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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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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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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DUMMY

『진짜, 진짜루!』

“아하…… 뭐, 상관 없으려나.”


나는 침대에 누워 전화를 받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앵앵대는 리유의 목소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한다.


여름이 한창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때, 나는 더위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 뭐, 시간이 꽤나 지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바닷가에서 놀았던 게 엊그제 일이다. 어제 돌아왔서 쉬고, 지금이 다음날 오전. 더위에 푹푹 찌고 있다.

내 방은 기숙사 한 켠의 작은 골방. 작긴 하지만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고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문제는 환기. 창문이라곤 정말 작은 창문 하나 뿐이고, 그것 하나 뿐인지라 환기가 잘 되질 않는다. 마주보고 있는 문을 열면 그나마 좀 낫지만, 대신에 그렇게 하면 기숙사 입구에서부터 정면으로 내 방이 보인다. 아니, 기숙사 입구가 뭐야. 기숙사 멀리에서부터 내 방이 딱 보인다. 그런 수치심을 감안하면서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긴 좀 그렇다.

하지만 문을 쳐닫고 있자니 정말 푹푹 찐다. 바닥에서 땅의 열기가 푹푹 올라오는 것 같고, 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열이 내려오는 것 같다. 최악인데. 초열지옥 같은 곳인가, 내 방은. 밤이 돼 해가 떨어져도, 내 방만은 열대야상태 그대로다. 여고 기숙사지만 염치불구하고 팬티X반팔 조합으로 자고 있지만 그래도 더위를 극복하긴 역부족이다. 게다가 밤엔, 창문조차 열 수 없다. 벌레 들어오니까. 한때 창고였던 이 방의 창문에 방충망 같은 걸 기대하긴 힘들다.

여튼 그런 더위에 시달리며 괴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는데, 리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자기네 집에서 놀아달라고. 심심해 죽겠다고. 나는 침대에서 잘 마르고 있는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며 귀찮은 말투로 ‘가기 귀찮은데.’ 하고 대답했다. 리유는 잔뜩 징징대며 ‘얼른 와아! 시원한 거 잔뜩 줄게! 너무너무 심심해, 놀아줘어어~~’ 하며 생떼를 부린다. 아하하. 귀엽네.


“그래, 그럼 지금 대충 걸어가도 되지?”

『응응! 진짜 와 주는 거야! 야하! 히히히.』

“뭐야, 너도 기대도 안 하고 전화한 거였어.”

『그, 그치만~ 귀찮다고 하니까 또 오라고 하기 그렇잖아!』

“아아, 뭐, 어쨌든 지금 갈게.”

『웅! 기다리고 있을게!』

‘툭! 뚜…… 뚜……’


전화를 끊고,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더위에 지쳐 몸이 잘 안 움직인다. 멋진 옷을 입는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지금 복장에서 축구 유니폼 바지만 입고 털레털레 기숙사를 나섰다. 더워 죽겠다.


바깥은 그야말로 불지옥이다. 장마까지 끝난 8월의 햇볕은 너무도 강해서, 나는 분명 사람인데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릴 것만 같다. 시간이 가장 뜨거울 때인 오후 2시인 것도 아니고, 오전인데도 이렇게나 덥다니. 습하고, 햇볕은 뜨겁고, 게다가 땅에서 올라오는 열도 상당하다. 한 40도 가까이는 될 것 같다. 이 날씨에 돌아다니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어째 거리엔 사람 한 명 안 보인다.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겨드랑이는 벌써 흥건히 젖었다. 허허, 아저씨가 다 됐네.

방학식을 하고 보충수업을 하는 기간동안은 실질적으로 방학이 아니기에, 학교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방학으로 일주일의 기간이 주어졌는데, 그 기간에는 기숙사 애들은 모두 집으로 갔다. ……나만 빼고. 집에 가 봤자 의미가 없다. 엄마는 무슨 연수 가신다고 너무 지나치게 자유를 만끽하시는 자유부인이 돼 방학 내 집을 비우신다고 하시고, 누나는 대학교 졸업하고 집 나가서 살게된 지 오래이다. 아버지는 학기 초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근무. 잠시 우리네 아버지를 위해 경례. 잠시 경건한 마음이 됐던 나는 다시금 타는듯한 더위에 고개를 내젓는다. 아버지, 아버지의 고생은 이것보다 더하겠죠. 중동은 이것보다 더 덥겠지요. 크흐, 눈물 난다. 아니, 땀인가.

