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또 한 명의 게이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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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스쳤다. ‘죽기 전에는 올 수 없으니까.’ 그래, 우리는 경쟁 중이다. 그 트로피. 저쪽도 분명 한 명 더 있을 것이다. 아마 트로피에 참가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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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돌아오자 때마침 에이리와 일상이가 한 보석상에서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은하수조차 없는 무수한 빛의 천구에, 일상이의 복장은 꽤나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식 복장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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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크의 양복 차림도 현대식이었으나, 희한하게도 이 양복만큼은 이 세계에서도 흔한 듯했다. 아크와 그의 스승, 실바스트 저택의 집사들 등 발테르 거리에서도 가끔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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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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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어.” 에이리는 자기의 팔짱을 껴면서 일상이와 함께 천천히 다가왔다. “이 시에서 가장 뛰어난 보석공이, 그건 저주가 걸린 물건이고, 저주에 관해서는 다르네르프국에 가서 알아보는 게 좋다고, 했다네.”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하는 듯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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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저주라니······.” 아크는 둘둘 만 지도를 건네려던 두 팔을 축 하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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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야. 그 보석 가게에 셰라드가 왔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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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턱으로 그들 뒤편 멀직이 광장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건물을 가리켰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그림이 새겨진 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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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근방 다섯 군데를 돌아봤는데, 저곳을 포함 세 군데만 녀석이 왔다 갔다더라고. 나머지 두 군데를 안 돌아본 이유가 이거겠지.”
“그럼 뭐야, 그럼 이 지도도 소용 없겠네?” 내가 말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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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크의 손에 들린 2절지 양피지를 보았다. 솔직히 내 머릿속은 그 검은 머리의 여자 때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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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고 일상이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왔다 간 시간이 한 시간쯤 전이래.”
“우리가 광장으로 내려오고 있던, 그때 아닙니까!” 아크는 양피지를 휙휙 휘둘러댔다.
“그렇지.” 에이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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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에이리는 진정하고 있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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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네르프하면, 발테르와는 전혀 정반대, 동방에 있어. 대륙 끝과 끝이지.”
“그렇지요.”
“아크의 회중시계가 있더라도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아뇨,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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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에이리는 펄쩍 뛰면서 지금까지의 냉정이란 냉정은 모조리 당혹과 공포로 바뀌어 빽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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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제, 이, 엘레강스한 아티팩트에는 단 하나의 제한도 없거든요. 물론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작동하기에, 사용자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든가, 하는 곳으로 관여를 할 순 없지만요.” 그는 직접 회중시계를 꺼내 금목줄과 함께 만지작거리면서 설명해 주었다.
“단 한 번도 안 가본 곳······.” 일상이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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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얘긴 본래 세계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나 일상이가 사용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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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혹시 저도 사용할 수 있나요?” 하고 내가 묻자 아크는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휘익휘 가로저었다. “오직! 저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민수.”
“왜요?”
“종속형 아티팩트라, 아, 참고로 종속형 아티팩트란 주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마법적 물건을 뜻합니다만, 간략히 설명해 드리자면 제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이 아티팩트를 활성화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네가 죽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일상이가 말했다.
“예······, 그······ 그렇긴 합니다만.” 아크는 멋쩍은 듯 허허 하며 웃었다.
“시끄러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러니까, 아크 네 말은, 단 한 번이라도 다르네르프국에 발을 들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때 단 한 번의 마나 소모로 한순간에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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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안 맞아, 하고, 그녀는 아크의 붉은 넥타이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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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맞습니다! 레이디!”
“그럼 문제야, 문제라고! 다르네르프국은커녕 그 근방 어느 마을 어디에도 블래스트 가의 계약자는 없단 말이야!”
“진정해, 에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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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말려보아도 소용없었다. 아크는 연신 내 소중한 넥타이! 하며 소리칠 뿐으로 기껏해야 눈물을 찔끔 흐리는 게 다였고, 이제 일상이까지 가세해서 에이리를 붙잡았건만 어째선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분명 호문쿨루스인지 뭐시기의 능력이 있을 터였던 일상이는 자신의 힘을 적절히 조절해서 그녀를 말리는 것에 힘겨워 하는 모양이었다. 근방에 치안을 살피던 경비대 세 명이 다가오고 나서야 에이리는 멈췄고, 아크는 반쯤 거지꼴이 되어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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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또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진짜일지도 모르는 그 셰라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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