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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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비앙의 재촉에 나는 이륙하기 직전의 사령정으로 들어왔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사령정은 그대로 이륙했을 것이고, 나는 정말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
거신기를 수송하는게 목적인 다른 거대 비공정과 다르게 사령정의 규모는 다소 협소했다. 하지만 내부는 마치 건물처럼 복잡했는데, 온통 단단하기 그지 없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속으로 지은 건물 같은건 들어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퍽 인상적인 느낌이다.
사방으로 뻗어진 통로들의 끝엔 어느정도로 두터운지 분간도 되지 않는 철벽이 자리해 있었는데 그 뒤에는 아마 이 비공정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동력 기관등이 자리해 있지 싶다.
내가 걷고 있는 복도는 눈처럼 새하얗다. 천장엔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는 마법등에 불투명한 유리가 설치되어 있어 부드러운 빛을 내리쬐고 있었지만 그 느낌은 차가웠다. 보이는게 온통 금속밖에 없어서 그럴까….
평소라면 무척 신기해했을 이 기묘한 구조물에 사실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아예 신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그칠 것은 아니었다.
나는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멍하니 걸으며 별다른 생각없이 망토 자락에 손을 툭툭 털었다.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흙 알갱이들이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들여다 보았다. 흙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흔한것의 대명사다. 그러나 온통 새하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고도의 마도 기술 속에 있자니, 흙도 꽤나 특별한 것이 되었다.
… 아까 전, 꽃을 들여다 볼때 묻은 흙인듯 싶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나는 확실히 나 자신안의 무언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데서나 손을 터는 이런 품위 없는 짓은-
"아?"
품위…?
그렇다. 나는 그 가치를 그다지 귀히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후천적인 교육의 성과로 말미암아 내게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요소였다. 나는 북령주의 공주라고 불릴 정도의 고위 귀족이었으니까. 지금 역시도 그렇지. 다리를 뻗어 지면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 즉, 걷는다는 행동만 놓고 보더라도 내게서 배어나오는 것은 역시 품위일 것이다.
거의 관성과도 같은 현상.
하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했지?
스스로에게 향한 질문이 바보같다. 뭘하긴, 바닥에 손을 털었지.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손을 들어보니 하얗고 작으며, 매우 곱다. 철저히 관리가 되어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손은 촉촉하고 보드라웠고 손톱은 매끈하고 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이 약간 엉겨있었다.
흙이다.
다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역시 흙이다.
별것 아닌 것으로 보아 그냥 넘길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것으로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유지되었던 관성이 어느정도 깨어져 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품위라고…? 뭐, 그게 여전히 나를 구성하는 요소이긴 할 것이다.
"…."
멈췄었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세계가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변한 것이겠지.
내 주변은 온통 무의미 투성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무의미들을 조합해 유의미를 이끌어 낸다. 아무런 낌새 없이 복도에 불어오는 바람, 사방을 감싼 금속, 비공정의 엔진에서 전해져 오는 듯한 미약한 떨림. 그런 무의미한 조각들이 얽히고 얽혀든다. 내 사고는 현상들을 전부 받아들이며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재조합해 낸다.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이 비공정의 함교(Bridge).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함교가 있는 위치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물을 생각도 없었다. 함교의 위치 정도야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정보를 분석하고 조합하는 일련의 연산을 통하면 도출되는 자연스런 결론이니까.
말하자면 이것은 우연을 엮어 필연을 만드는 것.
이러한 사고의 나열 만으로도 나는 나 자신이 에벨타르테가 말했던 제 1 마법이라는 것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제 1 마법이 법칙의 조종이라고 알려주었는지 역시도.
"으음…."
하지만 유의미도 결국은 무의미로 침잠하고 만다.
지금의 나는 모든 필연을 단 하나도 남김 없이 무의미로 해체 할 수 있으니까. 결국 두 개의 구분 역시도 무의미하다.
혹시 제 1 마법 사역자들은 모두 미친게 아닐까?
모든 무의미가 유의미로 환원되고, 마찬가지로 모든 유의미가 무의미로 환원되는 이 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세계에선 자아도 특수한 것이 못되며 그 격이 보편적인것으로 추락하여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무의미로 해체된다.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나는 함교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문을 열지 않고 계속해서 사고를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지?
내 자아는 무엇을 매개로 내게 고착되어 있는 걸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돌려본다.
소거법으로, 답은 어렵지 않게 금방 도출된다. … 바로 사랑이다.
"풋."
재미있는 결론이다. 나는 사랑이라는게 무엇인지 모른다. 본래 감정이라는 것은 쉽게 정의 되지 않으며 따라서 섣부른 언급은 금해야할 영역의 것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물론, 아예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인류의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다. 그러니 사랑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 만큼이나 흔한 일일 것이다. 산을 이룰 정도로 많은 시와 수필, 소설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분명, 내 자아를 여기에 묶고 있는 것은 레르그란트에 대한 배덕적인 사랑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잖아. 불멸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힘은, 이렇듯 인과 마저도 비틀어 버린다.
…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에 결론을 낼 힘도, 의지도 없다.
"아참."
