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나는 볼 수 있을까. [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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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엘렌은 창가에 기댄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이 방의 창 밖은 벽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조명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아, 그녀의 얼굴엔 희미한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궁금한 것에 대해 물어보라….
내키는 것만,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그 태도는 내게 기꺼우면서도 어딘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단지 앎 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엘렌은 내가 흑색의 좌와 그녀에게 얽혀 있는 일을 안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걸까.
"너는… 신이 되고 싶어 하는거니?"
"…."
그녀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듯,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뜻을 이해한듯,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반응은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
엘렌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
한 번 터져버린 웃음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녀가 이렇게 크게 소리내어 웃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는 퍽 신선한 기분으로 그녀가 배를 잡고 웃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
결국, 밖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이 덜컹거려 주의가 분산 되고 나서야 엘렌은 웃음을 멈추었다.
"너는 지금 아마드라네 교의 교황인 나에게 신성 모독을 범할 셈이냐고 묻고 싶은거니?"
아직까지 웃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목소리엔 명백한 웃음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신성 모독이라….
나는 얼굴에 미소 같은건 조금도 띄우지 않은 건조한 얼굴로 말했다.
"대주교는 네가 이 방에서 신을 영접하다고 그랬어. 마법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그 대상의 격을 떨어트리는 행위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는 신성 모독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구속될리 없어."
엘렌의 웃음이 점차 사라져 간다.
"애초에, 신을 두려웠다면 근원의 정보를 어찌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게다가 그것이야 말로…."
나는 주저했다.
여황인 엘레로페에게 말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교황인 엘레로페 에게 말하는 것은 그것과 조금 다르다.
이것은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믿음' 에 기반해 있는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주저함을 버리고 계속해서 말한다.
"신성 모독인거 아냐?"
이제 엘렌의 얼굴에선 방금전의 웃음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 흑색의 좌에게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나. 그렇게는 안봤는데, 꽤 입이 싼 남자인 모양인걸."
그녀는 기대고 있던 창문에서 등을 떼며 방의 한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의 목적지엔 아까전 부터 계속 신경쓰였던 성배가 자리하고 있었다.
엘렌은 희고 고운 손으로 성배, 그러니까 그 검의 손잡이 부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그 검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흑색의 좌의 상징인 '흑암' 과 동격의 신비를 가지고 있는 물건….
저것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이름은-
"이건 성배라는 같잖은 이름으로 불릴만한 물건이 아니야. 이것의 이름은 '광휘'. 검의 형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 힘은 고작 형태에 구속되지 않아."
백색의 좌의 상징….
광휘라 불리우는 그 검은 자신의 주인이 엘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녀가 손잡이에서 손을 떼자 모든 힘을 내부로 갈무리 했다.
엘렌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검의 손잡이를 만졌던 손을 매만졌다.
"성배 기사단과 비공정은 모두 네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구나."
"내 힘…?"
내 중얼거림에 엘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내가 없어도 거신기와 거대 비공정이라는 오버 테크놀로지를 유지시킬 동력을 제공하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껏 있엇던 미스틱 유니온의 하이 마스터들이 수 백년 전부터 시도해왔던 끈기의 힘이지."
엘렌은 쓰게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백색의 좌라는 것도 실은 인위적인거야. 네네아리케, 이 힘을 쥐는데엔… 사실 그렇게 거창한 자격은 없어. 이건 그저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주어진 신비가 편중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니까."
"…."
"바로 거기에, 오만한 인간이 '좌' 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것 뿐이야. 흑색의 좌도 그 거창함에 홀려 있을 분인 머저리지."
그녀는 광휘로부터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광휘가 글로리아뎀으로 들어온 이래, 백색의 좌는 모두 히로이얀의 황제였어. 하지만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갖게 된 그 힘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자는 없었지. 그럴 필요도 없었고."
꽤나 비꼬는 듯한 어조다.
"신성 모독이라고…? 신도 마찬가지야, 네네아리케."
"그 말은…."
내 중얼거림을 엘렌이 단칼에 잘라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신은 있어. 근원을 계속해서 타고 올라가, 나는 그 존재를 확인했지."
신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아마드라네를 믿는 신자들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신이란건 언제나 무지의 영역에 서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거의 발작적으로 외쳤다.
"신이 있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
내 긴 은빛 머리채가 격한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 잠깐 동안 가려졌던 시야 뒤로 엘렌은 잔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드라네는 없었지."
아마드라네가, 없다…?
엘렌은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나를 지나쳐 창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히로이얀 제국의 모든 신민들이 믿고 있는 아마드라네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이야기야.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도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 내게 있어선… 너무나 잔혹하게도 말이야."
"…."
