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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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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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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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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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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무도 모른다(7)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눈앞이 어두웠다. 발에 풀잎이 밟히는 소리가 들리는데, 도무지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럭 겁이 난 스텔리안이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어지럽게 얽힌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남색 하늘이 보였다. 별도 몇 개 반짝인다. 눈이 먼 것은 아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진정되었다.

눈이 멀쩡한 것은 다행이지만 몸의 다른 곳이 여전히 둔했다. 소리는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것 같고 손끝은 아예 감각이 없었다. 한 걸음씩 천천히 충분히 움직여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이나 발이 걸려 넘어졌다.

넘어질 때마다 느끼는 가슴의 욱신거리는 통증만이 선명했다.

‘피가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다시 쓰러지면 이대로 짐승 밥이 될지도 모르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든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이 떠올랐다. 메칼로는 정오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했지만 길을 잃어버린 지금 마을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흔적을 잃은 그 장소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새벽에 다시 흔적을 따라 길을 찾아내야 했던 것을.

그러나 그런 후회를 한 것은 어둠 속에서 길도 방향도 완전히 잃어버린 후였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에 익은 별을 찾아낸 다음 그 방향으로 걷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이제 없었다. 쉬려고 주저앉는 순간 끝이다.

한 번 눈을 감으면 다시 뜰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멈추지 마. 계속 걸어.’

그러나 그의 몸은 마음 속 명령과 달리 힘없이 고꾸라졌다. 일어나려고 해도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발 좀······.’

스텔리안은 자신의 몸에게 간청했다. 여기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채로 짐승의 먹이나 되며 끝날 수는 없다.

이를 으득 물고서, 스텔리안은 힘없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일어날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가야했다. 팔로 몸을 당기면서 감각이 없는 다리를 꿈틀거렸으나 전진하고 있는 건지 제자리에서 발버둥치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움직여······. 멈추지 마······.’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스텔리안은 계속했다. 몸을 끌기 위해 움직이는 팔은 흙더미만 끌어당겼다. 턱 앞으로 쥐어뜯긴 풀잎과 썩은 낙엽 섞인 흙이 쌓였다.

‘와줄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제발······.’

필사적으로 내뻗은 손끝에 흙이나 돌 아닌 것이 잡혔다. 무두질 된 가죽이라고 생각했다. 잡아당겨도 끌려오지 않았다. 지탱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좋았다. 그것에 손끝을 걸고 스텔리안은 있는 힘껏 팔을 당겼다.

“뭐야, 이 꼬맹이는.”

투덜거리는 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갓 변성기가 지난 소년의 거친 목소리였다.

‘뭐······?’

스텔리안은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떠올린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이런 데서 길을 잃었냐? 아니면 열 살도 되기 전에 왕을 사냥하러 나온 용사냐?”

절대로 여기 있을 리 없는 소년이, 스텔리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부정하면서 스텔리안은 눈을 깜박여 상대방을 제대로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볼수록 분명해졌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도, 퉁명스러운 표정의 단정한 얼굴도,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녹색 눈동자도, 어디 하나 다름없이 기억과 똑같았다.

“메칼로······님?”

스텔리안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호오? 나를 아네?”

메칼로의 얼굴에 소년다운 호기심이 조금 떠올랐다. 금세라도 가버릴 것 같았던 걸음을 돌려서, 그가 스텔리안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느 가문에서 이런 꼬맹이를 모래톱의 회합에 데려온 거야? 음······ 오비디온?”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알아차리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스텔리안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금세 깨달았다. 아, 그는 메칼로니까. 그래서 알았구나.

“어쨌든 위험한 데서 놀지 말고 해변으로 가. 너 그러다 죽는다?”

“놀러 온 거 아니에요!”

억울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서 스텔리안이 외쳤다. 말하고 나자 새삼 분했다.

“저, 전 오비디온 가문의 스텔리안이에요. 내 활을 찾으러 왔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스텔리안은 자신이 숲을 헤매고 있던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자 다시 억울함이 끓어올랐다.

“피, 필리프 숙부가 내 활을 뺏어서 숲에 던져버려서······. 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건데. 활 찾아야 하는데······.”

억울함이 눈물로 넘쳐흘러서 스텔리안은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이며 울었다.

“그 활이란 게 이거냐?”

눈앞에 작은 활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것을 본 스텔리안이 훌쩍이던 것조차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잃어버린 자신의 활이었다.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활이 위로 휙 올라갔다.

“누가 너 준댔어? 이건 내 전리품이거든?”

“예에?”

“마이론 가문 사람을 해치우고 내가 뺏은 거니까 말이야. 어쩐지 화살도 없이 활만 들고 있다 했더니 그녀석도 주운 거였잖아.”

메칼로가 손가락 끝에 시위를 걸어 빙글빙글 돌리며 유쾌하게 말했다.

“아, 안돼요!”

스텔리안이 활을 향해 달려들었다. 재빠르게 낚아챘다고 생각하는데 활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가 놀리듯이 다른 쪽에서 나타났다.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놀림당한 스텔리안이 울먹이며 외쳤다.

“나, 나는 사냥에 참여한 게 아니니까 그 활도 전리품으로 못 가져가요!”

“상관없어. 나도 사냥에 참여한 거 아니니까.”

메칼로가 비웃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모래톱의 회합이니 하면서 왕을 사냥한다기에, 얼마나 대단한 전사들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구경 온 것뿐이야. 막상 보니 대단치도 않잖아. 늙은 안토니오 만큼도 못한 녀석들이 득실거려.”

