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349
추천수 :
5,473
글자수 :
930,491

작성
19.02.01 04:43
조회
172
추천
11
글자
11쪽

하나뿐인 길(1)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어쩐지 엉덩이가 욱신거려서 토비아스는 누운 채로 허리를 들썩거렸다. 밀라가 좀처럼 방에서 나가지 않아 엉덩이 밑에 숨겨둔 책을 못 꺼내서인지도 모른다.

토비아스가 침대에서 불편한 듯 끙끙거리자 밀라가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아프면 약을 더 줄까?”

“약을 더 주면 아플 것 같습니다만.”

밀라는 토비아스의 대꾸가 무슨 뜻인지 몰라 생각에 잠겼다. 잠시 생각해도 모르겠던지 물으려는 참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비아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여는 걸 보니 용병단의 단원이었다.

몇 년에 걸쳐 남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문을 두드린 다음 방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가르쳐 놓았지만 아직 두드리는 데까지밖에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토비아스, 매잡이들한테서 받아왔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야.”

열린 문 사이로 손가락 크기의 물건이 날아와 토비아스의 가슴 위에 떨어졌다. 입구 부분이 밀랍으로 봉인된 금속 통이었다.

토비아스는 성급한 손놀림으로 통을 잡아 밀랍을 깨뜨렸다. 통을 기울이자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가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종이에는 깨알 같은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뭐래?”

통을 가져온 단원이 문에 기대어 서 있다가 물었다.

“펠릭스가 개선대로를 향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츈 지앵을 데리고요. 그의 부하들은 어디론가 흩어진 모양이군요. 메칼로 님은 부상을 당했고, 다른 단원들은 무사합니다. 로레단으로 향했다고 하니 아마 거기에서 기다리겠지요. ······메칼로 님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는요.”

“대장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당했다는 거야?”

마지막 말에 놀란 단원이 물었다.

“정신을 못 차렸으니 당한 거겠죠.”

토비아스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지 동료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재빨리 떠났다.

“제게 필요한 것은 체력입니다만······.”

토비아스가 중얼거렸다. 밀라가 다시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체력을 사올까?”

어디서 파는지만 알려주면 사오겠다는 듯이 그녀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었다. 토비아스는 찡그린 표정으로 웃었다.

“그걸 사기에는 대가가 너무 커서요.”

“돈이 부족해?”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토비아스가 대답했다. 밀라는 돈 말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밀이나 콩이나 짐승의 가죽 같은 것을 떠올려 보았지만 용병단의 짐 안에 그런 것은 없었다.

“돈만큼 흔해빠졌지만 돈보다 간수하기 힘든 걸로 사야 합니다.”

토비아스가 다시 말했다.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수수께끼였는데도 밀라는 고집스러운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가 심술궂게 물었다.

“아버지가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한 다음 그래도 모르겠으면 물어보라고 했어.”

밀라의 대답에 토비아스는 삐딱하니 웃었다.

“당신은 물어볼 사람이 많아서 좋겠군요.”

“토비아스는 나한테 물어봐.”

밀라가 선심 쓰듯 말했다. 토비아스는 입가에 비웃음을 띠었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물었다.

“제 집에 일 잘하는 소가 있어서 덕분에 편하게 농사를 짓습니다만, 아무래도 소라는 건 쟁기를 갈 때나 무거운 것을 옮길 때만 쓸 뿐이고 대부분은 풀이나 뜯으며 놀게 되니까요. 그래서 소를 팔고 염소나 살까 생각중입니다. 양젖도 얻고 치즈도 만들고 하려고요. 그런데 막상 소를 팔면 또 소가 필요해지는 때가 오겠지요. 그런 때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옆집에서 빌리면 돼. 아버지는 소를 빌려오면 콩 한 되랑 옥수수 한 바구니를 보내셨어.”

밀라가 선뜻 대답했다.

“그것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를 필요로 하는 날에 옆집도 소를 써야 한다면 빌리기 힘들잖습니까? 그런 때는 어떻게 하지요?”

이 질문은 어려웠는지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밀라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충고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모양이었다.

“생각하는 건 좋은데 저에게 물어보지는 마십시오. 저도 아직 답을 모르니까요. 그리고 기왕이면 나가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

“노새하고 바꾸면 돼. 노새도 일을 잘 하니까.”

토비아스의 말을 끊으며 밀라가 대답했다. 그가 한 말은 하나도 안 들은 것 같았다.

