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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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따뜻한 물속에서 내가 물고기라도 된 양 유유히 유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몸 양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듯한 이 부드러운 물결….
시선을 들어올리면 출렁거리는 물의 표면 사이로 따스하고 하얀 빛이 이지러지고 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길게 뉘인채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행복감은 최고조에 이르러서 지금 죽음을 맞이할거란 잔혹한 선고를 받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지금 죽어도 좋아….
그렇게 근거모를 끝없는 행복감에 파묻혀 나는 막연히 나의 종말을 생각했다.
가장 행복할 때,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를 미래의 불행을 생각하는건 인간의 특성일까…. 그래도 지금의 행복감에 대비될 만한 것은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나는 마음 깊숙한 곳으로 부터 찬란한 충만감에 가득 차 있었다.
… 죽음을 떠올린 탓일까,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충만한 행복감이 썰물 같이 서서히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
안타까움에 방향감도 아득한 이곳에서 나는 앞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어, 위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향했다.
얼굴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 졌고, 그제서야 나는 내가 물의 표면으로 생각했던 것이 하늘거리는 커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나, 누나…!"
옆에서 느껴지는 소란스러운 외침과 내 몸을 흔드는 누군가의 손길로, 내 정신은 현실로 끌어내려지고 말았다.
"…."
아니, 이것은 현실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레르그란트의 모습이 있었다.
목덜미를 가볍게 덮고 있는, 반짝거리는 은발과 귀여운 다홍빛 입술. 그리고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
그것은 어렸을적, 나의 기억속에 있는 레르그란트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레르그란트…?"
"누나, 잠꾸러기! 언제까지 자고만 있을꺼야…!"
레르그란트는 얼굴에 가득 불만을 품고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쏘아보고 있는 저 푸른 눈동자엔… 지금까지의 막연한 적의나 거부감 따위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아니, 그의 눈동자엔 반짝이는 기대감과 한 없는 애정밖에 담겨있지 않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누워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내가 누워 있던 곳은 푹신한 솜이 잔뜩 들어있는 긴 의자였다. 의자는 창문을 향한채 놓여있어,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었다.
뭐, 지….
나는 과거로 돌아온건가?
여전히 정신이 멍해 제대로된 사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상황을 아무런 이성적 판단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누나, 또 어디 아파…? 내가 쉬고 있는데 괜히 귀찮게 한거야?"
레르그란트는 얼굴에 잔뜩 걱정을 품인채 내 무릎위로 기대었다. 걱정을 품고 있다곤 하지만… 그 얼굴엔 일견 놀아줄거란 기대감도 엿보이고 있어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숙여 레르그란트의 하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매끄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안 아픈거지? 그럼 내 방에 가자! 아까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작은 새가 재잘거리는 것처럼, 레르그란트는 내 무릎에 기댄채 몸을 들썩거리며 신이 난듯 떠들어댔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짐짓 혼을 내는듯,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매일 그렇게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혼날텐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검술 수련은 모두 끝내었니?"
내 말에 레르그란트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난 그거 싫어…! 아버지는 왜 자꾸 내가 싫어하는걸 억지로 시키는거야?"
나는 동생의 귀여운 불만을 받아주며 답했다.
"그건 네가 장차 이 북령주를 이끌 에스카랸 공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야.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하렴."
레르그란트의 얼굴은 이제 아예 울상이다.
나는 계속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난 싫어. 싫은건 싫은거야! 에스카랸 공작같은건… 누나가 되면 안되?"
내가… 에스카랸 공작?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나는 레르그란트의 불만을 잠시나마 해소하기 위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레르그란트,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게."
그렇게 답하자 마자 앞으로 보이는 시야가 어지럽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별다른 판단도 내리지 못한채, 일그러지고 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장소는 바뀌어, 레르그란트가 조금 자란 모습이 되었다.
동생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채, 팔짱을 끼고 있는 아버지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1년, 2년, 3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레르그란트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아버지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어찌보면 소녀로도 보일법한 부드러운 선을 가진 소년은 점차 날카롭게 성장해갔다. 보드라운 손엔 굳은 살이 박히고, 몸 곳곳엔 작은 생채기들이 가득했다.
부드러움을 품고 있던 선한 눈동자는 점차 아버지의 그것처럼 냉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휙, 휙…!
휘둘러지는 검에 실린 힘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나는 그의 정면에 서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방금 지나왔던 동선을 그대로 따라 다시 휘둘러지는 은백색의 금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레르그란트는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는, 강건한 소년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아직 어렸을 적의 부드러운 선과 해사한 얼굴이 남아있긴 했지만 정면… 나를 쏘아보는 동생의 푸른 눈동자는 아버지의 것 못지 않게 흉폭하고 날카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
"…."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 같던 검의 휘두름이 어느샌가 멎어 있었다.
레르그란트는 손에 검을 쥔채, 그 앞에 서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레르그란트…."
