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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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우리는 또다시 말을 타고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히로이얀 제국 전역에 걸쳐 어디에나 있다는 아마드라네의 신전 하나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의외로 숙박 시설의 수준은 상당히 괜찮았다.
아마, 주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기 때문인듯 싶었다. 그 때문일까… 우리 일행은 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방 네 개, 있나요?"
"아, 네. 물론이지요."
여관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은 상당히 당혹스런 기색으로 벨헬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키가 상당히 큰 데다 훌륭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이봐, 벨헬그.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나 마스터 헤르닐은 모르지만 우리끼리는 같은 방을 써도 상관없지 않나?"
소크헤어가 벨헬그의 어깨를 잡으며 그렇게 물었다. 벨헬그 보다도 덩치가 더 큰데다 인상마저 거친 그가 앞으로 나오자 여관 주인은 아예 겁먹은 표정이었다.
뒤돌아본 벨헬그는 가당치도 않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슨 바보같은 소릴. 글로리아뎀에서 그렇게 엄청난 금액의 여행 경비를 수령했는데 너와 같은 방을 쓰는건 말도 안돼. 그런 꼴사나운 짓은 수습기사 시절로 족해."
"흠… 주어진 경비에 비해서 방값이 얼마 안된다고 해도 이건 상당히 쓸데 없는 지출로 생각되는데. 우리는 국가의 녹을 먹는 기사로서 좀 더- "
"그만, 그만 둬. 이런 쫌생이 같으니!"
벨헬그는 소크헤어의 말을 자르며 일갈했다. 소크헤어는 그의 일갈에 입을 다물긴 했지만 쫌생이라는 말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 아, 화난거 아냐?
그는 소크헤어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려 했지만 이내 기색을 가다듬고 애써 근엄한 얼굴을 한채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돈도 많은데 굳이 얼마 되지 않는 경비를 아끼려 남자와 남자가 같은 방에서 자는 짓은 아주 꼴사나운 짓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마스터 네론그라시아?"
… 가만히 뒤에 있던 나에게까지 화살이 돌아오는군.
"…."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는 부정하는것 같군."
소크헤어가 팔짱을 끼며 내 심정을 대변했다.
"뭐, 아무튼."
결국 방은 모두 각방을 쓰는 것으로 정해졌다.
마스터 헤르닐은 별 관심 없다는듯 키를 받아들고 배정된 방으로 올라가 버렸고,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키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딛었다.
위층으로 올라가기전, 뒤를 돌아보니 벨헬그와 소크헤어는 맥주라도 한 잔 하려는듯 테이블을 잡고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 둘은 사이가 상당히 좋은 친구인것 같다.
* * *
외관과 마찬가지로 여관내의 방도 상당히 깔끔한 편이었다. 물론 이리스테야의 숙박 시설과 댄다면 거의 마굿간이나 다를바 없는 수준이지만… 그건 너무 가혹한 비교겠지.
간단한 짐을 침대위에 올려놓고, 가면을 벗어 침대옆 탁자위에 올려두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잠시 눈을 감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 눈을 떴다.
창 밖은 컴컴한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 이런 작은 마을에 이리스테야 처럼 영구 발광 마법등이 거리마다 걸려 있는 것을 기대하는건 역시 무리겠지.
"흐응…."
잘 보이지도 않는 바깥을 응시하며, 나는 창틀에 기대었다. 밤이 어둡다는건 당연한 일지만… 이리스테야에선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인간은 마도 과학으로 밤의 어둠을 쫓아낼 수 있었고, 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활동 시간은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까지 그런 마도 과학의 산물을 느낄순 없지만… 나는 이런 자연스러운 어둠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선 별들이 잘 보이겠구나!
급하게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작은 감탄사를 터트리고 말았다.
광해(光害)로 인해 이리스테야에선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밤하늘이, 이곳에선 너무나도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양 팔로 창틀을 잡고, 상반신을 창 밖으로 내밀어 하늘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아주 커다란 검은색 도화지 위에 하얀 물감이 수 없이 튀겨져 있는것 같다. 아니, 이것은 너무 조악한 비유다.
인간의 인식으론 닿을 수 없는 저 거대한 암흑 공간속에서 고고히 하얀 빛을 발하는 저 천체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음… 그렇게 표현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을 십분의 일이라도 나타낼 수 있을까.
