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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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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491

작성
18.04.2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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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누군가를 위해(5)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그로부터 숨가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추적자들은 펼쳐 놓았던 그물을 당기듯 포위망을 점점 조이며 다가왔다. 그물의 입구에 걸린 채로 달아나는 네 명의 속도가 그보다 느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뒤에서는 달리듯 쫓아오는데 이쪽은 한쪽 다리가 성치 못한 츈 지앵에게 맞춰야 했다.

츈 지앵도 처음은 다급한 마음에 힘껏 움직였으나 잘한 일이 아니었다. 온 몸의 체중이 한쪽 발에 실린 채로 무리하자 능선 하나를 넘기도 전에 근육이 뻣뻣해지고 말았다. 결국은 성한 다리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메칼로에게 매달리다시피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 사이 추적자들은 스무 걸음 거리까지 달라붙었다. 발소리는 물론 거칠어진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조바심 내며 뒤를 힐끔거리던 션의 무사가 등에 매단 무기의 손잡이를 잡았다. 시간을 벌기 위해 싸울 작정이었다.

“Shang(아직).”

메칼로가 서툰 션 어로 나직이 말했다. 아직 싸울 때가 아니라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션의 무사는 갈등하는 얼굴로 무기를 놓았다.

추적자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와 함께 멀찍이서 궁사들에게 명령하는 클레타 어가 들리자 메칼로는 볼을 찡그렸다. 클레타 어를 모르는 션의 무사조차도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 비탈을 내려오다 말고 몇 명의 추적자들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이쪽을 향해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능선을 넘어가기 전에 활을 쏘려는 것이었다.

“산디아.”

메칼로가 츈 지앵을 밀어젖히듯 넘어뜨리고 돌아섰다. 산디아가 재빨리 츈 지앵을 끌어당겨 나무뒤로 숨겼다.

“메칼로!”

츈 지앵이 외쳤을 때 그는 이미 가장 가까운 추적자들의 코앞까지 가 있었다.

“은폐하다 궁사들을 처리하면 바로 출발하십시오.”

메칼로의 뒤를 따라가며 산디아가 충고했다. 그녀가 달려가는 동안, 메칼로는 가장 앞에 선 추적자들을 무시하듯 뛰어넘어버린 다음 궁사들을 향해 달렸다. 그 터무니없는 행동에 클레타 인들도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궁사들이 메칼로를 향해 활을 겨눴지만 인상을 쓰며 시위를 놓아야 했다. 궁사의 위치가 한참 위쪽이었기 때문에 메칼로를 겨누면 뒤편으로 동료들이 함께 조준되었다. 잘못하면 아군이 다쳤다.

근처의 용병들이 궁사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오고 메칼로가 지나쳐버렸던 용병들도 욕설과 함께 그를 뒤따라갔다.

흡사 그물 안에 뛰어든 물고기 같았다. 적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메칼로를 향해 십 수 명의 용병들이 무기를 겨누며 몰려갔다. 다급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든 어리석은 자라고, 아마도 그 자리의 용병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고 있는 츈 지앵과 그의 부하도.

“그만둬요!”

그들을 쫓고 있는 시앙 잔과 동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물러나! 그 사람은······.”

아마도 생각이 다른 사람은 산디아를 제외하면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뒤늦게 외친 목소리는 연달아 들려온 클레타 인 용병들의 비명 소리에 가려져 버렸다.

가장 먼저 접근했던 두 명이 어떻게 당했는지는 볼 틈도 없었다. 그들이 채 쓰러지기도 전에 메칼로는 다음 상대의 지척에 닿아있었다. 세 명, 그리고 다시 두 명을 쓰러뜨린 다음 궁사들의 앞까지 왔을 때였다.

“메칼로!”

용병들 뒤쪽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검으로 내리긋듯 울렸다. 막 공격하려던 메칼로가 움칫거렸다. 그와 함께 위쪽에서부터 연달아 명령이 하달되었다.

“포위해!”

“창병!”

“궁사는 물러나!”

메칼로의 공격이 멈춘 사이 궁사들이 허둥거리며 이동하고 창병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러나 보고도 못 믿을 실력을 방금 확인한 뒤라 누구도 먼저 달려들지 못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라면 부하들에게 그만두라고 말할 거예요, 미하이 대장.”

용병들을 좌우로 밀어내며 한 무리의 션 사람들이 비탈을 내려왔다. 여자는 그들 사이에 있었다.

“난 저 사람이 백 명이 넘는 용병들 사이에서 혼자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요.”

말하고 나서 그녀는 션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고 메칼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라면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그 뒷모습에 달라붙었을 테지만 이번만은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

“여어.”

눈짓 한 번으로 그녀의 위아래를 훑고 나서 메칼로는 싱긋 웃었다.

“일 년 반 만인가? 예상 못한 곳에서 만나니 두 배는 반갑군.”

그의 천연덕스러운 인사를, 그녀는 차가운 눈웃음으로 되받았다.

