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새로운 장비 마련
작물들의 성장속도는 각각 다음과 같았다.
보석 베리는 아직 자라는 중이므로 수확 시기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은접초는 씨를 심으면 3일 후에 꽃을 피웠다.
이후 또 3일간 서로 다른 꽃대에서 꽃이 피어나다가 일제히 씨를 맺었다.
“이런··· 은접초는 재료 재고가 너무 쌓이고 있네. 캐트시와 천둥새가 꾸준히 소비해주고 있긴 하지만···. 이제부턴 그냥 씨앗만 모아서 저장해둬야겠어.”
즉 은접초를 심은 후 수확이 가능한 시기는 3일째부터 6일째까지였다.
구름우유 열매는 심은 후 3일이 지나면 묘목이 되었으며 이어서 6일이 더 지나면 성목이 됐다.
열매를 심은 지 12일째가 되면 꽃나무가 되며 15일째가 되면 비로소 설익은 열매가 맺혔다.
그리고 열매가 수확 가능할 정도로 익는 건 18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확실히 나무이기 때문에 화초인 은접초보다 수확기간이 6배나 더 걸렸다.
구름우유 나무에서 열매를 모조리 따버린다면 한동안 텅 빈 나무가 되는데, 그 상태에서 12일이 지나면 다시 꽃이 피었다.
즉 구름우유 나무의 열매주기는 18일이었다.
천둥새의 차원에서처럼 한 해만 열매를 맺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구름우유 열매는 수확 시기가 상당히 긴 데다 음료 제조에 사용하는 것 외에도 돼지새 먹이로도 쓰이고 있어서 한시 바삐 과수원을 만들어야만 했다.
나무는 너무 촘촘하게 심으면 싹을 틔우지 않았고 은접초에 비해 차지하는 면적도 넓었다.
과수원을 만들려면 나무 하나 심을 땅을 만들기 위해 인과율 1척을 소모해야 할 정도였다.
현재 심어져 있는 구름우유 나무는 총 3그루.
─매니저: 공이운 (보유 인과율: 8척)
─소속: 아기새 카페
─존재감 등급: 2 (다음 등급까지 2척 남음)
그동안 네코마타들의 보육비와 자잘하게 판매한 음료값을 합치니 벌써 인과율이 8척이 되었다.
여기서 4척만 더 모으면 내 라떼아트나 카일룸의 권능을 승급시키는데 필요한 인과율이 모두 모이지만···.
네코마타들을 조련할 때마다 구름우유 아이스크림을 사용하다 보니 열매 비축분이 살짝 위험한 수준이 되었다.
더구나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돼지새가 성장하면서 열매를 전보다 더 많이 먹는 듯하고.
카일룸이 나처럼 굳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지낼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도 돼지새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섭취해야 된다면 그나마 먹을만한 것이 현재로썬 구름우유 열매뿐이라 진작 동이 났을 것이다.
원래 제일 얻기 힘든 재료가 제일 많이 필요한 법이긴 하지···.
2척의 인과율을 소모해 외부 땅을 두 번 늘렸다.
파앗-. 우르릉!
허공에서 솟아오른 땅이 들러붙으며 소음이 터지자, 카페 안에 있던 모두가 죄다 밖으로 뛰어나와 이를 구경했다.
늘어난 땅에 두 개의 구름우유 열매를 더 심는 동안 흥미가 떨어졌는지 아이들은 다시 키즈존으로 돌아갔다.
“정말 부지런히 움직이는구나. 음료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농사까지 짓고. 에펠타르트의 귀한 둘째 아들이 이렇게 지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나름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낍니다.”
작물을 심는 것부터 수확 후 제조까지 전부 내 손을 거쳤다.
이 과정에 카일룸의 손을 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워낙 귀족적으로 살아온 그에게 맡기는 게 못미덥기도 했지만, 난 이 모든 일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힘들거나 귀찮다고 남에게 넘기는 것이 아닌,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척을 땅을 늘리는데 사용함으로써 이제 이 장소에 12척의 인과율을 사용하게 되었다.
즉 존재감의 등급이 오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방비가 허술하고 악신의 침입이 두려워 존재감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이 썩 미덥진 않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존재감의 등급이 올라가면 내게 상당 부분 이득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레벨이 올라야 비로소 컨텐츠가 해금되는 게임들처럼 말이다.