모두 회의적인 이야기다.
"…."
어렸을 적, 에스카랸 성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던 때가 생각났다. … 그곳과 거리가 그렇게나 먼데도, 보고 있는 광경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나는 오래전 배운 천문학을 기반으로 밤하늘을 헤어려 보며, 오랜만에 꽤나 즐거운 기분에 빠져들 수 있었다.
* * *
늦은 밤이 되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일까… 잠이 잘 오지 않아, 잠깐동안 여관 앞 공터라도 산책할 요량으로 가면을 쓰고 방을 나왔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최근들어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헬그와 소크헤어….
아직도 안자는건가. 이미 모두가 잠자리에 든 늦은 밤인데.
"아, 미스틱 유니온의 마스터들 말인가?"
… 나와 마스터 헤르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중인가?
"마스터 헤르닐은 그렇다 치고,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는 무척이나 어린것 같더군. 모습을 보지 못해 정확하진 않지만… 들리는 목소리만으로 판단해 본다면, 이제 고작 십대 중반 정도일까."
옅듣는건 꺼려지는 일인데….
산책하려는걸 그만두고 다시 방으로 올라가고자 했으나,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발걸음을 주저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처음 마스터들과 만날때도 이야기 했지만… 마법사라는 자들을 나이로 판단할 생각은 버려라. 특히, 미스틱 유니온의 마법사들은 더욱 더.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임에는 틀림 없지만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지식과 사고의 상당 부분이 '근원' 이라는 곳을 통해- "
뒤이어 들려온 것은 소크헤어의 목소리였다.
… 마법사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걸? '근원' 이라는 것 까지 언급할 수 있을 정도라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나도 알아."
잠깐동안, 그들은 술을 들이키는듯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벨헬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네론그라시아… 별명이 흡혈귀라고 했었지. 정말 섬뜩한 별명이야. 듣기론 전쟁터에서 만난 적병을 마법으로 아주 잔인하게 죽인다더군."
… 등골에 차가운 얼음조각이 들어간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저런 소름끼치는 별명으로 유명한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입에서 저 별명이 언급될때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갑고 매끄러운 가면의 표면이 촉각을 통해 전해져 오니, 흔들렸던 감정이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난할 생각인가? 물론, 마스터 네론그라시아의 마법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잔인하다는 것은 나 역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적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는건 굉장히 효과적인 일이지."
굵은 목소리… 소크헤어란 기사의 것이었다. 그에 뒤이어 쪼르륵- 하고 잔에 술을 따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껄끄럽게 생각하지 마라, 벨헬그. 마스터 네론그라시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히로이얀 제국을 위해 싸우고 있어."
… 이만 방으로 돌아가야겠다.
더 이상 이들의 말을 옅듣고 있을 염치가 없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벨헬그의 말이 내 발걸음을 붙들어 매었다.
"쳇, 그놈의 설교하는 듯한 말투 하고는…. 껄끄럽게 까진 생각하지 않아. 난 단지, 내가 마스터 네론그라시아의 나이 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보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나 참, 그 꼬맹이도 자신이 흡혈귀라고 불리는 것 쯤은 알고 있을거 아냐."
하아, 아주 잘 알고 있지.
… 기분이 완전히 엉망 진창이다.
"듀카스텔 제국과의 오랜 분쟁 때문이지. 마스터 네론그라시아 말고도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이 전쟁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야. 벨헬그, 우린…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 알고 있어."
그들에게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정말로 내 방으로 올라가야겠다.
으…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리 내 이야기가 나왔다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너무 많이 옅들은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흐음, 말이 나온 참이어서 말인데… 결국, 마스터 네론그라시아의 나이 땐 무엇을 했었나, 벨헬그."
"글쎄…. 계집애들 치마 들추는데 한참 열을 올렸던것 같은데?"
"빌어먹을 녀석."
… 그들에게선 한동안 웃음이 터져나왔고, 내 얼굴은 더욱 뜨거워 지고 말았다.
- 작가의말
* 엥. 그냥 자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또 얼추 분량이 되는군요. 그냥 마저 올리고 자러 갑니다.
* 의도치 않은 연참이 되었군요ㅋㅋ 글 초반이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마구 치솟아 올라 아주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2월 가기전에 1부를 끝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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