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력 (6)
"소금 운송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은 자네의 노고가 컸기 때문이라 들었네"
"아... 예 별말씀을.... 근위대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 같은 말단 관리들도 잘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앤슨은 이른 아침부터 게오르그 치안대장을 찾아왔다.
아드리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가신이 노고를 치하 하기 위해 방문했다면 당연히 기뻐야 하지만 게오르그는 안절부절이었다.
'밖에 병사들이 쫙 깔렸다!'
게오르그는 앤슨과 대화 하면서 유심히 주위를 살폈는데 치안대 건물 전체를 앤슨이 데려온 병사들이 둘러 싸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주앙에게 보고 받기로 소금 밀거래를 하다 잡힌 필립이란 자를 자네에게 넘겼다고 들었는데 맞나?"
"예? 필립이요? 글쎄요 저는 잘 기억이...."
"그가 처벌도 받지 않고 3일 뒤 생업으로 복귀 했다고 하던데 들은 바가 없나?"
"그렇습니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아직 제 관할의 모든 주민들 이름이 파악되지 않아서.... 최근 죄를 저지른 명단에 필립이란 이름이 없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허허... 그래? 데려와라!"
앤슨의 명령에 문 밖에 대기하던 병사들이 필립을 끌고 들어왔다.
필립의 얼굴은 온통 멍이 들어 있었고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얼굴에 피가 아직 흐르고 있었다.
'시발! 근위대장이 다 알고 왔어!'
필립이 잡혀 들어오는 순간, 게오르그는 앤슨이 왜 자신을 방문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느낌상 이미 다 알고 온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자신이 필립을 풀어준 것 까지만 알고 왔다면 살아날 구멍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말해"
"게오르그도 소금 절도 조직과 한패입니다. 저는 그가 시키는 범위 내에서 활동했을 뿐입니다. 제가 바로 풀려난 것도 게오르그가 저에게 소금 횡령, 갈취를 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이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필립도 살고 싶었기에 자신의 죄를 최대한 줄이고 게오르그에게 혐의를 넘기려 시도했다.
그러자 게오르그가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근위대장님 절대 아닙니다! 이 자가 살고 싶어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그래? 다음 들여보내!"
"......?"
게오르그가 자신의 죄를 부인하자 앤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하에게 다음 사람을 들여보내라 명령했다.
그러자 얼굴이 곤죽이 된 또 한 명의 인원이 등장했고 그를 보는 순간 게오르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멈추고 정지되어 버렸다.
'시발..... 망했네...'
병사들에게 제압 되어 들어온 자는 게오르그의 범죄 사실의 결정적 증인이었다.
"말해"
"저는 이고르파 조직원 도슨입니다. 제 담당 업무는 아드리아의 치안대장들을 포섭하여 소금을 횡령 또는 갈취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오르그에게는 수십 차례 뇌물을 건넸고 그는 그 대가로 소금 운송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소금 갈취를 도와줄 현지 주민들을 포섭해 줬습니다"
"........"
도슨의 말에 게오르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자도 본 적 없나?"
"몰라 이 개새끼야!"
앤슨의 물음에 게오르그는 욕설을 내뱉은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벽면에 걸려 있는 자신의 검을 빼어 들었다.
"가까이 오지마! 제일 먼저 다가오는 놈은 내가 저승으로 데려간다"
게오르그는 검을 붕붕 휘두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앤슨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고 나서려는 부하들을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제지 한 뒤 천천히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랬나?"
"흥! 잘 먹고 잘 살아보려 한 거지 별 이유가 있겠냐?"
"허허.. 잘 먹고 잘 사는 건 좋지만 법을 어겨서는 안되지... 그렇지 않나?"
"법 지키면서 언제 부자가 되나? 이럴 때 한탕 해야 부자가 되지. 근위대장 당신도 파르벨님이 돌아가신 이 아드리아에서 뭐 먹을 게 있다고 남아 있는 거냐? 잘 생각해라 로빈 그 망나니 놈이 이 영지를 파르벨님처럼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나? 나 하나 잡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뭐 나도 한 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
-스릉
게오르그의 지척까지 다가온 앤슨은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가 자신 앞에 다가와 검을 뽑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압박감에 게오르그는 검을 휘둘러 봤자 앤슨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게오르그는 마지막 발악을 해보기로 했다.
"파르벨님에 대한 충심이 남아 아직 아드리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해 앤슨! 이미 아드리아는 무너지고 있어. 뇌물을 받은 것이 나 하나 일 것 같은가? 어지간한 규모의 마을 치안대장은 다들 뇌물을 받고, 징세관들은 세금을 착복하고 있다. 이게 아드리아의 현실이야!"
