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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네이도르 가문의 막내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말로링
작품등록일 :
2017.06.29 14:07
최근연재일 :
2017.10.02 12:45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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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9,217

작성
17.08.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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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응. 포기할래.

DUMMY

52화 - 응. 포기할래.


벽에는 거대한 그림들이, 그리고 바닥엔 휘황찬란한 예술품들이 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민들은 일평생 일해도 구하지 못할 귀한 장식품들이었다. 그 방엔 두 남자가 테이블을 놓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쾅! 테이블을 뒤흔드는 소리에, 순조롭게 흘러가던 분위기가 단숨에 반전되었다.


“정말 이래야 하는가? 대업이 코앞이지 않은가!”

“케이샤 후작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번 일은 너무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빠드득. 케이샤 후작이 이를 갈자 검은 복면의 남자는 말을 멈추었다. 하긴 자신이 그의 입장이었어도 분명 이번 명령은 너무 심했다. 어떻게 잡은 기회를 쉽게 버리라니. 위에선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진정하시지요. 저도 케이샤 후작 각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윗분들이 덮으라고 말씀하시니 저 같은 말단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요.”

“만약! 내가 독단적으로 움직이겠다면?”


이래서 여기에 오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조직에서 시켰으니 하는 수밖에. 검은 복면의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우리의 계약은 없던 일로 하는 거죠. 차선책으로 국왕을 죽이고 레이첼 공주님을 대역으로 세우겠죠.”

“그리고 엘렌 S 슈네이도르를, 아니, 리블레다인을 네놈들의 수장으로 만든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서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이 대화에서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케이샤 후작 각하.”

“말해보아라. 나를 협박할 생각이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후우, 10년 동안, 케이샤 가문은 블랙 아미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이에 우리는 각하의 가문이 왕국 최고에 오르도록 성심껏 도와왔지요.”

“각설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


남자는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하느냐. 그렇지 못하냐는 각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케이샤 후작은 남자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검지를 탁자 위에 까닥거렸다. 남자는 손을 가리고 슬쩍 웃으며 그의 입술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아마 한 가지 판단밖에 없을 거다. 그에게 주어진 손은 블랙 아미밖에 없을 테니까. 이윽고 후작의 검지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대들의 뜻에 따르도록 하지. 엘렌의 일은 내가 무마시키겠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케이샤 가문이 이 왕국을 차지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드리지요.”

“그러면 되었다. 가보거라.”


남자는 케이샤 후작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후, 집무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난 듯 그의 걸음은 문 앞에서 멈추었다.


“후작 각하, 한 가지 조심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일?”

“그렇습니다. 테사이르 국왕에게 독을 주입한 놈들이 슬슬 음지에서 움직인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러자 케이샤 후작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 개자식들이! 감히 다시 활동하려 해?”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녀석들의 능력은 뛰어납니다. 솔직히 암살, 정보 등은 저희가 밀릴 정도니까요.”

“정체는? 정체는 알아냈나? 자네들도 당했으니 알고 있을 거 아닌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추적하던 제네쉬 가주도 당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상자가 되었죠. 저희가 성심성의껏 치료는 하고 있지만... 전혀 차도가 없더군요.”

“슈네이도르 가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엘렌 아가씨를 가문으로 불러들인 것이고요. 아무튼, 그들을 조심하십시오. 이번 목표는 아마도...”

“나 아니면 국왕이겠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그녀를 노릴지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 정보를 주었으면 할 일을 마친 거다. 케이샤 후작은 유능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블랙 아미는 이 자를 발판으로 삼았다. 본인이 유능하고 6 가문이지만, 그 안에서는 힘이 약한 곳.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손 내밀지 않은 가문. 블랙 아미의 딱 맞는 이상형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바로, 그들이 나타난 근원적인 이유. 아마 케이샤 후작이 이 정보를 알게 된다면 엄청난 패닉에 빠질 지도 모른다. 아니, 6 가문 전체가 그러겠지.


‘과연 녀석들은 계획대로 국왕을 죽일까? 아니면 우리와 손을 잡고 있는 이 자를 죽일까? 궁금해지는군.’


***


제르딘은 창문 앞에서 고민했다.


‘들어갈까. 말까.’


벌써 한 시간 째 매달려 있었다. 팔은 아프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단련했던 터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만 단련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상한 꼴로 매달려 있는 거다.


‘다행이 투명망토 덕분에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거지. 왕궁이었으면 시녀들이 깜짝 놀랐겠군’


이 생각을 하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속이 착잡했다. 분명 안에선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자신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창문 넘어 바라봤을 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인이었다. 주황머리가 인상적이긴 했으나 그의 시선은 곧장 그녀에게 향했다. 이윽고 울음소리가 그치고 그녀들의 대화가 들렸다. 두꺼운 창문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들리는 단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주황머리 여인의 말에서 자신과 오묘한 단어가 나왔다.


‘괜찮아. 어차피 내놓은 자식인데 뭘. 뭐, 붙잡고 싶으면 무릎 꿇고 나한테 싹싹 빌어야 세자와 결혼해줄까 말까 하지. 그 외엔 절대 불가야.’

‘세자... 결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저 여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자신과 결혼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설마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조심해야 해. 금발 남자와 엮이게 되는 순간 너의 미래는 어두워질 테니까.’


