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31화]
* * *
숨이 약간 거칠어지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현재 온 몸이 한 남자에게 결박된채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전투를 겪어보았지만… 나 자신이 이렇게 인질이 되어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지금, 나는… 이 상황을 무서워 하는건가?
아냐.
나는 부정한다.
강력한 마력을 사역하는 마법사인 내가 고작 이런 상황에 겁을 먹을리 없다.
"참으로 용감한 아가씨로군. 아가씨는 이 날카로운 칼이 무섭지 않은건가?"
목에 대어져 있던 칼날이 눈 앞으로 올라왔다. 그것은 신전의 환한 조명을 반사시키며 소름끼칠 정도로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많은 힘을 주지 않더라도, 저 정도로 날이 서있다면 인간의 연약한 피륙 따위는 쉽게 가를 수 있겠지.
"… 당신이 이런짓을 한다고 해도, 원하는건 얻을 수 없을거에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상당히 거친 반응이었다.
그는 칼을 쥐고 있지 않은 손으로 내 몸을 거칠게 휘어잡더니 내 귓가에 분노에 찬 어조로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척 하지마. 귀하게 자란 아가씨는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니까."
내 연약한 육신은 남자의 아주 간단한 제재 따위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려는 신음을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려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시 날카로운 칼날이 목덜미에 닿았다.
서늘한 고통과 함께 내 목에서 따뜻한 액체가 목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네 말을 듣자고 너를 인질로 잡은게 아냐. 또다시 쓸데없는 말을 꺼냈다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너를 범할꺼야, 아가씨. 그런 험한 꼴은 당하고 싶지 않지…? 알았으면 인질답게 가만히 입닥치고 있어."
… 당연하겠지만, 이미 자신의 죽음을 염두해 두고 있는 사람에게 대화가 통할 여지는 없다.
남자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내 팔목을 거칠게 비틀어 잡고 있는 그의 손바닥엔 땀이 가득했다. 그것은 물론 두려움에서 기인하기도 했겠지만, 주 이유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광기어린 흥분과 분노 때문일 것이다.
남자는 곧 자신만만한 기색이 되어, 신전 기사들에게 외쳤다.
"자, 인질의 가치가 바뀌었다. 아까 전 말했었던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기에 주교의 목숨은 부족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아가씨는 다르겠지? 다름아닌 북령주의 공주님이니까 말야."
헤에, 과연 내 목숨이 이리스테야의 모든 시민들을 한 장소로 불러들일 수 있을만한 가치가 있을까?
목숨이 달린 심각한 상황이지만,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건- "
신전 기사측도 상당히 난감한 모양이었다.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군…. 차라리 금품 따위를 원했더라면 상황은 간단했을 텐데.
남자가 이런 행동을 하는 원인이 간단하지 못한 일이니, 지금의 상황 역시도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빌어먹을, 난 참을성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야!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공주님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여기서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욕을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낼수도 있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이익- 하고 내 상의가 약간 뜯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욕을 보이겠다는 남자의 말은 그저 위협뿐이 아닌듯 했다. 나는 옷에 감싸여져 있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분노에 가득 찬 레르그란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비열한 놈!"
"나를 비열하게 만든건 다름아닌 너희들이다."
… 상황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고, 건물 내엔 잠깐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곧 그 침묵을 레르그란트가 먼저 깨었다.
"… 좋아, 네 요구를 들어주지. 하지만 네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선 먼저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이리스테야의 모든 시민들을 불러모으기엔 이 신전은 너무 좁으니까."
진심인가…?
정말로 이리스테야의 모든 시민들을 불러모으겠다고….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남자는 레르그란트의 제안에 긍정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 전에,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란 경고를 먼저 해두고 싶군. 이 공주님은 계속 내 손아귀에 있을테니까."
"…."
레르그란트와 남자는 한참동안 서로를 노려보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여전히 남자의 손에 붙잡혀 거의 끌려가다시피 신전 밖으로 나가며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는 내가 마법사라는걸 모른다.
일반인으로선 마력은 느낄 수 없는 대상이며, 그것을 사역하는 나는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그를 죽음으로 내몰수 있다.
문제는… 내가 마력을 사역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남자와 나, 단 둘이 있을 수만 있으면 해결되는 일인데… 골치아픈건, 어떻게 그런 기회를 만드냐는 것이다.
"꺄앗!"
