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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네이도르 가문의 막내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말로링
작품등록일 :
2017.06.29 14:07
최근연재일 :
2017.10.0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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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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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DUMMY

85화 – 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화창한 여름 날씨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나마 있다면 무진장 더워서 기분이 불쾌하다는 점이다. 다프네 언니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편도 아니니 바깥만 돌아다니지 않으면 나름 견딜 만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밖에 있다.

덜커덕 덜커덕. 푸르륵. 강행군에 말들도 지쳤는지 거친 숨을 내쉰다. 마차 안은 찜통에 갇힌 고기처럼 뜨겁다 못해 살이 익어가는 중이다. 데니츠 삼촌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본다. 부랑민들이 마차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다행히 낙오자는 없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나도 그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싶었지만... 이놈의 드레스 때문에 쪄 죽을 판이다. 원래는 가벼운 차림으로 마차에 타려 했으나 데니츠 삼촌이 로즈 거리에서 산 드레스를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나에게 내밀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삼촌의 첫 선물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데니츠 삼촌의 패션 감각은 패션 테러리스트인 커드넬과 정반대였다. 의외로 엄청난 미적 감각의 소유자이셨다.

가끔 어머니에게 선물로 이것저것 선물하셨다니 그때부터 미적 감각을 키워오셨나 보다. 아무튼, 나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예술적이며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상태다. 검은 깃털로 장식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내 표정은 이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네그라도에게 부탁하여 마차 안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 물론 그건 바람일 뿐. 네그라도는 꼬맹이 엘렌에게 달라붙어서 알뜰히 챙겨주고 있었다.


“다 왔구나. 마음의 준비는 다 했느냐?”


장장 10시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건네시는 데니츠 삼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삼촌은 저 분들을 맡아주세요.”

“알겠다. 조심하거라. 형님의 또 다른 얼굴은 잔혹한 악마와 같으니. 네가 진실을 알고 있다면 분명 손을 쓰려 할 것이야.”


마차가 저택 앞에 멈추자 지친 말이 푸르륵거렸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는 밝게 웃었다. 긴장감을 풀려는 의도였다.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흩어졌던 녀석들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데니츠 삼촌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사히 마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공주 풍 분홍 드레스... 다시는 입지 않을 거다. 그렇게 다짐하니 우리 앞엔 저택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두 모였다. 저 멀리 아리엘의 얼굴이 보였는데 왠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일까? 데니츠 삼촌은 신음을 삼키며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님께서 단단히 각오하신 모양이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이 마중 나오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가문의 기사단이며 집안일하는 하인, 시녀 그리고 정보국 조직원들까지. 단단히도 준비하셨다. 슈네이도르 가주님이 나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각오할 준비는 되어 있느냐?’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죄를 묻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 기색을 느끼셨는지 데니츠 삼촌은 나를 저택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 거대한 저택에 초대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렇기에 이 집안엔 이제... 나와 슈네이도르 가주 두 사람밖에 없다.


***


나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슈네이도르 가주의 서재로 들어갔다. 가주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다. 독이 탔는지는 네그라도가 확인해주었다. 슈네이도르 가주가 입술을 연건 내가 찻잔에 담긴 차를 반쯤 마셨을 때였다.


“그래, 진실을 아니 나를 원망하고 싶더냐?”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의 무거운 톤은 서재의 분위기를 한층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래, 슈네이도르 가주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페이스를 선호한다.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정해두고 이 자리에 왔다.


“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해요.”


그러자 슈네이도르 가주는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차가운 얼굴은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네 어미에 대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슈네이도르 가문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어머니를... 타 왕국으로 보낼 수도 있었잖아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 당시 리블레다인 가문은 멸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작은 나에게 엘루미아와 너를 맡기며 이렇게 말했지. 잘 보살펴달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테사이르 왕가는 끈질겼다. 리블레다인 가문의 피는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지.”

“그래서 어머니를 죽이신 건가요?”


슈네이도르 가주는 고개를 저었다.


“데니츠는 엘루미아와 너를 데리고 몰래 도망쳤다. 처음엔 나도 도왔다. 여동생과 조카를 잃고 싶지 않았지. 하지만 블랙 아미가 눈치를 채고 끼어들었지. 그래서 비밀리에 진행되던 탈출은 테사이르 왕가의 귀에 들어갔지. 그래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나는 침묵했다. 과연 이 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지금까지 모두를 속이고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사람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럼, 네 정령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내 말이 진실인지 혹 거짓인지 말이다.”

