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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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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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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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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무도 모른다(5)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이대로 가도 괜찮겠나.”

못 미더운 듯 묻는 츈 지앵을 향해 메칼로는 어깨만 으쓱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는지 호위무사 중 하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메칼로를 노려보았으나 참는 듯했다.

“저격을 받자마자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이동하다니 미친 짓이라며 고의 부하들이 화를 내고 있네. 말했듯이 구안팅 수는 자리를 옮기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그의 화살은 백발백중일세. 이대로라면 우리는 그의 코앞으로 지나가게 될 것이야.”

그의 말대로 그들은 무 롱과 스텔리안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길을 떠났다. 츈 지앵을 말 뒤쪽에 숨기고 키가 큰 션의 무사 하나와 메칼로가 앞장서 걷는 중이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은 구안팅 수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환히 보일 터였다. 저격수가 내려다보기 좋은 자리인줄 뻔히 알면서 경로를 바꾸지 않고 있으니 미친 짓이라는 말을 들을만했다.

“코앞에 있어도 우리를 공격할 틈은 없을 겁니다. 내 부하가 견제할 테니까요. 저 앞의 계곡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면 지금 잠복한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길로 들어섭니다.”

메칼로가 태연히 대답했다. 스텔리안의 실력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츈 지앵도 거기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돌파한다면 우리는 구안팅 수를 등 뒤에 두게 되네. 그것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자네들은 아직 모르는 걸세.”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는 견제나 하고 미끼나 되라고 부하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메칼로가 딱 잘라 말했다. 그의 장담에 츈 지앵은 새삼 메칼로를 쳐다보았다.

“그 소년을 그렇게까지 믿고 있는가.”

츈 지앵이 물었다.

메칼로는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어쩐지 차가운 웃음이었다.

“오비디온 가문의 사람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지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봐!”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한 스텔리안을 보고 무 롱이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소년은 그에게 아랑곳 않고 산비탈을 훌쩍 뛰어올랐다. 핑 하고 시위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떠는 소리가 울렸다.

연달아 두 번이었다.

“몸을 낮추세요.”

세 번째로 시위를 팽팽히 당긴 채 스텔리안이 나직이 말했다.

“구안팅 수인가?”

“바위 사이로 나타났어요. 왕자님 일행은 왼쪽 뒤, 우리 아래의 계곡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스텔리안의 말에 무 롱이 나무 사이로 고개를 빼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산에 익숙한 그였지만 나무 사이로 천천히 이동하는 왕자 일행을 찾아낸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와 나란히 걷고 있던 스텔리안이 뒤를 슬쩍 돌아본 것은 한 번, 잠시였다. 소년은 그 잠깐 사이 왕자 일행을 발견하고 동시에 구안팅 수가 나타나는 것도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계곡까지만 들어가면 일단은 안전해진다. 그때까지 구안팅 수를 막을 수 있겠나?”

“막는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스텔리안이 차분히 대답했다. 도저히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팽팽히 당겼던 시위가 다시 핑 하고 풀렸다. 풀리기 무섭게 화살을 메겨 다시 당긴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구안팅 수가 숨은 바위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400 걸음. 평범한 활은 닿기도 어렵고 쇠뇌나 장궁 정도는 되어야 유효사거리에 들어갈 거리였다.

그럼에도 소년이 겨눈 활은 나무를 기본으로 한 합성궁. 게다가 무 롱의 눈에는 장난감으로 보일 만큼 작았다.

그러나 소년이 화살을 날릴 때마다 바위 사이에서 어릿거리던 자그마한 사람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구안팅 수······!’

사람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으나 그 작은 그림자를 보며 무 롱은 이를 갈았다.

이쪽의 견제에 구안팅 수는 바위 밖으로 좀처럼 몸을 내밀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왕자 일행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스텔리안의 말대로다. 무 롱 역시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봐, 소년병.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구안팅 수를 노려보며 무 롱이 물었다.

“스텔리안 오비디온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스텔리안이 성실히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견제는 분명히 하고 있었다.

“스텔리안 오비디온. 내가 너와 함께 여기 온 이유가 있다. 너도 명령을 받아서 저 놈을 잡아야 하겠지만 나만큼 놈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게다. 나는, 저 놈에게 37명 분의 빚이 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츈 지앵 전하시다.”

