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1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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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것이 용의 비늘…. 정말?
제일 먼저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저 자그마한 물건이 품고 있는 아득함과 장대함은 그 의심을 간단하게 부정한다.
설령 용의 비늘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 검은 조각은 그에 준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펠그로엘드가 근원에서 끌어 올린 신비의 정점입니다. 아주 오랜 과거엔 검의 모양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용의 비늘로 검을 만드는 시대라니… 상상이 가십니까?"
네비앙은 그렇게 말하며 직접 손에 쥐어 보라는듯,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로 건네 주었다. 나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손 안으로 받아들였다.
핏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내 손 때문일까, 비늘은 네비앙의 손 위에 있을때 보다 좀 더 검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홀린듯 내려다보며 마력을 집중해 이 물건을 이루고 있는 신비의 구조적 해석을 개시했다. 하지만 내 마력은 단 한 줌 조차도 비늘에 스며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분석을 계속하던 나는 곧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물건을 가공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흩어져 버릴 필멸의 힘 따위는 이 불멸을 결코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이걸 가공해 검으로 만들었다구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역시 내 아연함에 동의하는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비늘을 검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 한 일이 아닐겁니다. 아마, 용 스스로가 자신의 비늘을 검의 형태로 가공한 것이겠지요.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검이라는 물건은 도구다. 짐승의 발톱처럼 선천적인 상해 능력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도구. 그것을 용이 만들어 내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용이 존재하던 시대에, 인간은 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던 것일까?
호기심으로 시작된 수 많은 가설들이 머리속에서 뻗어 나가고, 상상력이 그것을 완성시키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억눌렀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해야하죠?"
나는 용의 비늘을 꼭 쥐며 그렇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을 흐르는 용의 피. 그리고 용의 비늘. 재료가 모였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죽음에 더욱 가까워 질것이라는 그의 말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본래 지니고 있던 신비도 소화하지 못해 쇠약해져,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잔뜩 금이 가 있는 몸인데 그 신비를 더욱 강화시킨다면… 결국 금방 깨져버려 산산히 흩어져 버릴 것이다.
"간단합니다. 비늘을 체내로 찔러 넣으십시오.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은 피를 머금고, 당신에게 더 높은 힘을 허락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해를… 하라는 말이군.
나는 검은 빛을 발하는 용의 비늘을 내려다 보다가 살짝 눈을 감았다.
시야로는 감각할 수 없는, 스스로가 구축한 나만의 심상 세계가 보인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세계에서, 내가 그린 신비의 모습은 탑이다. 메마른 사막을 배경으로 마치 눈처럼 새하얀 탑은 하늘로 길게 뻗어 있다. 구름 하나 없이 푸른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탑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저곳이다….
바로 저곳이 내 한계다. 시야가 닿지 않는, 무지(無知)의 영역.
"내게 뭘 바라는 거죠?"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이걸 호의라 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과 합치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보다 강한 힘을 손에 넣어 펠그로엘드의 강력한 적이 되길 원합니다. 종국에 그를 죽일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구요."
"그건- "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을 잇는다.
"여황폐하의 뜻인가요?"
"설마요."
부정하는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다.
"에스카랸 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엘레로페, 그녀는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마, 그녀가 자신의 친구에게 수명을 깎아가면서까지 힘을 증대시키라 종용할까요?"
친구… 이제는 풍화되어 빛을 잃어버린 단어 같다.
예전엔 그 단어에 어떤 감흥을 느꼈던 적이 있던것 같은데 이제는 무감각하기만 하다. 나는 그녀를 속였고, 그녀 역시 나를 속였다. 아니, 사실 속고 속이는 것은 이제 어찌되든 상관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이 마음 자체가 마모되어버린것 같으니까.
마모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드물다. 그것은 그저 끼릭- 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계적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배설할 뿐이다.
"그럴리 없겠죠."
내 긍정은 건조하다. 그러자 변명하듯, 네비앙이 덧붙인다.
"이것은 펠그로엘드가 바라는 일입니다."
"펠그로엘드가요?"
그것은 더욱 의외인 일이었다. 그는 내 손으로 자살같은 최후를 맞이하길 원하기라도 하는 걸까.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완전 엉망진창이잖아 이건.
나는 네비앙이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길 원하며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생각은 없는듯 하다. 그는 무거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 선택하십시오.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채 천천히 죽어갈지, 아니면 일말의 가능성을 붙잡아 당신의 하찮지만 유일한 염원을 실현시킬지 말입니다."
"… 이봐요, 선택을 강요하는게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나는 혀를 차며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비늘을 손에 든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언제나 처럼 푸른 하늘을 기대했지만, 보이는 것은 거대 비공정의 그림자 뿐이다.
하아-
문득 든 생각이지만 나는 언제나 상황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는것 같다. 뭐, 상황을 자신이 직접 주도해 가며 결국 자신의 의지를 철혈처럼 관철해 나가는 사람이 실제론 얼마나 되겠냐만은….
픽, 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있겠냐만은… 이라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내 주위엔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는것 같다.
그래도 변명할 말은 많다.
에스카랸, 용의 피, 레르그란트, 엘레로페, 펠그로엘드….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요소와 인물들이 내 주변을 실컷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스스로의 무지(無知)와 무력(無力)으로 말미암아, 그것에 힘 없이 휘말리고 있는것 뿐이다.
