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꿈의 지배자
캐트시는 차를 마시지 않고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나비만 구경했다.
이따금 수증기 나비를 긴 손톱으로 찌르긴 해도 찻잔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앞서 두 메뉴를 제공했을 때보다 더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단순히 맛이 아닌 향만 즐기는 특이 습성이라니.
“환상적인 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나?”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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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피로회복 / (특수) 악몽예방
평가: (+2)
[천둥새- 황홀함에 다시 알 속으로 돌아갈 뻔 ★★★★★
캐트시- 털실보다 좋아 ★★★★★]
선호하는 손님 유형: 자연계·조류계열 / (특수) 꿈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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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지배자···?’
야마 신이 방문했을 때처럼 앞에 ‘특수’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여태 기록됐던 다른 손님 유형과는 달랐다.
이건 마치 유형이라기보단 특정 누군가만을 지칭할 때의 단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저 손님은 야마 신과 동급 혹은 더 높은 등급의 신이 아닐까?
“이거 맛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냥?”
“나는 지금 행복한 게 아닐까냥?”
“애웅!”
아이스크림을 받은 꼬물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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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행운이 소소하게 상승
평가: (+4)
[캐트시- 그럭저럭 괜찮아 ★★★☆☆
네코마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 (+2)]
선호하는 손님 유형: 정신계·묘선(猫仙)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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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하자마자 무난한 평을 받았던 아이스크림마저 꼬물이들이 5점 세례를 보내준 덕에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넷 다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며 입간판에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고 있는데, 테이블 쪽에서 우당탕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우에엥!”
“애웅!”
“내걸 뺏어 먹은 걸까냥? 죽고 싶은 걸까냥?”
어린 모습을 하고도 나름 성숙하게 행동했던 청의동자와 달리, 꼬물이들은 정말 애들이 맞는지 그 사이 사고를 친 것이다.
저렇게 어린 애들도 신인 걸까?
아이스크림을 벌써 다 먹은 바람에 다툼이 일어난 듯한데, 보호자격인 캐트시는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저 날아다니는 수증기 나비 구경에 삼매경이었다.
할 수 없이 난 바 안에서 깨끗한 손수건들을 잔뜩 챙겨 테이블 자리로 향했다.
“좀 더 만들어줄 테니 그만 싸우자.”
모습 때문에 그들이 신이라 해도 나도 모르게 아이 취급을 하게 된다.
엉망이 된 테이블을 수습하고 꼬물이들의 입가에 난잡하게 묻은 아이스크림 흔적을 닦아주자 의외로 소란이 금방 진정되었다.
아이들은 골골골, 고롱고롱 하는 기묘한 목울림 소리를 내며 손수건으로 입과 턱을 닦아줄 동안 얌전하게 자리했다.
엉망이 된 디저트볼을 한 데 모아 회수하고 싱크대에 넣은 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더 만들어준다는 약속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딱 1인분 정도만 더 만들 양이 남아 있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많은 양이 팔릴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
냉각 시간 때문에 당장 제조해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므로 1인분을 적당히 세 등분해서 스푼 3개와 함께 서빙했다.
“양이 너무 작은 게 아닐까냥?”
“애웅.”
“더 주면 안되는 걸까냥?”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으니···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나눠 먹으면 다음에 올 때 서비스로 아이스크림 1그릇씩 더 줄게.”
“정말인 걸까냥?”
“애웅!”
“약속하는 거냥?”
또 싸움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음에 오면 또 준다는 말이 먹힌 것인지 얌전하게 스푼을 들었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누가 더 많이 먹네 마네 하며 재잘거리는 걸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캐트시의 시선이 느껴졌다.
샛노란 눈의 세로 농공이 넓어졌다 좁혀졌다를 반복하며 날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주제 넘게 참견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아이들이 어려보이긴 해도 신일 텐데 충분히 무례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 제가 너무···.”
“미성숙한 개체들을 제법 잘 다루는 걸까나?”
“가족 중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어서 이런 일이 익숙합니다.”
말하고 나서도 괜히 캐트시에 가족사를 밝힌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이런 핑계는 사장님이나 손님들에게 종종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긍정적인 효과를 냈기에 버릇이 된 걸 수도 있었다.
"흐응···."
핑계가 통한 것인지 아닌지, 캐트시는 별말이 없었다.
다만 이젠 차가 다 식어버린 탓에 사라져버린 나비 대신 바 안에 서 있는 날 빤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차마 뻘쭘하니 그만 봐 달라는 부탁은 하지 못했다.
마침내 꼬물이들이 아웅다웅하며 아이스크림 그릇을 비우자 캐트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대가를 치르면 되는 걸까나?”
“만족하신만큼 인과율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캐트시는 무려 5척의 인과율을 대가로 지불했다.
야마 신때처럼 한 번에 5개의 빛덩어리를 두 손 가득 담으니 더없이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이전에 천둥새가 값을 치르고 간 것까지 합하면 내겐 6척의 인과율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지불할 인과율이 없는데 어떡할까나?”
같이 계산해주는 게 아니었나?
은접초 꽃차와 아이스크림 값까지 합해서 5척을 받은 줄 알았는데 따로 계산이었나 보다.
나야 대가를 많이 받으면 좋았지만.
아이들은 바 밑에서 장화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세 마리 아기 고양이 같은 맑은 눈을 하고 올망졸망 날 올려다볼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쳐줄 배려심 정도는 있었지만, 나는 살짝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그 외에 카페의 신 메뉴 개발을 위해, 손님이 관리하시는 차원에서 제가 새로운 재료를 채집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는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실 수 있습니다.”