"그렇더군. 나도 이번에 임무를 수행하며 많이 놀랐어. 불과 3년 정도 만에 이렇게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것에 말이야"
"다 알고 있었군! 그 이유는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알려주지. 나 같은 지방 관리들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중앙 정부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수시로 지방을 감찰 관리 해줘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썩어버려. 파르벨님이 계실 때만 해도 그분의 강력한 권위 때문에 감히 지방관리들이 부정을 저지르지 못했지만, 지금 영주가 권위가 어디 있나?"
"흐흐흐 권위가 없으신가?"
"당연하지! 유흥가나 다니다 아비 잘 만나 영주가 된 이후, 우리 지방관리들은 그야 말로 방임 된 상태였다고 그놈이 한 번이라도 지방을 방문하여 감찰했으면 이것 보다 훨씬 나았지."
"그러니까.... 네놈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다 영주님 때문이다?"
"맞아. 영주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아드리아는 희망이 없어. 마찬가지 이유로 당신처럼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아드리아에 남아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지금이라도 그만 두고 다른 영주를 찾아 가서 재능을 꽃 피워야 해. 로빈이 당신의 이런 수고를 알아 주기라도 할 것 같은가?"
"훗... 그래... 자네의 의견 잘 들었다"
게오르그의 마지막 괴변을 웃으면서 들은 앤슨은 그에게 성큼 성큼 다가갔다.
"이봐! 제발 다시 생각해! 이 영지는 답이 없어. 행정력이 바닥이야! 지방 곳곳에 나처럼 부패한 자들이.... 커헉!"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게오르그는 떠들어 댔지만 거리를 좁히다 순식간에 도약해 들어온 앤슨이 그의 목을 움켜 쥐는 순간 숨을 쉬지 못하고 밀려드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에 호기롭게 뽑아든 검도 맥 없이 놓쳐 버린 게오르그는 숨 넘어 가는 소리 몇 번 내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죄인들을 포박하고, 마을 주민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예! 대장님"
앤슨의 명령에 병사들은 게오르그의 팔 다리를 결박했다.
게오르그의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아드리아는 행정력이 매우 낮았고 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영주의 권위가 부족한 것이었다.
'영주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네 놈들... 아마 지금의 실수를 평생 동안 후회하게 되겠지'
부하들에게 결박 되는 게오르그를 바라보며 앤슨은 씁슬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로빈이 그렇게 물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남은 평생 몸으로 깨우치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죄인 게오르그!"
마을 광장에 모두 모인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가장 권력 있던 자가 순식간에 죄인이 되어 높이 솟은 나무 기둥에 묶여 있는 모습을 봤다.
"아니 게오르그가 어찌 이리 되었나?"
"몰디아에서 근위대장님이 직접 오셔서 죄를 밝혔다고 하는 구만"
"쉿쉿. 조용히들 해봐 이제 발표를 하는 거 같으니"
주민들은 나무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게오르그를 보며 이런 저런 추측을 하며 떠들다가 조용히 하라는 병사들의 손짓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광장이 조용해지자 앤슨이 직접 간이로 준비된 단상 위에 올라 주민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죄인 게오르그는 도둑 길드 이고르파에게 뇌물을 받고 영주님의 재산인 소금을 빼돌렸으며, 마을 주민들을 포섭해 자신의 범죄에 가담 시켰다. 그에게 포섭된 주민으로 여관 주인 필립! 그는 죄 값으로 평생 노역형이 선고 되어 이미 노역장으로 떠났다."
앤슨의 발표에 주민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 외에도 게오르그는 뇌물을 받고 재판을 무마해주고, 자신의 행정에 불만이 표시하는 주민을 청부 살인 하기도 했다. 이 때 희생된 억울한 주민인...."
앤슨은 게오르그에 대해 추가로 조사된 부분도 연설했다.
그는 외부로 부터만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었고, 마을 안에서도 수시로 뇌물을 받아 챙겼다. 덕분에 그의 저택엔 지방 관리 수준이라 보기 어려운 재물이 잔뜩 쌓여 있었고 앤슨의 지시로 모두 국고로 회수 되었다.
"이러한 죄를 지은 게오르그를 심판하시기 위해 영주님이 직접 방문하실 예정이다. 영주님이 오실 때까지 게오르그는 현상태를 유지하며...."
앤슨이 로빈의 방문을 예고하며 주민들에게 공지를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로빈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 영주님께서 지금 오시고 있으시다. 오늘 즉시 심판 절차를 시행하도록 하겠다"
"어엇! 저기 좀 봐!"
"하늘을 날아 오신다!"
하늘을 날아 온 로빈이 정확히 단상 위에 멈추고, 서서히 고도를 낮춰 단상에 착지했다. 주민들은 이 모습을 보며 마법사라고 소문만 무성했던 로빈이 진짜 마법사 임을 알고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로빈이 단상에 자리 잡아 연설을 시작하려 하자 병사들이 모두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을 취했고 잠시 소란스러웠던 주민들은 금방 조용해졌다.
