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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내일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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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도하
작품등록일 :
2019.08.27 17:51
최근연재일 :
2019.10.15 23:41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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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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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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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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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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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1. 두 고등학생 (1)

DUMMY

0.





“비켜! 비키지 않으면 너도 함께 두 동강 내주겠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비킬 수 없었다.


“안 돼요! 제발!”


온몸으로 오크 소년을 끌어안았다.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러는 거예요! 네?”


투구 너머로 녹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남자는 침을 튀기며 고함쳤다.


“넌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어? 앞으로 이삼 년만 있어 봐라. 저새끼는 널 죽일걸? 네 부모도, 형제도 다 죽일 걸? 지금 당장 살려줬다고 해도 금방 은혜도 몰라본 채 이 마을에 처들어올걸?”


그럼에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 작은 오크를 남자는 아직 소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검이 허공에서 진동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나도,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몰랐다.


남자는 칼을 땅에 내리꽂았다. 수풀을 짓이기며 푸석푸석한 땅속으로 깊이 박혔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


완전무장한 경비병은 철그덕거리며 다가와 내 몸을 밀쳐 나동그라지게 했다.


“악!”

“이······, 이새낀······!”

“제발!”


다섯 살도 채 안 되는 오크 소년을 남자는 한 발 앞에서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두 다리 사이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림자 아래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이 멍하니 상대만 올려다보고 있다.


“내 부모도 죽였고······, 내 형제도 죽였어······.”


그 고백에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아니, 더, 가슴께를 움켜쥔 채로 악을 썼다.


“그 아이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제발!”


청년은 홱 하니 뒤를 돌았다. 그 얼굴은 내 몸을 쪼그라들게 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지?


윗입술만 꽉 깨물었다.


그는 다시금 앞을 보았다.


새로운 무기를 하늘로 높이 처들었다.


건틀릿이 장비된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주먹이었다.


“안 돼!”








“꺼억, 끅.”


트름이 나왔다.


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서너 번.


정면을 보니 담임이 종례를 마친다.


‘또 그 꿈인가······.’


창가로부터 주홍빛 노을이 들어왔다. 가을 하늘이 참 맑았다.



“야, 뭐하냐. 가자.”

“끄윽, 꺽.”

“아 시발 더럽게. 오늘도 처 잤냐?”

“응. 꺽.”


녀석의 이름은 일상이. 오늘도 내게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의 멘트를 쳐준다.


“병원 좀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신체 구조상 문제라도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아니 어떻게 엎드려만 자면 그렇게 무슨 스컹크도 아니고 트름을 존나게 해 대.”

“스컹크라니. 스컹크는 엉덩이로 쏘는데.”

“넌 입으로 쏜다 이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책상 옆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들어다 한손으로 들쳐 맸다.


“그나저나 오늘도 그 꿈 꿨어.”


우리는 그늘 진 복도를 지나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상이는 전혀 관심 없다는 투로 그래? 하고 내뱉더니 계단을 툭툭툭 내려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녀석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아, 왜 갑자기 멈춰.”

“있잖냐, 오늘 피방 안 갈래?”


피방? 뜬금없이?


“내가 사실······, 아니, 음, 가보면 알아. 진심!”

“안 가.”

“아, 왜!”

“할 거 없어.”


피방도 안 간지 어언 반년은 흐른 것 같았다. 할 게임이 없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그럼 뭔데? 하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연이어 ‘가보면 안다’. 응, 안 가.


“너 이새낀 친구도 아니야! 아오!”


우리는 언제나처럼 언덕을 오르고, 집 가는 골목 앞에서 헤어졌다.


“피방 가나?”


집 현관문을 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냥 같이 가 줄걸 그랬나? 집 안은 텅텅 비었고 어쩐지 습했고 왠지 모르는 고독도 느껴졌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방 갈 바엔 집에서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겠다.” 그러면서 씻고, 컴퓨터를 켰다.


할 만한 게임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없었다. 국내 게임 산업은 죽어버린 듯싶다.


오늘도 잉여인가? 최근 자주 드는 회의감이었다. “살기 싫다······.” 최근 자주 떠오르는 말이었다.

아직 열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나는 인생을 다 산 기분이었다. 정말 그런 기분이 들었다. 분명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좆고딩이었지만. 친구라고는 일상이 한 명뿐인 아싸였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감정, 생각 등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한 나 자신의 감정에도 훤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싶었다.


그때 카톡이 날아왔다.


‘정말 안 올 거? 진짜 진심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갑자기 세상의 귀찮음이 모조리 소멸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활력이 샘솟았다.


’뭐,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고? 피방에서?’

‘ㅡㅡ’ 하고 짝대기 두 개가 놀랄 만큼 재빠르게 스크린 위로 올라왔다. 나는 ‘알았어, 지금 갈게.’ 하고 또박또박 썼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이란 것은,


“어, 으음, 자, 내 여자친구야.”

“안녕하세요, 일상이 여자친구, 민수입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피방 알바생 예쁜 누님은 푸흡 하며 입가를 가리곤 살살 웃었다.


“야! 뭔 개소리야! 누나가 웃잖! 아니, 내 여친이 웃잖냐!”

“자기야, 나는 누나가 아니야. 나는 민수야, 네 녀석의 여자친구.”