조심스럽게 동생의 이름을 중얼거려 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다른 것은 있었다.
그의 모습이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멍한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고서 그의 얼굴, 어깨, 그리고 팔까지 차례대로 시선을 옮겼다.
레르그란트의 팔은 내 가슴쪽으로 뻗어 있었다.
"…."
그의 손에 들려있는건 은백색의 빛을 발하는 검이었고, 나는 내 가슴속에서 그 검의 차가움을 느낄수 있었다.
검면을 타고 내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동시에 레르그란트는 내 가슴에서 검을 뽑았고, 내 시야는 끈적하고 붉은 무언가로 완전히 덮여버리고 말았다.
… 다시 한번, 정신이 현실로 끌어내려졌다. 이번엔 기만이 아닌, 진짜 현실이었다. 즉, 잠에서 깨어났단 이야기다.
"꿈인가…."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괜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편하긴 해도 잠자리가 익숙치 않은 탓인걸까… 너무 뒤숭숭한 꿈을 꾸어버렸다. 친동생에게 살해당하는 꿈이라니.
잠에서 깨긴 했지만, 잠기운이 여전히 남아 머리속에 잔류하는 듯 했다.
아직까지 꿈속에 있기라도 한듯, 정신이 멍했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곤 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옷 사이로 레르그란트의 검이 관통했었던 가슴께를 만져 보았다.
당연하겠지만, 물렁물렁하고 보드라운 살결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상처 따위는 없다.
… 그래도, 기분이 영 좋질 않은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보니, 시트가 이리저리 구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딱히 특별한 잠버릇 없이 잘때는 거의 죽은듯이 잠을 자는 나인데…. 확실히, 꿈의 내용이 끔찍하긴 했었다.
"기분 나빠…."
* * *
그날 아침, 시장 관저 앞에 모인 우리는 어제 상의했던대로 나와 마스터 헤르닐, 둘로 나뉘어져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벨헬그와 소크헤어, 두 기사도 마찬가지로 둘로 나뉘어 우리를 호위하기로 했다.
나를 따라오게 된 사람은 왠지 어색한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소크헤어였다.
"이걸 받아요."
서로 등을 돌리기 전, 마스터 헤르닐은 소크헤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밀어진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소크헤어가 의아한 기색을 보이며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마스터 헤르닐의 손에 푸른 색의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규칙성을 이루지 못하고, 대기중에서 어지러이 이그러지려다가 이내 그녀의 손 위에서 천천히 어떤 모양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 전에 본것과 같은, 그 마법이군.
곧 마스터 헤르닐의 손엔 날개를 퍼득거리는 푸른색 새가 나타나게 되었다.
"단서를 발견했다 해도 연락할 방법이 없으면 빠른 대처는 불가능 하겠죠. 그러니, 이 새를 데려가 주세요."
소크헤어는 굉장히 어색한 동작으로 마스터 헤르닐의 손에서 새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이 새가 연락책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돌아온건 담백한 대답이었다.
소크헤어는 상당히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얌전히 새를 어깨위에 올려 놓았다. 그의 어깨위로 올라간 새는 잠깐 날개를 퍼득거리긴 했지만 금방 얌전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맡은 구역은 도시의 서쪽, 마스터 헤르닐은 동쪽이었다.
"…."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소크헤어는 어깨에 얌전히 앉아있는 새가 상당히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그 이유는 그 새가 보통의 생명체가 아닌, 마법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겠지.
길거릴 걷다, 나는 나답지 않게 그에게 제안했다. 그정도로 마법을 어깨에 두고 있는 그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 마법이 불편하다면, 제가 가지고 있을까요?"
"… 아, 이 새 말이오?"
내가 그것을 두고 새가 아닌 마법이라 칭했기 때문인지 그는 살짝 당황한 모습을 내비췄다.
그는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부디 그래주었으면 좋겠소. 아무래도… 이런건 좀 껄끄러워서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키가 상당히… 아니, 무지 큰걸. 까치발을 들고 손을 한참을 뻗어야 겨우 그의 어깨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어깨에서 마스터 헤르닐의 마법을 가져오려는데….
캭-
새가 이상한 울음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을 쪼아버렸다. 다행히도 가죽 장갑을 끼고 있어 손가락이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쪼는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손가락이 얼얼했다.
나는 쪼인 손가락을 매만지며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소크헤어는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애매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음… 아무래도, 이 새는 어쩔수 없이 계속 내가 데리고 있어야 겠구료."
"…."
쳇, 재수 없는 마법같으니-
* * *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굉장히 을씨년스러웠다.
지금이 여름이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이글거리는 태양은 천공에 떠올라 뜨거운 열기를 전해오고 있었다.
아, 이렇게나 날씨가 좋은데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평화로운 하늘의 풍경과 인적이 드문 지상의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양옆엔 건물들과 상점 좌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지만 그것들을 만든 인간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문명만을 남겨두고, 인간은 완전히 멸망해 버린것처럼. 사이비 예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세상의 종말이 이곳에 찾아오기라도 한 느낌이다.