"반갑다. 나는 영주 아드리아 로빈이다"
"영주님께 예를 표하라!"
"영주님께 예를 표하라!"
로빈의 인사가 끝나자 병사들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주민들은 예전 파르벨 영주에게 했던 것처럼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이는 절대 복종의 예를 취했다.
원래라면 영주의 등장과 함께 영지민들이 이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맞았지만, 지금은 로빈이 갑자기 나타났기도 했고 워낙 권위가 높았던 파르벨에 비해 아직 얼굴도 잘 모르는 로빈에게는 영지민들의 충성심이 부족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 등장하는 로빈의 모습에 주민들은 자신들과 다른 귀한 분이라는 인식이 확 꽂혔고 병사들의 외침에 따라 모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인사가 끝나고 로빈의 연설이 다시 시작될 것 같자 병사들은 고개를 들라고 소리쳤다. 주민들은 병사들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었고 모두 로빈을 바라보았다.
"감히 내 영지에서 뇌물을 받고 부정을 행한 자가 있다고 해서 내 친히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로빈은 말을 하며 나무 기둥에 묶여 있는 게오르그를 바라보았다.
게오르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오늘 자신이 공개 처형 될 것 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이 그 부정을 행한 치안대장이 맞느냐?"
로빈이 주민들을 향해 물었다.
주민들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영주님의 물음에 대답하라!"
"영주님의 물음에 대답하라!"
그러자 병사들이 크게 외쳤고 주민들은 정말로 대답을 듣기 위한 물음이었음을 알고 여기저기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영주님!"
"그 놈이 뇌물을 받고 범죄자들을 수시로 풀어 줬습니다!"
"징세관들과 합심하여 처음 듣는 세금을 뜯어갔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자 성토가 이어졌다.
한참을 떠들 수 있게 해준 로빈은 이제 되었다는 듯 앤슨에게 눈빛으로 말했고 앤슨은 병사들에게 수신호했다.
"영주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신다!"
"영주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신다!"
병사들의 외침에 주민들은 다시 조용해 졌다.
"이 놈에게 어울리는 벌을 내리도록 하겠다."
로빈이 미리 제작해온 손가락 만한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마정석은 로빈의 손을 벗어나 두둥실 날아 오르더니 게오르그의 머리 앞에서 멈췄다.
로빈은 마정석을 게오르그의 미간에 꽂아 넣을 생각이었기에 염력 마법으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정석이 잘 박힐 수 있도록 조그마한 화염구를 소환해 게오르그의 미간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화염구가 미간에 박히며 마정석이 들어갈 자리를 잡았고 로빈은 염력 마법으로 마정석을 미간에 밀어 넣었다.
게오르그의 살과 뼈가 타오르는 냄새와 나고, 소리가 들리며 마정석은 그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앞으로 10년간 그가 받을 벌을 보여 주도록 하겠다"
로빈의 말이 끝나자 마정석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마력은 게오르그의 신체를 타고 내려가 그의 몸 곳곳에 조그마한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끄아아아아아악!!"
이미 화염구로 인해 미간에 구멍이 생긴 게오르그는 반쯤 실성한 상태였는데 다시 화염구가 신체 곳곳에서 불타 오르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결국 고통으로 인해 기절 하고 말았다.
그러자 마정석에서 정신 지배 마법이 펼쳐 지며 기절한 그의 정신을 강제로 깨웠다.
"흐어어어업!"
억지로 각성된 게오르그의 두뇌는 다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10여분 정도 화염구가 신체 곳곳에 화상을 남긴 뒤 사라졌고 이어서 마정석에서 흘러나온 치유 마법이 게오르그의 화상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오오 완벽하게 동작하는 군'
로빈은 이 마정석과 프로그래밍된 마법의 조합을 '천벌'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 아드리아 곳곳에서 부정을 저지른 관리들의 미간에 자리 잡게 될 이 천벌은 로빈이 만든 자동 고문 기계였다.
불태우고 치유하고를 반복하며 고통을 주는 기계로 죽지 않을 만큼 화염구로 지지고, 기절하지 못하게 정신 마법으로 깨우며, 다시 고문 할 수 있게 치유 마법으로 회복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천벌의 첫번째 대상이 된 게오르그는 치유 마법에 의해 회복되고 있는 자신의 신체를 보며 절망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름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게오르그였기에 미간에 박힌 마정석이 대충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 지 짐작이 되었다.
"그는 하루 24번 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면 이후 남은 여생은 영지를 위해 노역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로빈의 말에 주민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몸이 불에 타는 고통을 하루 24번 10년 동안 겪게 된다는 믿을 수 없는 형벌은 게오르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주민들에게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할 정도로 지독했다.
심판이 다 끝나고 로빈과 앤슨이 마을을 떠났다.
"끄아아아아악!"
그러나 그들이 떠나고도 어김없이 찾아온 고문의 시간이 되자 마을 광장에는 게오르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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