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여자 (3)
몰디아의 기사연무장
명령을 받고 모인 이너 서클 기사들은 로빈과 함께 서 있는 에르트라스에게 시선이 갔다.
'시선을 통제해야 한다... 불경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미 그녀가 누군지 알기도 하고 그녀의 외모에 홀려버린 세피로가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다른 기사들도 이미 소문으로 들어 에르트라스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에 대하여 여러가지 추측들이 떠돌고 있었지만, 로빈이 직접 뭐라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다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다들 이 비약을 받아라"
로빈은 6명의 기사들에게 각각 한 병씩 비약을 날려 보냈다.
두둥실 떠서 날아오는 비약을 기사들은 공손히 받아 들었는데 특히 마르틴과 앤슨은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 약은 내가 너희들을 위해 개발한 비약이다. 마시면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상승해 너희들의 경지를 끌어올려 줄 것이다"
".......!!"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개소리를 하지 말라며 소리칠 법한 내용이었지만, 로빈이 말했기에 반신반의 할 수 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 하고 있는 4명과 다르게 마르틴과 앤슨은 크게 소리치며 로빈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설마.... 해코지를 하려는 거겠어?'
아직 로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세피로는 약을 마시라는 제안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독이었다.
물론 로빈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지만, 평생 부려 먹기 위해 해독제를 빌미로 중독 시켜 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샨의 대귀족 전사들 중에서 흑마법사의 독약으로 통제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피로는 여러가지 잡생각이 떠오르자 손에 들린 무색무취의 약이 사약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마셔라"
"예 전하!"
로빈의 명령에 마르틴과 앤슨이 가장 먼저 비약을 원샷했다.
이미 약의 효능을 경험해 본 자들 인지라 앞으로 로빈이 주는 약은 고민도 없이 모두 입안으로 털어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꿀꺽꿀꺽
마르틴과 앤슨이 마신 이후에, 카엘과 밀리아노, 해리엇도 비약을 마셨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눈치를 보고 있던 세피로도 분위기에 못 이겨 비약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으.....으으으..."
"아윽......."
비약을 마신 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기사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하나 둘 바닥에 쓰러졌다.
가장 정신력이 강한 밀리아노는 끝까지 서서 정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고통으로 인해 상체가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독약이었나!'
온몸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자 세피로는 비약이 역시 독약이었다고 확신했다.
'머리와 등이 쪼개질 듯 아프다!'
비약이 중추신경에 작용해 그의 반사신경과 마력을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세피로에게 안겨주고 있었다.
세피로는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들도 자신과 비슷한 상황인지 살폈고 바로 옆의 해리엇 역시 안색이 파리해져 병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 둘은.....?'
그런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마르틴과 앤슨은 고통으로 온몸을 땅에 비비면서도 뭐가 좋은지 얼굴이 웃고 있었다.
'설마.... 아드리아 출신들은 이미....?'
가장 오랜 시간 로빈을 모셨던 둘 이었기에 자신들이 마신 비약과 다른 종류의 약을 먹었거나 아니면 이미 수차례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반쯤 미쳐버렸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자결해야 했나... 어쩌면 그때 하인리만님이 옳은 판단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세피로는 독으로 중독 당해 살아가며 해독약을 빌미로 충성을 바쳐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다같이 모였을 때, 깔끔하게 목이 잘려 세상을 떠난 하인리만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전하..."
"어때? 느껴지나?"
"확실히 느껴집니다"
세피로가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던 그 때, 가장 먼저 몸을 회복한 밀리아노가 로빈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이름 : 체르제 밀리아노
직업 : 아드리아 왕국 근위대장
능력 : A급 기사, B급 장군, B급 관료
전투력 : 1981
통솔력 : 533
정치력 : 492
충성도 : 64(등용)
잠재력 : 4521
군주의눈으로 밀리아노를 확인한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S급 기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전투력 3천에 미치진 못했지만,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전투력이 확인되었다.
-쿠오오오오
밀리아노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자신의 힘을 점검했다.
두 배 성장한 전투력에 걸맞게 그의 마력도 일취월장 했으며 기사 답게 단전에서 시작한 마력의 흐름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몸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
예상 외로 너무 많아진 마력 때문에 밀리아노는 흐름을 제어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자신이 평소 마력을 순환 시키는 순서대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방향이 바뀌려고 하자 밀리아노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큰일 난다!'
