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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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음날, 나는 레르그란트와 로제랑이 저택 밖으로 나간걸 확인한 후, 다시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마스터 네론그라시아가 되어 저택을 나섰다.
본래, 오늘은 집에서 늘어지게 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로제랑에 관하여 레르그란트에게 부탁받은 일이 있으니, 유니온에 잠깐이나마 들려봐야겠다.
유니온엔 로제랑에 관해 미리 얘기를 해 두었고, 마스터가 아닌 일반 마법사도 많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만은… 그렇다고 그냥 언급만 해두고 그를 내팽겨 쳐두는건 너무나도 책임감 없는 행동이다.
귀찮지만… 책임은 언제나 번거로움 앞에 우선해야 한다.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다.
"하암- "
하품을 하며,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낮에 글로리아뎀에 방문할때면 항상 오는 길이어서, 이제는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 그건 좀… 아니려나?
아무튼, 그 만큼 이곳은 내게 익숙해진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네론그라시아의 모습을 하고 유니온을 방문할 때의 시간은 항상 밤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런 대낮에 가면과 두건을 쓰고 걷는게 조금 부담스럽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다닌다 하여도… 환한 태양은 내 모습을 여과없이 비추고 있다.
짙은 어둠으로 내 몸을 숨겨주는 밤과 다르게 말이야….
"…."
어느새 글로리아뎀의 입구에 도달했고, 나는 따로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바로 유니온의 본청으로 향했다.
여러겹으로 펼쳐져 있는 짙은 왜곡 마법을 뚫고 들어간 본청 안은 텅 비어있었다.
… 위화감이 들 정도로 지나친 침묵이 그 텅 비어있는 공간을 지나가고 있는 채다.
뭐, 여기선 이게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요한 홀(Hall)을 지나쳐, 근 몇년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내 공방을 찾았다. 로제랑이 찾아오면, 내 공방에서 대기시키라고 이야기 해두었기 때문에… 그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맞게 찾아왔다면 내 공방에 있을 것이다.
본래는 일자형의 복도지만,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으로 공간이 왜곡되어 구불구불하게 보이는 길을 걸어가 그 끝에 위치한 내 공방 입구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공방을 요새화 시켜, 자신의 허락 없는 출입을 금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방이란걸 사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문에 따로 프로텍트(Protect) 같은건 걸려있지 않았다.
그런게 걸려 있었다면… 로제랑으로 하여금 내 공방에서 기다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겠지.
끼익-
오랫동안 방치해둔 곳이라 상당히 녹이슬은 모양이었다.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으… 덕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이 조금 열리자, 그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촛불이라도 켜둔 모양이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끙끙대며 다시 한 번 당겼다. 또다시 그 사이에서 마찰음이 발생했고, 더 이상 그것을 듣기 싫었던 나는 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생기자 마자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다소 거칠게 닫았다.
쾅-! 하고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먼지들이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네론그라시아."
차분한 소년의 목소리가 피어오른 먼지를 꿰뚫고 나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와 다르게 나를 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친 유랑 생활을 보내긴 했지만, 지금껏 그가 살아오던 곳은 상식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인간의 인식 체계를 근간에서 부터 뒤흔들어 놓는 비상식의 영역….
저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사실, 대단한 것이지.
"복도를 걸어오면서 이상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실재(實在)하고 있는 것들입니까?"
… 이상한 것들?
서로의 인식이 불일치하는 것을 느낀다.
적어도 신비로 가득 차 있는 이 유니온의 본청에서, 내가 보는것과 로제랑이 보고 있는 광경은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신비를 인식하는 방법이 다른 나와 그이기에… 나로서는 그가 무엇을 보고 이상하다고 칭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신경쓰지 마라, 지금의 네가 관심을 가져서 좋을건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추상적인 공포를 그에게 심어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번번한 마력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로제랑이 알지도 못하는 고위의 신비를 접하는 것은 언제나 피해야할 일이다.
마법사는 알지 못하는 신비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
로제랑은 '앎' 으로서 그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가 어떤 질문을 하기도 전에 가차없이 그의 말을 막아섰다.
"신비에 임하는데 있어, 막무가내 식의 호기심은 너에게 죽음을 안겨줄 것이다."
"…."
그는 입을 다물었다.
* * *
이곳은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이라, 촛불을 오래 켜두는 것은 게걸스러운 불꽃으로 하여금 공기를 살라먹게 하는 것과 진배 없다.
