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숨은 악몽 찾기
차원에 사는 거주민들에게 신의 모습을 들키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그래서 고양이의 모습으로 찾아온 건가?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창틀에 앉아 앞발로 고양이 세수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팔자 좋구나. 재료를 찾으라고 보내놨더니 마치 자기 차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눌러 살고 있군.”
그리곤 날 신명 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선 야옹거리기만 하더니, 제대로 말할 수 있었구나.”
고양이는 내 말이 무척 불쾌하다는 듯 하악질을 하곤 내가 앉아 있는 침대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럼 나도 그런 역겨운 말투를 따라할 줄 알았어?”
침대에 내려 앉은 새끼고양이는 점차 몸을 키우더니 인간 아이의 형태로 변했다.
세 꼬물이 중 유일한 남자 아이의 모습이었던 네코마타였다.
“흠흠, 셋 다 말투가··· 조금 신기하긴 했지.”
“솔직하게 말해.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재수없다고! 하는 말마다 의문형인 게 어디 정상이야? 이거 할꺼냥? 저거 할꺼냥? 냥냥냥!”
아이는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지 말투에 신경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게. 너만 다르네.”
“걔들은 그냥 줏대 없이 캐트시의 말투를 따라 하려는 거뿐이야. 하여튼! 캐트시가 하는 거면 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꼴들이란.”
그런 말투에 어울려주기 싫어서 계속 야옹거리기만 했나 보다.
인간 아이의 모습으로 변한 네코마타는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모습이었다.
고급스러운 셔츠와 바지, 잘 손질된 헤어, 꼿꼿하게 세운 등허리, 거만하게 치켜 든 턱.
네코마타의 모든 모습들이 나보다 더 귀족가의 막내 도련님의 이미지에 더 잘 어울렸다.
“나라고 좋아서 계속 이러고 있는 건 아니야. 잘못 잡혔어. 아무래도 이 차원으로 이동되며 내 모습이 변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다들 내가 진짜 자신들의 가족들이라고 생각하니, 원.”
“그야 여긴 꿈을 다스리는 캐트시의 차원 속이니까. 그녀는 수많은 차원에서 흘러나오는 꿈을 이용해 차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마법사다. 네가 있는 곳도 누군가의 꿈을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참여하려면 당연히 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어울려야 하는 거야. 벌레나 쥐가 되지 않은 걸 감사하게 여겨.”
누군지 모를 모습을 덮어쓰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임에 감사함을 여겨야 하다니.
자칫 잘못하다간 정말 벌레가 되어 꿈틀거릴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의 꿈을 재료로 만들었다면··· 꿈의 주인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글쎄. 네가 마주친 존재들 중 하나겠지. 어쨌거나 이러고 있을 틈이 없어.”
침대에서 일어난 네코마타는 심각한 얼굴로 방안을 빙빙 돌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캐트시가 잠시 부재한 사이에 악몽이 침투했어. 보통 때라면 다른 꿈고양이들이 처리했을 텐데···.”
“뭔가 잘못된 거야?”
“악몽이 섞여 들어오는 건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악신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악몽이라 위력이 남달랐어. 간신히 악몽의 힘을 약화시키긴 했으나 맞서 싸우던 상당수의 꿈고양이들이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거든.”
“악신···.”
악신은 정상적으로 인과율을 모을 수 없으니 다른 차원을 침략해서 파괴하고 약탈하는 방식으로 인과율을 얻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 악몽 중 하나가 이 근방에서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단 말이지. 아무래도 힘을 회복할 동안 진짜 꿈인 척 흉내를 내며 숨어 있을 거야. 그래서 캐트시가 악몽을 추적하고 겸사겸사 널 보호하라고 날 보낸 거야. 그녀는 지금 악신을 잘근잘근 짓밟아주고 있어서 많이 바빠.”
날 보호하는 건 겸사겸사라니. 좀 더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진짜 꿈인 척 흉내를 낸다는 건, 혹시 주변 인물 중 하나로 위장 중이란 거야?”
“보기보다 이해가 빠르네. 맞아. 네가 만났던 존재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심지어 물건으로 위장하고 있을 수도 있어.”
네코마타는 기지개를 쭉 편 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던졌다.
손바닥만 한 고리 안에 털실로 만든 그물이 쳐져 있고, 고리 아래로 깃털과 구슬이 달린 기이한 장신구였다.
“아, 나 이거 본 적 있어. 드림캐처···라고 부르던가?”
동생이 학교 방학 숙제로 만드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물론 퀄리티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그래, 액막이다. 우리 같은 꿈고양이들에게 캐트시가 딱 하나씩만 만들어서 주는 거야.”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액막이였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드림캐처에선 신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일단 네가 가지고 있어. 악몽을 찾으려면 네 도움을 좀 받아야겠거든.”
“네가 나보고 팔자 좋다며 비꼬길래 이 저택에서 데리고 나가주는 줄 알았는데, 악몽 잡는 일에 동참하라고?”
네코마타는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이 근방에서 존재감이 가장 높은 구역이야.”
그렇게 말하며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다짜고짜 옷장 문고리를 힘주어 부수더니 그 파편을 내게 보란듯이 내밀었다.
“이것 봐. 본래라면 일반적인 꿈은 허망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구현해낼 수 없어. 보통은 부수려고 하면 환영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나지.”
그리고 파편을 다시 본래의 자리에 갖다 대자 놀랍게도 망가지기 전으로 원상복구되었다.
“그렇다는 건 이 구역을 구성하는 꿈이 아주 강한 열망을 토대로 생성된 것이란 건데, 이런 곳에선 인과율이 맺혀. 꿈에 대한 열망은 곧 이 차원의 주인인 캐트시를 향한 신앙이나 다름없거든.”
