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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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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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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길(2)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잠들었던 스텔리안은 자정이 좀 넘어 깨어났다.

산디아는 출발할 준비를 끝내 놓은 뒤 먼저 쉬고 에밀리오는 창가에서 불침번을 서는 중이었다. 메칼로는 그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스텔리안은 숨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로 메칼로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어두운 가운데 창문으로 스며드는 별빛만 푸르스름한 방안에, 세 사람의 고른 숨소리가 떠돌았다.

메칼로의 숨소리는 전보다 거칠었다. 몸에는 아직 잔열이 남아 있었고 상처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전과 비교해 현저하게 약해졌다. 지금으로서는 그를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약하다. 그래서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도 헤아려 볼 수 있는 스텔리안의 눈은 그런 식으로 기능했다. 스텔리안은 몇 번이나 메칼로의 위치를 놓쳤다가 다시 찾아냈다.

그에 비해 에밀리오는 일부러 찾아낼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포효하듯 알렸다. 그가 내뿜는 무시무시한 기운은 포식자의 살기였다. 그의 숨소리는 차갑고 예민했다.

계속된 야외활동 때문에 평소보다 지쳤으면서도 에밀리오의 존재감은 오히려 도드라졌다. 그는 피를 마시고 살을 뜯어먹는 육식동물로 태어났단다. 그러니 그의 앞에서는 절대 방심하지 말아라. 눈이 스텔리안에게 가르쳤다.

예. 알고 있어요.

스텔리안은 조심스럽게 그로부터 눈을 돌려 산디아를 향했다. 어제 하루 잘 쉰 덕분인지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몸은 수없이 접어 두드려서 단조한 검처럼 강인했다. 전사로서 그녀는 실로 여신이 흡족할 제단이었다. 세라는 그녀를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일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

그 강인한 몸 안에서 깊은 강처럼 고요한 심장이 힘 있게 박동했다.

스텔리안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며칠 동안 무리했던 몸은 아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길을 떠나도 문제가 없다. 체력은 천천히 회복될 것이고 이전을 넘어서 더욱 강하며 더욱 은밀해질 것이다.

눈이 알려주었다.

어린 수사슴아, 겨울이 지났으니 이제 성장하여라. 네 뿔에서 가지가 생겨날 것이다. 해를 넘기며 가지는 더욱 번창하고, 한여름에 이르러 단단해진 뿔이 네 이마를 왕관처럼 장식하리라.

스텔리안은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네 사람의 호흡이 뒤섞인 탁한 공기가 그의 폐에 가득 찼다가 도로 빠져나갔다.

잠들어 있던 메칼로가 눈을 떴다. 그를 수호하는 두려운 신이 함께 눈을 떠서, 이제 스텔리안은 메칼로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네 사람은 아직 캄캄한 로레단의 거리를 걸었다. 문이 열리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으므로 그들은 벽을 넘어 마을을 빠져나갔다.

말을 맡겨두었던 마구간에서는 젊은 마구간지기가 코를 골며 자다가 개 짖는 소리에 깨어났다. 그는 한밤이나 다름없는 시각에 찾아온 손님들을 미심쩍은 듯 훑어보았으나 산디아가 던져 준 동전에 금세 상냥해졌다.

말 두 마리에 둘씩 나누어 타고서 그들은 별빛을 의지해 낯선 길을 달렸다.

초행인 그들에게 다행스럽게, 로레단에서 마세라까지는 잘 닦인 큰 길이었다. 적어도 마세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따라잡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동하는 속도는 펠릭스 쪽이 더 빠를지도 몰랐다.

이쪽은 말에서 간신히 떨어지지 않을 정도인 메칼로가 있었다. 산디아가 함께 말을 탔어도 보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당연히 속도가 늦춰졌다. 게다가 이미 그들 사이에는 하루의 시간차가 있었다.

에밀리오가 드라고미르 가의 도련님답게 마차를 한 대 사자고 주장했지만 산디아에게 기각

당했다.

“훔친다면 모를까 살 돈은 없습니다.”

드라고미르 상단은 클레타 남부에서 활동하지 않으니 에밀리오도 짜증만 낼뿐 도리가 없었다.

“조급할 거 없어. 안달하지 않아도 우리 대신 놈들이 펠릭스의 발목을 잡을 테니.”

오히려 태연한 쪽은 메칼로였다.

“로레단에서만 그랬을 리가 없지. 모든 마을, 모든 성문이 션의 왕자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고 있을 거다. 펠릭스라도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해.”

“상황이 그렇다면 츈 지앵을 데리고 밍 야즈에게 가야하는 우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없다.”

메칼로가 피식 웃었다.

“그때쯤이면 토비아스가 합류할 테니. 녀석이 어떻게든 하겠지.”

“먼저 메칼로 님에게 엉덩이를 걷어 채인 다음 말이죠.”