나는 손바람을 일으켜 즉시 모든 촛불을 끄고, 공방의 천장에 마력의 힘으로 이루어진 빛을 창조했다.
로제랑은 경이롭다는 눈으로, 한참동안이나 그 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내게 물었다.
"저는… 마법이란 힘을 당신에게서 부터 배우게 되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카로운 소년의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다. 하지만 마법은 학문 같은 것이 아니다. 정확한 해답 같은것 역시 정해져 있지 않지. 때문에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건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밖에 없다. 나머지는 전부 너 자신의 몫이지."
로제랑은 보랏빛이 감도는 어두운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상관 없다. 곧, 알게 될테니까."
나는 내가 창조한 빛의 밝기를 조금 줄이며, 후드를 당겨 푹 눌러썼다. 로제랑에겐 꽤 오랫동안 마법에 관한 이야길 들려주어야 하는데, 머리카락이라도 삐져 나왔다간 큰 낭패다. 이렇게 선명한 은발은 오직 에스카랸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긍정하는 로제랑에게,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는 목적이 있는가?"
삶의 목적? 마법을 배우려는 목적? … 아무래도 좋다. 목적으로 표현 될 수 있는걸 아무거라도 가지고만 있으면 된다.
"목적…. 물론 입니다. 제게는 죽기 전에 꼭 해야할 일이 있지요."
상당히 뜬금 없는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시원스런 대답을 들려 주었다.
"다행이군. 마력을 사역하고 근원의 우주를 향해 나가는데 있어, 목적이란건 무척 중요한 것이니까."
마력, 근원….
로제랑으로선 모를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그는 그 단어들에 대해 질문 같은걸 던져 오지 는 않았다.
어쩌면 그 역시 마력을 사역하는 자로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어떠한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근원이란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왜냐면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것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근원' 이니까."
"…."
"연약한 인간의 정신력은 그것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파괴 될 수 있다. 자신에 비해 너무나도 압도적인 존재를 감각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성(Identity)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수도 있지."
으음… 나는 그리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을것 같다.
내가 처음 펠그로엘드에게서 마법을 배울때, 그는 알기 쉬운 비유나 표현으로 마력이나 근원을 설명해 주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것들을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막상 내가 남에게 그러한 것들을 설명하려고 하니 너무나 어렵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과거의 나와는 다르게 로제랑은 이미 마력을 사역할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알듯 모를듯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제랑에게 조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근원 안에선 네가 가지고 있는 목적에 매달려라. 복수든 뭐든 그것이 강하면 강할 수록, 네가 그것에 집착하면 집착할 수록 목적은 거대한 근원속에서 네 주체성을 지켜줄 것이다."
때문에 마법사들은… 다들 정신이 건강한 편은 아니다.
근원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마법사는 미쳐버리거나 자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체성을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음, 어쩐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인 얘기네.
* * *
로제랑에게 기본적인 것들만 설명해주고, 기초적인 마력 체계를 잡아주고 난 뒤, 나는 공방에서 나왔다. … 음, 이 공방은 앞으로도 쓸 예정이 없을 거라서, 그냥 로제랑에게 줘 버리는게 나을것 같다.
"…."
조용한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로제랑에게 마력을 사역하는데 목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적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너무나도 거대한 근원에서 술자의 정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기재라고 설명해 주었었지….
나 역시, 처음 마법을 접했을 때엔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조악하고 어리석은 목적이었지만… 어렸을 때라 그럴까, 나는 순수함을 무기로 쉴새 없이 근원을 파헤쳤었던것 같다.
지금의 내 마력 사역 수준 역시, 그때에 모두 형성이 되었었지.
그런걸 보면…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나이는 어렸을 때 인지도 모르겠다.
"펠그로엘드…."
어렸을 때를 회상해보니,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었던 하이 마스터였다.
그는 그때도 노인이었고, 지금 역시도 노인이다.
그러고보니, 펠그로엘드는… 어째서 내게 마법을 가르쳐 주었었던 것일까.
- 작가의말
* 끙... 하루 하루 정말 아슬아슬 하네요. 오늘 정말로 탈락할뻔 했습니다. 집에 온 뒤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눈좀 붙였다 일어나보니... ㅠㅠ 오늘도 겨우겨우 세이프! 하지만 덕분에 왠지 좀 이상한 곳에서 끊켰네요;;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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