신전 밖으로 나가자 내 몸을 옭아매고 있던 남자의 손길이 순간 거칠어졌다. 뒤에서 끌려가고 있던 나는 순식간의 그의 손에 의해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인질인 나를 앞에 내세운 남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거의 백 명은 될법한 많은 수의 병사들이 신전 입구를 포위한채 긴 창을 겨누고 있었다.
"내게 거짓말을 했군…!"
남자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레르그란트도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레르그란트의 의도가 아니다.
"음… 아주 흉한 꼴을 하고 있구나, 네네아리케."
어딘가 나른한듯, 무심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등골을 타고 차가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걸어나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
참담함 뒤로 싸늘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적어도 아버지에게 만큼은…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도, 아버지에게 구함 받고 싶지도 않다.
"아버지라고…? 그, 그렇군. 당신이 바로 에스카랸 공작이로군. 딸이 인질로 잡히니 직접 구하러 온건가? 하, 하하- !"
그 동안 거칠것 없던 남자의 목소리가 이젠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로 인해 마비되어있던 공포라는 감정이 되살아 나는 걸까….
좁았던 신전 안과 달리, 밖인 이곳은 개방된 공간이었기에 남자가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더 크겠지. 덕분에 나를 붙잡고 있는 그의 손엔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목숨과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은… 인질인 내 가치밖엔 없다.
"당장 이 빌어먹을 병사들을 물려! 안 그럼 네 딸의 목숨은 없다!"
남자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시선은 그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건 상대할 가치조차 없단 태도였다.
아버지의 시선은… 줄곧 붙잡혀 있는 내게만 머물고 있다.
이 남자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찢겨진 옷으로 인해 느껴지는 수치심보다, 그런 아버지의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병사들에게 간단한 손짓을 보냈다.
창을 들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활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화살통에 있는 화살을 꺼내어 시위를 당겼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끼이익- 하고 활시위가 팽팽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나를 붙잡고 있는 남자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가고 있었다.
"그만두십시오, 아버지! 누님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입니다!"
레르그란트가 나와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외쳤다. 그런 레르그란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네 누이를 붙잡고 있는 저자의 요구는 무어라고 하더냐."
순간, 레르그란트의 등이 긴장으로 인해 크게 움츠러드는것이 보였다. 하지만 곧 레르그란트는 일말의 떨림조차 섞이지 않은 선명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응수했다.
"이리스테야의 시민 전부를… 자신의 앞으로 모아달라고 하더군요. 국경지대와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이리스테야의 평화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잠깐의 침묵 뒤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 타협의 여지는 없다. 그곳에서 비켜라."
"그럴수 없습니다! 아버지, 눈 앞에 있는 광경이 보이질 않습니까? 누님이… 당신의 혈육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란 말입니다!"
분노로 가득찬 레르그란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 레르그란트가 나를 위해 저렇게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가로 막고 있는 광경을 보니, 좀 묘한 느낌이다.
그렇게 심하게 다투고, 서로를 미워했던 과거가 거짓말 같다.
혈육….
이상하게도, 그 말이 가슴속에서 계속 밟힌다.
"인질로 잡혀 있는 자가 내 혈육이라 다행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인질로 잡힌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혈육이라, 다행이다. 그 뜻을 알아들은 레르그란트는 순식간에 허리에 매어져 있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 검은 짙은 어둠속에서, 병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의 빛을 반사하여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미쳤어, 정말.
레르그란트는… 아버지를 상대로 검을 뽑아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레르그란트가 자신을 상대로 검을 뽑아든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없는듯 손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정말이다….
아버지는 정말로, 내가 잡혀 있는데도 병사들에게 화살을 쏘라는 명령을 내릴 기세다.
"화살을 맞고 싶지 않다면 거기서 비키거라, 레르그란트."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아버지."
… 아버지의 고민은 아주 잠깐이었다. 아니, 그 잠깐의 침묵은 사실 고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명령을 내리기 전, 호흡을 가다듬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쏴라."
슈슉-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레르그란트는 그 자리에서 비키지 않은채 검을 휘둘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번뜩인 그의 검은 허공을 날아가는 화살 여럿을 갈라 놓았고, 덕분에 나와 이 남자에게 닿는 화살은 몇개 없었다.
