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46화]
* * *
어둡고 습한 감옥에서 나와보니, 그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어려보였다.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듯, 빼빼마른 몸이 무척이나 여리게 보였고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애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꽤 귀여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환한 태양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인지, 눈이 부셔 하면서도 한 동안 태양쪽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상당히 여려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빛 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나 레르그란트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네론그라시아, 히로이얀 제국 미스틱 유니온의 마스터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설명은 그가 알아들을 수 없을테지.
"너는?"
"일단, 로제랑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당신들이 아랫대륙이라 부르는 로우랜드에서 왔지요."
일단….
이름 앞에 일단이라는 말이 붙을 일이 있던가? … 뭐, 하이랜드와 로우랜드의 언어 구조가 너무나 달라 우리가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이라도 되나보다.
나는 괜히 얼굴을 덮고 있는 후드를 더 푹 눌러쓰며 그의 모습을 살폈다.
그는 이 화려한 글로리아뎀의 내관에 놀라는 모습 보다는 쉬지 않고 주변의 지형 지물들을 살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오래는 아니었지만, 어둡고 차가운 감옥에 있느라 상당히 지쳤을텐데.
그러고보니, 유랑 생활을 계속해 왔다고 했었나…. 그 생활이 고된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것은 내 생각보다 더 힘들었을게 틀림없다.
로제랑은 주변을 살펴보는 것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당신은 저를 미스틱 유니온에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고작 삼 년 동안 이렇게 유창하게 히로이얀 어를 말할 수 있게 된건가…. 지금까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어조나 말투를 주의깊게 살폈었다. 아예 어색한 부분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점들이 간단히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인가…?
"그래, 네겐 마법에 대해 굉장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리고 방금은 그게 네 목숨을 살려주었다."
굉장히 싸늘하게 들릴법한 내 말에도, 그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마법… 이라 함은 아까의 당신과 제가 썼던 그 악마의 힘을 말하는 겁니까?"
다만, 그는 약간의 혐오감을 보였다.
음, 마법이 악마의 힘이라니…. 로우랜드 인인 그가 그렇게 말하자 조금 묘한 느낌이다. 왜냐면 우리 하이랜드인은 로우랜드 인의 존재 자체를 악마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나는 일부러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건방진 소리 마라. 로우랜드 인들에게 이 힘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마법은 결코 악마 같은 허상과 관련된 힘이 아니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헛소리 역시 죄라는걸 잊지 말아라."
내 경고가 위협적이었던지, 그는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코 납득한듯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마법을 악마의 힘이라 굳게 믿고있는 것이 틀림 없다.
… 조금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이랜드에 온지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법을 악마의 힘이라 믿고 있다니? 마법사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신을 따라 미스틱 유니온이라는 곳에 가게되면, 그… 마법을 배우게 되는 겁니까? 그리고 저는 당신들을 위해 일하게 되는 거구요?"
당신들….
나를 누군가와 묶어 범주화 시키는 그 표현이 다소 거슬렸다. 결코, 틀린 표현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질문에 긍정했다.
"그렇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겠다. 마법이라는건 남이 억지로 시킨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그에게 제시할 수 있는 선택은 단 두가지 밖에 없다. 그리고 강요가 아니라곤 하지만… 그 내용은 거의 강요와 다를바 없다.
나는 약간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결코 없었다.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미스틱 유니온에 가 마법사가 되어 히로이얀을 위해 싸우거나, 다시 저 어둡고 습한 감옥에 들어가거나, 그 둘 중 하나지."
"…."
… 가혹하구나. 하지만 내가 그에게 측은감을 느낀다 해도, 내게 그를 풀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건 아니다.
나는 강요와 다를바 없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 무마하기 위해 그 뒤에 말을 덧 붙였다.
"물론, 평생 히로이얀에 봉사하라는건 아니다. 너는 노예는 아니니까. 게다가 너를 붙잡은 레르그란트 라는 녀석이 후견인까지 되어준다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것이다."