밀리아노는 숙력된 기사였기에 자신의 몸에 일어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과도하게 늘어난 마력 때문에 평소처럼 순환 시키는 것이 어려워 지자 밀리아노의 몸 곳곳이 울퉁불퉁하게 변하며 통제되지 않은 마력이 겉돌기 시작했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그때 에르트라스가 밀리아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밀리아노의 신체 안으로 자신의 마력을 쑥 밀어 넣었다.
".......!!"
그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밀리아노였기에 자신의 신체에 마력을 밀어 넣어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마력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고 곳곳에 고이거나 반대로 역류하려는 밀리아노의 마력을 능숙하게 인도하여 원래의 방향으로 가도록 조정했다.
"후우우......"
에르트라스의 도움으로 밀리아노의 마력이 정상적인 궤도로 순환을 시작했고 밀리아노는 심호흡을 하며 마력을 안정시키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으으으으윽!"
밀리아노가 해결 되자 기다렸다는 듯 해리엇이 신음소리를 냈다.
에르트라스는 해리엇에게도 밀리아노와 똑같이 마력을 잘 순환 시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잘 되고 있나?"
"예 로빈님. 다들 정석적인 연공법으로 수행한 기사분들이라 제 지식으로 충분히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로빈은 폭주하는 마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해, 돌아가면서 죽는 소리를 내는 기사들을 차례차례 돌봐준 에르트라스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폭넓은 지식들 중에는 인간에 대한 것들도 많았는데, 그 중 인간 마법사들의 심장을 중심으로 한 서클 운용도 있었지만, 단전을 중심으로 한 기사들의 연공법도 있었다.
일반론적인 단전 중심 마력 운용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에르트라스이기에 충분히 기사들을 도울 수 있었고, 로빈이 그녀를 연무장에 데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에르트라스가 해리엇을 지나 앤슨을 돕고 있을 때, 마력을 통제 하는 데 성공한 밀리아노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에 에르트라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후우후우..."
밀리아노 이후 도움을 받았던 해리엇이 호흡을 가다듬는 것과 동시에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부쩍 늘어난 마력과 더불어 몰라 보게 가벼워진 자신의 몸 상태를 느끼자 해리엇은 코에서 바람을 뿜어내며 흥분했다.
이름 : 포티스 해리엇
직업 : 아드리아 왕국 감찰단장
능력 : A급 기사
전투력 : 1728
충성도 : 87 (등용)
잠재력 : 10,234
'이 놈은 등급이 올랐네?'
그런 해리엇을 군주의눈으로 확인한 로빈은 등급이 상승한 것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회복되자 마자 검을 잡은 해리엇이 자신의 넘치는 마력을 검에 밀어 넣었다.
-츠츠츠츠
그러자 얇은 오러의 막이 검 위에 생성되며 밀리아노가 자신을 손쉽게 제압했던 그 단계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아아..."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던 오러의 외부 반출이 성공하자 감탄사를 내질렀다. 밀리아노와의 대결에서 자신의 검을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던 그 검이 이제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었다.
"좋아 보이네"
해리엇의 검을 보며 로빈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감사는 여기 에르트라스에게도 해야지. 마력을 제어 못해 풍선처럼 터지는 것을 막아 줬는데"
"감사합니다!"
해리엇은 그녀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그냥 일단 감사하다고 크게 외쳤다.
앤슨과 마르틴을 지나 세피로를 돕고 있었던 에르트라스는 고개를 돌려 미소를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날뛰는 마력은 제가 컨트롤 해드릴게요 흐름을 유지하는데 집중하세요"
"예!"
세피로는 자신의 근처에 바짝 다가와 마력 제어를 도와주고 있는 에르트라스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가끔 꿈에도 나왔던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서 자신의 몸을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에 불필요한 감정이 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흥분을 가라 앉히세요. 지금은 침착해야 합니다"
"예!...예..."
마력은 마력대로 폭주하고 감정은 제 멋대로 널 뛰는 세피로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집중하자! 집중!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병신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 분은 전하의 여인이다!'
