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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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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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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길(5)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말도 안 돼.’

산디아는 직접 보고도 잠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두 기사는 몇 마디 말을 나눈 다음 다시 말을 출발시켰다. 기병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떠났다. 사방에서 모여든 기병들은 곧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도로를 완전히 점거한 채로 달렸다. 흙먼지가 구름같이 피어오르고 말발굽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맞은편에서 마차를 쫓아 달려오던 영주의 병사들은 처음에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다가 이윽고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그러자 기병들이 양을 모는 양치기 개처럼 병사들을 몰았다. 한 덩어리였던 말들이 마치 날개를 펼치듯 좌우로 늘어나며 열을 지어 병사들을 몰아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누구보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사람은, 그때까지 병사들을 호령하여 스텔리안과 메칼로를 사로잡으려고 애쓰던 영주의 기사였다.

난데없는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가 일어나더니 본 적도 없는 기사들이 자기 부하들을 병아리 떼처럼 쫓아오는 것이다. 그는 명령을 내리는 것도, 부하들을 지휘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기병들은 병사들이 도망치는 속도에 맞추어 따라와서는 이윽고 영주의 기사와 병사들을 둥글게 에워쌌다.

“도,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영주의 기사가 그들을 향해 외쳤다. 기병들 사이에는 문장이 수놓인 깃발을 든 기수가 네 명이나 있었지만 못 봤거나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얼이 빠질 만큼 놀랐는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기병들 사이에서 아우렐로의 깃발을 든 기수가 앞으로 나왔다. 수염을 짧게 기른 젊은 남자였다. 그가 영주의 기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대꾸했다.

“나는 데니스 아우렐로다. 이쪽이야말로 묻고 싶군. 여기는 아우렐로 가문의 땅이다. 군사 이동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허락한 적도 없는데 병사들을 데리고 영토를 침범하다니. 이것을 선전포고로 여기고 즉시 응전해도 문제는 없겠지?”

영주의 기사에게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말이었는지 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기다리시오! 우리는 하이라람 가문의 땅으로 가는 중이었소. 그리고 침범이라니! 개선로는 국왕께서 만드신 도로요. 이곳은 예로부터 군사가 오가는 길이었지 않소!”

“국왕의 군대라 할지라도 사전에 허락받지 않고 영지에 들어오는 일은 없다. 그만한 일조차 모르며 기사라고 할 수 있나?”

말이야 옳은 말이었지만 영주의 기사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우렐로 가문의 땅은 작은 마을 몇 개를 거느리고 있을 뿐인 전형적인 시골 영지였다. 개선로가 영토 안으로 지나고 있기는 하지만 통행세를 받은 적도 없고 병사들이 순찰하거나 길을 지키지도 않았다.

애초에 병사라고 할 것 자체가 없었고 병사가 필요할 일조차 없는 조용하고 외진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 길을 지나며 아우렐로 가문에게 허락을 받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우렐로 가문 역시 감히 그런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따지자면 그의 말에 틀림은 없다. 군대를 끌고 남의 영지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침략행위였다. 이것을 아우렐로 가문이 걸고넘어지면 명분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명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아우렐로가 시비를 걸어도 영지간의 힘의 차이가 분명한 이상 오히려 반격을 당하기 쉬웠다.

문제는 그것을 알면서 당당하게 따지고 드는 데니스의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것이 그와 함께 있는 정체불명의 기사들이었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아우렐로 가문이 이처럼 오만하게 구는 것은 저자들을 믿고 있어서가 아닌가. 어디에서 이런 자들이······.’

기사의 눈에 그제야 기병들 사이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보였다. 노란 바탕에 붉은 바실리스크를 수놓은 기였다.

클레타에 바실리스크를 문장의 소재로 사용하는 가문은 많았다.

바실리스크는 클레타의 전신인 포르클레타 왕국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포르클레타가 영토를 확장하고 주변의 왕국들을 통합한 뒤 두 번째 개국이라고 할 카메리아 대선언을 하면서 왕실 문장은 바뀌었다. 그러자 포르클레타 출신의 많은 귀족 가문들이 자신들의 문장에 바실리스크를 더했다. 후에 통합된 나라의 가문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많이 사용되기는 하되, 바실리스크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가문은 사실 단 한곳뿐이었다. 카메리아 대선언 당시의 왕가였으며 지금은 클레타의 명문대가이자 왕비의 출신 가문인 플라비우가 바로 그곳이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

문장을 보고도 기사는 부정했다. 플라비우 가문이 클레타 북부와 동부에 걸쳐 많은 영지를 가지고 있다지만 남쪽에는 없었다.

아우렐로 가문이 플라비우와 관계가 있을 리도 없다. 바실리스크, 뱀들의 왕을 문장으로 삼는 플라비우의 위세는 대륙에 드높았다. 작은 영지일지라도 그들과 관계가 있었다면 지금까지처럼 무시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지금 갑자기. 왜 플라비우가······.

