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126화]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 * *
"으음… 그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어. 내게 잡아먹힌 상대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살해자들의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역시 말야."
엘리노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그렇게 말했다. 그게 내 '미친 년' 이라는 감상에 대한 대답이었다. 부정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그 감상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선연히 떠올라 있었다. 아니, 그저 불만에 찬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내 어디가 미쳤다는 걸까? 난 도무지 모르겠는걸. 나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판단을 하고 행동하고 있다구! 하지만 미친 놈들은 그렇지 않잖아? 내 심상 세계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물론 남을 먹겠다는 본능 밖에 없지만, 본능만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이 나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본능만을 따르는 것은 미쳤다는 표현의 대상이 아니라 이거지!"
뒤이어 그녀는 내게 정말로 그렇지 않냐는듯, 동의를 구했다.
"잘 생각해보렴, 네네아리케. 돈, 명예, 여자 등과 같은 가시적인 것 만을 갈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도덕과 같은 사회적 규범을 가볍게 무시하는 인간이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게 그런 인간들이지. 뭐,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게 인간이지만. 하물며 돈, 명예, 여자는 먹음직스러운 요소잖아."
"…."
돈, 명예, 여자를 갈구하는 것은 본능. 사회적 규범은 이성.
나는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히로이얀과 듀카스텔간 지속적인 분쟁의 원인 부터가 전쟁 사업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귀족, 상인 들의 욕심이니까.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서로가 다투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교육받고, 실제로도 그것을 체감한다. 그럼에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득을 원하는게 인간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긍정하자, 엘리노어는 기쁘게 웃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저 좀 개성적인 것 뿐이란 말야. 내가 바라는 건 식욕 하나 밖에 없는걸. 내가 보기엔 내가 미쳤다기 보다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미친것 같은데. 뭐, 그 식욕의 대상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꺼림찍해하긴 하지만 말야, 후후."
"흐응, 글쎄…."
희미하게 답하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마물과 인간이 뒤섞인 엉망진창인 전장에서 마치 이곳만 구멍이 뻥 뚫린것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 엘리노어의 말대로, 그녀를 정확히 9984번 이나 죽이며 퍼진 음차원의 파동이 모든 생명을 으스러트린 까닭이었다.
온 몸의 내부 기관이 파동에 흔들려 으깨어진채 눈, 코, 귀, 입 등의 구멍으로 삐져나온 새빨간 모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끔찍한' 이라는 감상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그건 보편적인 사람들이 느낄것 같은 감상을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
공감하지 않는 내게, 이 광경은 그저 다소 지저분한 고기 덩어리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엘리노어와 마찬가지로 미친 년일지도.
보편적인 신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나 역시도 이 광경과 마찬가지로 재앙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나 역시도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이런 광경을 연출할 수 있을테니까. 으음… '공감' 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브레이크 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대체 뭐였지…? 관성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뭐, 상관 없나.
"어쨌든 그렇다면 너는 앞으로 열 여섯 개의 목숨이 남은거니?"
정확히 1만 인지 아니면 어림잡아 1만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0000 - 9984 = 16' 라는 단순한 계산 하에 나온 질문이었다.
열 여섯번이라…. 방금 전 죽여버린 9984 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문제는 내 신체가 온전치 않다는 것에 있다. 신격에 해당하는 마력을 사역하는 건 녹록치 않다. 솔직히 눈 앞에 침대가 있다면 그대로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 뿐이다. 서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드니.
아, 코피난다.
이런 격한 전투에도 용케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손수건을 꺼내어 코 부근을 꾹꾹 눌렀다. 비릿한 피맛이 목구멍에서 부터 올라온다.
"아니, 그건 심상 세계를 구현화 했을때의 얘기야."
그녀는 양 손을 들어보이며 멋쩍은듯 웃었다.
"지금의 목숨은 하나. 목을 날리든, 심장을 찌르든, 피를 많이 흘리든, 어쨌든 심대한 타격을 받으면 죽는 연약한 인간의 육신이야. 어때, 힘이 나지?"
글쎄, 딱히 힘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흐트러진 하얀 머리카락들을 뒤로 넘겨 다시금 하나로 묶으며 입을 열었다.
"약점을 그렇게 쉽게 말해줘도 되는 거니?"
"그래야 네게 희망이라는 조미료가 뿌려지거든. 나는 그 희망마저 꼭꼭 씹어먹을때가 가장 행복하더라."
아, 빈틈.
나는 헤헤, 하고 행복하게 웃는 그녀를 향해 얇게 정제한 마력의 칼날 수십발을 날리고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피곤이 극에 달해 내가 쏘아낸 마력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확인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다만,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진걸로 보아 내 기습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있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쓰러진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인간의 비명, 그리고 소름끼치는 마물의 울음소리가 가득했지만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고 평화로웠다. 맛있는 샌드위치라도 바구니에 넣어서 소풍이라도 가면 좋을 법한, 그런 날씨….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소풍이라는 것을 간 기억이 없는걸. 아, 어릴적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였지. 푸른 하늘과 작은 동산, 야채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 꽃 화관.
