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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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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3
글자수 :
93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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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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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누군가를 위해(2)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무 롱이 당황해서 몸을 일으켰다. 본능적인 행동이었으나 재빨리 다가온 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자는 줄 알았던 산디아였다. 그녀는 무롱에게 눈짓을 보낸 다음 도로 눈을 감고 고른 숨을 쌕쌕 내쉬었다. 누가 봐도 정신없이 잠든 모습이었다.

무 롱도 그녀를 따라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했다. 망토 밑으로 숨긴 한 손은 무기를 잡고 있었다. 눈을 감자 더욱 예민해진 귀에 주변의 소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 갑자기 “부우우!”하고 우는 밤새 소리, 풀잎 사이에서 지르르 울다가 그치곤 하는 벌레 소리가 감은 눈을 파고들었다. 무 롱은 그 사이에 숨겨졌을 적의 발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다른 소리는 없었다.

슬슬 한계를 느끼고 실눈을 뜨자 때맞춰 산디아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며칠간 귀에 익은 에밀리오의 발소리가 나무 사이로 들려왔다.

소년은 야영지로 돌아오더니 산디아를 보고 멈춰 섰다. 기분 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리가 좀 멀었어. 따라가 봤지만 못 찾겠다. 근처에 숨은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 생각 없이 북서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뺐으니까.”

에밀리오의 보고에 산디아가 무 롱을 돌아보았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습니까? 아니면 사냥꾼의 임시 거처라든가.”

무 롱은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근방에서 인가나 건물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소. 마지막으로 와본 것이 2년 전이니 그 사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그 사이 누군가 살게 되었다면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남아있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런 흔적은 못 봤습니다. 또 거리가 멀었다지만 에밀리오의 추적을 뿌리치고 도망갔습니다. 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북서쪽으로 갔다는 것은 동료들이 거기에 있다는 건데······.”

산디아가 말끝을 흐리자 무 롱도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떫은 표정을 지었다.

북서쪽은 이제부터 그들이 이동해야 할 방향이었다. 적이 자신들을 뒤쫓아 남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 가야 할 방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구안팅 수 뿐만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이중의 덫을 쳐놓고 있었다고?”

무 롱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스스로 말하고 나서도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걸.”

무 롱의 마음속 생각에 맞장구치듯이, 잠든 것처럼 보였던 메칼로가 몸을 일으키며 대꾸했다. 메칼로 뿐 아니라 션 사람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모두 잠에서 깬 것 같았다.

“만일 구안팅 수가 실패할 경우를 예상했다면 그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야 한다. 어디로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그곳으로부터 하루 이상의 거리에 두 번째 덫이라니 바보나 할 짓이야. 혹은 우리가 로레단으로 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가? 알 수 없을뿐더러 알았다고 해도 바보짓인 것은 비슷하고, 그보다 거기에서부터 로레단으로 가는 길이 이곳뿐인 것도 아닐 텐데?”

조목조목 짚은 메칼로의 질문에 션 사람들은 난처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그들도 당장 대답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누안 유가 아닐까.”

잠시 후에야 츈 지앵이 입을 열었다. 일행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고를 노려 구안팅 수나 암살자들을 보낸 것은 린 환이었겠지만, 만일 이 앞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누안 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적일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마치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처럼 담담한 태도로 그가 말했다.

린 환도 누안 유도 션의 왕자라는 것밖에 모르는 테리아 인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무 롱이 그들에게 설명했다.

“린 환 왕자는 넷째 비마마의 소생으로 야심 있고 잔인한 성격이오. 넷째 비마마의 친부가 션의 재상이니 그 세력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츈 지앵 전하의 친모이신 셋째 비마마께서 생전에 국왕께 총애를 받던 때 넷째 비마마의 질투와 원한이 극심하셨소.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암살자를 보내온 것도 린 환 왕자의 소행이오.”

무 롱의 클레타 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면서도 션의 무사들은 린 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차가워졌다.

“누안 유 왕자는 다섯째 비마마의 소생인데, 친모인 다섯째 비마마의 신분이 낮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력이 보잘 것 없었소. 그런데 2년 전 다섯째 비마마가 승하하신 후 갑자기 왕후의 양자가 되고는 상황이 크게 변했다오. 불과 2년 만에 린 환 왕자와 비등할 정도까지 세력을 불렸소. 왕후의 후원을 받았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오. 변방에서 수도의 소식을 받을 때마다 거짓말을 듣는 기분이었소.”

무 롱은 설명하다 말고 텁석나룻을 거칠게 만지작거렸다.

“그때는 이미 양헨 성으로 옮겨 온 후라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수염을 실룩거리며 그가 말끝을 흐렸다. 힐끗 쳐다보는 시선의 끝에 츈 지앵이 걸려있었다. 션의 왕자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가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고의 두 번째 아내는 슈에 펜 가문의 여식으로, 슈에 펜 가문은 최근 막내딸을 누안 유에게 보냈다. 수도로 고의 소식이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는 말도 들었으니 누안 유가 그녀를 통해 양헨 성의 소식을 듣고 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겠지.”

츈 지앵은 잠깐 말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목소리가 조금 무거워져 있었다.