어쨌든 그런 사정을 사감 선생님께 말씀드려, 그냥 남게 됐다. 어차피 사감 선생님도 남아 계신다고 한다. ‘말만한 처녀가 집에 가서 뭐해. 그냥 여기 있어야지. 어차피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하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그보다는 남자친구 만나려는 이유가 큰 것 같은데. 그 쪽을 쿡 찔러보니 선생님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하신다.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집은 이제 안 가!’ 하는 우기는 말씀을 하신다. 네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잉여롭게, 진정한 방학을 낭비하는 건 좀 아깝긴 한데. 해서 흔쾌히 리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떻게 논다 해도, 나 혼자 방에서 마른 오징어처럼 바싹 말라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당당하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나왔지만 생각해보니까 리유네 집은 가 본 적이 없다. 리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물어 집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독주택. 2층집에 집 자체도 꽤나 큰 편. 이 좁은 땅덩이, 한반도에서 일단 아파트 아니고 단독주택이면 잘 사는 거지. 거기다 현관이 아닌 대문이 따로 있다면 말 다했지. 초인종을 누른다.


『웅이야! 에헤헤, 문 열어줄게!』

“어이어이, 이상한 아저씨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당당하게 열어.”

『히히히, 웅이 맞잖아!』

‘철컥.’


리유는 반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니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문을 열고 현관문 쪽으로 갔다.


“우왁! 히히. 오오, 다 젖었어! 이거 다 땀이야?!”

“어, 좀 죽을 것 같은데, 하하. 물 같은 거 없냐, 목 말라 죽겠는데.”

“응, 응! 얼른 들어와! 와, 김 나올 것 같아.”


현관문을 열고 리유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인다.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러더니 내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지금 내 꼴은, 참 말이 아니다. 상의는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반팔 흰 티셔츠 하나만 입었는데, 전부 땀으로 젖어 역동적인 상체가 그대로 다 드러나 보여 본의아니게 남성미를 표출하고 있다. 여름내 자르지 않아 꽤 지저분하게 된 머리는 촉촉이 젖어 번들거리고 있다. 순수하게 땀으로 젖어서. 하의는 그나마 흡습성과 마르는 성질이 뛰어난 유니폼인지라 보이지 않지만 사실 엉덩이 쪽도 엉땀(?)으로 엉덩이골까지 잔뜩 땀이 나 있어 굉장히 찝찝하다. 한 마디로 땀으로 멱을 감았다. 리유는 호들갑을 떨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난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거실에 발을 들였다.


리유네 집 거실은, 그렇게 커 보이진 않는다. 아파트인 우리집과 비슷한 크기. 다만 입구에서부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확연하게 보인다. 크윽, 2층이라니! 엄청 부러워! 2층에 리유 방이 있겠지. 2층이 있다는 점 말고는 그냥 평범한 가정집 같다. 리유는 호들갑스럽게 부엌에 가더니 얼음을 가득 넣은 콜라를 한 잔 가져온다. 나는 방긋 웃으며 ‘콜라 같은 탄산 음료는 한순간 청량감을 주지만 그 뒤에 더 갈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꼭 이런 걸 가져다 주네. 고마워.’ 하고 장난으로 비꼬는 말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분 좋게 웃으며 말하니 리유는 잔뜩 겁먹은 것 같은 표정이 돼서 ‘아, 그래…… 다, 다른 거 가져올까?’ 하고 진심으로 받아드린다. 그런 리유 반응이 귀여워 땀 투성이 손으로 리유 머리를 쓰다듬으며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크아아아……! 가버렷! 시원함으로! 탄산으로! 이거 반칙이잖아! 너무 시원해! 그대로 시원함으로 녹아버릴 것 같아! 온 몸으로 탄산이 퍼지고 있어! 아…… 안 돼! 이대로 목구멍을 넘기는 콜라가 끝나면, 너무 아쉬워서 내가 내가 아니게 되버렷……!


“크헉! 컥! 에켁, 우웨에에……”

“으아아앙! 뭐 하는 거야!”