“야 이샊······!”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최대한 심드렁한 척하면서 일상이 녀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았다. 이건 부러웠다. 아니, 부러운 걸 넘어서서 괘씸했다.


“안녕. 일상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아, 예······.”


반말? 나이 차이가 아무리 오 살이나 난다해도 초면부터 반말이라니. 나도 내가 꼰대인 거 아주 잘 안다. 애늙은이 아닌 애 꼰대. 애꼰. 어.


“게임할 거지? 저쪽 1번 2번 가서 앉아. 돈은 안 내도 되니까, 실컷 해.”

“응! 고마워! 헤헤.”

“게임 안 할 건······ 억.”


안 할 건데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싸커킥이 날아왔다.

나는 두말 없이 1번 자리에 앉았고, 녀석이 2번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그 순간 의자를 홱 뒤로 젖혔다.


“······.”





대학생 누나를 꼬시다니, 대체 어떤 술수를 부린 거냐? 나는 일부러 게임에서 트롤짓을 행하면서 채팅으로 그렇게 따졌다. 그러자 옆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지. 누나가 먼저 고백해 왔다니까. 난 진짜 벙 쪄가지고.”

“구라치지 마.”

“아니, 진짜.”


그는 쓸데없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설명했고,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머리에 남길 수 있었다.


“한때 우리가 랭커였다는 걸 이야기하니까 고백해 왔다는 것?”

“아니 시발······.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맞는 말이라며 수긍하는 그.

그렇구만. 게임 잘하는 걸로 꼬셨던 거구만. 심지어 구라로. 내가 추궁했다.


“언제적 얘기를 하냐 근데. 거의 반 년도 더 된 얘기로 꼬시다니.”


작년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한 국내 한 AOS게임에서 우리는 듀오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그래, 겨울방학 말미까지 나란히 세계 1위였다. 프로 제의도 받았지만, 노잼이라 접었다.


“딱히 직업으로 할 만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뭐, 그런 식으로 말해뒀지.”

“그거 분명 내가 했던 말인데.”

“그랬나?”

“어.”


프로 제의를 거절한 건 내 독단이었다. 나중가서 욕을 허벌라게 얻어 쳐 먹을 줄 알았는데, 생김새와는 안 맞게도 일상이 녀석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며 잘 거절했다고 그랬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이제?” 하고 내가 물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날렵하게 두드려대며 녀석은 “어쩌긴?” 하고 대꾸했다.


“뭐, 그 외엔 별 말이 없었고? 게임 얘기 말고.”

“어······ 음.”


일이 분 정도? 게임에만 집중하더니, 한 타임 쉬는 구간에서 녀석은 한숨을 내쉬며 기운 없이 대답했다.


“아직 없었어. 사귀자고 한 것도 어제 저녁이었고. 문자로 뜬금없이······.”


나는 다시 한번 비웃었다. 푸큭큭. 문자로 래.

물론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게끔 했다.


“아무튼 그냥 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바로 피방 가자고 꼬셨던 거지······.”

“응, 잘했어.”


나는 돌연 기운이 나서 신나게 적들을 때려눕혔다. 우리는 디아블로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면 오른편 위로 메시지창이 하나 떴다.


‘배고프면 뭐 시켜. 돈 걱정은 하지 말고 ^^’


“천사인가······.”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그치······? 천사겠지?”


얜 또 뭔 개 소리야.


저녁 일곱 시쯤 됐을까, 그분은 우리 좌석의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속삭였다. 마치 비밀스런 접선이라도 제안하는 것 같이.

당시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사랑하는 여자의 뒤치닥거리를 아주 당연하다는 양 받아들이고 있는 벌써부터 답없는 남편을 자처하는 대단한 내 친구를 보면서 혀를 한 세 번쯤 차고 있었다.


“갈 때 되면 말해줘. 보여줄 게 있으니까.”


보여줄 거, 라뇨? 물을까 했지만 대신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 지금 갈 거에요.”


카운터 뒤쪽으로 조그마한 문이 하나 있었다. 문에는 STAFF ONLY라고 적혀 있었다. 일전에 알바생들이 여러 차례 드나드는 것을 몇 번 목격했지만, 슬쩍 본 바로는 별 거 없어서 그저 창고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 이때까지는 말이다.



“이게······, 뭐예요?” 벙 찐 채로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일상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 여자는 설명했다. “한마디로 게임기야. 다만 다른 세상으로 가는 머신이기도 하지.”


다른 세상이라니.


다섯 평 남짓 되는 좁다란 방에서 우리 셋은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알바생 누나는 새콤달콤한 기이한 향기를 남기며 그 ‘기계’ 뒤편으로 우리보다도 작은 몸집을 아주 자연스럽게 기대었다.

연인을 백허그라도 하는 양, 그 기이한 에메랄드 빛 의자를 목 부분부터 슬며시 끌어안았다.


“TFT. 흥미 있어?”


그녀의 단발은 녹빛을 띠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의도된 건지 어떤지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 얼굴은, 에메랄드 빛으로, 온통 에메랄드 빛으로 발하고 있던, 그 얼굴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


“네······.”


누가 그렇게 대답했던가? 나? 아니면 일상이? 아무튼 그건 무심결에 새어나온 대답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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