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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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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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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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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여우들의 왕(3)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그것은 긍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에밀리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츈 지앵이 소트 시아페의 신자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자 넝쿨을 감아올리듯 다른 일들이 뒤따라 떠올랐다.

“그래서 스텔리안의 활을 알아봤던 거군.”

양헨 성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츈 지앵은 스텔리안의 활이 소트 시아페의 각인자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그때는 한 나라의 왕자답게 안목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신자의 작품과 각인자의 작품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한 안목이 아니다.

‘그리고 누각······.’

츈 지앵의 거처 누각 밑에는 비밀의 공간이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2층 위에 누각이 있는 구조다. 누각 아래의 두 층을 세 층으로 나눈 셈인데도 감춰진 방의 규모는 충분히 크고 천장도 높았다.

그것을 본 메칼로는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었다.

- 놀랐는데. 토비아스가 봤다면 좋아했겠어.

그때는 숨겨진 공간에 대해 감탄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 말을 돌이켜 보자 어딘지 이상했다. 토비아스는 아네타의 신자답게 여러 방면으로 지식이 많고 탐구욕도 강하지만 건축이나 눈속임 같은 것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좋아하는 거라면 사실 딱 하나였다.

“저는 재정담당이지 만능 해결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그 남자는 용병단에 이득이 되는 거라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정보든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러니까 츈 지앵의 비밀 공간은 용병단에 이득이 되는 정보였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메칼로는 그때 츈 지앵이 소트 시아페의 신자라는 것을 눈치 챈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뭐든지 알고 있는 것 같은 메칼로의 뻔뻔한 얼굴이 떠올라서 에밀리오는 인상을 썼다.

“괴이하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츈 지앵이 문득 말했다. 슬슬 다시 움직이지 않으면 추적자들에게 따라잡힐 터라 약간 조급했던 에밀리오가 성급히 물었다.

“뭐가?”

“추적이 늦지 않으냐.”

확실히 그랬다.

클레타의 용병들에게 쫓기면서 무 롱과 흩어진 에밀리오는 추적을 조망하기 좋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그들의 이동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츈 지앵을 구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클레타 용병들의 위치가 꽤 가깝다는 것도 확인했다.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도주하다가 이렇게나 쉬고 있으니 진즉에 따라잡혔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추적자들 쪽에서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쪽에 운이 따라주고 있다면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할 게 아니라 최대한 멀리 가야했다.

“산을 벗어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로레단까지 거리는?”

에밀리오의 물음에 츈 지앵은 위치를 가늠하려는지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저 능선을 넘으면 다소 평탄한 지형이 된다만, 우리가 걷기 편하다면 추적자에게도 편하겠지. 처음 경로에서 많이 벗어나고 방향도 달라서 로레단과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구나.”

츈 지앵의 대답에 에밀리오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흩어질 경우 집결지는 로레단이었다. 길도 잘 모르는 클레타 남부에서 어디에 가도 눈에 띌 외모의 션 사람을 데리고 도주하기는 힘들었다. 동료들을 만나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

“어떻게든 로레단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던 에밀리오가 돌연 납작 엎드렸다. 뒤미처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가까운 곳의 나무에 화살 하나가 박혔다.

“추적자인가?”

츈 지앵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에밀리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화살을 보자 어쩐지 눈에 익었다.

“그것은 스텔리안이 쓰는 화살이구나.”

츈 지앵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덧붙였다.

“살대에 뭔가 적혀 있다.”

화살은 나무에 가볍게 박혀 있었다. 뽑아서 살대를 확인하자 뾰족한 것으로 긁어 ‘서북서’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잘난 체하면서 알려주기는. 이탈했던 주제에.”

에밀리오가 기분 나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서북서 방향은 츈 지앵이 말한 능선이었다. 힘들여 능선을 넘어서자 그가 말한 대로 지형이 한결 유순해졌다. 나무들의 간격도 넓어지고 관목 대신 풀이 자랐다. 나무를 벤 자리나 동물이 만든 길의 흔적도 보였다.

풀숲 사이에서 눈에 익은 얼굴이 불쑥 나왔다.

“이쪽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오는군.”

펠릭스였다. 익숙한 화살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자 말 세 마리가 기다리고 있다가 푸르릉거리며 새로운 동행을 쳐다보았다. 한 마리에는 산디아가 타고, 다른 한 마리에는 메칼로가 말에 묶인 채로 엎드려 있었다.

에밀리오가 메칼로의 옆으로 다가가서 인상을 썼다.

“이 시체는 뭐야?”

“저는 츈 지앵 님과 함께 탈 테니 에밀리오 님이 메칼로 님과 같이 타십시오.”

에밀리오의 독설을 못들은 체하며 산디아가 말했다.

“내가 왜?”

“펠릭스가 길을 아니 앞장서야 하고 저는 후방을 맡아야 하니까요.”

“웃기지 마. 시체와 같이 말을 타느니 션의 왕자 뒤에서 화살받이나 하는 편이 나아.”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산디아가 차갑게 대꾸하고 재빨리 메칼로가 탄 말에 올랐다. 다른 때라면 점잖게 나무라고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했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어 보였다. 아니면 그 정도로 메칼로의 상태가 심각한지도 모른다.

