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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네이도르 가문의 막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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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말로링
작품등록일 :
2017.06.29 14:07
최근연재일 :
2017.10.0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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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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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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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1)

DUMMY

79화 - 운명의 장난(1)


한바탕 욕이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헤르세 주교님이 나를 힐끗거리는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메를린 소가주 녀석을 입 다물게 했으니 나름 성과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를 대하는 것 같았는데... 리우리케라는 사람은 조금 이상했다. 마치 나를 떠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럴 때마다 이반이 나서긴 했는데 왠지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눈치 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엘렌 아가씨, 잠시 저와 이야기 좀 나눌까요?”


헤르세 주교님이 나를 부르셨다. 처음엔 공녀님이라더니 일행과 만난 후론 나를 아가씨로 불렀다. 상관없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마치 나를 숨기려는 듯한 호칭. 도대체 과거의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걸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휴식 시간 동안, 헤르세 주교님과 산책했다.

숲속을 벗어나자 광활한 붉은 수수밭이 펼쳐졌다. 어제 보았다는 아멜란 평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물결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내가 넋을 놓으며 바라보자 헤르세 주교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이신 엘루미아님이 영지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노란 꽃을 좋아하긴 했습니다만, 이 붉은 수수밭도 좋아하셨지요.”

“저도 들은 적 있어요. 가끔 이 붉은 수수밭이 생각난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자 헤르세 주교님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엔 씁쓸함과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헤르세 주교님과 어머니는 어떤 사이일까? 하지만 헤르세 주교님의 입술이 더 빨랐다.


“공녀님이 태어나기 전, 아카데미에서 엘루미아님을 만났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자, 이만 돌아가 볼까요?”


나는 그에게 묻는 것도 잊어버리곤 멍하니 그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두 개의 가죽 신발. 그걸 보고 있자,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


프시케는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하르페닌 영지도 향했다. 사실 케이샤 후작의 말을 듣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르페닌 영지 전체가 블랙 아미의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엘렌의 친구를 자처한 에스텔이란 아이의 행동도 전부 감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걸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더욱 강하게 채찍질했다. 하루라도 빨리 블랙 아미와 접촉해야 했다.


“르펜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이 방법밖엔 없어. 이럇! 좀 더 힘을 내다오!”


프시케는 제발 자신의 계획이 잘 통하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벌써 이틀째 말을 타고 이동했다. 지칠 법도 하지만, 쉴 시간조차 부족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말을 갈아타며 이동 중이라 말의 피로도는 적었다는 거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지만, 자지도 않고 이동하니 무리가 오는 건 당연했다.


“하아... 그런데 아버지는 왜 스승님의 위치를 물어보신 걸까?”


데니츠는 자신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위치를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엘렌을 만날 수 있는 루트에 머물렀다. 프시케는 살짝 걱정되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가문의 수치이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자였다. 그런 그를 걱정한다?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프시케는 흔들리는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는 어쩔 수 없이 말씀드리긴 했지만... 뭔가 이상해. 마치 범인을 찾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하르페닌 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말의 속도를 늦춘 그녀는 눈부신 햇살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따사로운 기운이 몸을 감싸자 몸속에 쌓인 피로도 가시는 기분이었다.


“정지! 통행증이 없다면 이 마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말에서 내리신 후, 통행증을 보여주십시오.”


케이샤 후작의 말대로 경계는 매우 삼엄했다. 눈앞에 보이는 두 경비원 말고도 벽 너머엔 열 명이 넘는 경비원들이 숨죽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시케는 말에서 내린 후, 얼굴을 가린 새하얀 천을 천천히 풀었다. 그녀의 얼굴이 공개되자 순식간에 경비원들의 몸이 굳어버렸다. 아름다운 은발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이 대륙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프, 프시케 K 슈네이도르... 어째서 은발의 마녀가?”

“통행증은 여기에 있다.”


프시케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경비원에게 나무로 만든 패를 던졌다. 그러자 허겁지겁 패를 받아들곤 샅샅이 훑었다. 틀림없는 그들만의 통행증이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은발의 마녀는 이곳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적으로 간주했던 그들이었다. 최근엔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프시케는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체르비슈님을 만나러 왔다.”

“... 네? 체, 체르비슈 스승님을 뵈러 오셨다고요?”

“그렇다. 그 패는 최고 간부의 패가 아닌가? 블랙 아미 내부 규약에 따르면 그 패로 체르비슈님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그, 그건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르펜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 서둘러 그 자를 만나 담판을 지어야 했다. 그녀는 가죽벨트에 묶인 흑검을 풀어 그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통신이 가능한 수정구슬까지. 그러자 경비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들여보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 들여보낼 수도 없고.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그대들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다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내용은 살벌했다. 무기를 넘기고도 저 자신감 넘치는 말투라니. 그들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뜻대로 해주었다. 처음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젊은 경비원이 정중한 자세로 말했다.


