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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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늘에 떠 있는 비공정 때문일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떤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답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평소의 바람하고 다른 것은 틀림 없었다.
나는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하늘거리는 금빛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석양 아래 펼쳐진 드넓은 논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저 선명한 금빛.
내 본래의 빛인 은빛과 대비되는 색이다. 나는 저것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가장 높은곳에 있는 명예, 권위, 영광….
"당신은… 황족이군요."
그는 또다시 희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웃음에서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째서 단번에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저 미소는 엘렌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었다.
"맞습니다. 나는 엘레로페의 오라비지요."
"… 예를 취해드려야 하나요?"
시선이 흐려진다.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유니온의 마법사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황족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이 나라의 전면에 나설 일은 없을 겁니다. 말했지 않습니까? 나는 그저 엘레로페, 그녀의 도구라구요."
도구…?
스스로를 칭하는 표현 치고는 굉장히 싸늘한 표현이다. 스스로를 도구라고 말하는 네비앙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은 없어 보인다.
나는 새삼스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을 회상한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고 그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 나갈 뿐이었다.
마법사는 형식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신비를 구축하며, 그렇게 구축된 신비에 타자의 모습은 희미하기 때문에 개성이 꽤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그는 그 중에서도 몰개성한 편이었다. 그가 보여준 개성이라는 것은 오직 성실하다는 인상 뿐.
그 자신이 말한대로, 그는 도구에 적합한 인간으로 보인다.
"그런 당신이 자신의 정체를 내게 드러내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은 뭐죠?"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 사이에서 보이는 두 눈이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해 나는 숨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그는 도구가 아니었다.
"에스카랸 영애,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에…?"
나는 다소 얼빠진 소리를 입술 사이로 흘리며 바보가 된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그 동안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어쩌면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과 정면으로 맞딱뜨린 것과 같았다.
"…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인데요."
그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입이 다시 열렸을때, 나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목적은, 무엇?
본래의 문장보다 짧아지고 조악해졌지만 뜻은 분명히 전해졌다. 그는 보잘것 없는 신비를 쥐고 있는 내게 그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나는 이 힘으로 먹을 것을 바라지 않는다. 몸을 지켜줄 의복이나 튼튼한 집을 바라지 않는다. 몸을 꾸밀 장신구나 편의를 위한 도구도 바라지 않는다. 내 힘은 생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 힘은,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하거나 온전히 내 외부를 향한다.
"만능의 언어로군요."
흑색의 좌가 보여주었던 것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만능의 언어였다. 인류는 단 한번도 갖지 못했던, 완전한 이해의 언어.
"알아보시는군요. 그럼 답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을 찾는다.
나는 어째서 나의 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마법을 배웠던 걸까. 내 욕망은 희미하다. 희미하지만, 유일하다. 새하얀 도화지에 떨어뜨린 검은 잉크는 단 한방울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눈에 도드라진다.
건조한 대답이 내뱉어진다.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서죠. 인간을 상처입히고 죽이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네, 맞아요. 나는 그러기 위해 마법을 배웠어요."
"별다른 신념도 열의도 느껴지지 않는 보편적인 대답이군요."
하지만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당신의 대답은 진실 합니다. 왜냐면 당신의 몸 속엔 용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요. 모든 것을 무의미로 만들고 마는 그 불멸(Immortality) 말입니다."
하늘이 참 맑구나.
비공정의 엔진에서 나오는 저 기묘한 진동이 구름을 쫓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늘은 아무런 가림 없이 선명한 푸른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눈이 부시다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별다른 안면도 없던 옆집 청년이 실은 자신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상상이 되나요?"
"하하하!"
매우 불쾌하다는 것을 완곡히 표현해 보았는데, 그에겐 꽤 재밌는 농담처럼 들렸나보다. 그는 원하는 만큼 실컷 웃음을 터트리다가 곧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좋습니다, 에스카랸 양. 예상했던대로, 당신은 여황 폐하와 펠그로엘드의 기대에 부합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당신… 여황 폐하와 펠그로엘드, 라고 했지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줘요. 엘렌과 펠그로엘드가 꾸미고 있는 일은 도대체 뭐죠?"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다 해도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계속 말했지 않습니까, 나는 도구라고. 도구에게 주인이 행하는 일을 알 권리는 없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나는 내 마력 체계를 가동 시켰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가시적인 변화가 없을테지만, 나와 같은 마법사인 그는 내가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건 위협이다.
네비앙은 내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만두십시오. 제 아무리 당신의 신비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제 1 마법 사용자입니다.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 당신은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 만능의 언어를 사용할 때 부터 눈치챘던 것이지만, 역시 그는 나보다 훨씬 고위의 신비를 사역하고 있다. 내가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거란 저 말은 허세가 아니겠지.
나는 마력 체계를 통해 움직이던 마력을 멈추었고, 그것을 눈치챈 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아리케 엘 에스카랸. 당신은 곧 죽습니다."