-진실이야. 아직까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어.-


내 옆에서 듣고 있던 네그라도가 확인해주었다. 현신하지 않았기에 정령과 계약 맺지 않은 사람은 절대 볼 수 없었다. 네그라도는 내 훌륭한 조력자이자 호위 기사였다. 그녀는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변명할 기회를 줘서 고맙구나. 그래서 나는 엘루미아를 죽이기로 했다. 우선 블랙 아미와 테사이르 왕가의 추적을 떼어내야 했지. 그래서 데니츠를 이용했다. 녀석은 내 말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고 블랙 아미 조직원을 처참하게 죽였다. 나는 엘루미아와 품에 잠든 너를 보았지.”


왜 블랙 아미가 데니츠 삼촌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조직원들을 죽였으니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어머니를 겁간하려 했다는 거짓된 소문까지 퍼지니 증오할 대상으로 변질되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니츠 삼촌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문을 위해 참았다. 나는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아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문을 위해 그렇게 희생했는데 받은 건 고작 멸시와 증오뿐이었다. 그러나 데니츠 삼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나는 결코 강제로 희생한 것이 아니다. 엘렌, 너는 아직 깨닫지 못했겠지만 가문이라는 건 단순히 피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란다. 늦어도 좋으니 왜 가문이 존재해야 하는 건지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듣곤 한동안 가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한 가지 진실은 내 몸엔 슈네이도르 가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곳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나는 기나긴 상념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슈네이도르 가주는 그런 나를 참고 기다려주었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서재 곳곳에 퍼졌다.


“엘루미아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지.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바로 너를 살리기 위해 나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그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아이는 사라지고 한 사람의 어머니가 내 앞에 있었지.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단검을 주었다.”

“... 자결이로군요.”

“그래,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라고 말했다. 엘루미아는 그렇게 하겠다면서도 너를 살리겠다는 집념은 꺾지 않더구나. 하지만 너는 반역자 리블레다인 공작의 딸.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엘루미아가 놀라운 말을 꺼내더구나.”


나는 그 말을 알 수 있었다. 리블레다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걸. 어머니가 리블레다인 공작과 속전속결로 결혼한 이유는 다름이 아닌 나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리블레다인 공작 가문이라면 내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 모두를 속인 셈이다. 이미 데니츠 삼촌에게 들은 내용이었지만, 슈네이도르 가주에게 들으니 울컥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서 눈물을 보일 수 없다. 아직 이 자의 의도는 드러나지 않았다. 단순히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면 나에게 비밀을 숨기지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명확히 드러난 사실은 별로 없었다. 어째서 데니츠 삼촌을 희생시켰는지, 나를 이토록 아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다. 슈네이도르 가주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미 알고 있으니 넘어가지. 그래서 나는 당장이라도 너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엘루미아는 필사적으로 막아섰지.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끝내야 했지. 결국, 너를 내 양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엘루미아는 연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더구나. 그리고 웃으면서 자신의 심장에 단검을 찔렀다.”


트라우마라는 걸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었다. 네그라도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각오는 되어 있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다. 블랙 아미도 전 론데르만 가주의 야욕도 슈네이도르 가주의 권력유지도.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내 다부진 눈빛을 본 슈네이도르 가주는 옅은 웃음을 내보이며 말했다.


“역시 엘루미아와 닮았구나.”

“그 말은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눈동자는 아버지를 닮았죠.”

“후훗. 그렇구나. 그런데 엘렌, 헤르세의 과거를 알고 있느냐?”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를 흔들려는 용도인가. 그렇지만 피하지 않기로 했다. 커드넬이 말한 그 정보를 이 자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아버지가 블랙 아미의 간부였다는 사실. 20년 전 그 참혹했던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당신이라면 진실을 알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가 블랙 아미 소속이었다는 걸요.”

“커드넬에게 들은 모양이구나. 녀석을 죽였어야 했는데 말이다.”


무서운 말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헌데 그 녀석이 말하지 않더냐? 헤르세는 단순한 간부가 아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치 챈 모양이구나. 그렇다. 헤르세는 블랙 아미의 초대 수장. 이 모든 사건의 근원이지.”


꽤 높으신 분이셨군요. 아버지.


작가의말

엘렌의 담판! 완결까지 15화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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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1 17.09.26 188 6 11쪽
84 슈네이도르 가문의 유전인가 보구나. +2 17.09.25 238 6 12쪽
83 반란의 징조 +4 17.09.25 180 6 12쪽
82 소녀를 만나다. +4 17.09.24 220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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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일촉즉발의 상황 +4 17.09.03 281 7 12쪽
60 블랙 아미의 화려한 등장 +4 17.09.02 24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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