그래,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지…. 하지만 선택 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건, 언제나 좋지 않은 일이다.
"… 좋습니다. 나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 수단이 마법이든 뭐든 상관 없습니다."
살아 남는다….
나는 망토 안에서 보드라운 왼손의 손등을 괜히 한 번 쓸어보며 생각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건전한 목적이 아닐까, 하고.
* * *
로제랑이라는 녀석은 레르그란트가 데리고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레르그란트 녀석, 저 로우랜드 인을 저택에서 지내게 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그다지 좋지는 않은걸….
로우랜드 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것 따위로 마음에 꺼림칙함이 있는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레르그란트 외에 네네아리케와 네론그라시아를 동시에 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으응, 뭐 별 문제는 없겠지.
이제 막 본 녀석에게 내 정체를 그렇게 간단히 간파당할 만큼 나는 멍청이는 아니니까. 하지만 곧 머리속에 내가 여자라는걸 단숨에 눈치챈 흑색의 좌, 에벨타르테가 생각나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
그건 그 녀석이 특이한 케이스니까. 그렇게 납득하기로 하자.
나는 걸음을 옮기며 잠시 옆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은 글로리아뎀 내의 복도였는데, 옆을 보자 커다란 기둥 사이로 아름답게 조형된 작은 정원이 보였다.
복도라곤 하지만… 이곳은 외부와 연결된 곳이어서, 작은 나뭇잎 따위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조금 엄격하게 보자면, 복도 청소를 담당하는 자들의 근무 태만이라 여기며 성을 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 이 모습이 운치가 있는것 같다고 생각되어 마음에 들었다.
잠시 저택으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커다란 기둥에 기대어 정원 안의 호수를 멀찌기서 들여다 보고 있는데, 복도 저 편에서 두런두런 말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했던 공간에 갑자기 소리가 들려 그곳을 바라보는건 거의 본능과도 같은 일이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이동했는데, 나는 그 대수롭지 않은 방금전의 마음을 조금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 복도 저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건 아버지를 포함한 네 명의 공작이었다.
제국의 북령주, 남령주, 동령주, 서령주의 지배자들이 지금 내쪽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들이 지닌 지위와 권위가 내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을 주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들 사이에 섞여 있는 아버지의 존재가 내 마음을 크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어째서 여황 폐하께서 듀카스텔을 치는 것에 대해 반대하시는지, 도저히 의중을 알 수가 없네."
중얼거림 같은 그 말을 받은건 서령주의 크로샤드 공작이었다.
"여황 폐하께서는 여자이지 않나. 게다가 아직 나이도 어리시지. 딱히 의중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전쟁을 두려워 하시는 걸지도 모르겠군."
"무례한 언행이로군, 크로샤드."
그 어떤 것보다도 차갑고 어두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복도 옆에 서서 예법대로 허리를 숙였다. 아버지와 다른 공작들이 내게로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게 느껴졌다.
… 이 긴박한 두근거림 소리를 아버지가 들으면 어쩌지?
아버지는 상당히 민감한 분이시니, 아무리 가면과 망토를 이용해 정체를 은폐한다고 해도 간단히 간파당하는건 아닐까?
"…."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리속엔 수 많은 자문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내 앞을 아버지가 지나가는 순간, 최고조가 되었다. 하지만 내 쓸데 없는 걱정과는 달리, 아버지를 포함한 네 명의 공작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다행이다.
굳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 내 모습에서 갑자기 자신의 딸인 나를 연상할 일은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냉철한 이성과는 달리, 감성은 제멋대로 날 뛰는 말처럼 제어가 되지 않으니까 말이지….
나는 아버지가 완전히 내 앞을 지나가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만…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야겠다.
"거기, 자네."
그렇게 생각하며 막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려는데,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버지의 목소리.
망토 안에서 손을 들어 가슴을 붙잡았다.
뭉클한 젖가슴과 함께, 손에는 쉴새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 오늘도 생존이 한계 ㅠㅠ 리리플 계속 못달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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