“어, 얼음이…… 하하. 미안하네.”

“흥흥! 걸레 가져와야겠다.”


여름에, 얼음이 담긴 콜라는 정말 반칙이다. 시원한 콜라를 그대로 들이키며 오르가즘 비슷한 경지를 느끼며 나는 콜라를 느꼈다. 그러다 목구멍으로 얼음이 들어오는 걸 느끼곤 그대로 기침으로 얼음을 뱉어냈다. 주, 죽을 뻔 했어. 기도로 들어가려 했다고. 그나마 얼음만 뱉어내고 콜라를 토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리유는 흥흥거리며 귀엽게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흐흥. 그래도 집에선 제 나이 여자애처럼 행동하는구나.


“귀엽네, 옷.”

“에헤헤. 딱히 꾸며 입은 건 아닌데. 귀여워?”

“응, 집에서도 그런 거 입고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으응? 칭찬? 놀리는 거?”

“어어, 칭찬.”


리유는 밝은 하늘색 배경에 은은한 꽃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고 등짝과 가슴팍 또한 많이도 파여 있고 무릎 위 허벅지까지 닿아 길이도 짧은, 여름 티가 팍팍 나는 원피스. 희세나 성빈이가 입었다면 굉장히 야릇하고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르는 난감한 옷이지만, 리유가 입으니 마냥 귀엽다. 초등학생 사촌 여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리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이라 말하니 ‘히히히’ 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아, 엄마아빠한테 인사 해야지.”

“어…… 그럴 거면 옷 좀 제대로 갖춰입고 올 걸 그랬네.”

“에에, 괜찮아, 여름이잖아.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거든.”

“아…… 그래? 뭔가 무서운데. 나 맞는 거 아니지?”

“으으응! 우리 아빠 그런 사람 아니야! 얼른 가자.”

“그래, 뭐.”


리유의 말에 나는 조금 난감해하는 표정이 됐다. 그도 그럴게, 뭔가 리유 아버지라면, 잘 상상은 안 되지만 무서울 것 같은 느낌이다. ‘네 놈이 내 귀여운 딸을……!’ 하는 완고하고 무서운 타입? 아니면, ‘……꺼져라, 내 집에서.’ 하는 무뚝뚝하고 무서운 타입? 어느 쪽이든 최악인데. 아니, 나라고 해도 리유처럼 귀엽고도 귀여운 딸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 같은 남자애랑 논다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면 당장 쫓아낼 거다. 아직 한참 어리지만, 완연하게 딸바보를 지망하고 있는 나니까.


“아빠! 얘가 웅이, 아, 웅도야!”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 네가 웅이구나!”

“어흠…….”


리유는 노크도 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안방으로 추정되는 방에는 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리유 아버님으로 보이는 분이 리유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의 양 손목을 잡고 벽 쪽으로 밀치고 있다. 엄연하게 제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와, 뭔가 굉장히 보면 안 되는 장면을 포착한 것 같은 기분인데. 엄청 죄책감이 느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했다. 괜히 내가 다 부끄러워지네. 두 분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는지, 아니 나보다 더 부끄럽겠지. 리유 어머니께서 허둥지둥 손을 뿌리치며 얼른 말을 돌린다. 리유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 소개를 하고 있다. 리유한테 ‘웅도’ 라고 불리는 게 얼마만인지. 그렇게 소개를 해도 여전히 어머니는 ‘웅이’ 라고 하시지만. 집에서도 ‘웅이’ 라고 부르는구나, 나.


슬쩍 두 분을 쳐다봤다. 일단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 분 외모의 공통 키워드는 ‘동안’. 리유가 열 일곱 살이니,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해도 40대 가까이는 되는게 맞을 텐데. 아무리 봐도 두 분 다 30대 초반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리유 어머님은 과장 좀 보태면 이제 막 둘째 정도 낳은 새댁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고, 리유 아버님은 방황하는 30대 초반 미청년 같은 느낌이다. 좀 잘 꾸미면 20대 중후반도 노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님보다 아버님이 더 동안인 것 같기도 하고. 저런 유전자니까 리유가 이렇게 동안인 거구나.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런 것 말고도, 굉장히 미남 미녀시다. 선남선녀라는 건 이런 거구나. 리유의 우월한 외모는 역시 유전자 탓이구나. 그런 기분이 든다.