"미쳤군… 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야. 자기 딸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남자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살이 발사되기 직전, 내 팔목이 부서질 정도로 강한 힘이 남자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일단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한 지금… 그 힘이 다 빠져 있었다.
그가 기대했던 내 가치는… 아버지의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병사들이 다시 시위를 당기는 것을 보며,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유혹적인 목소리로 남자에게 속삭였다.
"이봐요, 날 데리고 도망쳐요."
"… 뭐, 뭣?"
의식적으로 남자의 몸에 가까이 붙으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이런 곳에서 죽기는 싫죠? 나도 그래요. 그러니 도망치자구요. 저기 작은 골목길이 보이죠?"
"보, 보인다."
내가 말한 골목길은 신전옆에 있는 아주 좁은 길이었는데, 너무 좁고 어두운 곳이라 주목을 받지 못했는지 포위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저기로 도망쳐요, 쏟아지는 화살은 저 앞에 있는 내 동생이 잠깐동안 막아 줄 수 있을거에요."
"알았다…!"
목숨이 경각에 처하자 남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 말을 들었다.
그는 곧 나를 붙잡은채 골목길로 뛰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가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함께 달렸다.
또다시 화살이 쏟아졌지만 레르그란트는 검으로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쳐내고 있었다.
* * *
"하아, 하아…!"
이렇게 힘들게 달려 본 적이 또 언제 있었을까….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벽에 등을 대고 기대었다. 숨을 고르며 옆을 보자, 남자가 초조한 기색으로 이 좁은 길목 바깥을 살펴보고 있는게 보였다.
이곳이 영구 발광 마법등이 없는 어두운 지역인 덕분에 포위망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붙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미 도시 입구 까지 봉쇄되어 있는 상태겠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내가 여기서 이렇게- "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것 쯤은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숨을 가다듬으며 찢어진 옷자락을 추스렸다. 밤 공기가 제법 차서 몸이 으슬으슬 시려오고 있었다.
나는 양 팔로 차갑게 식은 살결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신전에 숨어 들어왔을때 부터 죽음을 각오한게 아니었던가요? 왜요, 막상 진짜 위협이 눈 앞에 다가오니, 공포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요?"
그런 내 말에 남자는 버럭 화를 내었다.
"젠장, 네가 뭘 알아? 매일 따뜻한 잠자리에 맛있는 식사, 좋은 옷만 입고 사는 네가, 도대체 뭘 아느냔 말이다!"
남자는 나로 대변되는 이리스테야의 시민들에 대한 분노와 이미 가까이 까지 엄습해온 분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불안정한 그의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며 은밀히 주위를 살폈다.
… 여기가 발각되는게 시간 문제라 해도, 지금 주변엔 작은 인기척 하나 없었다. 이곳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더럽고 좁은 골목길이니까.
마력을 사역하기 위해 근원에의 접속을 시도하며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당신이 원하는건… 듀카스첼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국경의 상황을 이리스테야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뿐인가요?"
그는 방금전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긍정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그런가….
분쟁의 원인을 해결하는것 보다는 분쟁의 결과에 대해 타인을 원망하는게 더 쉽고 간단한 일이겠지. 이 남자는 분노의 대상을 좀 더 쉬운 쪽으로 바꾼것 뿐이다.
"이 거짓된 평화를 누리고 있는 녀석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나 내 동료들이 겪었던 처절한 상황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는 너를…!"
너를…?
남자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이어지지 않는 말은 곧 행동으로 환원 되겠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남자는 여전히 시퍼렇게 빛나는 단검을 손에 들고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아까전부터 손 안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마력을 감각하며 생각했다.
이 남자는 지금 나를 해하려 하고 있고, 내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남자를 여기서 죽이려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연해야할 그 대항이, 왜 이렇게 당연하지 못한 걸로 여겨지는 걸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본능이 내 안에선 이렇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남자의 거친 숨이 이미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또다시 위험에 처할 것이고, 이곳이 병사들에게 발각된 이후엔… 지금과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되겠지.
"당신, 이름이 뭐지요?"
… 마음을 먹고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냐고? 이제와서… 뭐, 상관 없겠지. 휴렐,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에게서 이름을 듣고난 뒤, 나는 미리 모아둔 마력을 발현시켰다. 그러자, 볼수도 느낄수도 없는 마력이 서서히 물리적인 힘을 갖고 그의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
휴렐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이라고 해서 이 마법의 발현 대상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옭아맨 알 수 없는 힘에 대해 그는 겁을 먹은듯 보였다.