이번에는 주의 깊게 들어서 주황머리 여인이 한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엘렌과 엮이게 되면 엘렌의 미래가 어두워진다.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들어가 저 여인의 목을 베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저 여인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웃으면서 입술을 움직였다.


-엘렌에게서 떨어져. 엘렌의 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있으니까.-


제르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고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생각했다. 솔직히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렌과 친한 모습을 보이는 저 여인의 말이 왠지... 신뢰가 갔다.


‘직접 물어볼까? 그래, 이대로 물러나면 나, 제르딘이 아니다.’


굳게 결심하고 창문으로 손을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엘렌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처음 보는 얼굴. 하늘빛이 감도는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뽀얀 피부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제르딘은 그 남자는 본 순간 깨달았다. 엘렌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 남자라는 것을.


***


“이, 이반? 여긴 어쩐 일이야?”


이반은 거친 숨을 내쉬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이미 그의 교복은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설마, 여기까지 뛰어왔다고? 그건 불가능했다. 마차로 오고 가는 길을 홀로 왔다니! 하지만 이 생각도 잠시, 리우리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잘 선택해. 이 선택이 네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니까.’


이 말을 남기곤 내 방을 빠져 나갔다. 결국 이 방엔 나와 이반만이 남았다. 철컥. 문이 닫히자 적막한 공기와 함께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직도 이반은 대답하지 않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살짝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찬 물을 건넸다. 하지만 이반은 내가 건넨 잔을 옆으로 치웠다.


“야! 사람이 물을... 흐악!”


이반의 두 눈이 풀리며 그의 상체가 나에게로 쓰러졌다. 나는 이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당혹감에 재빨리 손으로 그의 상체를 밀어댔지만, 꿈쩍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네그라도를 소환시키려 했으나 그건 최악의 선택일 수도 있었다. 분명 이 상황을 본다면... 놀려 댈 거니까.


“왜 미련하게...”


나는 이반의 코에 손가락을 대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죽은 건 아니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카데미에서 슈네이도르 영지까지 단숨에 달려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왔을까? 조심스레 퇴학신청 했는데 말이다. 가만히 이러고 누워 있으니 이반의 땀 냄새가 진동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냄새는 질색하며 녀석과 거리를 두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왠지 싫지 않은 기분. 그래, 내가 후각이 미쳐 돌아가는지 이반의 땀 냄새가 향기로운 꽃보다 더 좋았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황홀감이 들까? 안 돼! 정신 차려 엘렌! 넌 분명히 밀어내기로 했잖아? 여기서 포기할 거야? 너 다시는 남자로 돌아가지 않을 자신 있어? 평생 여자로 살 거야?


“응. 포기할래.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남성의 사고를 저승길로 보내주었다. 이제는 필요 없는 사고일 테니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떨리는 작은 손으로 이반의 하늘빛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밀어내지 않을게.”


젠장할... 내가 이런 말도 내뱉을 줄이야. 이제는 사소한 욕이라도 줄여야 겠다. 이반에게 이런 상스러운 말은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별 것 없네! 나는 이반이 깨어날 때까지 이대로 향기에 취... 아니, 사랑스... 이것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지켜주었다. 이 방엔 우리 둘 뿐이었으니까.


***


제르딘은 엘렌의 얼굴을 보곤 다시 손을 되돌렸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바로 코앞인데,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밀어내면 왠지 영영 끝날 것만 같았다.


‘그래, 우선, 물러나자. 아직...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고 그냥 쓰러져서 엘렌을 괴롭히고 있는 거잖아? 맞아. 그런 거야. 하하하!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어. 아직! 아직 나에게도 기회는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제르딘의 얼굴은 우울했다. 마지막 자신을 지탱해주던 여자는 이제 내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가질 수 없었다. 꿈속에서라면 몰라도. 그러나 이제 그 꿈속도 엘렌의 모습은 희미해져 갔다.


작가의말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비축분은 아직... 꽤 남아 있네요 ㅎㅎㅎ

타사이트에 먼저 올라가고 있는 거라 제가 글을 쓰지 않으면 곧 따라잡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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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노회한 기사가 이곳에 온 이유(1) +4 17.09.27 214 7 13쪽
87 평화는 없다. +1 17.09.27 222 7 12쪽
86 엘렌과 슈네이도그 가주의 진실한 대화(2) +4 17.09.26 234 5 12쪽
85 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1 17.09.26 188 6 11쪽
84 슈네이도르 가문의 유전인가 보구나. +2 17.09.25 240 6 12쪽
83 반란의 징조 +4 17.09.25 181 6 12쪽
82 소녀를 만나다. +4 17.09.24 22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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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프시케의 선택(2) +6 17.09.05 229 7 12쪽
62 프시케의 선택(1) +4 17.09.04 254 6 11쪽
61 일촉즉발의 상황 +4 17.09.03 283 7 12쪽
60 블랙 아미의 화려한 등장 +4 17.09.02 247 7 11쪽
59 아카데미 축제(3) +6 17.09.01 247 6 11쪽
58 아카데미 축제(2) +3 17.08.31 295 7 10쪽
57 아카데미 축제(1) +6 17.08.30 234 6 11쪽
56 아카데미 축제 전야(2) +5 17.08.29 27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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