“음, 그래, 자네가 웅이. 눈이 작을 줄 알았는데.”

“아뇨, 그건 별명이라…….”

“됐지! 그럼 이제 놀러 갈게!”

“어이어이, 너무 빠르잖아. 무슨 인스턴트도 아니고.”

“그치만! 이 이상 뭘 어떻게 해! 서로 이름 알았고, 얼굴 봤으면 그만이잖아!”


리유는 빠르게 인사하고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리어 내가 더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했다. 리유는 짜증스럽게 말한다. 얼른 나랑 놀고 싶어서 안달난 느낌이다. ‘핥핥 주인님 얼른 놀아요!’ 하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 놀아라. 아빠는 이 결혼, 허락한다.”

“예, 옛?!”

“에엣, 기뻐서 말도 안 나와? 히히, 얼른 가자!”

“아니, 무슨…….”

“호호호, 재미있게 놀다 가요! 과일이라도 깎아 줘야 하나.”


리유 아버님은 진중한 목소리로 드립을 치신다. 아닛, 장인어른?! 저, 아무 능력도 노력도 안 하는 쓰레기 같은 남자인데요?! 그렇게 간단하게 따님을 맏기셔도 되는 겁니까! 무책임해! 리유는 잔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팔을 잡아당긴다. 리유 어머님도 리유를 닮은 미소를 띠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꺼림칙한 표정이 돼 리유 팔에 이끌려 방을 나섰다. 좀 당황스러운데.


“덥지? 덥지? 더워? 더웁지?”

“어, 더워. 보면 알잖아?”

“히히히.”


리유는 2층으로 올라가며 무언가 재촉하듯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땀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리유는 내 반응에 기분좋게 웃더니 더욱 내 손을 꼬옥 붙들고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 중 가장 안쪽 방으로 성큼 나를 이끌고 들어가는 리유. 여기가 리유 방인 모양이다. 문이 열리고 드러나는 리유의 방은─


남중 출신에, 여자애 대하는 것에 서투른 나지만 이제 여자애 방 들어가는 것으로 하악하악 대고 그런 수준은 아니다. 이미 세 번째인걸, 여자애 방은. 처음은 희세, 그 다음은 미래. 그래서 그리 긴장되거나 하지 않고 무덤덤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돼있는 방. 뭔가 아기자기하고 분홍빛 일색인, 전형적인 귀여운 것 좋아하는 여자애 방 같다. 다만 좀 유아틱한 느낌이 있어 고등학생 방처럼은 안 보이지만. 침대에 있는 토끼 모양 베개와 마찬가지로 귀여운 곰돌이 모양이 그려진 이불과 이불보가 귀엽다. 책장에는 아기자기한 방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한자로 ‘三國志’ 라고 적혀 있는 중후한 느낌의 책이 꽂혀 있다. 아, 얘 삼국지 꽤나 좋아했었지. 삼국지로 가끔 드립치고 그랬으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히힛.”

“그래. 뭐 가지러 가?”

“덥다며! 내가, 으흥흥, 잠깐만.”


리유는 신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얼른 방을 나선다.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그냥 나가다니. 나는 힐끔 방을 둘러보며 침대에 걸터 앉았다.

여자애들 방은 기본적으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 방은 벌써부터 아저씨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도, 내 개인 방 수준이니까. 여고 기숙사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홀아비 냄새 그윽한 방이다. 반면 리유 방은, 뭔가 달달하면서 상큼한 향이 나는 것 같다. 방향제 같은 거라도 설치했나.


“음─ 아.”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째 리유 침대에 코를 처박고 엎드려 냄새를 맡고 있다. 뭐, 뭐야 이거. 엄청 변태 같잖아. 냄새 맡으면서 좋아하고 있다니. 아니, 별 생각 없이 털썩 침대에 누운 건데 너무 좋은 냄새가 나잖아. 나도 모르게 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이 침대는 매일매일 리유가 몸을 부비고 생활하는 침대. 리유의 체취가, 리유의 내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베어 있는 곳. 자면서 몸을 뒤척이는 리유, 베갯잇을 침으로 적시는 리유. 뒹굴뒹굴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리유. 그런 식으로, 리유의 모든 내음이 여기 그대로 농축돼 있다. 그리고, 그 내음을 맡는 나는─


“으아앙럻웨에이아아아~!”