에밀리오는 산디아의 뒤에 앉은 메칼로를 힐끗 쳐다보았다. 산디아는 메칼로와 자신의 몸을 묶어서 그가 떨어지지 않게 해놓고 상체를 엉거주춤 숙인 채로 말을 출발시켰다.

메칼로는 업힌 것처럼 산디아의 등에 기대고 있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산디아의 어깨 위에서 그의 머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도대체 어떤 놈에게 당한 거지?”

돌연 짜증이 솟구쳐서 에밀리오가 물었다.

“누구랄 것 없습니다. 로레단에 도착할 때까지 쓸 데 없는 질문은 미뤄주십시오.”

산디아의 목소리는 거칠고 단단했다. 에밀리오는 울컥해서 쏘아붙이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불평할 일이 아니었다.

산디아에게 있어 에밀리오는 애초에 ‘메칼로 때문에 참아주고 있는 불청객’ 정도였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피차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묵계였다.

메칼로는 에밀리오를 부하처럼 다뤘고 다른 용병들도 거의 동료 취급을 하고 있지만 산디아만은 끝까지 아니었다. 메칼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대하는 그녀가 에밀리오에게만은 깍듯이 존대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녀는 클라우스 가에 충성을 바치는 바렌틴의 전사였으므로 에밀리오를 ‘왕비의 동생’으로서 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에밀리오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명백했다. 에밀리오가 메칼로를 ‘대장’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칼로 용병단의 단장은 산디아지만 그것은 행정상의 직책에 가까웠고, 누구나 인정하듯이 사실상의 대장은 메칼로였다. 테리아식 전통에 따라 대장은 가장 강한 자였으며 같은 이유로 단원들은 메칼로를 따랐다.

그것을 에밀리오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에밀리오는 걸핏하면 메칼로에게 싸움을 걸었고 메칼로도 거절하지 않았다. 승패는 따지면 거의 비슷했다.

메칼로가 마음을 읽는 것을 모른 에밀리오가 고전했다가,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내서 유리해졌다가, 에밀리오의 속도에 익숙해진 메칼로가 다시 승기를 잡았다가, 어린만큼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성장하는 에밀리오가 다시 유리해졌다가, 그런 식으로 둘은 엎치락뒤치락 승패를 쌓았다.

두 사람이 아무 때나 칼을 잡고 싸워대는 모습은 용병단 안에서 일상이었다.

처음 에밀리오가 용병단에 찾아와 메칼로에게 시비를 걸어댈 때는 드라고미르 가의 유명한 천재 검술사 도련님의 치기려니 생각했던 단원들도, 4년째 똑같은 소년을 보자 이제 당연해져버렸다.

어째서 그가 매번 메칼로에게 싸움을 걸고, 이겼다 졌다 하면서 거의 대등한 실력이 되었는데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지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단원들에게 그는 그냥 그런 소년이었다.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앞에서 달리던 펠릭스가 손짓과 함께 말했다.

어느새 말은 제법 넓은 길을 달렸고 주변에는 띄엄띄엄 밭이 딸린 집이 나타났다. 펠릭스는 일행을 잡목이 우거진 곳에 잠시 숨게 하고 혼자서 말을 달려 어디론가 갔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을 때는 멀리 마차 몇 대가 뒤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되돌아온 펠릭스가 일행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교섭을 한 상대는 상인 한 명뿐입니다. 그 사람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준 것은 아니지만 위험에 처하기 전에는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마부와 짐꾼인데 우리를 통행증 비싸게 사기 싫은 여행객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적당히 상대하십시오. 대장은 병이 났다고 둘러댔습니다. 상처가 보이지 않게 잘 단속하고, 션의 왕자님은 얼굴을 가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산디아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잠깐 사이에 그녀는 메칼로의 피부에 묻은 핏자국을 모두 닦아내고 긴 겉옷을 입혀 얼룩진 옷을 가렸다. 츈 지앵은 소매가 길고 두건이 달린 외투를 입었다. 두건을 눌러쓰고 기침하는 흉내를 내게 하니 그럴듯하게 연기를 해냈다.

이윽고 마차들이 다가오자 그들은 한사람씩 마차에 나누어 탔다. 메칼로의 창백한 얼굴을 본 상인이 동정하여 그를 짐칸에 눕게 해줬다. 츈 지앵은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해서 그를 태운 마부는 질겁하며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차들은 울퉁불퉁한 길을 천천히 달려 로레단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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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9.01.17 06:58
    No. 1

    소트 시아페님 죄송해요... 메칼로가 정신차리면 정주행 다녀오겠습니다!
    에밀리오 깜찍한것..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1.18 10:19
    No. 2

    엌ㅋㅋ 메칼로가 언제 정신을 차릴지.....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9.01.17 08:45
    No. 3

    와우~ 새글이 자꾸 올라오니까 너무 좋네요.
    메칼로를 걱정하는 에밀리오. 인정하기 싫은가봐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1.18 10:20
    No. 4

    걱정하는 건지 어떤 건지.... (먼 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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