머리속에 다소 뻔한 이미지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안녕!"
내 의미 없는 상념을 깨운것은 엘리노어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무릎을 굽힌채 태양을 뒤로하고, 내 얼굴을 내려다 보며 이를 드러내 웃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낸 내 공격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나보다.
그것보다… 그녀는 꽤 행복해 보인다.
자신이 미친게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두가 미친것 같다는 그녀의 재밌는 주장을 떠올리며 나 역시 입을 열어 그 새삼스러운 인사에 답했다.
"응, 안녕."
"흥, 재미없어! 일부러 네 공격에 당한척 비명소리까지 내질렀는데 반응이 이게 뭐니?"
어찌들으면 조롱인듯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마치 어린애 같은 순수한 투덜거림. 동시에 잔혹한 투덜거림이기도 했다.
"어?"
갑작스럽게 검은 천같은 무언가가 내 시야를 뒤덮였다. 힘이 없어 덜덜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뒤덮은 천을 걷어보니 그건 엉망으로 뒤엉킨 내 망토였다.
이제 시야에는 내 왼쪽 발목을 붙잡은채 내 다리를 그녀 자신의 눈 앞까지 들어올리고 있는 엘리노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하얗고 긴, 예쁜 다리네."
엘리노어는 작게 감탄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감탄에는 희미한 기쁨마저 어려있었다. 하지만 기쁨이라니….
그녀는 한 동안 내 다리를 감상하다가 이내 내가 신고 있는 부츠에 손을 댔다. 잠깐 동안 끙끙대더니 결국 그녀는 내 발에서 부츠를 벗겨내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니?"
"응? 뭘하다니, 처음부터 이야기 했잖아. 다리부터 먹겠다고."
태연한 대답이었다.
"아…."
아참. 그랬었지.
어떻게 해야할까.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리를 이리저리 비틀어 보았지만 이미 신격 마법의 반작용을 받고 있는 몸은 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금방 포기했다.
엘리노어는 나를 보며 뭘 한거냐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발등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꺅!"
입에서 반사적으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문 부위엔 선명한 이빨자국과 함께 붉은 피가 타 내리고 있었다. 시뻘건 핏물은 발등에서 발목을 지나 정강이, 그리고 허벅지를 타고 내려왔다.
별로 세개 깨물은것 같지는 않은데… 모든 이빨이 송곳니처럼 날카롭기라도 한건가.
"얌전히 있어."
곧 그녀는 오른쪽 발에 신겨져 있는 부츠마저 벗겨내어 내 양 발목을 모두 붙잡았다. 그리고 엘리노어는 한참동안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어느쪽 다리를 먼저 먹을까 고심하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뭔가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는걸. 하지만 그런 긴장감 없는 생각도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망토 속에서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마물의 얼굴이 등장했다.
오른쪽 다리는 놓은 것으로 보아, 왼쪽 다리부터 씹어 삼키겠다고 결정한것 같았다.
"하아."
온 몸에 힘이 빠지는것처럼, 감각까지도 무뎌졌으면 좋겠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감각은 더욱더 선명하고 날카로워져 가고 있었다. 어찌나 민감해졌던지, 주변에 울리는 소리나 진동으로 부터 어떤 전투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머리속에 선연히 그려질 정도였다.
으음… 여기서 죽는 걸까. 하지만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다. 세계의 인과마저 비틀어 버리는 용의 피가 나를 여기서 죽도록 그저 내버려둘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레르그란트의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용의 피는 레르그란트 대에서 끊기게 되는건데 말야.
그렇게 생각하니 죽는것도 나쁘지는 않겠는걸.
내 목적은 불멸을 멸하는 것이고, 여기서 내가 죽게 되면 그 목적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과 진배없으니.
잠깐. 그럼 나는 스스로를 죽이는 것부터 진지하게 고려해봤어야 했을까?
"히얏!"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는 와중, 마물의 이빨 사이로 삐져나온 붉은 혀가 내 다리를 핥았다. 혀는 뜨거웠고, 그 혀에 묻어있는 타액은 끈적끈적 했다. 소름끼친다기 보다는 솔직히 간지러운게 더 커서 나는 입술 사이로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엘리노어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먹히기 직전에 웃음을 보인건 네가 처음이야. 봐, 너도 제정신이 아닌걸. 미친 년한테 미친 년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나도 정말 미친 년인걸까나?"
"아니, 막 간지럽길래…."
그녀는 내 변명을 들은체 만체 하고선 이내 얼굴에 행복하다는 웃음을 가득 피워올렸다.
"잘 먹겠습니다!"
마물의 입이 쩍 벌어졌다.
- 작가의말
* 으 요샌 왜이렇게 재밌는게 없는지 모르겠네요. 한참 하던 게임들도 재미가 없고ㅠㅠ 옛날에 비해 너무 무덤덤해 진듯 합니다.
* 그 무덤덤함이 글까지 전파되어 요즘은 스스로의 글에 몰입이 안되네요ㅋㅋ 몰입이 되야 쓰는 속도가 빠른데ㅠㅠ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Commen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