부드러운 기색과 달리, 잔혹한 울림을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거의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말은 너무나도 난데 없어 곧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의 말을 해석해보기로 했다.
"… 그건 당신, 혹은 누군가가 날 죽일거란 얘긴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몸에 흐르고 있는 용의 인자 때문에 죽을 겁니다. 그것은 인간이 품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신비니까요."
그의 차분한 목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이미 스스로가 깨닫고 있기 때문일까. 내가 곧 죽을거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저 생명은 언젠가 죽음에 이른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용의 피가 그렇다면, 레르그란트도…."
"에스카랸 공작은 해당되지 않는 이야깁니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사실, 오래살고 싶었다면 당신은 마법을 접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근원으로의 접속은 마찬가지로 근원 그 자체와 맞닿아 있는 용의 인자를 강하게 하니까요."
흥… 그런건 마법을 배우기 전에 말해줬어야지.
나는 쓰게 웃으며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래도 레르그란트는 나와 같지 않을 거라는 네비앙의 말에 적 잖아 안심이 된다.
"자세히도 알고 있군요."
"모두 펠그로엘드가 말해준 겁니다. 그는 자력으로 '좌' 에 거의 근접한, 실로 위대한 마법사입니다. 과거, 당신의 아버지인 에스카랸 공작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그는 에스카랸 가(家)에 흐르고 있는 용의 인자를 조사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인자에 대한 해석을 끝내 놓았습니다."
"…."
자력으로 '좌' 에 이른다라…. 그게 가능한 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성취다. 원래부터 펠그로엘드가 사역하는 신비가 거의 신화에 닿아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좌' 에 까지 이를 줄이야. 그리고 그런 위대한 마법사가 지금은 전 세계를 적대하고 있단 말이지…. 또한, 내 눈앞에 있는 네비앙은 그 협력자고.
한숨이 나온다.
앎의 부재가 피아 구분을 흐릿하게 만든다.
"아무튼 그 제안이나 들어보도록 하죠."
"지금보다 더 강한 마력을 사역하고 싶지 않습니까?"
"…."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서서 눈을 깜빡 거렸다. 제안이 너무 1 차원적인 탓이었다. 더 강한 마력을 사역하고 싶지 않느냐는 것. 간단히 말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글쎄… 대답은 물론 긍정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이 지닌 무력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내 목소리는 냉엄하다.
"설마, 그걸 제안이라고 말 할 생각인가요?"
내 차가운 기색에도 불구하고 네비앙은 거침없이 답한다.
"그렇습니다. 물론, 당신이 감수해야할 댓가는 싸지 않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당신은 지금보다도 더욱 죽음에 가까워져 있을 테니까요."
혹시 내게 흑 마법을 제안하려는 건가? 펠그로엘드는 이제 거리낄 것 없이 흑 마법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
잠깐동안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지만, 그 생각은 수 많은 반론을 받고 사라져 버리고 만다. 흑 마법이라는 범주는 단지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마법들을 지칭하는 것 뿐이니까. 흑 마법이 기괴하긴 해도 그것이 마법이라는 대분류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사역하고 있는 신비를 극적으로 확장시키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어떤 방법을 제안할 건지 들어보겠습니다. 그 다음은 어째서 내게 힘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건지 그 이유를 말해줬으면 좋겠구요."
"좋습니다. 그럼 먼저 이것을 봐주셨으면 좋겠군요."
뭐지…?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는 네비앙의 손으로 향했다. 그의 손은 망토를 젖히고, 그 안에 입고 있는 외투의 상의에서 천으로 감긴 물건을 꺼내었다. 크기는 내 손바닥 만한 정도다. 작다.
극히 귀한것을 취급하는 듯, 그 물건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그가 느릿한 손길로 잘 싸매어둔 천을 풀어헤치는 것을 기다렸다.
곧, 천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보였다.
"아…."
내 인식이 그가 꺼낸 물건에 맞추어 천천히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의 감각이 변하는 것을 제 3 자의 입장에서 보는것 처럼 느껴질 만큼, 등장한 물건이 주는 압력이 실로 극적이었다.
"이것입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네비앙이 꺼낸 물건은 검은 파편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어디선가 부러진듯한…. 그래, 부서진 검날 같이 얇고 날카로운 인상의 물체였다. 하지만 부서져버리고 풍화된 검날 따위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물체가 보이는 검은 빛과 매끄러운 표면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보고 머리속에서 곧 장 떠오르는 단어는 '불멸' 이었다.
"그, 게 뭐죠?"
평소보다 더 높고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나왔다. 네비앙은 내 동요를 이해한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용의 비늘입니다."
- 작가의말
* 멘붕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역시 시간이 약 ㅠㅠ
*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 8월 달 안에 마무리 지으려면 지금부터 글을 쓰는데 박차를 가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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