슬슬 신 메뉴를 개발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천둥새를 제외하곤 차원 채집을 한 적이 없으니 캐트시의 차원에서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우리 차원을 말하는 걸까나? 괜찮을까나?”
“우리 차원에 놀러 오는 거냥? 재밌을 거 같지 않냥?”
“애웅!”
“후회하지 않을 거냥?”
꼬물이들이 반응이 영 심상치 않았다.
마치 내가 제 발로 지옥을 자처하는 듯한 그런 찝찝한 기분이었다.
“내가 관리하는 차원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나?”
“아닙니다. 저는 그런 쪽에 지식이 전무합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순히 메뉴 개발에 쓰일, 식용이 가능한 나무 열매라던가 풀꽃 정도입니다. 만약 손님께서 직접 차원에서 자라고 있는 재료를 가져다주시면 더 좋겠지만···.”
“신이 차원 거주민에게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는 것도 모르는 걸까냥?”
“그런 이유 때문에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재료를 찾을 수 있도록 차원에 방문객 신분으로 초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내 제안에 캐트시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길게 콧소리를 냈다.
“흐음, 이미 그런 경험이 있는 걸까나?”
“여기 네코마타들께서 드신 아이스크림의 재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치른 대가의 결과물입니다.”
“어디 차원인 걸까냥? 나도 갈 수 있는 걸까냥?”
굳이 천둥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꼬물이들의 주제는 그 차원으로 넘어가 토론이 한창이었다.
“어차피 대가를 치러야 하니 차원 방문을 허락해줄까나?”
긍정적인 말투를 보아하니 이미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캐트시와 네코마타들은 카페 밖을 나가며 내게 따라오라는 식으로 손짓을 했다.
“돼지야, 집 잘 보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뺙뺙!”
내게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것인지 돼지새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한참을 달랜 후에야 겨우 떼어놓고 나올 수 있었다.
“악몽을 자주 꾸는 걸까나?”
이번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차원 방문을 하게 될지 걱정하는 날 보며 캐트시가 물었다.
“아뇨, 악몽은커녕 꿈도 잘 꾸지 않습니다.”
내 답이 만족스러운지 그녀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캐트시는 살벌한 손톱이 자리한 손을 들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놀랍게도 은접초 꽃차의 수증기 나비가 생겨났다.
특유의 향기가 나지 않는 걸 보니 모양만 흉내낸 듯했다.
“나비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까냥?”
“나비만 쫓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까냥?”
“애웅!”
나비를 보고 떠들어대는 꼬물이들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던 찰나.
“후우-.”
캐트시의 손 안에서 그녀의 입김을 타고 날아온 나비가 내 얼굴에 닿자···.
암전이었다.
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었다.
수명이 다한 전구처럼 그대로 페이드 아웃.
.
.
.
마치 몇 날 며칠 밤을 새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뜨자 어쩐지 머릿속이 몽롱했다.
묘하게 잘 제어가 되지 않는 듯한 팔다리, 가물거리는 시야, 꼭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팔랑팔랑.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은접초 나비가 내 앞에서 날개짓을 하자 일순 모든 감각들이 현실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설마 꿈의 지배자라고 하더니··· 관리하는 차원이 꿈 속이라던가 꿈과 관련된 것이었나?”
만약 그대로 내가 잠이 들며 캐트시의 차원에 이동한 것이라면···.
카페 앞에 꼴사납게 뻗어 쿨쿨 자고 있을 내 몸이 상상되어 머리가 아팠다.
내가 막 깨어난 곳은 어느 알 수 없는 방 안의 침대 위에서였다.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채워진 방은 현대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였다.
고전 영화나 판타지 속에서나 볼 법한 고성, 대저택 등이 연상되는 그런 방의 풍경.
넓은 침대에서 내려오니 푹신한 카페트가 밟혔다.
내가 움직이자 눈앞에서 귀찮게 굴던 나비가 비로소 어느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꼬물이들이 했던 말에 따르면··· 저 나비를 놓쳐선 안되는 것 같은데.’
예고없이 차원에 밀어넣긴 했지만 천둥새보다 훨씬 친절한 대접이었다.
나비가 네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차원 안을 헤맸던 그때보단 낫지 않은가?
나비가 스르륵 통과한 문을 열자 넓은 저택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있는 곳은 무려 3층, 난간 아래로 저택의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사박, 사박.
어딜 가든 바닥에 카페트가 깔려 있어서 발소리가 조용했다.
그저 나비가 이끄는 대로 저택의 복도를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 우당탕,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음이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검은 치마에 하얀 앞치마, 메이드가 연상되는 차림을 한 여성이 사색이 된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무단 침입자로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둥새 차원에서도 성역 무단 침입자는 물론 성조의 알 도둑으로 찍혀 감옥 신세를 졌던 경험이 있던지라, 여차하면 바로 튈 생각에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데···.
“세상에! 막내 도련님께서 깨어나셨어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조용했던 저택 안이 그녀의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금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무슨 오해가 있는 듯한데···.”
“도련님!”
위로 올라오는 계단에 메이드 복장을 한 여자 여럿과 정장 복장의 남자 둘이 뛰어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퇴로가 막혔기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좀 전까지만 해도 잘만 앞을 향해 나아가던 나비가 멈춰선 채 어떠한 길도 제시해주지 않고 있었다.
지레 짐작이겠지만··· 그 모습이 꼭 구경거리를 만나 멈춰 선 걸로 느껴졌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깨어나시자마자 침대 밖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어서 의사를!”
그들은 하나같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젠 나도 될 대로 되란 식으로 포기한 채 흐름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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