나는 외마디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베베 꼬며 발버둥을 쳤다. 이 무슨 엄청난 변태란 말인가. ‘하앍하앍 리유쨔응! 킁카킁카!’ 하는 오덕 놈들하고 뭐가 다른데!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좋, 좋은 냄새다…… 맡으면 맡을수록 빠져들어서, 더욱 깊숙이 냄새를 맡고 싶어져. 온 몸 구석구석 이 냄새를 퍼트리고 싶어……


“있잖아, 이거 먹어!”

“어, 어!”

“응? 뭐해, 침대에서?”

“피곤해서, 피곤해서!”


문이 벌컥 열리고, 리유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퍼뜩 든 나는 얼른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리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곤 묻는다.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애써 변명했다. 리유는 여전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애써 말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뭐야, 들고 있는 거?’ 하고 말했다. 리유는 금세 방긋 웃으며 ‘응응, 이거!’ 하며 기분 좋은 표정이 돼 활달하게 말한다.

쟁반에 들려 있는 그릇. 눈처럼 희게, 밀가루처럼 희고 곱게 가루가 되 있는 빙수. 그 위에 질척하고 검은 매력적인 빛깔을 내비치는 팥앙금, 적절한 떡과 말랑말랑해 보이는 젤리들. 그렇다, 팥빙수.


“더울 것 같아서 미리 만들어놨어! 어때?”

“음, 맛있겠네. 마침 더운데, 잘 됐네.”

“응응! 먹어, 여기 우유도 줄게!”

“고마워, 잘 먹을게.”


요리 같은 건 전혀 못 할 것 같고, 마냥 덜렁댈 것만 같은 리유인데 이런 식으로 빙수를 만들어오는 모습은 또 의외다. 역시, 어린애처럼 앵앵대고 늘 나한테 달라붙고 수동적으로 행동하지만 여자애는 여자애인가. 달달하고 시원해 더위가 싹 날아가는 것 같다. 리유는 빙수를 먹다 ‘덥지? 에어컨 틀게!’ 하며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튼다. 이 작은 방에 에어컨도 있네. 난 내 방은 고사하고 지금 내 기숙사 방은 완전히 찜통인데. 에어컨도 쐬고 빙수도 먹으니 날아갈 듯 시원하다. 리유는 ‘응, 맛있어! 내가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어!’ 하며 빠르게 빙수를 먹다 곧 머리가 띵해졌는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팔을 허공에 흔든다. 귀엽네.


“점심 먹을래? 배고파?”

“응, 슬슬 출출하긴 하네. 빙수 먹어서 그럭저럭 괜찮긴 하지만.”

“뭐 먹을까? 더우니까 시원한 거 먹자!”

“그래, 음.”


리유는 빙수그릇을 적당히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올라 내 옆에 앉으며 말한다. 뭔가 내가 놀러온 게 그렇게나 좋은지 잔뜩 들뜬 목소리다. 막상 둘이 있어도 할 건 없는데. 참, 리유가 이렇게까지나 나를 따르는 걸 보면 가끔은 신기하다. 리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시원한 거라. 근데 보통 집에서 먹는 밥은 시원한 것보다는 다 후끈후끈한 거잖아. 밥이 주된 목표인 한식이니까. 오이냉국 같은 거에 밥을 먹을 순 없잖아. 어찌됐든 밥을 먹으려면 뜨겁게 먹어야 하니까. 차라리 이열치열로 뜨겁고 매운 라면을 한됫박 먹는다거나.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탈진하겠지. 매워하는 리유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귀여울 것 같은데.


“냉면 시켜먹자!”

“아, 그건가. 냉면 좋지, 나도 좋아해.”

“히히. 그럼 나는 물냉면! 너는?”

“나는 비빔냉면.”


이런. 직접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희세에게 너무 적응돼있었나, 리유의 말에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뭐, 보통 시켜먹겠지, 만들어주는 것보다는. 하긴, 요리하는 리유라니, 상상도 안 된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든다.