문을 열고 함교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빼먹은 것을 깨닫고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나는 가면을 벗은 채였으니까. 마치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면을 손에 들고 그것을 얼굴에 쓰려는데, 기이한 의문이 뇌리에 떠올랐다.
나는 왜 가면을쓰지?
얼굴에 가면을 씌우려던 손을 멈추었다.
이거, 불편하다.
당연한 이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줄곧 이 가면을 잘 쓰고 있었잖아? 물론, 이 따위 사소한 불편을 감소해야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어…?"
당혹스럽다.
그 이유는 물론, 레르그란트에게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는 수 많은 적을 잔인한 마법으로 사살한 학살자니까. 그 잔인함으로 얻은 위명은 네론그라시아 라는 이름이 적국을 울리고, 본국에서조차 두려움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마법은 실제로 창과 칼을 부딪치는 육체적인 싸움과는 다르다. 간단한 스위치를 누르듯, 마력을 사역하여 의도적인 상황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다. 거기서 내가 추가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대단찮다. 인간이었던 살덩어리들이 전위적인 모습으로 바닥에 흩뿌려지는 것을 똑바로 쳐다보고 판단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비위 뿐.
… 나는 썩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진실된 정체를 레르그란트에게 알리지 못했다. 그에게서 경멸의 시선을 받을게 무엇보다 두려우니까. 타인의 시선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본래 타인에게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두려움의 시선.
경멸의 시선.
분노의 시선.
시선….
그리고 시선들.
아무렇지 않았다(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저들이 마스터 네론그라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에 차 있는게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한 것에 의문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그것이 가면을 벗은 나, 네네아리케에게 향한다 할지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 두려움을 낳는건 상상력이지.
나는 문득, 레르그란트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면 내 기분이 어떨까 상상하게 되고 만 것이다. 그는 나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조차 간과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합리적인 마법사니까. 합리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우습지만 내가 내 정체를 숨기며 모든것을 감수해온 주요한 이유는 그것 딱 하나였다. 그것 하나 때문에 지금껏 발버둥을 치며 정체를 숨겨 온건데.
왜,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
과거의 내게 공감할 수 없다.
과거의 내가 걱정했던 모든것이, 이제는 허상처럼 느껴진다. 그게 어쨌다고…?
정체를 숨겨온 이유를 세운 논리는 비루하고 복잡하여 무척이나 조잡했으나(조잡했을 것이다), 꽤나 견고했던 것으로 기억 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이 몸을 남성의 생리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기꺼이 제공하려 했다. 내 육신은 병약하나, 꽤 아름답다.
"흐응…."
당혹을 감추며 아직까지 손에 들려 있는 가면을 내려다 보았다.
가면(Persona)은 흔히 인격에 비유된다.
가족에게 비춰지는 나, 친구들에게 비춰지는 나, 지인들에게 비춰지는 나, 동료들에게 비춰지는 나. 그것들 모두가 비슷한듯 하면서도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을 넘어, 정말로 정체를 감추어 줄 수 있는 물리적인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쩌면 이 가면을 쓴채로 한 행동, 언어, 생각들이 가장 내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에, 그 추측은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의 나는 적병을 잔인한 마법으로 죽임으로써 적의 사기 저하를 꾀하고, 아군의 사기는 상승시키는 방법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회의감은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 즉, 평화를 이룩하는데 이러한 폭력적인 방법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을 한 개의 전장으로 축소시키면, 내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다. 펠그로엘드가 제시한 길이긴 하지만 나는 충분히 숙고하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결과도 제대로 관측하였다.
승리에 기여하는 것은
친애보다,
경애보다,
동료애보다,
신념을 넘어서는 폭력이,
폭력을 압도하는 잔혹함이,
죽음을 상기시키는 공포가,
더 강하다.
"…."
뭐, 과거의 내게 공감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레르그란트에게 정체를 들키기 싫어했던 강렬한 감정은 아직 기억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가면을 벗는것도 다소 찜찜한 일이지.
그러니, 일단은 현상유지를 하도록 할까.
나는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고 다시 가면을 썼다. 익숙한 차가움이 뺨에서부터 느껴졌다.
… 그러고보니, 흑룡이 내게 마지막에 전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이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힘을 바래왔던 이유를 잃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아무런 공감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 말을 떠올리고 나는 숨을 죽여 킥킥댔다. 애초에 내 공감능력은 희미했다. 그것이 이제와서 0 으로 수렴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애초에 공감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순간, 나는 후회도 잊어버린 것이다.
비통해야 하나? 분노해야 하나?
지금의 내게 그런 기능은 없다.
그리고 내가 힘을 바랬던 이유는 아직 내 가슴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욕망과 연관되지 않는다.
나는 가면속에서 만족스럽게 웃으며 함교의 문을 열었다. 더 이상 이 가면의 이유는 레르그란트가 아니었다.
- 작가의말
* 8 월에 완결 짓겠다고 했는데... 미쳤지 싶네요. 아직 1부도 안끝남ㅠ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 내일, 나는 2부의 가닥을 잡았습니다.
* 여기서 부터 주인공은 많이 달라집니다.
* 5000 자라서 죄송ㅠㅠ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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