐봐.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봐.”

“쫌! 조용히!! 다 들키겠어!”

“어, 응!”


나는 크나큰 스트레스를 느끼며 한숨을 쉬고 있다. 이 와중에 리유는 다 들리게 꽤나 큰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큰 소리로 말하니 확 기죽은 표정이 돼 작게 대답한다. 어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선생님은 그 남자가 이끄는 데로 꽤나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런 데는 처음 와 봤다. 미행하는 것이니 선생님이 잘 보이면서도 꽤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 음식을 시키는데…… 으악, 뭐가 이렇게 비싸!! 4만원? 6만원? 9만원?!! 가장 싼 게 4만원 대. 리유 것까지 시키면 내 20끼 정도 식사비가 된다. 그것도 왕돈가스로. 도시락이나 학교 앞 분식집 기준으로 계산하면 30~40끼니 정도 나오겠다. 한 달 용돈 다 쓰게 생겼다 이놈들아!

하지만 남자가 또, 이런 곳에서 그렇게 계산하며 쪼잔하게 굴면 안 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일단 계산은 했다. 하지만 곧 물밀 듯 밀려오는 후회. 단순히 리유의 유흥에 맞춰주기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써야만 했나. 이미 시켰으니 물릴 수도 없지만. 애초에 이런 데는 학생들이 오는 데가 아니잖아. 딱 저 나이 대, 직장인들이 오는 데가 맞잖아. 그걸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다니, 나도 미친 놈이다.

내면으로 진지하게 갈등하는데 리유가 저렇게 큰 소리로 말하니 짜증이 솟구쳐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리유는 풀죽은 표정이 돼 미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진짜. 그런 표정 지으면 또 내가 다 미안해지잖아. 정말, 요물은 요물이구나. 내 잘못이 되는 기분이야. 최대한 부드럽게, ‘크게 말하면 들키니까, 작게 말하자? 몸도 조금 숙이고?’ 하고 아이 타이르듯 말했다. 방긋 웃으며 말하니 리유도 다시금 풀어져서 히힛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한다. 삐치기 쉬워도 풀리기도 쉬운 리유라 다행이다. 힐끔힐끔 임진왜란 전 일본 첩자처럼 선생님을 탐구한다.

선생님은 고상하게 입을 가리고 웃는다. 먹는 것도 품위 있게, 조금씩 떼어 먹는다. 저렇게 하시니까 정말 다른 사람 같다. 교양 있고, 기품 있고,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 특히 그윽한 눈으로 맞은편 남자를 보며 냅킨으로 살짝 입가를 닦는 건 엄청난 매력과 색기를 내뿜어 보는 내가 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다. 평소 햄버거 하나로 점심을 때우며 우적우적 한 손으로 먹으며 한 손으론 컴퓨터 타자를 치던 털털한 선생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구나.

선생님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밥을 먹는다. 그 남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까르르 웃으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선생님은 처음 보는데. 무엇보다 남자를 보는 눈빛이 정말, 애처로운 듯 행복해보이기도 하고, 기뻐 보이기도 하는 게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느낌이다. 그건, 딱 봐도 알 수 있잖아. 무얼 해도 저 남자한테 계속 시선이 가 있으니까. 관심 있는 눈빛, 좋아하는 눈빛이잖아, 저 눈은.


“……! 숙여!”

“히익!”


그렇게 사랑스런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던 선생님의 눈빛이 문득 이 쪽을 향한다. 나는 깜짝 놀라 작지만 날카로운 속삭임으로 리유에게 말했다. 리유는 겁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선생님의 눈은 평소 날카로움 그대로였다. 으아, 이거 들킨 거 아닌가. 들킨 것 같은데.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슬쩍 동태를 살핀다.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화장실이라도 가시는 건가.


‘우우웅.’

“?”


선생님은 연신 고개를 숙여 남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뜨신다. 이 쪽으로 지나갈까봐 나와 리유는 의자에 몸을 가리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몸을 숙였다. 선생님이 화장실 쪽으로 가시는데 문득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응? 하고 휴대폰을 보는데.


『화장실 앞, 10초 준다.』

“……꿀꺽.”

“응? 뭐야 뭐?”


아주 간단하면서 목적만 적혀 있는 4개의 단어. 하지만 그건 어떤 말보다도 나에게 공포감을 안겨줬다. 최후통첩 같은 느낌일까. 리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힐끔 내 휴대폰을 보며 물어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돌파를 하는 수밖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향한다.


작가의말

비축분을 쌓읍시다 비축분은 나의 원수. 

이제 연참대전 준비해야죠, 저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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