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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네이도르 가문의 막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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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말로링
작품등록일 :
2017.06.29 14:07
최근연재일 :
2017.10.02 12:45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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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글자수 :
509,217

작성
17.09.1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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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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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9쪽

다가오는 운명

DUMMY

69화 - 다가오는 운명


커드넬이 떠나기 전,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조언을 쪽지에 남겼다. 그다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를 시험한 거나 이반을 경계하는 걸 보니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말한 거니 성의 봐서 읽어봐야겠다. 물론, 심심할 때마다 한 글자씩! 한 번에 다 읽지는 않을 거다.

아카데미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축제도 끝나니 이제 남은 건... 기말고사와 과제들이다. 망할. 정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 걸까?


“괴롭다. 왠지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아.”


내 푸념에 옆에서 공부하던 이반이 웃으며 건넨다.


“학생의 신분이니 열심히 해야지.”

“그게 싫다는 거야. 애초에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올 마음도 없었다고...”


그러자 이반은 두꺼운 전공서적을 테이블에 두고 까칠한 내 흑발을 쓰다듬어주었다. 빗자루 같은 내 머릿결, 이반이 만지니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처럼 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엘렌,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래? 만약 아카데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를 비롯해서 에스텔, 리우리케 선배 등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두 눈을 감고 이반의 말에 차분히 생각해본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내 고집대로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물론, 그 전에 프시케 언니에게 개 패듯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아카데미 입학은 협박으로 이뤄진 거니까.


“그런데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론데르만 전 가주님 때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뒤늦게 도착한 이반에게 중요한 내용을 숨기고 몇 가지만 이야기해주었다.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한 충돌을 물 흐르듯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행이 이반은 리우리케 선배의 설명에 수긍했다. 이럴 때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탈이라니까.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교육 좀 시켜야겠어.


“내 생각엔 이번 학기 내엔 너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 왕가에서 이번 일을 침묵하기로 한 건 그와 암묵적인 합의를 봤다는 이야기겠지.”

“암묵적인 합의? 둘은 적이잖아. 그게 가능해?”


이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의 테사이르 왕가는 나약하니까. 국왕 전하도 몇 년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7 가문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이미 왕가를 넘어선지 오래야. 이 상황에서 세자 저하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휴전뿐이지. 물론, 공식적인 휴전이야. 암투는 이어지겠지.”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몰래 나를 납치한다거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반은 나를 품안에 감쌌다. 그러자 그의 숨소리, 심장소리, 따뜻한 기운이 느꼈다. 그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런데 이반군, 여기는 공공장소입니다만? 내 눈빛을 읽은 이반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를 내 손에서 놓치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아... 이런 말을 들으니 괜히 부끄러워진다. 요즘 들어 이반의 공세가 부쩍 강해진 느낌이다. 처음엔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딱지는 뗐다. 초급자에서 숙련자로 올라섰다랄까? 아무튼, 이제는 얼굴만 붉혀진다. 이반은 나를 품안에서 내려놓았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얼굴. 액자 속 사진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무리일지도... 속으로 씁쓸하게 웃어본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점점, 다가온다. 또다시, 나의 운명이 바뀌는 소리를. 이번에는 피한다거나 물러설 수조차 없다.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니까. 지금, 이 시간을 즐기자. 나는 행복한 미소로 그의 결심에 답했다.


***


메넬레스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 갇혔다. 동지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 등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물론, 그를 옹호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번 일은 본인 스스로 처벌을 자처했다. 분명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둘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론데르만 전 가주의 힘이 강하다 해도 협공한다면 승산은 있었을 테니까.


“후... 그 애새끼들만 아니었다면 진작 갔었을 텐데.”

“킥킥킥. 애새끼가 먹고 싶어지는군. 키헤헤헤.”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징그러운 목소리에 메넬레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녀석의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독방 시스템이라는 것. 메넬레스는 이 시스템을 창안한 자에게 칭찬을 날려주었다. 만약 녀석과 한방을 썼다면 끔찍했을 테니까. 그 자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뺀 목소리로 그에게 묻었다.