츈 지앵이 수도에 있을 때 구안팅 수에게 암습 당했었다는 말은 산디아의 통역으로 스텔리안도 들었었다. 단순히 그 말 뿐이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스텔리안을 향한 무 롱의 눈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알아들었나? 오늘 이 자리에서 구안팅 수가 죽거나 내가 죽는다. 그러나 내가 죽더라도 저놈만은 데려가야겠다. 테리아의 왕자가 너를 혼자 보내려고 했다면 네가 그를 능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겠지. 그러니 너에게 부탁하겠다. 놈의 목을 내가 벨 수 있게 도와다오. 저놈의 저주받을 무기를 내가 부술 수 있게 해다오.”

스텔리안은 잠시 무 롱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몇 번 더 화살을 날렸다. 소년의 갈색 눈이 구안팅 수가 숨은 하얀 바위와 계곡과 그 맞은편 구릉을 재빨리 훑고 지나갔다.

메칼로 일행은 느린 속도지만 꾸준히 계곡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구안팅 수가 바위 사이에서 머리를 내미는 횟수도 점점 줄었다. 허리춤의 화살을 손끝으로 쓸어 숫자를 확인하고, 스텔리안은 무 롱에게 말했다.

“왕자님 일행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구안팅 수는 바로 산에서 내려갈 겁니다. 산의 뒤편으로 돌아 저쪽, 계곡 위의 산꼭대기로 다시 올라가야 하겠지요. 거기에서 일행의 뒤를 잡으면 더 이상 전진하기 힘드니까요. 그러니 먼저 출발해 미리 길목에서 잠복하면 급습할 수 있습니다.”

“산 뒤편으로 돌아갈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산비탈을 타고 바로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이 있다. 그편이 훨씬 빠르다.”

“제가 여기에서 계속 견제하고 있을 테니까요. 제 화살을 피해 뒤로 돌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 경우 구안팅 수를 잡는 일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입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스텔리안의 물음에 무 롱이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건방진 말을 하는 소년병이로군. 궁사라는 건 근접을 허락한 순간 나물 캐는 아가씨나 다름없어.”

그의 말에 스텔리안은 용병단 안의 ‘아가씨들’을 떠올렸지만 굳이 그녀들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서두르세요.”

새로이 화살을 메기며 스텔리안이 말했다.

왕자 일행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구안팅 수가 더는 지금의 위치를 지킬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남은 시간이 짧았다. 그의 눈을 피하면서 먼저 길목을 차지하려면 확실히 서둘러야 했다.

무 롱도 그 사실을 아는지 그럴듯한 말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났다.

‘구안팅 수는 언제 저 위치를 포기할까.’

상식적으로는 스텔리안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떠나는 것이 맞았다. 견제당하는 동안에는 절대 저격할 수 없으니 다른 장소를 찾아가든 스텔리안을 처치하든 무슨 수를 써야 했다. 하지만 구안팅 수는 좀처럼 자리를 바꾸지 않고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왜 떠나지 않을까.’

사실 아까부터 스텔리안은 그것에 신경이 쓰였다.

구안팅 수는 혼자서 움직이며 접근이 어려운 위치에 숨어 눈에 띄는 적을 하나씩 모두 잡는다. 그런 방식을 즐긴다고는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병사들을 상대로 할 때의 이야기였다.

숨은 곳에서 몸을 내밀기 무섭게 스텔리안의 화살이 날아가고 있었다. 견제하겠다는 것은 부수적인 이유고 기본적으로는 쏘아서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날리는 화살이다. 감인지 동체시력인지 몰라도 그것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머리를 내밀어 볼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화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걸까?’

하지만 머지않아 왕자 일행이 계곡 안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 때는 싫어도 장소를 바꿔야 했다. 그럴 바에는 소득 없는 지금의 자리를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낫다. 상식적으로는 그랬다.

‘게다가 반격을 전혀 안 해.’

스텔리안 역시 계속 자리를 옮기지 않고 있었으니 구안팅 수 역시 소년의 위치를 알 것이다. 그런데 소트 시아페의 각인자가 만들었다는 그의 활이 스텔리안을 겨냥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럴 틈도 안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저쪽은 시도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왜?’라고 아무리 자문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스텔리안을 처리하러 올 다른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쪽은 구안팅 수다.

‘아닌가······?’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가 그에게 있을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뭐가 바뀌는 걸까. 이제 곧 왕자 일행이 계곡 입구에 닿는다. 그들이 계곡 안으로 들어가 구안팅 수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스텔리안은 산 아래 나무 사이로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구안팅 수의 저격은 스텔리안이 막고 있지만 그래도 있을지 모를 함정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메칼로가 앞장서고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이제 곧이다. 그런데 왜······.

