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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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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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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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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4)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어디선가 한 무리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츈 지앵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메칼로와 눈이 마주쳤다.

“슬슬 말을 보낼 때다.”

그가 말했다. 메칼로는 뒤쫓아 오는 적이나 생사가 불분명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뒤쫓는 적은 늘 있었으니 당연히 동료들의 위험도 항상 있었다. 그뿐인 일이다. 그런 그의 사고방식을 고작 며칠 함께 지내는 동안 싫어도 알게 된 츈 지앵은 본능적으로 치밀어 오른 거부감을 누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했던 길에서 돌연 방향을 바꾼 것도, 지체할 틈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도 메칼로의 판단이었다. 반대는 통하지 않았다.

서로 머릿수가 비슷해서 피차 의견충돌을 피해왔다고 생각했던 츈 지앵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은 모조리 착각이고 오판이었다. 테리아 인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이곳에도 휘파람새가 있느냐’고 물은 메칼로에게 츈 지앵이 ‘여름이면 온다’고 대답한 순간부터였다. 메칼로는 즉시 말머리를 돌리게 했다.

왜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는 물론 츈 지앵도 알았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휘파람새의 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신호였다. 어젯밤 이야기를 나눈 대로 기다리는 적이 있고 그들에게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앞서 떠난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을 내버려두고 도망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메칼로의 대답은 차갑고 단순했다.

“살아남으면 쫓아올 테지.”

거기에 동의한 사람은 테리아 인 여자뿐이었다.

물론 타협의 여지없이 밀어붙인 메칼로의 판단은 옳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무 롱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같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방향을 돌려 능선을 타고 올라가자 척후가 향했던 방향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츈 지앵도 그의 부하들도 사냥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뒤이어 수십을 헤아리는 숫자가 넓게 퍼져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새들의 움직임이나 소리,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머뭇거리다가는 포위망에 갇힐 것이 뻔했다.

방향을 바꾼 뒤부터 그들은 말이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해 최대한 속도를 냈다. 다리가 불편한 츈 지앵이 동행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거리가 좁혀졌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소수의 추적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더 이상 흔적을 보며 뒤쫓아 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고 지름길을 선택해 뒤쫓는다.

츈 지앵이 어느 길로 가는지는 말 탄 흔적을 보고 금세 알았을 것이다. 말을 탄 채로 갈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 근방의 지리에 밝기만 하면 예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잠시 후 츈 지앵이 말에서 내리자 션의 무사 중 하나가 고삐를 잡았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가까워진 추적자들만 따돌리면 되니 적당한 곳에서 말을 버리고 가도록 해.”

메칼로의 말을 츈 지앵이 통역해 알려주자 션의 무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말고삐를 당겼다. 네 사람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이 속임수로 벌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다리가 불편한 츈 지앵을 데리고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어느 쪽으로 가는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에밀리오나 무 롱이 제대로 쫓아와 줄 수 있는지, 방금 헤어진 션의 무사와 무사히 만날 수는 있는지, 어느 것도 장담 못했다. 이대로 네 명만 도망가게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 상황에 메칼로가 선택한 길은 추적자들의 뒤를 잡는 것이었다.

에밀리오와 무 롱이 벌어준 시간, 그리고 말을 데리고 떠난 션의 무사가 다시 한 번 벌어줄 시간으로 그는 추적자들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온 방향으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무모하면서도 단순한 계산이었다.

“저놈들 뒤로 가서 놈들이 온 길을 따라 거슬러 가는 거다. 저만한 수가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 흔적 따위는 가볍게 가려질 거고, 흔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속도만 신경 쓰면 된다. 운이 좋으면 로레단까지 직행이지.”

츈 지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하가 업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산길을 탄 덕분에 이마과 콧잔등 위로 땀이 반질거렸다.

“말처럼 쉬울 리가 있나. 우리가 로레단으로 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대비도 해뒀겠지.”

“놈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쭉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무리였거든.”

“무슨 말인가.”

“미리 알았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양헨 성에서 클레타의 수도로 가는 길목에 첫 번째로 들를만한 마을은 경로에 따라 거기 말고도 몇 개나 더 있다. 로레단이 특별할 이유는 없어. 그러니까 놈들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앞을 지키고 있었겠나.”

츈 지앵의 물음에 메칼로가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나라면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길목을 막아두겠다. 클레타에서 용병을 사면 어려울 것 없지. 자금이 충분히 있을 경우겠지만.”