산디아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메칼로의 말이 선견지명이었는지 혹은 저주였는지, 그들은 다음날 오후 식량을 사러 들른 마을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정보를 준 사람은 빵집의 여주인이었다.

빵이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다 나온 말이었다. 어제 저녁에는 영주의 병사들이, 오늘 아침에는 병사도 아닌데 무장을 한 사람들이 잇달아 마을에 나타나서 빵이며 고기며 상당한 양을 사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제 온 병사들은 죄수를 호송하는 중이었다.

“글쎄, 션 사람이었다니까요. 틀림없이. 이런 시골에 병사들이 우르르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죄수가 션 사람이라니. 설마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몰라. 나 어릴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불안해하며 수다를 떤 빵집 여주인에 의하면, 이 근방에서 병사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사나흘 전부터의 일이었다. 그러다 어제 오전, 병사들이 마을 입구에서 시끌벅적하게 죄수 하나를 끌고 갔는데 마침 빵을 배달하러 나갔던 그녀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가 열두 살인가 되었던 해에 큰 난리가 있었거든요. 션 사람들이 쳐들어 왔어요. 저 아랫마을까지 휩쓸릴 정도로 큰 전쟁이었지 뭐예요. 그때 포로를 여럿 잡아서 끌고 가는 걸 봤으니까 내가 션 사람은 확실히 구별할 줄 알아요.”

그녀는 병사들이 죄수를 데리고 영주의 저택으로 갔다고 말했다.

이런 때에 션 사람이 붙잡혔다면 츈 지앵이거나 그의 부하들 중 하나였다.

“츈 지앵은 아닐 겁니다. 펠릭스가 그렇게 쉽게 당할 리도 없고, 만에 하나 당했다고 해도 누군가는 빠져나와서 연락을 보냈을 테니까요. 펠릭스와 같이 온 단원들 중에 시원찮은 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산디아는 확신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무 롱, 아니면 다른 호위무사인가······. 잘도 여기까지 따라왔군.”

“그게 누구든 여기에서 잡혔으니 이제 츈 지앵의 도주 경로가 드러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마을에서 먹을 것을 사갔다는 무장한 사람들은 클레타의 용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한나절 차이인가······.”

메칼로가 중얼거렸다.

“그 사람까지 구할 시간은 없습니다.”

메칼로의 내심을 알아차린 신디아가 자르듯 말했다. 메칼로가 그녀를 보고 픽 웃었다.

“시간이 없는 것은 알아. 먹을 것을 구하면 곧장 출발하고,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으로 쉬면서 이동해야 할 거다. 그러니 에밀리오, 구출은 네가 맡아.”

“예?”

“뭐?”

산디아와 에밀리오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내가 왜 그런 짓을······.”

“메칼로 님, 지금 전력을 분산하는 것은······.”

에밀리오가 인상을 쓰고, 산디아는 난색을 표하며 반대했다. 메칼로는 그들의 말을 잘랐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싸울 생각은 애초에 안 해. 그러니 전력을 따질 필요는 없고, 넷보다는 셋 쪽이 움직이기 수월할 거다. 그리고 추적에는 에밀리오보다 스텔리안 쪽이 더 도움이 되고.”

가차 없는 말에 에밀리오의 얼굴이 굳었다가 금세 냉랭해졌다.

“이의 있나?”

“없다.”

대답하는 목소리에 묻은 살기를 느끼고 스텔리안이 움찔거렸다.

“우리는 식량만 구하면 바로 떠날 테니 정보수집에서부터 계획과 뒤처리까지 모두 네가 알아서 해. 구출에 성공하면 그 사람은 션으로 돌려보내고. 이제부터는 방해만 되니까.”

“가려고 할까요?”

산디아가 물었다. 츈 지앵에 대한 부하들의 태도를 봐왔으니 모두 산디아의 말에 공감했다. 메칼로가 에밀리오를 힐끗 쳐다보았다.

“가게 만들어, 드라고미르.”

“두 번씩 말할 필요 없다.”

에밀리오는 차갑게 대꾸하고 몸을 휙 돌려 그곳을 떠났다. 소년의 뒷모습을 향해 메칼로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곧장 우리를 따라잡으라고.”

그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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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9.02.11 23:43
    No. 1

    좋아하는 작품을 읽다보면 안에 들어가서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지요. 헌데 메칼로의 세계는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피시식 식을 때가 있어요. 실로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라는 식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세계 아니겠습니까. (으스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23 23:33
    No. 2

    저도 별로 살고싶지 않은 세상입니다. 여긴.... 대한민국이 최고예요. 누구들은 헬조선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비하면 천국이라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9.02.12 12:57
    No. 3

    메칼로식 훈육인가요. 죽다 살아나서도 판단력이 아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23 23:34
    No. 4

    메칼로란 남자 그런 남자.......(/ㅡ_-)/~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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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누군가를 위해(1) +4 18.04.12 145 7 12쪽
157 아무도 모른다(8) +4 18.04.12 132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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