냉면을 맛나게 먹고, 느긋하게 누워 있다. 배도 부르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이 말라 뽀송뽀송하고 선선하다. 아, 천국이구나. 리유는 옆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보고 있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좋아서.’ 하고 말한다. 마냥 옆에 있기만 해도 좋아하는 강아지를 보는 느낌이다. 후후, 귀여운 년.

‘뭐라도 하고 놀까?’ 하고 물으니 리유는 ‘응! 그럼, 음─ 보드게임 하자!’ 하면서 책상 위의 공간에 있는 보드게임을 꺼낸다. 키가 닿지 않아 살짝 까치발을 들고선 간신히 꺼낸다. 키가 안 닿으면 꺼내달라고 말을 하지. 리유는 즐거운 표정으로 보드게임을 준비한다. 나는 기껏 부루마불이나 그런 것일줄 알았는데 전혀 처음 보는 보드게임이다. 흥미가 생겨 나도 리유를 도와 세팅을 했다.


“이익! 웅이 잘하네!”

“아하하. 처음 하는데.”

“히잉. 만날 지네, 나는. 아빠랑 해도 지는데.”


이 게임, 생각보다 재미있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서, 몇 판을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리유의 게임에 대한 센스는 가히 괴멸에 가까울 정도로 없어서, 금방 게임을 배운 내가 압도적으로 이길만큼 잘 못 한다. 육체적인 것도 잘 못하는데 정신적인 싸움도 잘 못하는구나, 리유는.

리유가 이런 걸 스스로 찾아 할 만한 애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리유는 자기 입으로 ‘이거 사실 아빠 거야. 아빠가 보드게임 좋아해서, 여러개 가지고 있거든.’ 하고 말한다. 그럼 그렇지. 리유 말에 따르면 종종 아빠와 리유, 리유 남동생 셋이서 재미나게 게임을 하곤 한다고 한다. 단란하고 좋은데, 그거. 우리 집은 가족 구성원 네 명이 철저하게 따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런 건 좋겠다, 확실히.


“어머, 제대로 놀고 있구나─ 이것 먹어, 더우니까.”

“감사합니다.”

“에헤헤, 고마워, 엄마.”


한창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리유 어머님이 정갈하게 썰린 수박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오신다. 환한 미소가 아름다우시다. 과연, 보면 볼수록 중년 여성으론 보이지 않는다. 리유의 미친 동안이 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었어. 리유도 나중에 나이 먹어 아줌마 돼도 저렇게 젊겠지.


“후후, 아줌마 여긴 잘 안 오니까, 과감한 짓 해도 된단다? 우후후~”

“에…… 네?!”

“그럼 아줌마는 놀러 가니까~ 집에 아무도 없단다? 오호호호~”

“…….”

“우리 엄마, 좀 이상하지?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리유 어머니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치떴다. ‘과감한 짓’ 이라니, 대체 무얼 말씀하시는 거야. 어머님은 중년 여성의 깊고 심유한 눈웃음을 지으시며 무언가 기대하시는 표정이 돼어 호호 웃으며 나가신다. 리유는 별다른 느낌도 없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어이어이, 누가 누구보고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저 정도 말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 눈치 제로인 네가 더 정상이 아니라고. 괜히 나 혼자만 이상한 기분이 돼 더욱 창피하다. 뭐, 게임이나 계속 하자.


작가의말

오늘, MT를 갑니다. 하지만 통학인지라, 이렇게 아침부터 가네요.

저도 사람인지라, 연참대전을 짤리고 싶진 않아 이렇게 올립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람인지라, 글을 허겁지겁 다 쓰진 못해 이렇게 2/3 분량이라도 올립니다.

나머지는 MT 갔다와서 쓸 게요... 후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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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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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4화 - 3 +8 14.03.23 1,983 40 17쪽
98 24화 - 2 +14 14.03.22 2,778 42 25쪽
97 누락된 편입니다 +11 14.03.21 2,371 44 1쪽
»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11 14.03.20 2,657 44 23쪽
95 23화 - 5 +21 14.03.19 2,581 80 18쪽
94 23화 - 4 +7 14.03.18 2,344 52 19쪽
93 23화 - 3 +24 14.03.17 2,644 44 22쪽
92 23화 - 2 +9 14.03.15 2,986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9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6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86 21화 - 4 +21 14.03.09 2,686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1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8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2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8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8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4 52 19쪽
79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7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5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4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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