간질거리는 불안감을 느끼며 스텔리안은 좁은 계곡 입구로 점점 다가오는 왕자 일행과 아직까지 구안팅 수가 숨어있는 하얀 바위를 번갈아 보았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따끔거리는 눈 밑을 훔치며 구안팅 수가 중얼거렸다. 손등에 땀과 피가 섞여 묻어났다. 상처에 땀이 스며들자 따끔거리는 고통이 배가 되었다.

자칫 눈에 박힐 수 있었던 화살을 간신히 피해낸 결과였다.

두 대의 화살이 연달아 날아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시메트라의 가호로 매처럼 밝은 그의 눈이 잇달아 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물론 날아오는 화살까지도 분명히 본 것이다. 속사에 능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거리에서 곡사라니.’

빗나갔다고 생각한 화살이 빨려들듯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을 때는 그야말로 심장이 오그라들었었다.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츈 지앵에게 저런 괴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츈 지앵이 아니라 션을 통틀어도 저 정도의 궁사는 한 손으로나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와 마주치다니 운이 좋은 건지 더럽게 나쁜 건지.’

구안팅 수는 마음속으로 불평하며 발밑의 활을 잡았다. 정체불명의 궁수로부터 몇 번이나 화살이 날아온 뒤, 도저히 왕자 일행을 저격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줄곧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결판을 내야 할 때였다. 그러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지고 있었다.

머리를 슬쩍 내밀어 아래를 보자 계곡 입구까지 온 왕자 일행이 보였다. 저기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그들은 시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전에 단 한 번 기회가 있었다.

구안팅 수는 활을 잡은 채로 납작 엎드려 기어갔다. 지금까지 계속 머리를 내밀었던 자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미끄러지기 쉬운 바위 끝에 크게 휘어져 자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둥치는 휘어졌을망정 굵고 잔가지가 제법 자라 몸을 감추기도 좋았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잔가지로 가려진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필요한 시간은 짧았다.

왕자 일행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보기 위해 바위와 나무 사이로 머리를 내민 순간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바위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느새 알아차리고 화살을 날려 온 것이다.

“화살이 아주 남아도는구나.”

구안팅 수가 투덜거리며 목을 움츠렸다. 어차피 이 자리라면 굳이 머리를 내밀지 않아도 왕자 일행이 보일 것이다. 보이는 그 순간이 결판의 순간이었다.

왕자 일행의 속도는 변하지 않을 터였다. 저격당하고 나서도 경로를 바꾸지 않고 같은 속도로 이동한 그들이었다. 저 건너편 산에서 이쪽으로 활질을 해대는 궁사를 단단히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속도도 인원 배치도 바뀌지 않는다. 바뀐다고 해도 임기응변 하면 그만이지만 예측이 가능한 적만큼 쉬운 사냥감은 없었다.

구안팅 수는 기다렸다. 왕자 일행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 원하는 곳에 설 때까지 그가 할 일은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 끝에······.

‘왔다.’

앞장 선 사람의 머리가 자그맣게 보였다. 구안팅 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무 둥치에 숨은 그의 몸을 노리고 화살이 날아왔으나 둥치에 긁힌 상처를 내는 것에 그쳤다.

‘지금이다.’

구안팅 수가 휘어진 나무 둥치 위로 뛰어올랐다. 바위틈에서 자랐어도 거목이 된 나무는 그의 무게를 가뿐히 견뎠다. 다시 날아온 화살이 잔가지를 꺾고 그의 옆구리에 스쳤다. 구안팅 수는 직감했다.

‘다음 번 화살에는 제대로 맞는다.’

그러나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화살이 옆구리에 스쳤을 때 구안팅 수의 쇠뇌는 이미 정체불명의 궁사를 향해 발사된 후였다. 그리고 동시에 맨발인 그의 왼 발이 나무에 묶인 또 하나의 쇠뇌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쇠뇌라는 건 말이다······.’

계곡 입구를 향해 겨누어진 채로 단단히 묶인 쇠뇌에서 네 대의 쿼럴이 동시에 날아갔다.

‘고정할 수 있으면 양손은커녕 한 손을 쓸 필요도 없다고.’

네 개의 쿼럴이 역삼각형을 이루며 일행의 한가운데를 향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맞는다.

나무에서 날아간 네 대의 쿼럴을 상대 궁사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당황했는지 몸을 일으키며 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판단이 틀렸다고, 이 애송아.”

구안팅 수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순간 궁사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시메트라가 가호하는 그의 눈에, 가슴에 쿼럴이 박힌 소년이 비탈을 굴러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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