"…."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도시는 보이지 않는 공포로 휩쌓여 있다.
상대가 인간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대상에게 거의 육천명이나 되는 이웃들이 사라졌다는건… 이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기는 충분한 일이겠지.
가끔 골목을 지날때마다 강렬한 공포로 물든 숨소리와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오곤 했다.
"으와아앙- ! 엄마는 어디간거야? 우릴 버리고 간거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어두침침한 골목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엔 꾀죄죄한 복장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제 어미를 찾으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리 좋은 복장을 하고 있지 않은 남성 한명이 급하게 아이에게로 다가와 양 팔로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걱정하지마. 엄마는 곧 돌아올 거린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말엔 힘이 없었고, 촛점이 불확실한 눈은 불안한듯 주변을 이리저리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골목밖에서 골목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는듯 입을 크게 벌렸지만 이내 아이를 안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게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입을 막은 손에 이가 파고 들어 피가 나고 있었다.
"… 저기, 이보게- "
내 뒤에 있던 소크헤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끌어안고 재빨리 이 골목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어색하게 앞으로 뻗은 소크헤어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
나는 아무말 없이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크헤어도 별다른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좀 더 걸음을 옮기자,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많은 인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얼거리는, 신성을 머금은 언(言)이 가득한 이곳, 아마드라네의 신전엔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와는 달리,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신관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마치 금을 입힌듯한, 선명한 금발…. 무척 익숙한 색채였지만, 나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 익숙함을 금방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 저 여성은…."
소크헤어가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내 옆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키와 덩치는 웬만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결국, 그 여성 역시 갑작스럽게 등장한 소크헤어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어머, 오랜만이군요, 소크헤어 씨."
엘렌….
이리스테야에 있어야 할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그녀는 소크헤어와 이미 아는 사이였던듯, 반가워 하는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소크헤어 역시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부드러운 얼굴이 되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엘렌 양, 어째서 이런곳에…."
둘은 상당히 친근한듯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도 납득이 가질 않지만… 가면을 더 눌러쓰고 저쪽에선 보이지 않는 벽 뒤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엘렌… 그녀의 앞에선, 감히-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라는 기만의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다.
이곳, 헤림다르의 흉흉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찾아온걸까. 정말, 별다른 힘도 없으면서 이런 위험한 곳만 찾아다니기는….
흥, 겁도 없는 계집애…!
"…."
나는 엘렌과의 대화를 마친 소크헤어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춘 나를 찾아 신전 주변을 이리저리 찾아다닐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 *
소크헤어와 나는 노을이 지고 날이 거뭇거뭇해질 무렵까지 도시의 서편 전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찾은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
해를 등지고 있었기에, 나는 내 뒤에 있는 소크헤어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까…. 나는 이 공간안에 울려퍼지는 나와 그의 발걸음 소리가 마치 메아리라도 되는것처럼 들려왔다.
그나저나, 인내심이 굉장한걸….
이 남자는 아무말도 없는 나를, 마찬가지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거의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거기다 보폭이 좁은 내 발걸음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느라 더 답답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쪽에서 단서를 찾지 못했으니, 마스터 헤르닐 쪽을 기대해 보아야겠구료."
저 멀리서 시장관저의 모습이 얼핏 보일때가 되어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
또다시 침묵이다.
평소의 네론그라시아라면 이 침묵을 반겼겠지만….
나는 다섯걸음 정도 앞으로 더 가서 결국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아까 신전에서 본 그 금발 여성은 누군가요?"
"… 엘렌, 이라는 분이오. 이리스테야에 있는 아마드라네 본 교단의 고위 여신관인데, 아까 본대로 자신이 직접 사람들의 아픔에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는 강건한 여성이오. 그녀와 처음 만난 장소도 전쟁터에서 다친 부상병을 돌보는 간호소였었지."
내 질문이 어딘가 이상했던걸까… 소크헤어는 잠시 머뭇거림을 보이다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나저나, 꽤 자세한 대답인걸.
"아까 전, 별 말도 없이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마법사인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로서는 신관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우와, 이 사람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길 하는 거람.
마법사와 아마드라네를 섬기는 신관이 은밀히 대립했었던건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다.
미스틱 유니온과 아마드라네 교단의 대립은 마력과 신성의 일치인 '성배 기사단' 의 창립으로 종결되었고, 지금은 그 연계가 대단히 굳건한 상태다.
하지만… 나로선 그가 그렇게 납득해 주는게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도적으로 엘렌을 피했던 아까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것보다, 이 남자… 엘렌에게 아주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었는데, 혹시-
엘렌을 좋아하는건가…?
- 작가의말
*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로 나오는 엘렌... 중요 캐릭터입니다ㅠㅠ
* 서서히 속도가 붙는것 같습니다 ㅋㅋ 새벽도 오늘은 오늘이니 3연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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