나는 잠깐동안 숨을 멈췄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건, 그 동안 호흡을 하지 못한 몸이 고통을 호소할 때였다.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는 단지… 이 세계를 유지시킬 뿐인 시스템일 따름이야. 비유를 해보자면, 그래- "
기계의 중요한 부품 정도는 되겠지, 라고 엘렌은 그에 이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심지어 그것은 제대로된 의지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어. 그것은 입력된 명령밖에는 따르지 못하는 기계와 그리 다르지 않아. 사실, 신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
엘렌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들 끓어 오르고 있었다. 그 분노는 갈 곳을 잃고 그녀의 내부 안에서만 배회하고 있어, 그녀 자신마저 파괴해 버릴것만 같았다.
… 다시 말해 자학적이었다.
결국, 엘렌의 이야기는 신은 없었다-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건가.
그 말을 들은 내게 불현듯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깃드는것 같았다. 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행위 자체가, 해서는 안 될 금기를 범한것 같았으니까.
"네네아리케…. 나는 진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아마드라네를 믿었었어. 신이 존재 할까라는 의문을 품는것 자체를 불경하게 생각할 정도로 말이야."
"…."
그랬었지. 그리고 나는 원인도 결과도 없는, 그저 믿을 따름인 엘렌의 태도에 반해 있었다. 순수한 믿음이라는건… 내게 무척이나 숭고하게 보였으니까.
"지난 역사가 대변해 주듯,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절대로…?
그 단정적인 말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은 압도적이다. 엘렌은 정말로 그것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건 신이라는 건가.
그렇기에 그녀는 오직 신 만을 굳게 믿을 뿐이었다.
"사실, 내게 신의 존재가 어찌되든, 내 믿음이 보상받지 못하든 그 어떤것도 상관 없었지만…."
그 뒤에 이어질 엘렌의 말을 예상한다.
그녀는… 결국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시선이 닿지 않는 하늘 끝에서만 존재해도 되었을 신이, 결국 자신의 손에 닿아버리고 만 것이다.
"신이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한 지금,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날 수 밖에 없잖아?"
"하지만 엘렌…. 어째서 너는 평화라는 것에 그렇게- "
집착 하는거지? 하고 물어보았을 뒷 말은… 결국 속으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평화라는 것은 그 누구든지 높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런 전란의 시대에 신을 믿는(믿었던) 엘렌이 평화를 바라는건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지.
엘렌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는, 의식적인 미소를 내게 보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글쎄…. 아버지가 전쟁으로 인해 돌아가셔서 일까."
엘렌의 아버지… 선 황제가 듀카스텔 과의 전쟁중에 죽음을 당한건 히로이얀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듀카스텔과 히로이얀이 서로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중 한 가지다.
"아니면 그로인해 황위를 일찍 물려 받아 돌이킬 수 없는 경험들을 해서일까."
"…."
"그것도 아니면 이 같잖은 신관 일로 거대한 다툼 사이에 몰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목격해서 그런걸까. 뭐, 이유를 대자면 정말 수도 없이 많겠지."
지금껏 적지 않은 전쟁터에 참여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아 왔지만 어쩐지 엘렌의 말이 멀게만 느껴진다. 나 역시 궁극적으로는 '평화' 를 위해 마법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나도 모든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평화, 라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모두 그런식으로 합리화 하면서 말야.
엘렌과 나의 차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목표를 진정으로 이루려는 태도이겠지.
"네네아리케, 내게 신이 되고 싶냐고 물었었지?"
"응…. 그랬지."
"내 믿음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향해 있었어. 그리고 그 믿음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게 배신 당했지. 일방 통행이었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 믿음이란건… 언제나 일방통행이지.
"신이 되고 싶냐고?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나는 정말로 내가 믿었던 신 대신 내가 신이 되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어."
"엘렌… 너는 도대체 그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작정이니?"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잠깐의 침묵은 내게 대답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렌은 이내 다시금 입을 열어 그 질문에 답해주었다.
"인간과 인간이 다투는 근본적인 이유를 없애버리겠어."
"… 근본적인 이유라니, 이기심을 말하는 거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엘렌은 천천히 고개를 저어 내가 답이라 생각했던 그것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욕망… 인가? 하지만 그것도 이기심과 그다지 멀리 있는 개념 같지는 않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엘렌은 다시 창가에 등을 기댄채 고개를 약간 옆으로 숙이고서 나를 한 없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같다면… 그 세상은 게으름으로 멈추어 버리고 말텐데.
"너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욕망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것은 일견 너를 텅 비어보이게 할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사랑스러워. 그리고 내가 가장 지키고 싶어하는 자들도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이지."
"…."
내가 그렇게 욕망이 없어 보이나?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닌것 같다. 나 자신은 모든 을 가문에서 해결해 주어서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 했지만… 정작 가문에 넘쳐나는 재화로 해본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식(食)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 네네아리케…. 만약 이 일로 네가 나를 적대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무척 비극일거라고 생각해."
- 작가의말
* 원래 오늘안에 1만자 채워서 올릴려고 했는데... 나갈일이 생겼네요 ㅠㅠ 오늘안에는 못들어 올듯. 그래서 반만 올리고 나갑니다 ㅋㅋ
* 리리플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 즐거운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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