“노새가 소만큼 일하지는 못할 텐데요.”

“아버지가 소 한 마리는 비싸니까 노새랑 닭이랑 감자 포대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 그래서 소를 키우고 싶었는데 송아지가 노새만큼 비싸서 못 샀어.”

언제인지 모를 옛날 일을 소환해 내느라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토비아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노새는 소만큼 일하지 못합니다. 저는 소가 필요해요. 키우기는 힘들지만요.”

토비아스의 말에 밀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노새도 일을 잘 한다고 하셨어.”

“아버지 말씀이 누구에게나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아버지 말은 항상 맞았어! 노새도 일을 잘 해!”

밀라가 화난 얼굴로 외쳤다. 토비아스는 슬슬 그녀에게 대꾸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

“예. 노새도 나름대로 잘 하겠지요.”

그가 대충 긍정하는 말을 했지만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밀라가 다시 강조했다.

“노새도 일을 잘 해! 부지런하다고 하셨어.”

“예. 예. 맞습니다.”

“노새는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안 쉬고 계속 일한다고 하셨어. 사람은 그렇게 일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어. 게으르면 바보가 되는 거라고 하셨어.”

밀라는 열심히 아버지의 말씀을 들려주다가 토비아스에게 더 이상 동의하는 말이 들려오지 않자 눈썹을 곤두세웠다.

“아버지 말씀은 항상 맞아.”

그녀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니라고 하면 물어뜯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토비아스는 멍하니 밀라를 쳐다보고 있다가 그제야 움찔 놀랐다.

“예.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어쩐지 아연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아네타 님은 세라 님과 별로 친하지도 않으시면서 어째서 하필이면 세라의 신자를 통해 응답하시는 겁니까······.”

“뭐?”

그의 말을 제대로 못 들은 밀라가 되물었다. 토비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편지를 써야 하니 잉크와 펜, 종이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올라브 씨에게 매잡이들을 다시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해 두십시오. 가장 비싼 매를 고르라고 하세요. 기억할 수 있습니까?”

“편지를 써야 하니까······ 종이하고 펜하고 잉크가 필요해. 올라브 씨는······음.”

“올라브 씨를 저에게 보내주세요. 그리고 나서 편지를 쓸 준비를 하세요.”

토비아스가 참을성 있게 다시 가르치자 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브를 부르고 편지를 쓸 준비를 하면 돼.”

“맞습니다.”

밀라는 입속으로 “올라브 부르고, 편지 준비. 올라브 부르고, 편지 준비.”라고 외우며 방을 나갔다.

“하아······.”

토비아스는 천장을 쳐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올라브가 다녀가고, 그 직후에 밀라가 편지지와 펜 따위를 들고 방으로 왔다. 토비아스는 침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가 편지지를 앞에 놓자마자 거침없이 몇 장의 종이를 빼곡히 채웠다.

밀라는 그가 쓴 편지를 가지고 내려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올라브에게 편지 줬어. 밤이니까 너는 자야 해.”

편지를 쓰면서 잠시 앉아있었던 것도 마음에 안 드는지 밀라는 어서 누우라고 채근했다.

“잠이 안 올 것 같은데요.”

떠밀리다시피 누운 토비아스가 어쩐지 불평의 기색도 없이 말했다.

“기침을 하면 꼭 자야 한다고 마엘이 그랬어.”

“예. 마엘도 항상 옳은 말을 하지요.”

밀라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아스는 포기한 것처럼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서 한참 말이 없다가, 그가 문득 다시 눈을 떴다. 밀라는 침대 아래에 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밀라.”

토비아스가 부르자 그녀가 약간 짜증내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토비아스는 잠자야 해.”

“부탁이 있습니다.”

드물게 부드러운 말씨였으므로, 밀라는 짜증내다 말고 눈을 깜박였다.

“저를 위해 셈레에게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기도라면 어떤 신이라도 잘 들어주실 것 같군요.”

“셈레?”

“예. 셈레는 여행자의 신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는 분이지요. 메칼로 님이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고요.”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고 생각하면서 토비아스는 소리 없이 웃었다.

“뭐라고 기도하면 돼?”

“셈레께 저를 보살펴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내일 저는 낯선 곳을 걸을 테니까요.”

그 말에 밀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말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거라고 올라브가 그랬어. 모르는 길이 아니야.”

그리고 말하다 다시 생각이 났는지 곧장 이어서 물었다.