세피로는 거듭 마음을 다잡으며 평점심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끓어 오르던 흥분을 가라앉혔고 폭주하던 마력도 제 길로 인도해 냈다.
세피로에 이어서 카엘까지 에르트라스는 쉼 없이 기사들의 비약 흡수를 도왔다.
먼저 회복된 기사들은 로빈의 명령에 따라 마지막 기사가 회복이 될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카엘이 에르트라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사들은 모두 비약을 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름 : 빅터 앤슨
직업 : 아드리아 왕국 중앙군 총사령관
능력 : A급 기사
전투력 : 1162
충성도 : 99 (등용)
잠재력 : 3289
이름 : 세르지오 마르틴
직업 : 아드리아 왕국 북부영지(검은숲 개척지) 총영주
능력 : A급 기사
전투력 : 1007
충성도 : 99 (등용)
잠재력 : 2989
이름 : 소엔 세피로
직업 : 아드리아 왕국 근위대 단원
능력 : B급 기사
전투력 : 897
충성도 : 66 (등용)
잠재력 : 1920
이름 : 베른 카엘
직업 : 베른의 영주, 아드리아 1기사단 단장
능력 : B급 기사, B급 관료, B급 수학자
전투력 : 843
정치력 : 577
수학 : 596
충성도 : 82 (등용)
잠재력 : 1850
앤슨부터 카엘까지 인원들을 군주의눈으로 쭉 살펴본 로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똑같은 비약을 먹여도 잠재력에 따라서 능력이 성장하는 것에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강해진 기사단을 보니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약은 너희들이 가진 능력에 비례하여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내가 준 약이 아깝지 않도록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 전하!"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로빈의 손짓에 한걸음 뒤에 물러나 있던 에르트라스가 앞으로 나왔다.
"검은숲의 주인이었던 드래곤 에르트라스다"
".......!!"
로빈의 말에 탐험대 2인을 제외한 나머지 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앞으로 내 곁에서 나를 도와줄 것이다. 에르트라스를 대할 때 나를 대하는 것과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행동해라 알겠나?"
"예 전하!"
로빈의 말이 끝나자 에르트라스는 작게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드래곤의 인사라고 하기엔 너무 수줍고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드래곤이라는 것은 대외비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도록"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자신의 할 말을 마친 로빈은 뒤를 돌아 연무장을 빠져나갔고 그의 뒤를 에르트라스가 따랐다.
둘 이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사들은 연무장에서 로빈의 모습이 아예 사라지자 다시 바닥에 철푸덕 퍼져 앉았다.
"혹시 밀리아노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앤슨이 로빈과 함께 검은숲을 탐험했던 밀리아노에게 물었다.
"그래. 알고 있었소. 하지만 전하께서 말하지 말라 명령하셨기에 따랐을 뿐"
"그렇군요... 하.... 살다 살다 드래곤에게 도움을 받는 날이 오다니.."
앤슨의 말이 끝나자 마자 기사들은 저마다 비약을 흡수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 했다.
확실히 강해진 것 때문인지 다들 들떠있었고 그들 중에서도 해리엇은 계속 검에 오러를 넣었다 뺏다 하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자네..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군 그렇지?"
그런 해리엇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밀리아노가 말을 걸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을 텐데.... 그렇지 않나?"
"혹시...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전하께서 이렇게 하라고 우릴 모으신 것 아니겠는가?"
-스릉
밀리아노는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마음껏 해 보게"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왼손을 까딱 거리며 밀리아노는 해리엇에게 덤벼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츠츠츳
해리엇의 검에 푸른빛 오러가 은은하게 솟아 났다.
밀리아노가 선수를 양보해 해리엇이 그에게 뛰어들었다.
"졌습니다"
제법 합을 주고 받던 둘의 대련은 밀리아노의 검이 해리엇의 목을 겨누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전보다 확실히 격차가 줄어든 느낌이 있었다.
"저하고도 해주시면 안됩니까?"
"앤슨님! 저하고 먼저 한번 하시죠"
이후엔 강해진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기사들이 서로 대련을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 까지 대련은 이어졌고 검을 섞으면서 기사들은 점점 가까워 졌다.
이너 서클을 만든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그들의 행동은 모습을 감춘 채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로빈의 얼굴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