“여기 쓰러진 사람들이 내 용병이 아니었다면 나도 반가웠을 거예요.”

그녀는 산비탈에 깔린 잡초와 낙엽이 연회장의 붉은 융단인 것처럼 우아하게 걸어 메칼로의 앞으로 갔다. 그녀가 비탈의 위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눈은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메칼로.”

그녀가 거친 목소리로 나직이 그를 불렀다. 그것이 반가운 인사라도 되는 듯이, 메칼로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제이나.”

자신의 이름을 불리자 제이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잠깐 어렸던 미소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녀의 날카로운 눈이 그의 뒤쪽을 향해 번득였다.

제이나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츈 지앵을 뒤쫓던 클레타 용병들이 산디아의 칼에 하나씩 쓰러지고 있었다.

“미하이 대장! 부하들에게 추격을 멈추라고 해요.”

제이나가 외치자 그것에 답하듯 “추격 중지!”라고 외치는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고 뒤이어 그들 사이에서 체격 좋은 금발의 남자 하나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달려 내려왔다.

“당신 주인이 부자인 것을 다행으로 아시오. 그리고 선금을 후하게 준 것도!”

달려오자마자 그가 제이나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부하들이 여러 명 쓰러졌는데도 오히려 추격을 중지하라는 말을 듣고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제이나는 그의 위협적인 태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내게 감사할 걸요.”

화가 난 용병 대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한 그녀가 메칼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내가 클레타에서 실력 좋은 용병단을 찾을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이 뭐라고 생각해요? 정말 놀랍군요. 바로 그 용병단을 츈 지앵 왕자가 먼저 손에 넣었을 줄이야.”

“나야말로 놀라운걸. 빈손으로 떠난 지 일 년 반 만에 나를 궁지에 몰 정도로 무서운 분이 되어서 돌아왔군.”

메칼로의 말에 제이나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당신을 궁지에 몰 생각은 없어요, 메칼로. 나는 당신의 실력을 잘 알아요. 당신이 신의 있는 용병이라는 것도 알고요. 당신이 적이 되었을 때 얼마나 위협적인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여기에 없겠죠. 알다시피,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요.”

“과분한 칭찬을 듣고 있으려니 귀가 가렵군. 전에는 서두가 이렇게 장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이나 카타르.”

메칼로가 비꼬듯 대꾸했다. 제이나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그러나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반듯하게 잘라서 연마한 대리석처럼 차갑고 매끄러웠다.

“하긴, 당신에게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죠. 좋아요. 거두절미하고 제안하겠어요. 당신과 부하들이 도주를 포기하고 항복하기를 바라요. 우리 쪽의 인원은 직접 확인했으니 이쯤에서 항복한다고 해도 불명예가 아니라는 걸 알 거예요.”

“당신은 우리 쪽 인원을 모르잖나.”

“지금은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니에요.”

“당신도 대화나 할 때는 아니겠지.”

“맞아요.”

차가웠던 제이나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츈 지앵을 사로잡아야 해요. 시간을 지체할수록 변수가 늘어날 테죠. 하지만 당신을 상대로 싸운다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역시 알아요. 싸우기 싫기도 하고요. 시간이나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도.”

마지막 말을 속삭이듯이 하고 나서,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조금 웃었다.

“당신도 그렇죠?”

그녀의 질문은 자신에 차 있었다. 메칼로가 난처한 웃음을 띠었다.

“아니라고 하면 확실히 거짓말이 되는군.”

“그러니 피차 싸우기 싫은 사람들끼리 타협하도록 해요. 당신들은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포기하고 빠져주기만 하면 돼요. 이 일은 비밀에 붙여져서 용병으로서의 당신에게 손해가 가는 일도 없을 거예요. 츈 지앵에게 받을 잔금도 우리가 대신 내줄 거고요. 원한다면 몇 배로 더.”

“대단히 매력적인 유혹인걸.”

“그러면 승낙해요.”

제이나가 한 걸음 더, 메칼로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이미 한 걸음 만큼의 여유도 없었으므로 둘의 몸은 빈틈없이 밀착했다.

“그러겠다고 말하고 나서 재회의 키스를 해줘요.”

보는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암갈색 눈동자가 메칼로의 눈앞으로 다가갔다. 주름진 붉은 입술 안에서 윤기 도는 치아의 끝이 살짝 드러났다. 메칼로의 몸은 그 입술이 줬던 쾌락을 기억하는 것이 분명했다. 제이나는 확신했다.

“당신이 잔금을 지불할 수 있다면 물론 승낙하고말고.”

메칼로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기뻐하거나 의심하기 전에 덧붙였다.

“하지만 못할 거다.”

제이나의 얼굴이 유혹하는 표정인 채로 굳었다가 이윽고 천천히 차가워졌다.

“당신은······.”

그러나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서, 메칼로의 녹색 눈을 빤히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용병으로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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