“토비아스 혼자 어디 가?”

“혼자 가는 거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대답하다 말고 토비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기도해주면 안 됩니까?”

“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셈레 님의 그림을 그릴 줄 몰라.”

셈레 님의 그림이란 셈레의 성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토비아스는 목탄과 종이를 가져오게 한 다음 직접 셈레의 표식을 그렸다.

밀라는 표식이 그려진 종이가 성물인 것처럼 공손히 받들어서 앞에 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양손을 내밀고 셈레에게 기도하는 동안 토비아스는 불경하게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그 모습을 구경했다.

밀라의 기도말은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고 단순했다. 고상한 수식어도 없었고 겸손이나 곡진한 예의 같은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살을 발라놓은 뼈다귀 같은 기도였다.

하지만 언제나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는 셈레라면, 아름답게 치장한 기도보다 그녀의 단순한 기도를 더 좋아하리라. 토비아스는 그녀의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시나브로 잠들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난 토비아스는 동행인 용병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버터를 넣지 않은 빵과 야채로 만든 스프를 깨끗이 먹어치운 다음, 옆 사람이 먹다 떨어뜨린 치즈 조각을 홀랑 집어먹었다. 그리고는 동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따뜻하게 데운 양젖을 꿀꺽꿀꺽 마셨다.

“음, 이런 맛이었군요.”

빈 잔을 내려다보며 토비아스가 중얼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9.02.01 10:18
    No. 1

    저렇게 똑똑한 사람에겐 진실하게 단순한 사람이 제짝일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11 23:08
    No. 2

    토비아스 잡는 게 밀라인 거 같긴 해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9.02.01 10:29
    No. 3

    노새가 되기로 했나요 이런 가장 단순한 길이군요 다시는 소가 못되겠지만요. 하.. 메칼로가 안나왔어요 마니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11 23:08
    No. 4

    엇, 메칼로를 기다려주시는 건가요.>_< 메칼로가 주인공이 되는 건 5부입니다. 아마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9.02.01 13:07
    No. 5

    지능과 지식과 지혜가 잘 표현되어 녹아 있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특히 요즘) 흔치 않은 일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11 23:10
    No. 6

    (/^o^)/♡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메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메칼로는....... +14 16.05.04 4,467 0 -
178 하나뿐인 길(6) +4 19.03.13 200 11 12쪽
177 하나뿐인 길(5) +10 19.03.02 155 9 11쪽
176 하나뿐인 길(4) +6 19.02.27 110 12 11쪽
175 하나뿐인 길(3) +6 19.02.23 125 8 18쪽
174 하나뿐인 길(2) +4 19.02.11 111 13 9쪽
» 하나뿐인 길(1) +6 19.02.01 173 11 11쪽
172 비수 +6 19.01.27 108 9 10쪽
171 자정 즈음 +10 19.01.23 126 10 13쪽
170 여우들의 왕(4) +8 19.01.18 171 9 12쪽
169 여우들의 왕(3) +4 19.01.17 130 9 10쪽
168 여우들의 왕(2) +6 19.01.15 116 11 11쪽
167 여우들의 왕(1) +8 19.01.12 125 9 11쪽
166 시간의 탑(3) +6 19.01.09 120 11 15쪽
165 시간의 탑(2) +9 19.01.08 105 11 12쪽
164 시간의 탑(1) +4 19.01.07 161 12 10쪽
163 누군가를 위해(6) +14 19.01.05 149 14 12쪽
162 누군가를 위해(5) +7 18.04.29 249 11 10쪽
161 누군가를 위해(4) +6 18.04.22 184 7 10쪽
160 누군가를 위해(3) +2 18.04.19 210 9 14쪽
159 누군가를 위해(2) +4 18.04.14 185 7 11쪽
158 누군가를 위해(1) +4 18.04.12 145 7 12쪽
157 아무도 모른다(8) +4 18.04.12 133 6 15쪽
156 아무도 모른다(7) +4 18.04.12 137 6 11쪽
155 아무도 모른다(6) +4 18.04.11 126 7 14쪽
154 아무도 모른다(5) +4 18.04.11 121 8 14쪽
153 아무도 모른다(4) +2 18.04.11 139 7 13쪽
152 아무도 모른다(3) +4 18.04.10 185 9 13쪽
151 아무도 모른다(2) +1 18.04.10 144 10 12쪽
150 아무도 모른다(1) +2 18.04.10 159 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