“프시케 아가씨, 블랙 아미 본부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무기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몇 가지 확인하고 곧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알겠다. 아, 내 검은 조금 무거울 터이니 혼자 들지 말거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100 kg. 그게 저 흑검의 무게다.”


그녀의 담담한 말투에 경비원들은 경악했다. 무심결에 들려고 했던 경비원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


“음? 벌써 눈치 챘나? 생각보다 빠른 걸? 이것도 하나의 변수가 될까?”


리우리케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윙크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우리 마차는 하염없이 이동했다. 창밖으로 푸르른 강이 펼쳐져 있었지만, 내 눈은 온통 그 붉은 수수밭에 머물러 있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다는 말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헤르세 주교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기 흐르는 강물과 같은 머리카락이 바닥을 숨기려는 듯 주교님의 얼굴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왠지 각진 턱선이며 목소리, 품격을 합쳐보면 꽤 미남일 것 같은데 말이야. 젊어 보인다는 것 빼곤 잘 모르겠다. 그 젊어 보인다는 것도 아기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보고 내 나름대로 추측한 거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헤르세 주교님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렸다. 마치 나를 기특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나라면 어린애 취급 하냐며 대들었겠지만, 왠지 이 분께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제님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다 왔군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하니 모두 마차에서 내려주십시오.”


마부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다시 여행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자다 일어나니 성인이 되고, 친구들과 여행하는 중이라니 기가 막혔지만, 이제는 꽤 적응했다. 이반의 에스코트를 받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에 반해 보네한 녀석이 난동피우는 건 여전히 적응할 수 없었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주변엔 수많은 마차들로 가득했다. 마차를 구경하는 것도 잠시, 가이드인 마부아저씨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 오솔길을 쭉 따라 올라가시면 대륙에서 가장 큰 폭포가 나타날 겁니다.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다 같이 올라가셔도 좋고 따로 올라가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폭포 앞에서 만날 테니까요. 제 추천은 커플끼리 올라가는 건데... 으음, 아투스 사제님이 있으니 그건 불가능하려나요? 하하하하하.”


그러자 헤르세 주교님이 웃으며 답했다.


“아투스님께서는 솔로들을 싫어하십니다. 커플을 존중하시지요. 솔로지옥. 커플천국. 아투스님의 신조이시죠.”

“오오! 역시 다른 신전과는 달리 개방적이군요! 제 아내가 아투스 신전에 다니는 이유가 있었네요! 어쩐지 밤일에 격해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추태를 부렸네요.”


그의 정중한 사과에 빵 터진 우리는 마부 아저씨를 뒤로 한 채, 갈림길 앞에 섰다. 다같이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왠지 이반이랑 올라가는 것도... 하지만 내 생각을 꺼내보기도 전에 어디론가로 납치되었다.


“엘렌 아가씨, 저와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네그라도님과도 함께 말이죠.”


헤르세 주교님이 나에게 제안했다. 살짝 망설였지만, 이반이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헤르세 주교님이 나에게 친절하게 하는 이유를 이반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내 무차별적인 애교공세를 퍼부었지만, 이반은 헤롱거리면서도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헤르세 주교님과 약속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반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쳇! 내 애교가 안 먹힐 줄이야. 아버지한테는 잘 먹혔던 거 같은데...


“그럼, 전 그라시아스와 보네한 형과 함께 올라가겠습니다. 리우리케 선배님은 에스텔과 올라가주세요.”

“그러지 뭐. 동생! 어서 가자구!”

“네! 언니! 엘렌! 있다가 봐!”


두 자매는 환하게 웃으며 첫 번째 갈림길로 달려갔다. 이반도 둘을 이끌고 올라갔고 남은 건 우리. 헤르세 주교님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올라가 볼까요? 가는 길이 심심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후, 모두가 사라진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데니츠였다. 그는 주변 두 눈을 감고 기운을 추적했다. 힘을 사용할 때마다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그는 참아냈다.


“찾았다. 역시... 살아있었나?”


하지만 그의 옆엔 엘렌도 함께였다. 녀석이 일부러 그런 건지 몰라도 이건 좋은 기회였다. 자신의 죄를 밝힐 수 있는 기회.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그들이 사라진 길로 달려갔다.


작가의말

프시케는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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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평화는 없다. +1 17.09.27 21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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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엘렌과 슈네이도르 가주의 진실한 대화(1) +1 17.09.26 188 6 11쪽
84 슈네이도르 가문의 유전인가 보구나. +2 17.09.25 238 6 12쪽
83 반란의 징조 +4 17.09.25 18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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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결전(1) +4 17.09.06 262 6 11쪽
63 프시케의 선택(2) +6 17.09.05 229 7 12쪽
62 프시케의 선택(1) +4 17.09.04 254 6 11쪽
61 일촉즉발의 상황 +4 17.09.03 281 7 12쪽
60 블랙 아미의 화려한 등장 +4 17.09.02 245 7 11쪽
59 아카데미 축제(3) +6 17.09.01 246 6 11쪽
58 아카데미 축제(2) +3 17.08.31 294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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