강한 열망을 토대로 생성된 꿈의 공간이라···.
“인과율이 맺히니··· 악몽이 그걸 노릴 수도 있다는 건가?”
“맞아. 그리고 캐트시가 널 여기로 보냈다는 건 이곳에 네가 말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건데. 만약 악몽이 그 인과율을 선수쳐버린다면 여길 제 입맛대로 바꾸고 무너뜨릴 거야. 그렇게 된다면 네가 원하는 그 재료도 사라지겠지.”
이곳에 붙잡혀 가족놀이나 하며 일주일을 허비했는데, 재료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안될 일이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협조하면 되는데?”
“꿈속의 등장인물이 된 네가 나보다 꿈의 구성원들에게 접근하는 게 더 용이해. 그러니 먼저 이 꿈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찾아봐. 악몽은 갑작스럽게 난입한 존재니까 꿈의 주인만 이질적인 존재를 알아볼 수 있어.”
“누가 꾸는 꿈인지를 찾아야 한다라···. 너무 어려운데.”
일주일동안 내가 만난 저택 사람만 수십 명이 넘었다.
워낙 부유한 귀족의 저택이다 보니 사용인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그렇다고 마구 들쑤시고 다니지 않도록 조심해. 악몽이 자신이 들켰음을 눈치채고 도망가버려도 문제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네게 해꼬지를 할 수도 있어. 넌 신도 뭣도 아니기 때문에 큰일이 날 거야.”
“노력해 볼게.”
싫어도 재료를 얻기 위해선 해야지, 어쩌겠는가.
네코마타는 자신은 좀 더 넓게 뒤져보겠다며 고양이로 변신한 후 저택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후로 난 꿈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
대체 무슨 꿈이길래 평범한 일상 생활들만으로 이렇게 길게 꿀 수 있는 걸까?
저택 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저택 내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겠지?
투둑.
딴 생각을 하느라 잘못 내리친 목검이 엇나가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베르트, 무슨 고민이 있느냐? 통 집중을 못하는구나.”
“아··· 죄송합니다, 형님.”
검술 훈련을 시켜주겠다는 장남 카일룸에게 이끌려 이 짓을 한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장난감 목검을 들고 휘두르는 게 지루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틈틈이 내 방으로 돌아와 상황을 설명해주던 네코마타에 의하면, 막내 도련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완벽히 꿈에 녹아들면 자연스레 꿈의 주인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이 저택의 진짜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착실히 임무를 수행 중인데 도통 감을 잡기 힘들었다.
“힘들면 여기까지 하자꾸나.”
난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아쉬운 척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보니 저택 사람들 중에 카일룸은 유독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평범한 일상 사이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동생인 아베르트와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려고 했다.
물론 간신히 깨어난 아베르트를 애틋하게 대하는 건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지만, 카일룸은 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지···.
처음엔 출정 후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더 각별히 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다 내팽개치고 오로지 아베르트에게만 올인하는 건 가족애가 돈독하다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아직도 날 닮아 기사가 되고 싶다는 네 꿈은 유효하느냐?”
잘 연기했다고 생각했는데 훈련이 끝난 걸 너무 티나게 좋아했나 보다.
특히나 저 질문은 내가 그의 왕성한 활동에 발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등장했다.
이쯤 되니 강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 그렇겠지요. 어린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기사인 형님을 본받고 싶어했을 겁니다.”
매번 대충 그렇다고 넘겼지만 이번만큼은 조금은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봤다.
아무래도 내가 계속 답을 대충 넘겼기에 시스템 오류처럼 답이 되돌아오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군.”
내 답을 들은 카일룸은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그렇게 좋을까?
문득 원래의 세계에 두고 온 내 동생이 날 닮고 싶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음, 뿌듯하긴 하겠네.
“그럼 형님의 꿈은 뭡니까?”
“내 꿈?”
“네, 매번 제 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형님도 꿈은 있으실 거 아닙니까?”
일렁-.
시야에 잡힌 모든 것들이 물에 푼 물감처럼 일렁거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꿈이라··· 그렇지. 내게도 꿈이 있지.”
그렇게 말하는 카일룸은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보였다.
허공을 보는 시선과 부자연스러운 몸짓.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가슴께를 꾹 누르더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설마?
“형님···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구나. 아무래도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같구나. 이번 전투는 꽤 혹독했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꼴을 너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늘. 그래, 이따가 다시 보자꾸나.”
난 터덜터덜 멀어지는 카일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금 깨달은 사실을 네코마타에게 알려주기 위해 기다렸다.
아무래도 카일룸이 악몽인 듯했다.
그는 저택의 일상적인 사이클에서 유일하게 비정상적인 존재였고, 방금 내게 보인 행동만 해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꿈고양이들로 인해 약화된 악몽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했지.
가슴께를 누르며 고통스러워하던 모습, 그건 아마 꿈고양이들과의 사투로 인해 생긴 부상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꿈의 주인을 먼저 찾은 후 악몽을 찾는 게 수순이라고 하지 않았나? 꽤 쉽게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
“애웅.”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정찰을 나갔던 네코마타가 돌아왔다.
“악몽을 찾은 것 같아.”
“꿈의 주인이 아니라 악몽을 먼저 찾았다고?”
내가 얻은 단서를 들은 네코마타는 영 찝찝하단 표정을 지었다.
“꿈고양이들이 애를 먹었던 악몽이다. 그런데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제 모습을 들켰다고?”
“수상하지 않아?”
“음··· 일단 캐트시에게 먼저 알려야겠어. 행동은 그 다음에 한다.”
네코마타는 그렇게 말한 후 다시 고양이로 변해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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