“불과 2년 만에 린 환을 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왕후의 힘만으로는 어렵지. 그러나 고가 기억컨대 누안 유는 게으르고 분별력 없는 남자였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바라. 누안 유가 지금까지 고와 세상의 눈을 속였다면 우리의 뒤를 쫓지 않고 앞을 가로막았다고 한들 어찌 놀라겠는가.”

“어쨌든 아직까지는 모두 가정일 뿐이오.”

츈 지앵의 목소리와 함께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고 싶은지 무 롱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메칼로가 씩 웃었다.

“우리도 상대가 흰 개든 검은 개든 상관없다. 하지만 누가 되었든 정말로 놈들이 우리를 앞질러 기다리고 있다면 곤란하긴 하군. 그건 즉, 상대편에도 토비아스 같은 녀석이 있다는 뜻이니까.”

토비아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션 사람들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테리아 인들, 산디아와 에밀리오는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한 메칼로를 향해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방금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만.”

담요에 감싸인 채로 나무 컵에 가득한 차를 받고서 토비아스가 문득 중얼거렸다.

“감기에 걸렸으니까.”

무뚝뚝한 목소리가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고 나서 짧게 덧붙였다.

“초여름에.”

토비아스는 목소리의 주인을 흘겨보았다. 짜증을 낼 생각이었으나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투박한 얼굴의 처녀를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밀라, 아직은 봄이겠지요. 계절이 바뀌는 이 즈음을 환절기라고 합니다. 감기는 주로 이런 때에 걸리는 법입니다.”

약간 쉰 목소리로 찬찬히 설명하는 토비아스에게 그녀가 다시 대꾸했다.

“난 그런 적 없어.”

“······당신은 세라의 깡패 같은 신자니까요.”

“빨리 마시고 자. 아버지가 감기는 잠을 자야 낫는다고 했어.”

“감기도 내 몸도 당신 아버지보다는 내가 더 잘 알······.”

“아니면 컵을 입에 처박아 마시게 한 다음 기절시키겠어.”

밀라는 그의 잘난체하는 말을 자르며 퉁명스럽게 경고했다. 토비아스는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조용히 차를 마셨다.

차는 쓰고 맛이 없어서 토비아스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한 모금씩 삼켰다. 차라기보다는 약에 가까웠다. 반도 못 마시고 컵을 내놓았지만 거친 손가락이 그것을 도로 토비아스의 코앞에 대령했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건 세라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토비아스가 투덜거렸다.

“난 세라 신전에서 배운 적 없어.”

밀라의 철벽같은 대답에 토비아스는 힘없는 한숨을 쉬었다.

“예. 아네타께서는 게으름으로 인한 무지를 죄라고 가르치시지만 물론 당신은 아네타 신전에서도 배운 적이 없을 테니까······.”

“아버지가 코를 잡고 입에 약을 붓는 법은 가르쳐 주셨어.”

대꾸와 함께 흉터투성이의 손이 다가와서 토비아스는 질겁하며 차를 꿀꺽꿀꺽 삼켰다. 그가 빈 잔을 내밀자 손은 흡족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것을 가져갔다.

토비아스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담요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누렇게 뜬 얼굴에 약간의 혈색이 돌았지만 그것은 열 때문이다. 이마와 콧잔등에는 엷게 땀이 나서 반질거리고 있었다.

“후발대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습니까?”

“없어.”

“제가 부탁한 것들은······.”

“다 했어. 이제 자.”

밀라가 담요 위로 이불 한 장을 더 가져와서 덮었다.

“그렇게 자꾸만 덮으면 이불에 깔려죽을 겁니다.”

토비아스가 시들어가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물론 엄살이었지만 밀라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결국 이불을 치웠다. 토비아스라면 이불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토비아스의 침대를 이리저리 손보고, 난로의 불이 잘 타오르도록 들쑤신 다음 방에서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불이 꺼지면 안 되니까······.”

열에 약간 들뜬 채로 토비아스가 중얼거렸다. 밀라는 방안을 밝히고 있는 촛불을 힐끗 보았다. 새것으로 불을 밝힌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새벽까지는 충분히 탈 것이다. 난로의 불도 있었다.

“불이 꺼지면 무서우니까······.”

가느다랗게 줄어든 목소리로 토비아스가 다시 중얼거렸다. 차에 넣은 양귀비 즙이 효과를 보이는지 애써 올린 눈꺼풀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불이 꺼지면······.”

그런데도 끈질기게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밀라는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을 테니 자라.”

그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제야 안심한 것처럼, 토비아스는 잠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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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8.04.14 02:32
    No. 1

    첩첩산중이지만 메칼로의 저 자신만만한 거동을 보면 (독자들은, 아니 독자들만?) 안심이 절로 되는 겁니다.

    토비아스 힘내...(눈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8.04.19 19:05
    No. 2

    아마도 독자들만 안심....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8.04.14 04:06
    No. 3

    토비아스는 한여름에도 감기에 걸릴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8.04.19 19:07
    No. 4

    엌ㅋㅋ 토비아스는.....그렇죠. (끄덕)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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