“바깥세상은 여전한가?”


진지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메넬레스는 알고 있었다. 녀석이 자신을 장난치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일부러 강하게 윽박질렀다.


“알고 싶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

“눼에 눼에. 킥킥킥킥.”


메넬레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녀석을 윽박지르긴 했지만, 속은 편하지 않았다. 이 자의 본래 신분은 감히 자신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차디찬 감옥에 갇힌 신세였다. 근 10년 동안 말이다. 이 자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차마 죽일 수 없어서. 스승도 이 분의 처벌에 대해선 함구했을 정도였다.


“메넬레스, 메넬레스, 메넬레스.”


이번엔 어린 아이가 말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였다. 메넬레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상 상대해주다간 밤새도록 시달릴 터였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풀이 죽은 듯한 음성을 내뱉었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리블레다인 공작을 대신하여 블랙 아미를 이끌어나갈 적임자로 불렸다. 메넬레스를 비롯하여 모든 블랙 아미의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블레다인 공작 각하가 남기신 책을 만진 순간, 갑자기 미쳐버렸지.’


블랙 아미 내에선 리블레다인 공작의 유언을 어겼다며 그의 행동을 비판한 자들도 있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자들이 훨씬 많았다. 그도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자의 이름이 떠오르는 건 뭘까? 그 날, 이 자를 심문하는 장소에서 본 섬뜩한 미소. 하지만 메넬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자가 그럴 리는 없을 테니까.


“메넬레스, 자고 있습니까?”


르펜이었다. 스승의 지시에 따라 근신해 있어야 할 그가 지하 감옥에 온 것이다. 궁금했지만, 메넬레스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반쯤 뜬 눈으로 철창 너머에 있는 르펜을 보며 대답했다.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근신에 처했던 터라 소식이 늦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면서요.”


이에 메넬레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실패한 일을 콕 집어 말하다니 녀석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보통의 인간 같으면 이런 말을 꺼낼 리는 없을 테니까.


“... 그랬었죠.”

“하지만 제 임무는 성공시키셨더군요.”

“그렇군요. 분명히 당신이 지시한 임무가 있긴 했습니다.”


메넬레스의 말에 르펜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그를 살펴보는 듯한 눈빛. 의심의 눈초리는 아니었다. 단지 그의 몸을 샅샅이 훑어볼 뿐이었다. 하지만 메넬레스는 자신의 모든 것이 낱낱이 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나쁜 시선. 그렇다고 그에게 반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관찰이 끝나자 메넬레스는 끔찍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신의 행동을 살펴보았습니다. 확실히 제 임무를 수행했더군요. 학생으로 신분을 숨기고 그러다 들켜서 애들을 훈육하고. 하지만 그 대가로 동지들을 돕지 못하고 론데르만 가주의 힘에 눌려 건물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를 보았습니다.”


메넬레스는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동공이 확장되었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그 날 자신이 했던 일들을 모조리 다 파악할 수가 있었을까! 하지만 정말 놀란 건 다음의 말이었다.


“메넬레스, 저 자를 미치광이로 만든 사람을 저로 의심하는 겁니까?”


무감각한 말투, 하지만 그 안에는 메넬레스의 숨을 움켜질 만한 어마어마한 힘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그의 시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마치 숲의 맹수가 자신을 사냥하려는 듯한 눈빛이었으므로. 르펜은 지금 여기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그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흐흐, 메넬레스를 괴롭히지 마. 내 아들아.”


이에 르펜의 인상이 처참히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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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평화는 없다. +1 17.09.27 219 7 12쪽
86 엘렌과 슈네이도그 가주의 진실한 대화(2) +4 17.09.26 234 5 12쪽
85 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1 17.09.26 187 6 11쪽
84 슈네이도르 가문의 유전인가 보구나. +2 17.09.25 238 6 12쪽
83 반란의 징조 +4 17.09.25 18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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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결전(1) +4 17.09.06 262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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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프시케의 선택(1) +4 17.09.04 25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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