… 몸부림 치는 그의 모습이 마치, 거미줄에 걸려든 나방 같았다.
챙그랑-! 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던 단검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숙여 그것을 주워들고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놀랐나요?"
"…."
물론 대답은 없다. 아니, 애초에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놀람의 수준을 넘어 공포에 질려있으니까.
나는 단검을 들어 그의 심장이 있을법한 위치에 겨누었다.
"나는 마법사에요. 나를 인질로 잡을때 부터,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지요."
입이 열리지 않자, 그는 내게 눈빛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건 자신 가까이에 죽음이 다가왔음을 인정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려는, 생명체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이건, 그가 죽음을 각오한채 신전으로 들어온것 과는 별개의 문제겠지.
"휴렐…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어요. 그건 미스틱 유니온의 마스터인 저도 항상 느끼고 있었던 위화감 중 하나 였으니까요."
마치, 고백하는 듯한 어조로 그에게 말을 해본다.
그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어, 내 말을 알아듣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다.
'말' 이라는 것은 입 밖으로 내뱉을 때 부터 구속적인 효력을 갖는다. 그것은 굳이 그 말을 상대방이 듣지 않더라도 그러하다.
…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며, 마음속에 도사리고만 있던 막연한 추상을 구체로 끌어올려 본다.
"미안해요…. 당신들의 원망, 당신들의 분노, 당신들의 슬픔은 모두 당연해요."
"…."
"당신의 이름, 꼭 기억할게요. 나를… 원망해요."
내가 들고 있는 단검이 그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내 약한 완력으로 그에게 빠르고 편한 죽음을 내려주지 못할까 고민했었지만, 그 고민은 무용했던것 같다. 단검은 충분히 뾰족하고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으니까.
푸슛- 하고, 그의 가슴에서 잔뜩 피가 튀어 올랐다.
그것은 그의 바로 앞에 서있던 나의 머리부터 천천히 적셔 왔다. 피는 무척 따뜻해서 차가운 밤바람에 식어 있던 내 몸을 덥혀 주었다.
"…."
휴렐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아…."
나는 여전히 쥐고 있던 단검에서 손을 떼고 뒤로 몇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이곳은 좁은 골목이었고, 내 등은 곧 딱딱하고 차가운 벽에 닿고 말았다.
… 굳이 내가 이 남자를 죽여야만 했을까.
일을 벌이고 난 뒤,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휴렐이라는 이 남자의 사형은 확정된 것이고, 나는 이 남자의 위협에서 안전히 벗어나는 것과 더불어 마법사라는 사실 역시 숨겨야만 했다.
답은… 이 남자를 여기서 죽이는것 밖엔 없었다.
순간, 집중이 크게 흐트러져 휴렐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마법이 풀려 버렸다. 이미 죽어버린 그의 육신이 무너지며 내 몸을 덮쳤고, 나는 시체와 함께 더러운 골목길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읏…!"
성인 남성의 몸은 내게는 너무나 무겁다.
시체에서 벗어나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넘어지며 어딘가에 머리라도 찧은듯 싶었다.
왠지 모르게 덜덜 떨리고 있는 손으로 머리를 짚어보니, 피가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내 피인지, 아니면 휴렐이었던 이 시체의 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점점 정신이 흐려져 가는것 같다.
"하- "
정말, 이게 무슨 꼴이람.
시야마저 점점 흐려져 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정신의 끈을 놓기 직전, 레르그란트의 형상을 한 소년이 이 골목길에 들어오는것 같은 모습을 본 것 같았다.
- 작가의말
* 아, 요새들어 정말 답답하네요. 쓸 이야기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진행은 더디고... 아, 여기서 진행이 더디다는 말은 글의 진행속도가 느리다는 뜻이 아니라, 제가 많은 분량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현재 이 템포가 정상입니다 ㅠㅠ
답은 많은 분량을 팍팍 쓰면 된다는 것인데, 그럴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네요. 가끔 농담으로 하는 얘기처럼, 누가 절 좀 가둬두고 24시간 동안 글만 쓰게 해줬음 좋겠습니다ㅋㅋㅋㅋ 속편한 얘기.
* 아무튼,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__)
* 너무 피곤해서 글만 올리고 바로 자야겠습니다. 리리플이 없는걸 용서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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