“클레타의 용병이라고?”

츈 지앵이 거칠게 물었다가 저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 입을 다물었다. 메칼로는 나무라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놈들은 약속 신호로 휘파람새 소리를 냈다. 여기에 휘파람새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다. 션의 지리에 무지하다는 뜻이겠지. 테리아나 클레타에서 휘파람새는 텃새라 흔하게 볼 수 있다. 흉내 내기 쉬워서 신호용으로도 곧잘 쓰고. 그런데······.”

잠깐 말끝을 늘였다가, 그는 어딘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놈들은 이곳의 지리에 익숙해 보인다. 그렇다면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외지인, 우리와 가까워진 소수의 추적자들이 션 사람이라고 예상해 볼 수도 있다. 국적이 섞여 있다면 명령계통도 둘이니까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하나 생기는 거지.”

메칼로의 말을 듣고 있던 츈 지앵이 이마를 찡그렸다.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낸 이후로 그는 전에 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문득 물었다.

“용병을 여기까지 불러들이는 일이 쉬운가?”

“쉽지는 않을 걸. 저 정도 규모라면 직접 돌아다니며 모아서 데려오거나 클레타 수도에서 교섭해야만 한다. 어느 쪽이든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는 점은 같겠지.”

메칼로의 대답에 츈 지앵의 표정은 한층 딱딱해졌다.

“어쨌든 내 예상대로라고 하면, 놈들의 병력은 대충 지금의 세 배 이상. 위치가 발각되었으니 나머지 병력도 하루 이틀 사이에 모이겠지. 국경 근처에서 병력을 빌릴 곳이 있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메칼로가 의견을 구하듯 츈 지앵을 쳐다보았다. 션의 왕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클레타가 눈치 채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아무리 왕자의 명령이라 해도 국경 너머로 병사를 보낼 성주는 없으리라.”

“그래주면 좋지.”

메칼로가 시원스레 대꾸했다. 츈 지앵은 찡그린 것도 웃는 것도 같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 것을 헤아릴 필요도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대에게는 다른 길이 보이는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도록 고에게도 그 길을 알려주었으면 하는군.”

츈 지앵의 말에 메칼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런 거 있을 리가 없다는 뜻이지만 알아들은 사람은 산디아뿐이었다.

그때 앞장서서 걷던 션의 무사가 한 손을 들어 신호했다.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숙였다.

“디렌.”

션의 무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디렌은 션의 언어로 ‘적’이라는 뜻이었다. 말한 다음 그가 양손의 손가락을 겹쳐 십자를 만들어 보인 다음 다시 한 손 손가락을 반쯤 구부려 보였다.

십자는 활을 가리키는 수신호였다. 구부린 손가락은 절반. 그러니까 화살이 닿을 정도의 절반 거리를 가리킨다.

문제는 션의 활이었다. 그들이 가진 활은 험하게 사용해도 좋은 단단한 목궁이었으나 사거리가 터무니없이 짧았다. 그나마 절반이면 오십 걸음 안팎이다. 울창한 나무로 가려지지 않았다면 얼굴 표정을 알아볼 수도 있는 거리였다.

‘벌써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츈 지앵의 말을 데리고 떠난 션의 무사는 이곳으로부터 훨씬 멀리 있었다. 그를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처음부터 속지 않고 제대로 쫓아온 셈이었다.

메칼로가 혀를 찼다. 헤어진 곳에서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놈들 가운데 추적에 능한 신자가 있는 모양이다. 계속 가. 들켜도 어쩔 수 없다.”

일행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이 급해진 션의 무사가 다시 츈 지앵을 업겠다고 말하는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는 메칼로가 반대했다.

“등에 업었다가 저쪽에서 활이라도 쏘아대면 그대로 화살받이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말로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올랐다.

누군가를 맞히기 위한 화살이 아니었다. 화살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메칼로 일행이 가는 길 앞으로 떨어졌다. 우는살, 효시(嚆矢)였다.

“망할.”

산디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는살의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멀리서 천천히 좁혀가던 포위망이 멈췄다가 단번에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적자들의 뒤를 타려고 방향을 잡았던 참이라 거리도 별로 멀지 않았다.

메칼로가 츈 지앵의 팔 한 쪽을 잡아 어깨에 걸쳤다.

“달린다. 정신 바짝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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