그가 말한 늙은 안토니오란 헬리온 클라우스의 스승이기도 한 안토니오 라즈반이니 사실 인색한 평가는 아니었다. 그 안토니오를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메칼로가 비정상일 뿐이다.

“사냥에 참여하지도 않고 전사들과 싸우면 안돼요. 그런 짓은 규칙에······.”

스텔리안의 말은 채 맺기도 전에 끊어졌다. 갑자기 날아온 메칼로의 발이 어깨를 걷어차는 바람에 작은 몸은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뒤미처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쇳소리가 쩡 울렸다.

스텔리안은 쓰러진 채로, 조금 전까지 자신의 머리가 있던 허공에서 두 자루의 칼이 맞부딪친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나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비스듬하게 떨어진 장검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 내리꽂히듯 그것을 막은 단검이었다.

장검을 휘두른 남자는 메칼로의 방해가 뜻밖이었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가 단검의 가드에 걸렸던 검을 빼내려고 당긴 순간 단검과 함께 메칼로가 움직였다. 스텔리안은 검은 그림자가 눈앞을 휙 지나간 후에야 그것을 알아차렸고 장검의 남자는 칼을 당기는 속도에 맞춰 달려든 메칼로를 막아내지 못한 채로 그의 단검에 어깨를 찔렸다.

“이 새끼가!”

남자가 몸을 뒤로 눕히며 발길질을 했다. 키는 엇비슷했지만 남자에 비교해 체격은 절반밖에 안 되는 메칼로였다. 바로 앞이니 피할 길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다람쥐처럼 재빠른 몸이 발을 옆구리로 흘려내고 무릎으로 남자의 명치를 찍었다.

뒤로 눕혔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칼로의 단검이 남자의 양 어깨에 칼자국을 냈다. 상처에서는 피도 거의 흐르지 않았으나 남자는 딱하게 창백해진 얼굴로 무기를 떨어뜨렸다.

“다리는 안 건드렸으니 부지런히 달려서 도망가 보든지.”

남자로부터 떨어지며 메칼로가 말했다. 남자는 누운 채 몸을 다리로 밀며 꿈틀꿈틀 움직이다가 메칼로가 더는 관심을 안 주는 것 같자 허둥거리며 일어나서 나무 사이로 달아났다.

“재미있네.”

메칼로가 도망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도 웃는 표정이 아니면서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스텔리안은 알 수 없었다.

“너, 화살은 가지고 있는 거겠지?”

메칼로가 문득 물었다. 스텔리안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주저앉은 채 못 일어난 스텔리안의 무릎에 활이 툭 떨어졌다.

“아, 고맙습니다!”

스텔리안이 돌려받은 활을 껴안고 화색이 돈 얼굴로 말했다.

“뭐가? 지금부터 넌 내 활을 들고 다니는 시종이다.”

메칼로가 스텔리안의 환해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태연히 말했다.

“예?”

“활과 함께 너도 내 전리품으로 삼아주겠다는 말이야.”

멋대로 말하고 나서, 메칼로는 스텔리안의 덜미를 잡아 휙 끌어올렸다. 스텔리안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메칼로의 어깨에 짐짝처럼 얹혔다.

“자, 잠깐만······. 내가 왜······.”

“입 다물어, 전리품. 지금부터 곧장 해변으로 갈 거니까.”

메칼로는 말한 대로 했다. 그 자리에서 해변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숲 속은 왕을 사냥하기 위해 열두 가문에서 나온 사냥꾼뿐이어야 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냥꾼이라면 사냥감인 왕의 주변에 몰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칼로가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단검을 든 남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불문곡직 칼을 휘둘렀다.

메칼로는 아이 하나를 어깨에 매달고도 그 공격을 훌쩍 피했다. 그리고 춤추는 것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빙글 돌면서, 스텔리안을 떨어뜨리는 것과 남자에게 반격하는 것을 동시에 해냈다.

갑자기 뛰어들었던 남자가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 순간 뒤에서 또 한 명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게다가 나무 사이로 뛰어오는 사람이 둘이나 더 보였다.

“네 활은 장난감이냐?”

메칼로가 칼 든 남자를 상대하며 스텔리안에게 외쳤다. 의미는 명백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알아들은 스텔리안이 울상을 지었다.

당연히 활은 장난감이었다. 표적은 나무의 열매나 울타리 위에 올려놓은 돌멩이였지 사람이나 살아있는 어떤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스텔리안이 망설이는 사이에 멀리서 달려온 새로운 적이 합세했다. 스텔리안이 보는 앞에서 이미 두 명을 손쉽게 해치운 메칼로였지만 이번에는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실력은 죽은 사람들과 엇비슷해도 여러 번 손을 맞춰본 듯 합이 좋았다.

메칼로는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점점 궁지에 몰리는 것 같았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세 명의 적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메칼로를 내버려두고 그가 노린 쪽은 스텔리안이었다.

자신을 향해 오는 남자로부터 적의를 느끼고 스텔리안이 비틀비틀 뒷걸음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몇 걸음 못 가서 넘어지고 말았다. 쓰러져 나뒹굴었지만 아픈 것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그 순간 칼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를 본 것이다.

“아악!”

스텔리안이 목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서 다음에 닥칠 두려운 일을 상상하며 몸을 떨었으나,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텔리안은 덜덜 떨면서 감았던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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