물론 청의동자가 주고간 액막이 제조법을 빨리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존재감을 올려야 하지만.
─존재감 등급: 3 (다음 등급까지 12척 남음)
─소속 직원: 돼지새, 카일룸 에펠타르트 (2/3)
─보유 중인 라떼아트: 대기중 (1/2)
보라. 레벨이 오르자 고용할 수 있는 직원 수가 늘어났고 더구나 새로운 라떼아트 스킬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대상: 카일룸 에펠타르트
─존재감 등급: 3 (아기새 카페와 동일)
─보유 권능 (2/3):
<최후의 기사 (1/3)등급>
<드림캐처 (0/3)등급>
심지어 존재감 등급이 동기화 되는 카일룸의 권능 최대치도 상승되었다.
구름우유 열매를 심느라 흙이 묻은 손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존재감에도 게임처럼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최대치가 존재할까?
반신인 카일룸이 존재감 등급에 영향을 받는 걸 보면, 혹시 다른 신들에게도 존재감 등급이 존재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카일룸의 존재감 등급이 차원을 관리하는 다른 신들만큼 오르게 된다면, 더 이상 반신이 아닌 진짜 신이 되는 건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
보석 베리는 3일이 지나자 덤불처럼 우거지기 시작했고 심은 지 6일째가 되자 꽃을 건너뛰고 바로 설익은 열매를 맺었다.
“아직 덜 익은 건 물에 가라 앉는다고 했죠?”
보석 베리는 덜 익었어도 아주 진한 검붉은색 빛을 띠었는데, 하나를 따서 확인해보니 익은 열매의 무게와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단다. 한 번 물에 담가보겠느냐?”
“사람들이 보석인 줄 알았다고 속았다는 게 정말인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반짝이긴 해도 착각할 만큼 보석으로 보이진 않거든요.”
다른 열매들은 그대로 익어야 하니 딱 한 개만 따서 연못에 던져 넣었다.
베리는 정말로 물속에 가라앉았고 놀랍게도 물 안에선 검붉은색이 아닌 선명하고 채도가 높은 붉은빛을 띠며 반짝거렸다.
“와···. 이렇게 보니 정말 보석 같긴 하네요.”
정체를 모른다면 혹해서 물속에 손을 넣을 법했다.
보석 베리는 심은 지 9일째가 되어서야 완전히 익어 수확이 가능했다.
청녹색의 덤불에 루비처럼 새빨갛게 빛나는 작은 보석들이 콕콕 박혀 있었는데 식재 외에도 관상용으로도 훌륭했다. 새싹부터 다르더니, 내가 에펠타르트 저택의 호수에서 보았던 베리 덤불과는 모양이 확연히 달랐다.
아예 종이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방에서 바구니를 가져와 덤불에 있던 것을 전부 따자 반 정도 채워졌다.
실험용으로 몇 번 쓰면 금방 동날 양이었다.
베리류는 잼, 스무디, 주스 등등 응용해볼 방법이 상당히 많아서 당분간 제법 바빠질 것 같다.
“이것도 구름우유 열매처럼 대량 생산에 들어가야겠네.”
연못 주위를 빙 둘러 7개의 보석 베리를 더 심었다.
레시피 개발에 힘써본 후 상황에 따라 연못의 크기도 늘려야만 할 것 같았다.
수확하다가 바구니에서 튀어나간 보석 베리가 연못의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베리를 주운 후 힘주어 눌러보자 파삭, 하고 껍질이 설탕과자처럼 부서졌다.
“아, 이래서 물에 떴군.”
알고 보니 얇은 껍질과 과육 사이가 텅 비어 있었다.
익으면서 분리되나 본데, 덕분에 공기층이 생겨 공처럼 물에 둥둥 뜰 수 있었던 것이다.
혹시 껍질은 아예 먹지 못하는 건가 싶어 작은 조각을 혀에 대자 놀랍게도 사탕처럼 단맛이 났다.
‘이렇게 된다면 레시피는 더 다양해진다!’
물론 감미료인 설탕만큼 아주 단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음료에 인위적으로 단맛을 가미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더욱 더 다양해질 메뉴들을 상상하니 가슴이 떨렸다.
다음 보석 베리의 수확 시기인 9일을 기다려야 하는 게 너무 애가 탈 정도였다.
바구니를 들고 그대로 주방으로 향했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는 동안 카일룸이 바 앞 스툴에 걸터앉았다.