영주의 기사가 말문을 떼지 못하는 사이 기병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방패에 투구까지 갖춘 다른 자들과 달리 가벼운 외출복 위에 긴 외투를 망토처럼 걸친 남자였다. 머리에는 챙이 넓은 깃털장식 모자를 썼고, 코 밑으로 동그랗게 말아 올린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기사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멋을 부린 모양새였다.

“사냥이라도 나왔다가 길을 잃은 게 아닐까, 데니스 경.”

콧수염의 남자가 말했다. 우아한 수도 억양이었으나 얄팍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하얗게 분이 발린 얼굴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수도에서는 남자들이 화장을 하고 다닌다니 어쩌면 카메리아에서 온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데니스 아우렐로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전투라도 벌인 게 아니라면 저기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은 뭐겠습니까.”

그 부상자들은 메칼로와 스텔리안에게 당한 영주의 병사였다. 기병들의 출현으로 병사들의 공격이 멈춘 틈에 스텔리안은 풀숲 어딘가로 숨어버렸고 메칼로만 거리를 벌리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데니스의 물음에 수도에서 온 남자는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사냥하려던 짐승에게 되레 당한 모양이군. 저기에도 한 마리 있잖나. 꽤나 성질 사나워 보이는 족제비가.”

남자가 메칼로를 가리켰다. 졸지에 족제비가 된 메칼로가 어깨를 으쓱 당겼다.

“사냥을, 하다, 길을, 잃었다는, 말씀입니까?”

데니스가 한 단어씩 또박또박 발음하며 영주의 기사를 쳐다보았다. 콧수염의 남자가 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며 역시 영주의 기사를 힐끗 보았다.

“남의 영지에 침범했다가 마침 유렵차 방문중인 은장(隱葬) 기병대에게 전멸당했다고 영주에게 보고한 다음 오십 명쯤 되는 과부들에게 남편의 사망소식을 알리러 다니는 것보다는······.”

‘은장······기병대?’

영주의 기사는 정수리에서부터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사냥에 정신이 팔려 길을 잃고 볼썽사납게 남의 영지에서 발견되었으니, 아우렐로 가문에 실례에 대한 사과 서신이라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데니스에게 대꾸하는 것 같던 콧수염 남자의 말은 끝으로 가자 영주의 기사에게 노골적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듣는 기사의 머릿속은 남자의 말이 텅텅 울리는 빈 통 같은 상태였다.

‘은장 기병대······ 플라비우······.’

변두리 영지의 기사라도 플라비우 가문의 은장 기병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았다. 플라비우의 위세는 넓은 영지와 왕비의 가문이라는 명성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국경에서 크게 승리한 공로와 그것을 가능케 한 강력한 군대가 있었다.

그 군대의 선두에서 불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것이 은장 기병대였다.

영주의 기사는 파리한 얼굴로 자신과 부하들을 둘러싼 기병들을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순식간에 나타나,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뛰어다니며 부하들을 몰아붙이던 기병대의 모습은 실로 비현실적이었다.

잘 훈련된 모습과 깃발만으로 그들이 은장 기병대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부하들보다 두 배는 많은 수의 기병에게 포위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아는 근처의 어떤 영주들도 이런 기병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산악과 구릉, 한편은 습지로 이어지는 클레타 남동부에서 기병을 키우는 것 자체가 낭비였다.

“우, 우리는······.”

기사가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개선로······ 아니, 그러니까, 길을 잃어서······ 허, 허락하신다면, 길을 열어주시면 영지로 돌아가겠습니다.”

게다가 우월한 병력으로 포위했으면서도 상대는 빠져나갈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오십 명의 과부들에게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비록 중요한 포로들을 하이라람 가문에 전해주는 일은 실패했지만 상대가 은장 기병대라면, 아니 플라비우라면 변방의 작은 영주에게 봉사하는 기사 따위가 맞설 적은 절대로 아니었다.

기사의 대답에 콧수염 남자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 귀찮아하는 듯한 손짓을 보고 기병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포위망을 열었다.

영주의 기사와 부하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포위망을 빠져나가서,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신들의 영지로 향했다.

“자아, 그럼. 우리도 전리품을 챙겨서 떠나볼까?”

콧수염 남자가 츈 지앵이 있는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기병대가 그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한 명의 기사만은 무리에서 벗어나 메칼로가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메칼로는 말 위에 앉은 기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옷과 투구로 정체가 가려졌지만 소년처럼 왜소한 몸집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기사는 열 걸음 거리까지 다가와서 말을 세웠다. 투구의 슬릿 아래로 드러난 얼굴의 절반이 환히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알아본 메칼로가 눈을 크게 떴다.

“너······.”

기사가 투구를 휙 벗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풀썩 내려와 어깨를 덮었다.

“용케 저들을 잡아두었구나. 잘하였다. 시간에 대지 못할까봐 걱정했느니라.”

벗은 투구를 허리에 끼고서, 기쁜 얼굴의 다피나가 메칼로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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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누군가를 위해(4) +6 18.04.22 184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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