… 그러므로, 이것은 기회다.
등으로 미약한 전율이 타고 흐른다.
내 몸에 흐르는 용의 피. 아득한 세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남매의 피를 엮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역겨운 불멸. 용의 비늘로 이 피의 인자를 강화하면, 나는 조금 더 죽음에 다가설거라고? 틀려, 그것은 모순이다. 그저 힘을 얻을 뿐이겠지. 나는 친 동생인 레르그란트에게 범해져 우리와 똑같은 남매를 낳기 전 까지 결코 파멸하지 않을 테니까.
입술이 더욱 마른다.
온 몸이 찢어질것 같은 고통이 엄습할 지라도, 설령 미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할 지라도, 사지가 멈추고, 인지가 타들어 가며, 운명이 나를 농락할 지라도, 나는, 죽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 평화?
공허하기만 한 욕망. 이제 나는 그것을 딛고 설 것이다. 살아남고 살아남아, 이 고통의 끝에서 나는 불멸마저 멸해 보이겠어.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게 있어요."
"말하십시오."
기이잉- 거리는 기묘한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지상에 남아있는 비공정들이 떠오르고 있는 까닭이었다.
"어째서 당신은 스스로를 도구라고 말하는 거죠? 여황폐하, 엘렌의 오라버니라면 그녀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마지막 질문이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게 의외인건지 그는 눈을 크게 치떴다가 이내 소리내어 웃어 보였다. 지독히도 쓴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그의 입가를 스치고 지나간 시간은 짧았지만, 그에 반비례해 그가 보인 감정의 폭은 선명하고 강했다.
"마지막 질문이 그런거라니… 괜찮겠습니까?"
"말해주세요."
그는 어쩔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거리며 입을 열었다.
"죄책감 입니다."
"죄책감?"
"한심하고, 간단한 이야깁니다. 본래 이 제국, 히로이얀의 황제 자리는 제 1 황자인 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임에서 도망쳐 버렸고 그것을 성실한 여동생이 못난 오라비 대신 이은것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조금 망가져 버리고 말았죠. 저는 그런 그녀에게 속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책임에서… 도망쳐?
그의 말대로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실제로도 간단한 이야기일리는 없다. 나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아무런 호응을 하지 않은채 침묵을 유지했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내 그는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했다.
"자, 타임 오버입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당신은 사령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전쟁 범죄자가 되고 말겁니다. 지금부터는 전시이니 군율이 적용되어 처벌도 무척 엄할 겁니다."
이미 정체가 들통났다는 것을 알았는데, 참으로 심드렁한 이야기다.
"그 사령관이 제 동생이니까 괜찮을거에요. 설마 자기 누나를 참수하려 들지는 않겠죠."
네비앙은 내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하지 못하겠다는 듯, 삐뚜름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선택 뿐이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좋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내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흥미로운 얼굴로 내 손에 들린 용의 비늘과 내 몸을 번갈아 바라보는걸 보면 그도 마법사이긴 한가보다.
"…."
품 속에서 항상 지니고 다니는 단도들 중 하나를 꺼내었다. 잘 벼려진 은백색 날은 태양 빛을 반사시켜 희게 빛났고, 나는 그 위로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문지르듯, 손가락을 날 위에서 이동시켰다. 고통과 함께 손 끝에 붉은 피가 맺혔고 나는 그것을 왼손에 들고 있는 용의 비늘 위로 떨어뜨렸다.
"과연… 신중하군요."
대꾸하지 않은채, 비늘 위로 떨어진 핏방울을 관찰했다. 그것은 매끄러운 표면 위에서 주르륵 미끄러 지는가 싶더니, 스며들듯 비늘에 흡수되어 버렸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체였고, 따라서 피가 아무렇지 않게 그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은 불길할 정도로 기괴해 보였다.
"아…!"
글자.
비늘의 검은 표면위로 하얀 글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Blood Type : WD]
"이건, 도대체 뭐죠?"
글자가 떠오른 표면을 네비앙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글쎄요…. 용의 비늘이라곤 하나 먼 과거에 인간이 사용할 수 있게끔 가공을 거친 것. 그 글자도 그런 가공의 일환이 아닐까요?"
납득할만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게 무슨 기계장치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피의 유형이 WD 라는건, 대체 무슨 뜻일까.
표면 위를 정신없이 들여다 보고 있는데, 곧 또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Name : Lulurencaliche]
"이름… 루루렌칼리체?"
난데 없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듯, 멍한 기분이었다.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을듯, 기묘한 기시감. 나는 이 이름을 알고 있는것 같기도, 모르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토록 묘한 기분이라니.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해 확정적이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판단이 애매한 경우는….
뭐, 상관없겠지.
떠오른 글자의 의미야 어쨌든,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내 피에 이 비늘이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심할 정도로 간단한 검증이었지만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비늘을 높게 쳐들었다가 그것을 스스로의 몸, 구체적으로는 왼쪽 팔로 깊게 박아 넣었다.
비늘은 검은 궤적을 그리며 피를 튀겼다. 본래 검의 모습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깨져버려 조각이 난 상태인데… 아무런 저항감도 느끼지 못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배어나온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고통은 없었다.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 통각조차 사라지고 만 걸까.
- 작가의말
* 문피아가 좀 바뀌었네요~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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