하는 일이 없으면 돼지새 보다 더 날 쫓아다니면서 내가 하는 일들을 구경했다.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지켜보며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신기해서 구경하는 거다.
“보석 베리는 보통 어떻게 먹나요?”
그러고보니 내가 굳이 실험적으로 레시피 개발에 도전하지 않아도 좋은 커닝페이퍼가 눈앞에 있었다.
“돌아가신 네 어머니도 그렇고, 보석 베리로 만든 주스는 달콤해서 여인들이 애호하는 음료 중 하나였단다.”
“역시 주스로 만드는구나.”
“그밖에도 파이나 쿠키 등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매년 수확철엔 어김없이 보석 베리 자체가 왕실 티타임의 주제로 선정된단다.”
베이커리의 영역까진 아직 무리였다.
주스를 만드는 법은 크게 두가지였다.
즙을 짜내거나 과육째로 갈아서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즙을 짜내기 위해선 보통 천에 싸서 힘을 준 후 짜내는 방법을 사용했었고, 가는 것 대신 칼로 잘게 다지는 방법을 사용해왔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구시대적인 핸드 메이드 방식에서 벗어나야 될 때란 생각이 들었다.
‘착즙기와 믹서기를 만들자.’
보석 베리가 무르익어 갈 동안 내 인과율도 착실히 수를 불렸다.
캐트시가 9일동안 매일 네코마타를 맡긴 건 아니었지만 내 인과율 모으기에 아주 큰 몫을 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내겐 벌써 착실히 음료를 판 금액까지 합쳐 21개의 인과율이 쌓여 있었다.
12척이 쌓인 후부터는 내 라떼아트를 승급할지 카일룸의 권능을 승급시킬지 머리 터져라 고민만 하다가 결국 현재까지 보류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직도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악몽에게 죽을 뻔했을 때 라떼아트 덕에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악신과의 전투에 직접적으로 나서는 건 카일룸이니 그의 권능을 미리 올려놔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모든 느긋한 고민은 아직까지 카페에 악신이 침입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지금은 새로운 레시피 개발에 집중하자.’
2척의 인과율을 사용하여 카페용 미니 착즙기와 믹서기를 만들었다.
각각 주방의 선반에 놓으니 이제야 제법 카페다운 테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부 보석 베리는 스무디로 만들기 위해 냉동고에 넣고 나머지는 주스 만들기에 도전했다.
착즙기에 넣을 베리는 껍질과 과육을 분리했다.
즙을 낸 후 껍질을 잘게 부순 후 나중에 첨가할 예정이었다.
붉은 껍질만 따로 투명한 유리병에 모으니 꼭 사탕 병처럼 보였다.
위이이잉-.
믹서기와 착즙기에 각각 손질을 끝낸 베리를 넣고 작동시켰다.
그러자 소음에 돼지새가 깜짝 놀라 둥지에 머리를 푹 파묻은 채 덜덜 떨었다.
“금방 끝나.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내 말에 올망졸망한 눈이 툭 쿠션 위로 올라온다.
처음 들을 때나 놀라지, 금방 익숙해져서 괜찮을 거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네코마타들이 카페에 방문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들이 있었다면 한 바탕 소란이 생겼을 것 같다. 고양이들도 보기보다 돼지새처럼 소음에 예민해서, 뭘 할 때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조르르 달려와 귀찮게 굴곤 했다.
“신기한 물건이군.”
“제가 살던 차원에서 주스를 만들 때 쓰던 기계들입니다.”
카일룸의 표정이 영 떨떠름해 보였다.
그는 내가 아베르트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못마땅해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난 공이운이지, 아베르트가 아니다.
“보석 베리는 사교계 여인들도 애호했으니 그 고양이 여신도 좋아하겠군.”
카일룸이 말하는 신은 캐트시였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신들의 입맛은 제법 까다롭거든요.”
네코마타들이 구름우유 열매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잘 먹으면서 따뜻한 우유는 안 먹는 것처럼.
완성된 음료는 선호 유형이 존재했고 제각기 달랐다.
이번에 만든 음료는 어떤 손님을 불러올까?
믹서기는 적당히 과육이 씹힐 정도에서 정지시켰고, 착즙기는 건더기와 따로 분리된 즙이 컵을 가득 채우는 걸 보고 껐다.
드디어 간만에 새로운 레시피가 개발되었다.
- 작가의말
티티치티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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